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무기 조합을 하면서 실패하길 기대해야 한다니 우습네.”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혹시 모를 화근을 그냥 남겨 둘 수 없다.
놈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내 옆에 연꽃이나 태어날 똘똘이가 있다면 그들에게 화가 미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소멸시키는 것이 좋다.
“그래, 방패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까…….”
캭의 몸에 철갑처럼 두르고 있는 방패도 두 개나 되고, 거대늑대거북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방패로 만들 비늘은 수십 개가 넘어간다.
-흑마석으로 무기 조합을 시도하시겠습니까?
뜨는 메시지부터 달랐다.
“……무기 조합!”
두 시간에 걸쳐 만든 방패 하나를 버리는 것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라져라! 소멸해라. 망해라, 망해라!”
나도 모르게 주접을 떨듯 중얼거렸고, 그런 나를 캭과 끼옥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간절했다.
“실패, 실패, 실패해라!”
방패 위에 올려놓은 흑마석에서 천천히 검은 안개 같은 빛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강력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육각 방패를 감쌌다.
저 음울한 빛이 사라지는 순간 블랙야크의 악령도 완전히 소멸하게 될 것이다.
“제발 사라져라, 사라져!”
어이가 없지만 망하기를, 그리고 실패하기를 이렇게까지 갈망해 본 적은 없다.
요란한 소리와 현란한 빛이 한동안 어우러져 번쩍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무기 조합에 성공하셨습니다. 조합된 무기의 원형이 변형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뜨는 순간 인상이 굳어졌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절규했다.
“……망했다. 떠버렸다. 망했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전 빛과 함께 각궁을 조합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95퍼센트의 성공확률에도 2개나 실패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99퍼센트의 실패 확률에서 성공했다.
‘미친, 진짜 조합 확률은 그저 되냐 안 되냐 그것뿐이냐고. 사기 아냐?’
* * *
-악령이 깃든 방패(신급)
블랙야크의 악령이 봉인된 S등급의 흑마석과 거대늑대거북의 강력한 비늘로 만들어진 육각 방패로 조합된 마력 장비.
-공격력 : 5,000.
-방어력 : 10,000.
-내구력 : 무한
-스킬 1 : 악령출격(생명력 50퍼센트를 소모하여 악령을 소환한다.)
-스킬 2 : 타임브레이크(생명력 20퍼센트를 소모하여 적을 1분간 정지시킨다.)
조합에 성공한 육각 방패에서는 검은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주위에서 한참을 머물더니 놀랍게도 방패의 모양을 변형시켰다.
방패는 마치 흠집이 없는 흑요석으로 만든 것처럼 검은색 광택이 번들거렸고, 거울처럼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방패의 여섯 모서리마다 칼날 같은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고, 볼록하게 나온 정면에는 피눈물을 흘리듯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야크의 머리가 생겼다.
봉인된 블랙야크가 형태를 드러내듯 번들거리는 눈깔은 마치 두리번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놈의 머리는 성난 듯이 입을 떡 하고 벌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드러난 이빨은 육식동물처럼 뾰족하게 돋아 있었다. 그리고 뿔은 평범한 야크처럼 위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전방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 * *
레드의 앞에 타크와 와탕카가 바짝 엎드렸다. 악어머리 부족에서 잡아온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레드는 매머드 헌팅을 돌아온 후에 자꾸 자신의 눈치를 보는 여자를 움막 밖으로 내보냈다.
원래 성격이라면 레드는 자신을 감시하는 인간을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레드는 그저 여자에게 다시는 이 초막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어떤 면에서 레드는 와탕카의 말처럼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고, 그 변함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의 드래곤의 영혼도 인간의 육체에 갇힌 이상 인간의 영혼으로 물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타크.”
타크가 레드의 앞에 긴장한 눈빛으로 바짝 엎드려 있었다. 여자가 움막 밖으로 나간 것은 타크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예, 예! 레드 님!”
“너를 용서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레드의 말에 엎드린 와탕카가 묘한 미소를 보였다.
“예, 레드 님!”
타크는 두려움에 자신의 이마를 바닥에 찍으며 대답했다.
‘변하고 있어.’
지금 타크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레드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불길한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귀환을 하게 된다면 부족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타크는 과거 레드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레드가 변해 스스로 먹었던 마음을 버리고 이곳에 남게 된다면 자신은 그저 드래곤의 레어를 지키는 문지기 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도 나를 감시하고 싶었던 것이냐?”
타크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봤다. 타크는 여자에게 레드가 어떤 말을 하는지, 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초막 밖으로 나올 때마다 보고하라고 했다. 레드는 그런 낌새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 저는 그저, 그저 레드 님을 더욱 잘 보필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이번 한 번만은 넘어가 주마. 그러나 두 번을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던전은 어떻게 되었지?”
레드는 몸을 눕힌 채 싸늘하게 물었다. 타크가 탁월한 대리 관리인이자 성실한 부하의 역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레드는 자신의 옆에 나둔 묵직한 상아 칼로 타크의 목을 단번에 날려버렸을 것이다.
“제 심복 중 가장 믿을 수 있는 하얀말을 동쪽 끝에 보이는 설산으로 보냈습니다. 곧 던전을 찾아낼 것입니다.”
