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10
010. 검을 버리거라.
“······. 졌습니다.”
“좋은 승부였어.”
“어떻게 한 겁니까? 마지막 초식.”
진명은 자신의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질문을 던져댔다.
“왜? 어땠는데?”
“분명 변화가 가득해 보였으나···”
“날카롭지?”
“······예.”
“막 휘릭휘릭 하지도 않고,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진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변초나 허초라 해서 모두 그런 건 아니야. 검 끝을 봐야지.”
“검 끝?”
“그래. 마지막이 날카롭다면, 과정은 상관없는 거야.”
“······.”
정문의 말을 곱씹어보는 진명.
아직 정확히 이해가 되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진명의 성정상 이 말을 여러 번 곱씹을 것만큼은 확실했다.
“무당의 검을 떠올려봐.”
“······.”
“화산의 검도.”
“······.”
“그 검들을 잘 생각해ㅂ···”
“없습니다.”
?
정문의 고개가 갸웃한다.
“뭐라고?”
“본 적이 없다구요.”
“왜?”
?
반대로 진명의 고개도 갸웃한다.
“어째서 봤을 거로 생각하시는지요?”
“······.”
정문이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이정문의 기억을 엿볼 것도 없이 서로 교류가 있다 단정한 것이 잘못이었다.
찬찬히 뜸을 들이며 정문의 옛 기억을 살펴본다.
‘구파교류회···, 비무···, ······. 없네?’
없었다.
관련 기억이 전혀 없다.
아니, 같은 구파끼리 교류도 안 하나?
정문은 이미 구파에 대한 정보가 자신의 머리에 가득하기에 따로 이정문의 구파에 대한 기억을 살펴보진 않았다.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 왜··· 그런 기회가 없···었을까?”
“?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공동이 언제 교류나 그런 것에 관심을 둔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새끼야, 왜 그렇냐고 묻는 거 잖냐!
라는 말이 목에 걸렸으나, 얼른 삼켜버린 정문이었다.
여기서 더 캐묻고 싶었으나, 더 묻다간 정체를 들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번뜩 든 정문은 얼른 앞선 말을 이어갔다.
“여튼, 무당이나 화산의 검은 화려하다. 무당은 변칙적임이 일품이고 화산의 검은 환검(幻劍)이라는 말까지 들려올 정도지.”
“······.”
“하지만 말이다. 그 검들이 과연 변초와 허초로만 이루어진 검들일까?”
“······ 아닙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마지막에 펼친 초식은 무당의 검을 재해석한거야.”
!!
“사형, 무당이나 화산과?”
“만나본 적이 있냐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는 진명.
“글쎄. 그냥 무공만 아는 정도라고 해두자.”
정문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말만 남긴 채 등을 보였다.
몇 걸음을 걸어가더니,
“허허(虛虛)는 곧 실실(實實)이야. 결국에는 마지막이 검형을 정하는 거고. 그렇다면 공공(空空)은 무엇이지?”
씨익.
“잘 생각해봐.”
하는 말을 끝으로 완전히 형체를 감췄다.
진명은 여전히 자신이 처박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하늘만 올려다 본다.
“공공은···동동···(空空洞洞)”
처음 입산 했을 적 들은 도호가 아른 거리는 진명.
“결국에는 빈 것이라···”
밤이 늦도록 진명의 명상은 계속되었다.
* * *
잘했나?
됐겠지?
빈틈은?
통했을까?
통해야 하는데···
진명을 뒤로 한 채 발을 옮기는 정문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낄낄. 저놈, 감동 좀 받았을 거다.”
들썩거리는 어깨 앞으로 정문의 입이 잔뜩 찢어진다.
정문이 진명에게 다가갔던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움직임이었다.
이제 곧 강호에서 자신이 위명을 떨치게 된다면, 당연히 자신의 사문 역시 명성을 함께 얻어야 할 터.
그렇기에 정문은 싹수가 있어 보이는 녀석을 중심으로 자신의 파벌을 만들고 그들을 성장시킬 계획을 세웠다.
“잘만 따라와라, 알아서 영약이랑 비급은 알아서 먹여줄 테니까. 낄낄낄.”
정문이 제일 처음 목표로 진명을 선택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진 않았다.
자신을 지지하는 녀석 중 서열이 제일 높다는 정도?
딱 그 정도가 전부였다.
다만, 그를 보면 볼수록 이대로 두면 위험할 거란 생각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기간 사람을 살피며 정보를 다룬 정문은 진명같이 올곧기만 한 사람을 많이 봐왔다.
