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bie Life of a Former Ranker RAW novel - Chapter (271)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71화(271/271)
271
문은 마법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바닥에 그림으로 그려진 마법진은 아니었다.
기둥과 바위, 마수의 피와 금, 모래로 만든 탑과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흑철로 만든 쇠막대 수십 개.
그 외에도 수많은 보석이 재료로 들어간 듯 보이는 특수한 진이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잘…….’
스크롤을 슥슥 내리며 살피던 도진의 손이 멈췄다.
마지막 스크린샷이 담고 있는 글귀 때문이었다.
「To. Zin
Good luck.
From. Cecilia」
차원문을 이루는 커다란 기둥에 음각된 글귀.
날카로운 물건으로 단숨에 파낸 듯 단단한 돌기둥에 적힌 글자는 깨끗했다.
마치 필기체로 유려하게 쓴 영문같이.
‘근데 왜 내 이름이 저기 적혀 있어?’
문제는 새겨져 있는 글자가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날 가지고 수근댔구나.’
본문을 보기도 전에 확인했던 댓글을 다시 보니 난리도 아니었다.
-아니, 도진 이 새끼는 이것도 최초야?
-퉤퉤퉤! 더러워서 게임하겠나. 혼자 다 해 처먹어라!
-ㅋㅋㅋ 이런 것도 실력 차이인가? 운빨 아님?
도진은 최초 발견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욕부터 박는 사람들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뭐 글을 안 읽는 거야, 뭐야.”
이미 짧은 글인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보지 않고 ‘Zin’이라는 글자만 보고 지레짐작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예 본문은 보지도 않고 휙 넘겨 버리고 바로 댓글 쪽에 와서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고 떠드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그런 사람이 절반을 넘지는 않았다.
-좀 제대로 읽어라 ㅅㅂ 몇 글자나 된다고 저걸 못 읽어서 개소리를 찍찍 싸냐? ‘진에게, 세실리아가.’ 안 보임? 최초 발견자가 진한테 보내는 메시지잖아.
-그냥 둬. 저런 애들 특이 지적당하면 지들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화부터 내는 거잖아.
-그래서 세실리아가 뭔데? 진한테 왜 굿럭함?
-딱 보니까 최초 발견자가 ‘세실리아’라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진한테 팬레터 보낸 거 아님?
-나도 윗댓 의견이랑 같은 생각임. 사실 이거 말고는 없잖아. 이런 거 최초 발견하면 여기저기 노출될 거고, 그거 노리고 도진한테 편지 쓴 듯. 지인이면 굳이 이럴 거 없이 다이렉트로 꽂으면 그만이니까.
-세실리아면 여자 아님? 시발, 도진아! 네가 행복하길 바라지만 이렇게까지 행복해지진 말았어야지!
정상적으로 읽고,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 일부가 난독증 증세를 겪는 사람들을 알아서 진압했다.
진압보다는 개싸움 판을 연 셈이 되긴 했지만, 육두문자를 화살 대신 날리는 결투까지는 도진이 신경 쓸 영역이 아니었다.
‘세실리아…….’
도진은 다시 글자가 찍힌 스크린샷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 최초 발견자가 자신의 팬이어서 기념하기 위해 저걸 새겨 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도진은 그게 아닌 거 같았다.
‘이 문, 원래부터 있던 문이 아냐.’
도진은 문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하나 분리해 바라봤다.
문을 이루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는 돌기둥이지만, 반대쪽은 뼈다.
그것도 거인의 정강이뼈.
‘금에 주황빛이 돌고 있다는 건 저것도 특수 처리를 했다는 거겠지. 피를 섞은 거 같은데… 저 정도 마력 반응이 일어날 정도면 꽤나 비싼 피를 썼겠어.’
보석도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특별한 세공을 한 게 보이고, 모래 탑과 흑색 철로 만든 쇠막대에 이르러선 확신을 해도 좋을 정도가 됐다.
