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거대한 초막 한 구석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돌들이 쌓여 있었고 그 돌들에는 마치 금이라도 막혀 있는 듯 노란 줄띠가 보였다.
정확하게 말해 금이 섞여 있는 돌들을 모으고 있는 레드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돌들을 모으는 것도 싫증이 났는지 이 거대한 초막에 앉아 뭔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때가 많았다.
“으음…….”
눈을 감고 있던 레드가 그 상태로 신음을 토해냈다.
“이제야 겨우!”
외침과 함께 번쩍 눈을 뜨는 레드였고 자신의 눈앞에는 땅속에서일어서처럼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홀로그램이 떴다.
-레드
종족 : 헌터(드래곤)
특성 : 고독한 자
레벨 : 550
생명력 : 42,720
근력 : 750
민첩 : 675
지혜 : 1,986
명성 : 9,775
마력 : 1
공격력 : 955(+450)
방어력 : 879(+250)
지금 레드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스탯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레드의 눈빛에는 희열과 절망이 공존했다.
“겨우,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레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신이시여! 진정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드래곤은 신에 가까운 완전체이며 지혜롭고 광폭한 존재라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드래곤을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마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드는 레벨 450이 된 후에서야 마력 스탯이 생성이 됐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이곳으로 강제 소환한 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연꽃의 손을 꼭 잡고 대나무 숲을 걷기 시작했고, 연꽃은 내 손을 뿌리치지만 않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연꽃도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만감이 교차하겠지.’
결국 하늘 부족 부락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활쏘기 수련장까지 왔고, 꺼져가는 모닥불의 불씨를 살려 모닥불을 다시 피우고 나서 바로 연꽃이 앉기 편하게 평평한 돌을 주워 와 바닥에 내려놨다.
“여기 좀 앉아, 앉아서 이야기나 하자.”
둘이 있으니 존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예.”
“우리, 짝이잖아. 우리끼리 있을 때는 예전처럼 지내자.”
“…….”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너도 알지?”
내 물음에 연꽃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사실 연꽃은 그 어떤 여자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실은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
어떤 면에서 나는 연꽃에게 악어머리 부족 전사 30명과 전투를 벌일 수도 있다고 통보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왜?”
연꽃이 조심히 내 눈치를 봤다.
“그들이 오고 있으니까.”
동굴에서 이미 했던 말이지만 연꽃을 설득시키기 위해 다시 말을 꺼내 설명했다.
우리에게 물소를 주기 위해서 오는 숫자치고는 너무 많았다. 전사 30명은 악어머리 부족 전사 중 10%에 달하는 숫자고, 대부대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대부대가 움직이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전투를 의미한다.
“어떻게 알아? 그렇게 많이 우리한테 오는지 어떻게 알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연꽃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냥 알아.”
설명할 방법은 없다. 배트맨에 대해 말해 줘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악어머리 족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물소 고기를 주려고 오는 거라면 30명이나 올 필요가 없잖아.”
내 말에 연꽃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머리로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이해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와는 확실히 달라.’
이것이 바로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일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다르다.
“나는 하늘 부족의 족장이야. 그래서 나도 내 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준비해야 해.”
내 말에 연꽃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생각이 아닐 거야.”
연꽃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설마 오빠라는 거야? 맞아, 분명 오빠가 시켰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큰눈보다 먼저 족장님에게 용의 뼈로 만든 검을 받았거든. 아마 그것 때문에 날 미워하고 있을 거야.”
나에 대한 큰눈의 시기심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큰눈이 이런 짓을 꾸몄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놈은 그럴 깜냥이 안 되는 놈이고, 이런 생각조차 할 머리가 없는 놈이니까. 하지만 연꽃에게 악어머리 족장이 지시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큰눈의 이름을 팔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빠가 싫어하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대나무 갑옷도 만들고, 방패도 만드니까 큰눈이 나를 안 좋게 보고 있어.”
“맞아, 오빠는 입이 작아.”
연꽃은 머리로는 이해를 하는 것 같다.
“나도 악어머리 부족하고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이미 전사들은 오고 있어. 아무 일도 없이 악어머리 부족 전사들이 우리가 사는 것만 보고 돌아갔으면 좋겠어.”
“안 싸울 수도 있다는 거지?”
그때 연꽃이 내게 확답이라도 받겠다는 듯 물었다.
“나 역시 싸우고 싶지 않아.”
연꽃은 내 말에 휴우,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는 술이 담긴 대나무 통의 뚜껑을 열어서 한 모금 마셨다.
“가슴이 답답하니? 이것 좀 마셔 봐.”
“뭔데……?”
“한 모금만 마셔봐!”
과일이 발효되어 만들어진 술이기에 달짝지근했다.
“……으음?”
연꽃이 조금 마셨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때? 써?”
“응, 써! 하지만 조금은 달기도 하고…….”
