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어두운 과일 창고 안.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비꽃이 말도 없이 가시꽃을 어깨를 잡고 눌러 그 자리에 앉히자 가시꽃은 화들짝 놀라며 제비꽃에게 물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지만 가시꽃의 눈빛이 차갑고 사납게 변한 것이 느껴졌다. 빛은 저런 눈빛이 살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몰라서 묻는 거냐?”
“예?”
“네가 아버지의 눈이든 아니든 나는 상관없다. 우선은 네가 족장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저, 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시꽃은 처음에는 도둑질을 들킨 아이처럼 목소리가 떨렸지만 나중에는 당당해졌다.
“빛아!”
“예, 제비꽃 님!”
“가시꽃을 단단히 묶어라.”
“예, 알겠습니다.”
빛이 그냥 보기에는 가냘픈 체형의 여성으로 보이지만 그녀 역시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늑대발톱과도 견줄 수 있는 훌륭한 전사다. 신체를 단련하지 않은 평범한 여자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강인하다는 말이다.
“왜 이러세요!”
“네가 내 아버지의 눈이 아니라면 나중에 너에게 사과를 하마.”
“저는 제비꽃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제 족장님께서 왜 땅속에서일어서족장님을 감시하라고 시킨다는 거죠?”
“그냥 잠시 묶여 있으면 된다.”
“제비꽃 님은 그냥 제가 싫으신 거죠?”
순간 가시꽃이 매섭게 제비꽃을 노려봤다.
“너는 내게 거짓말을 했어. 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다른 여자에게 태어난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신 적이 없다. 그래서 아들도 하나뿐이시다. 그런데 딸을 받아들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제비꽃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오, 오해, 오해입니다!”
“그냥 바람이 그칠 때까지 잠시 묶여 있으면 된다. 내가 짐작한 게 틀렸고, 네가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 사과를 하마. 빛아! 어서 가시꽃을 묶어라.”
“예, 제비꽃 님!”
빛은 가시꽃을 제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밧줄로 묶었다.
“미안해요.”
“이, 이러지 마세요! 무서워요!”
“그런데 만약에 가시꽃, 당신이 제비꽃 님의 말씀대로 스파이라면, 그리고 땅속에서일어서 족장에게 화가 되는 존재라면 그때는 제 화살에 죽게 될 겁니다.”
빛은 담담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오히려 그 목소리 때문에 가시꽃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저는…… 흐윽…….”
여자의 최후의 무기는 눈물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 최후의 무기도 남자들에게나 통하는 거지, 같은 여자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울어도 소용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너는 악어처럼 우는구나.”
“흐윽, 저는 아닙니다.”
그렇게 가시꽃이 아니라고 말할 때 빛은 조심히 가시꽃의 손을 살폈다.
‘칼을 잡아본 손이다.’
그렇게 가시꽃은 제비꽃과 빛에 의해 감금이 됐다.
“가자!”
과일 창고의 문이 닫히는 빛은 조용히 제비꽃을 불렀다.
“제비꽃 님.”
“왜?”
“절대로 가시꽃과 둘이서 계시면 안 됩니다.”
“왜지?”
“가시꽃의 손은 칼을 잡은 손입니다.”
빛의 말에 제비꽃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손처럼?”
그리고 제비꽃은 빛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 제비꽃 님도…… 그럼 악어머리 부족은 여자들은 모두 칼을 쥐는 전사라는 건가요?”
“전부는 아니지. 특별한 경우에만 칼을 받아.”
“예?”
“나는 족장의 첫 번째 딸이라서 전사 훈련을 받았단다. 네가 본 것처럼 가시꽃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훈련을 받은 것 같구나. 다행스럽게 땅속에서일어서 족장이 가시꽃에 관심이 없구나. 그게 참 다행이다.”
제비꽃의 말에 빛이 고개를 끄덕였다. 땅속에서일어서가 가시꽃에게 여자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빛은 알았다.
‘나도 밀어내시는 분이신데.’
빛은 가만히 차오르는 상념을 삼키고 그저 제비꽃이 한 말에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내가 또 칼을 잡을 때가 있을 것 같구나.”
제비꽃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아들이 하지 못하는 일은 내가 해야지. 그래야 엄마지…….’
순간 빛은 제비꽃의 눈동자에서 가시꽃이 보였던 살기를 다시 한 번 느꼈다.
* * *
“저기 하늘 부족의 부락이 보입니다!”
악어머리 부족 전사 하나가 오랜 여정의 끝에 목적지를 발견하자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뒤에서 낑낑거리며 세 마리의 물소 새끼들을 들쳐 메고 있는 전사들이 하늘 부족의 부락이 보이자 미소를 지었다.
“엉성하군.”
이빨은 목책도 되지 못하는 울타리가 여기저기 숭숭 뚫려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예, 저건 우리 부족 목책을 보고 따라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엉성한 것 같습니다. 이빨 님!”
“일할 사람은 아이들밖에 없으니 큰바위와 늑대발톱이 겨우겨우 만들어서 세운 모양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자! 우선 가보자.”
“예, 이빨 님!”
“그리고 절대로 내가 말한 것을 잊지 마라.”
“예.”
이빨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전사머리 셋이 동시에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땅속에서일어서는 비트에 전사들을 숨기고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다.
* * *
“땅속에서일어서 족장! 악어머리 부족의 이빨이 왔다!”
급조한 목책 밖에서 이빨이 큰 소리로 자신들이 왔다고 외쳤다.
이미 배트맨에게 보고를 받은 내용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숫자였다.
“왔어.”
“응.”
연꽃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빨이 왔다! 족장님께서 연꽃과 땅속에서일어서 족장에게 물소 고기를 가져다주라고 해서 왔다!”