그런 이들은 결국에는 부러지고 만다.
오히려 진사풍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그런 자들이 오래 달리는 법이니까.
비록 정문이 자리를 비운 동안은 진명이 사풍을 잘 막아왔을지는 몰라도 저런 성정이면 곧 사풍에게 잡아 먹히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정문의 귀환에 가장 덕을 본 이는 진명일지도 모른다.
“안되지 안돼. 그래도 내 편을 들어줬다는 놈인데.”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곧은 나뭇가지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더욱 뻗어 나가기 전에 부러뜨리는 것.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완전히 자라지 못해 부러진 나무는 결국 휘어지는 방법을 익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문은 직접 진명을 부러뜨렸다.
아주 살살이지만.
그리고 확실히 보여줘야만 했다.
다른 길이 존재함을.
결과는 모른다.
여기서 자신이 무언가를 얻어오는 이라면, 정문이 데려갈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를 찾으면 그만이다.
‘장찬, 주보, 부통, 태영···’
지난 생에서 함께 수보 조숭에게 대항했던 동료들의 이름이 정문의 머리에 아린다.
하나의 구체로 변해 탁자 위에 아름드리 놓였던 그 이름들이.
“결국은 함께 강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그지? 우린 약했던 거고. 그래서 졌던 거야.”
슬프고도 담담한 어조가 정문의 입에서 토해졌다.
잠시 걸음을 멈춘 정문은 밝게 뜬 달을 한 번 바라봤다.
“복수는 없어.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우린 진 거고, 그건 그대로 끝이니까.”
– 후우우우.
이전 생에 모든 준비를 하고도 당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미련은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었으니까.
그렇기에 복수도 없다.
억울하지 않았기에.
다만,
“후회는 조금 되네.”
정문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지는 밤이었다.
* * *
“하앗!”
– 휙!
– 쉭!
외마디의 기합과 함께 쾌검식이 펼쳐진다.
검을 쥔 무인은 양명화.
공동의 일대제자 중 홍일점으로 꽤나 드센 기운을 지닌 여제자다.
평소 명화가 펼치는 검은 지금처럼 쾌검이 중심이 된 검은 아니다.
섬세함에 집중하느라 필요한 곳에서 강약 조절이 되지 않는, 보기에는 좋으나 실용적이지 않던 그녀의 검이 며칠 사이 호쾌한 쾌검으로 변해버렸다.
당연하게도 이런 변화를 주도한 인물은 그녀의 대사형 이정문.
공동파 내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아직 확실하진 않으나 진명을 어느 정도 감은 것 같았고 이제 명화와 묵환을 확실히 감화시켜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 심산이다.
지금 정문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전 생에 읽어 두었던 무공 지식을 통해 그들의 수련을 돕는 것. 그게 전부지만.
강호로 하루빨리 나갈 수만 있다면 영약이나 비급이라도 구해다 줄 수 있을 것이나, 2년 만에 돌아왔다는 몸이 그리 쉬이 사문을 다시 나설 수 있을 리가 없다.
정문은 명화의 검을 본 후 섬세함을 버리란 말을 하진 않았다.
다만, 섬세함과 함께 적절한 강약의 조절이 꼭 필요함을 직접 보여줬다.
바로, 종남과 점창의 검을 통해.
찌르는 것은 점창.
베는 것은 종남.
태양을 뚫듯 찔러 가는 점창의 쾌검과 삼십육 방위로 동시에 뻗어 나가는 종남의 쾌검을 통해 새로운 검식을 알려주려 한 것이다.
자신이 완벽하게 펼치지는 못하나, 머릿속에 있는 검로를 차근히 풀어내며 그녀에게 쾌검의 장점을 역설했고 그게 효과적으로 먹혔다.
진명에 비해 명화는 쉬운 상대였다.
대사형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신뢰하며 따랐고 어렵사리 되묻는 말도 없었다.
진명을 상대할 때 가끔 찌르듯 정곡을 노리는 질문이 부담스럽던 정문에게 명화와의 수련은 참으로 쉽고도 꿈꾸던 사제와의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문은 명화의 수련을 도와준 후 마지막으로 막내 묵환을 찾아갔다.
‘근골이 장난이 아닌 녀석이었지.’
정문의 생각처럼, 묵환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근골이 달랐다.
일반 중인들보다도 머리가 하나는 큰 정문, 그리고 그 정문보다도 머리가 두 개는 큰 키를 가진 것이 묵환이다.