“알았다. 물러가라.”
땅속에서일어서는 자신과 부족의 성장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레드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이건 땅속에서일어서가 자신의 영혼과 몸의 괴리감을 느끼는 것처럼 레드 역시 영혼은 드래곤이기에 인간처럼 시간의 흐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적게는 1만 년을 많게는 3만 년을 사는 드래곤이기에 몇 주의 시간은 레드에게는 찰나로 느껴질 뿐이었다.
“예, 레드님!”
타크와 와탕카는 조심히 레드의 초막에서 물러났다. 조용해진 초막 안을 레드는 물끄러미 둘러봤다. 반짝이는 보석들과 일렁이는 붗빛, 그리고 적막만이 남았다.
“……혼자 남았군.”
분명한 변화였다.
레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한없이 고독한 드래곤의 영혼을 가졌다. 그런 레드가 지금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레드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었다. 인간의 감정이 자라나고 있었다.
* * *
레드의 초막으로 나오자마자 와탕카는 타크를 조롱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지. 히히히!”
“뭐?”
타크가 와탕카의 말에 화들짝 놀라 혹시나 거대한 초막 안에서 드래곤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레드가 들었을까 급하게 돌아봤다.
“그렇다는 거다. 변하고 있어. 변해가네~ 모든 것이 변해가네~.”
“으음…….”
“따지고 보면 드래곤만큼 변덕이 심한 족속도 없지.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었는지 모르지.”
와탕카는 어느 순간부터 레드에 대한 불만을 타크에게 표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 와탕카는 레드의 눈 밖에 나 있었고 함께 소환을 당한 오크 부하들을 거의 다 잃었기에 거의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서 타크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와탕카였다.
“그렇게 나불거리다가는 목이 열 개라도 무사하지 못해.”
타크의 말에 와탕카가 타크를 뚫어지게 봤다.
“그렇지.”
“그러니 주둥이를 닥쳐!”
“하찮지만 전사라고 불리는 800마리의 휴먼이 있는데 그렇게 겁이 나나?”
찰나의 순간 와탕카의 눈동자가 사납게 변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이제는 드래곤이 드래곤이 아니잖아. 휴먼이지! 우리도 지랄 맞게 휴먼~ 레드님도 휴먼. 우리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두려워할 드래곤이 이제 아니라는 거지.”
“휴먼이라고 해도 다 같은 휴먼은 아니지.”
“레드님께서 마법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넌 네놈의 부하가 너를 어떻게 불러도 레드님이 계시면 그냥 타크다. 타크!”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라면…….”
와탕카가 레드의 초막을 노려봤다.
“그래 너라면?”
“흐흐흐! 나도 겁이 나네. 그래도 레드님이지. 흐흐흐!”
타크는 지금 와탕카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뚫린 입이라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절대자가 아닌가? 그 망할 새끼처럼!”
와탕카는 이 순간 헌터 최강욱을 떠올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이고 머리야~ 오늘 내가 머리를 너무 썼네. 하하하! 그렇다는 거다.”
“으음…….”
타크는 그저 답답한 마음에 길게 신음을 토해 내며 레드가 들어앉아 있는 거대한 초막을 노려봤다.
‘휴먼이라…….’
* * *
용족의 거대한 부락 앞에 하얀늑대 부족 사람들과 벙어리가 섰고, 려화는 두 팔을 벌려도 감싸지 못할 정도의 굵다란 나무를 땅에 박아 만든 목책을 보며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이런 곳은 처음…….”
“정말 대단해.”
“려화야!”
하얀늑대 부족 족장도 놀라움에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려화를 불렀다.
“예, 아버지.”
“저, 저곳에 꼭 들어가야 할까?”
거대한 목책의 웅장함이 족장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 같다.
“저곳에서 살 거예요. 저곳에는 아마도…….”
려화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마도?”
“예. 아마도.”
두 부녀는 벙어리 전사가 있기에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의미의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
“우우우! 우우우!”
키 작은 벙어리 전사가 이곳이라고 려화에게 말했다.
“여, 여기가 용족인가요?”
려화의 떨리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우우우!”
벙어리 전사가 려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책을 향해 돌아섰다.
“우우우우!”
마치 내가 왔으니 목책 문을 열라는 듯 벙어리 전사는 소리쳤고, 목책 위에서 경계를 서던 경계병들은 벙어리 전사와 같이 나갔던 전사들은 어디 갔는지 없고, 대신 다른 부족인지 낯선 사람들을 이끌고 온 것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왜 혼자야? 하얀말은?”
“우우우! 우우우!”
“이런, 던전이라는 곳을 찾다가 당했군. 젠장! 어서 문을 열어 줘라!”
“예. 알겠습니다. 조장님!”
경계병 하나가 조장 전사의 말에 목책 아래로 내려가며 소리쳤다.
“목책을 열어라!”
끼이익! 거대한 목책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디어 열렸다.
“넌 가서 벙어리가 왔다고 타크 님께 알려라.”
“예.”
작은 전사 하나가 바로 목책을 뛰어내려 타크의 움막으로 뛰어갔다. 타크는 네안데르탈인을 이끄는 와탕카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분은 결코 변하지 않는 분이시다.”
이건 타크의 바람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