연꽃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는 않는 듯 내게 대나무 통을 건넸다.
“연꽃, 너는 하늘 부족의 큰어미야. 그리고 둘도 없는 내 아내다.”
“둘도 없는?”
연꽃의 눈빛이 변했다.
“응,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살짝 대화의 주제가 옆으로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족장이잖아…….”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고 더 많은 혈족을 만들어서 부족을 단결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족장의 의무라면 의무라는 것을 연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만으로도 충분해.”
“그래도 족장은 많은 아들을 가져야 해.”
“그래서 내가 싫어?”
“…….”
싫다고는 말하지 않는 연꽃이다.
“난 너 하나면 돼. 그래서 어쩔 수 없을 때는 너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을 해야 해.”
“고마워…….”
조금씩 나를 이해해 주는 눈빛을 보이는 연꽃이었다.
“알아. 그래서 나 지금 힘들어.”
그녀가 왜 힘들어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물론 나 역시 머리로만 이해가 되는 상태일 거다.
“네가 낳은 우리 아들은 악어머리 부족보다 더 큰 부족의 족장이 될 거야.”
“그럼 나중에는 싸우게 될 거라는 말이네.”
역시 똑똑한 연꽃이다.
“싸워야 한다면 싸울 생각이야.”
“아버지한테 창을 겨누겠다고?”
“나는 내 아내 연꽃이 낳은 내 아들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먼저 싸움을 걸고 싶지는 않아. 강 아래는 아주 넓은 땅이 있어. 그러니까 악어머리 부족은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어. 그럼 두 부족은 싸울 일이 없어.”
“악어머리 부족은 지금까지 이곳까지 올라온 적이 없어.”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라.”
그들은 내가 만들어준 무기로 검은고래 부족을 점령했을 것이다.
그리고 야망이 큰 남자라면 새롭게 정복할 곳을 찾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들이 강 아래를 다 점령하고 나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눈을 돌려 이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까지 점령한다면 강을 건널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악어머리 족장이었어도 그럴 테니까.
“그래도 악어머리 부족과 싸우고 싶지 않아.”
“말이라도 고마워.”
“하지만 내가 죽으면 연꽃이 낳은 아들도 죽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싸움을 걸어오는 부족이 있다면 상대가 누구라 해도 싸워야 해.”
그제야 글썽이던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울지 마! 최대한 싸움을 피해 볼게.”
“있잖아, 나…….”
“응.”
“피가 나오지 않아.”
“……뭐?”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가 나오지 않으면 아이를 가진 거라고 했어.”
연꽃이 말하는 피는 생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임신한 걸까?
“정말?”
연꽃에게 되물었지만 나도 모르게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아버지가 된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응, 대부분 그렇다고 들었어.”
이제는 내가 더 강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순간이다.
-주인님! 누군가 훔쳐보고 있습니다요!
그때 배트맨의 초음파를 통해 내게 알려왔고, 나는 바로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어느 방향이야?’
-그, 그게 말입니다요…….
동서남북을 파악하는 훈련을 시켰는데도 아직 동서남북을 구별하지 못하는 배트맨이다.
-주인님이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손 쪽에 숨어 있습니다요.
한참을 고민하던 배트맨은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숨어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위치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숨어 있는 존재를 봤다.
‘아하, 가시꽃이네.’
이제 물증을 잡는 순간이다.
쫘아악!
그런데 가시꽃이 갑자기 옷을 주춤주춤 올리더니 마치 보란 듯 오줌을 쌌다.
‘오줌을 싸러 왔나?’
그게 아니라면 내가 자신을 봤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임기응변을 취한 것이다.
‘스파이로는 제격이군.’
하지만 물증을 잡은 것은 확실했다. 오줌을 다 싼 가시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목책 동굴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엿들었다면…….’
내 계획을 다 들은 거다.
‘죽여야 하나?’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족장이 된 후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어쩔 수 없다면 한다.’
여자를 죽이는 것은 달갑지 않다. 하지만 가시꽃의 입을 막을 쉬운 방법이 내게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시꽃을 처리하는 것보다 연꽃을 설득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럼 너랑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수가 없어.”
“나도, 나도 내 아이를 지킬 거야.”
연꽃은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여자는 한없이 약해도 어머니는 그 무엇보다 강하다.
마음을 먹은 연꽃의 눈동자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고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꼭 족장으로 키울 거야.”
연꽃에게도 목표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서 달라질 것이다. 내 어머니, 제비꽃처럼 말이다.
“그래, 내가 우리의 아이에게 가장 큰 부족을 만들어서 줄게.”
내 말에 연꽃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됐다.’
나 역시 연꽃의 동의를 얻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압도적인 병기의 차이가 있지 않는 이상 전투에서 승리한다 해도 어떻게든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성장할 때지, 결코 싸울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