거기에 어깨는 또 어찌나 딱 벌어졌는지.
강골이라는 말이 딱 그에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특징이 있으니, 바로 피부색이다.
아무리 야외에서 수련하고 햇볕에 노출이 많은 무인이지만 묵환의 피부는 그보다 배는 더 진한 황색이었다.
‘아마··· 이민족이겠지.’
자세한 내력은 정문의 기억에도 없다.
묵환과 관련해서는 그저 묵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기억만이 가득했다.
– 타앙!
– 투우욱!
둔탁한 소리가 묵환이 수련중인 연무장을 채운다.
분명 묵환이 휘두르는 것은 검일 텐데 어찌 저런 소리가 나는지 정문도 의문이다.
‘저건 검이 아니라 몽둥이를 휘두르는 격이구만.’
아니, 몽둥이를 휘두른다는 말도 틀렸는지 모르겠다.
큰 키와 우람한 근육에 가려져 묵환이 든 검은 마치 회초리처럼 얇게만 보였기에.
‘차라리 나뭇가지를 휘둘러라, 이놈아.’
“큽! 큽큽큽!”
정문이 기침 소리를 크게 내었다.
“어? 대사형!”
“수련을 방해한 것 같구나.”
“아닙니다! 이렇게 얼굴을 다시 뵈니 좋습니다!”
묵환이 얼른 얼굴을 닦으며 정문에게 다가선다.
흡사 외인이 본다면 거구의 산적이 다가서는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위협적인 몸집이다.
“수련하러 오신 겁니까? 제가 얼른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헤헤.”
“괜찮다. 그냥 돌아다니며 사제들 수련을 봐주고 있거든. 마침 묵환이 네가 보이길래 와봤다.”
“수련을 봐주신다고요······?”
사제들의 수련을 도와주고 있다는 말에 묵환이 고개를 갸웃한다.
뭔가 이상함을 알아챈 것일까?
정문의 동공이 살짝 떨린다.
“그···”
묵환이 입을 살짝 때더니,
“그런 영광이!”
환호를 내뱉었다.
당황하는 정문.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다가도 얼른 묵환이 막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덩치는 크고 우락부락한 생김새를 자랑하지만 그 역시 막내가 아닌가.
가족 중 막내와는 다르게 문파나 단체 내의 막내는 사랑을 독차지하거나, 편애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덜 받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겠지.
‘이놈이··· 제일 쉽겠는데?’
나름의 뜻과 의지가 있는 진명, 우선은 잘 따라오나 나름 드센 기운을 지닌 명화.
그에 비하면 이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는 묵환은 훨씬 쉬운 상대임이 분명했다.
“소양검부터 차례로 펼쳐봐. 자세히 봐줄 테니.”
“옙!”
우렁찬 소리로 대답을 외친 묵환이 연무장의 중심으로 날아갔다.
이내 절도있게 기수식을 펼치더니, 소양검의 검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 투웅!
– 슈우웅!
이어 혼원검.
– 투우웅!
– 튱!
다시 천운검.
– 슈우우우우웅!
현천검과 칠살검.
– 파바바바박!
계속해서 묵직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본디 복마검결의 기본 배합을 펼치면, 휘익이라던가 슈욱! 쉭! 하는 소리가 들리고 파밧! 하는 소리가 들려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막내 묵환의 검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못했다.
‘이런 미련한 곰탱이···’
정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언짢은 기분이 표정에 역력했다.
“광진검도 해봐.”
삐질 거리는 땀을 얼굴에 잔뜩 두른 묵환이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하아아앗!”
하는 소리와 함께 양손으로 검을 쥐고 사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 슈욱!
– 쉭!
– 휙! 휙!
이제야 옳은 소리가 나는 묵환의 검.
그제야 정문의 표정이 풀린다.
“이런 미친!”
정문이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하하, 하!”
그러더니 실소를 마구 날려대는 정문.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감상을 뱉어낸 정문이 이내 묵환에게 다가섰다.
“허억, 허억, 헉.”
“힘드냐?”
“괜···찮습니다!”
“힘든 와중에도 광진검은 잘만 펼치더구나.”
“이상하게도 광진검이 제일 편해요!”
“그렇겠지.”
?
정문의 말에 묵환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묵환아.”
“예, 사형!”
“너는······”
잠시 뜸을 들이는 정문.
뱉을까 말까 고민이 되지만, 결국 뱉어 보기로 한다.
“검을 버리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