이빨이 다시 외쳤고, 나는 급하게 허름한 대나무 문을 활짝 개방했다.
‘헐,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내 눈에는 30명의 악어머리 전사들이 보였고, 새끼 물소 세 마리를 죽이지도 않고 산 채로 네 다리를 꽁꽁 묶어서 매달고 온 모습도 보였다. 혀가 내둘러지는 장면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빨 님!”
우선은 반갑게 맞이해줄 생각이다. 내게 그냥 소만 주고 돌아간다면 말이다. 그리고 소를 살려서 가지고 왔으니 쓸모가 아주 많을 것 같다.
‘소를 키워봐야겠네.’
물소가 사납기는 하지만 송아지 정도다. 그러니 목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흠, 여자들과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부족민들이 안 보이는데?”
이빨은 급조한 부락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다짜고짜 내게 하대했다.
작은 부족이라고 깔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몇 놈들 빼고는 눈빛이 평범해.’
그것을 통해 누가 이빨의 신뢰를 받고 있는 전사들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은 마음속에 숨겨둔 것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그러니 눈빛만 잘 살펴도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독특한 눈빛을 한 저놈들이 다른 전사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일 것이라고 확신이 든다.
‘모든 걸 모든 전사에게 다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이빨이 공격 명령을 내리면 악어머리 부족 전사들은 당황하겠지만 저놈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들까지 명령을 하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외삼촌! 오셨어요?”
연꽃이 환하게 웃으며 이빨을 맞이했다. 이빨은 과잉 연출된 연꽃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옷이 그게 뭐냐?”
이빨이 연꽃이 입고 있는 허름한 가죽옷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괜찮아요. 먹을 것을 구하려고 하다가 그런 거예요.”
“네가 먹을 것을 구한다고? 그나저나 부족민들은 어디로 간 것이냐? 그들도 먹을 것을 구하러 간 거냐?”
“하늘 부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하늘 부족의 주술사입니다.”
이빨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연꽃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할머니가 딱 타이밍에 맞춰 이빨의 말을 끊었다.
“악어머리의 이빨입니다.”
이빨은 주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께 하대를 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주술사는 경외의 대상이니까.
“이빨 님! 물소를 잡습니까?”
전사 하나가 이빨에게 물었고, 이빨은 허름한 움막을 한 번 쭉 둘러봤다.
“연꽃아!”
“예, 외삼촌!”
“살이 많이 빠졌구나. 가여운 것……. 얼마나 못 먹었기에 이렇게 홀쭉해졌느냐.”
며칠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기에 연꽃의 얼굴은 홀쭉했고, 이빨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기를 가졌으니까 잘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
괜히 연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꽃의 마음고생은 나로 인해서 시작된 것이니 말이다.
“저는 괜찮아요.”
“고기는 먹고 사느냐?”
연꽃에게 말하는 이빨의 물음이 내 귀에는 밥은 먹고 다니냐는 걱정처럼 들렸다.
“헤헤, 예.”
연꽃이 멋쩍게 웃었다.
“그렇지. 이빨호랑이가 있으니 고기는 먹겠지.”
“큿, 그 망할 놈은 다 컸다고 산 위로 도망쳤습니다.”
내 말에 이빨이 인상을 찡그렸다.
“도망을 쳤다고?”
“예, 짝을 찾으러 갔는지 부려 먹히는 것이 싫었는지 한참 전에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요즘 고기는 입에 대지도 못했습니다.”
“으음, 나도 키워 볼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새끼 물소를 세 마리나 가지고 오셨네요. 제가 잡아서 바로 맛있는 요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배도 고프실 텐데 잠시 앉아서 기다리세요.”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 주겠다는 말에 뒤에 서 있던 악어머리 전사들은 눈을 반짝이며 군침을 삼켰다.
“됐다.”
내 말을 이빨이 바로 잘랐다.
“왜 그러십니까?”
“우리를 다 먹이려면 저 물소 새끼들로는 부족하다.”
“예?”
“족장님께서 연꽃에게 주고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 거다.”
“감사합니다. 정말 입이 크신 족장님이십니다.”
악어머리족장을 칭송하는 말을 해도 이빨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우린 바로 돌아간다. 그러니 요리를 할 필요가 없어.”
“예? 삼촌, 바로 가신다고요?”
연꽃이 놀란 표정으로 이빨에게 물었다.
“그래, 바로 가야 할 것 같다. 내가 부족으로 돌아가서 족장님께 말씀을 드려서 먹을 것을 더 많이 가져다주마. 이러다가 겨울에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예, 사실…….”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이빨이 나를 물끄러미 봤다.
“사실 아이들을 먹이기도 힘듭니다.”
“전사가 셋뿐이니 그렇겠지.”
“……예.”
“모두 부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라!”
이빨은 내 궁핍한 모습을 보고 바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속은 건가?’
속으면 다행이다. 이번만 잘 넘기면 당분간 악어머리 부족과의 반목을 없을 것이다. 그럼 연꽃은 울지 않아도 된다.
“땅속에서일어서 족장!”
그때 이빨이 나를 불렀다.
“예.”
“족장님께서 담배가 더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줄 수 있겠지?”
늑대발톱은 분명 가지고 있는 담배가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 물물교환을 했다.
하지만 이빨은 당연히 담배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한 듯 당당하게 담배를 달라고 말했다.
악어머리 족장이 여기로 전사들을 보낸 이유는 나와 하늘 부족의 동태를 살피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금단 증세가 나타난 것도 한몫한 모양이다.
‘흠…… 어떻게 하지?’
없다고 했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됐다. 그런데 이빨의 눈빛이 담배를 확보해야 돌아갈 것 같았다.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