‘이 정도면 인공적인 건 확실하고, 만든 시기도 금의 상태를 보면 최근이다. 이건 찾은 게 아니라 만든 거야.’
거기다 저 재료들… 보통 유저는 엄두도 못 낼 만큼 고급 재료들이다. 저 정도 크기의 거인의 뼈와 저런 품질의 흑철은 돈으로 살 수도 없다.
대륙 곳곳을 뒤져야 하고,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있었을 텐데.
‘거기다 재료만 있다고 뚝딱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문을 찾아서 여는 거면 몰라도, 만드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이 이야기다.
거기다 월드 이벤트가 바로 연계됐다?
“아주 수상한 냄새가 진동을 하잖아.”
그래. 그냥 팬이 보내는 짧은 편지일 수도 있겠지.
행운을 빈다. 멘트도 좋다.
하지만 도진은 저게 단순히 팬이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는 데 양쪽 손목을 걸 자신이 있었다.
‘세실리아… 그 여자겠군.’
과거 미친놈들이 멸망성 편에 서서 아무 죄 없는 NPC들을 학살하고 다녔던 때.
자신 앞에 나타나 메신저 역할을 했던 플레이어.
‘그때 자기 입으로 내 팬이라고 하긴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팬레터는 팬레터겠네.’
도진은 빛과의 만남을 주선하고는 장거리 공간이동으로 사라졌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가 그 빛이랑 엮인 심부름꾼쯤 될 테니… 저 문을 만든 것도 그 빛이겠군.’
행운을 빈다. 그럼 이것도 결국 그쪽에서 보내는 메시지일 거다.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은 직접 말을 걸면 운명이 잔뜩 소모되니, 허락 없이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다는 잔소리에 뿔이 난 세실리아가 벌인 작은 반항이었지만 거기까지는 도진이 알 수 없었다.
‘저기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판이 깔렸으면 춤은 춰야지.’
거기다 무대 자체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면 만들어 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열심히 뛰어 줘야 했다.
도진은 로스타니아가 평안하길 바라고, 빛도 마찬가지. 도진은 그걸 위해 강해지길 원하고, 빛은 줄곧 그런 도진에게 힘을 실어 주려 해 왔다.
완벽하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파트너인 셈이다.
“먼저 저게 어떤 곳인지부터 파악해야겠어.”
도진은 월드 이벤트 공략을 위해 움직였다.
* * *
이번에는 도진이 최초 발견자가 아니었기에 도진보다 앞서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 탑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문이 열렸으니 들어가고, 그곳에 탑이 있으니 일단 또 들어가고, 뭐가 나오든 일단 대가리부터 들이밀고 보자는 무대포 유저가 잔뜩이었던 것.
“정체라고는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의 탑! 제가 한번 올라가 보겠습니다!”
특히 LOST 방송으로 먹고사는 스트리머들은 가장 빨리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공지를 보자마자 좌표로 달려가서 바로 넘어간 선발대들은 앞다투어 황폐한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의문의 탑에 들어갔다.
그중 가장 빠르게 탑에 도착한 스트리머들. 실력보다는 인맥으로 뭉친 5인의 혼성 파티였다.
“뭐가 이렇게 어두워……?”
평소 겁 많기로 유명한 여성 스트리머가 울먹임 섞인 말을 뱉기 무섭게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빛이 일었다.
그런데 그게 밝은 빛이 아니었다. 음울한 녹색 연기 같은 빛이 어두운 저편에서 파도치듯 일렁인다.
【생이 찬란했음을 증명하는 것은 위대한 죽음임을 잊지 말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녹색 유령 기사단이 나타났다.
“뭐, 뭐야!”
리액션이고 뭐고 스트리머 파티는 혼비백산했다.
유령 기사단이 등장과 동시에 단체로 기마 돌격을 감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아아아악!”
“야, 라마 뭐 해! 왜 뒤로 뛰어! 너 탱커잖-”
“꺄아아아악!”
콰직. 놀랍게도 가장 먼저 당한 건 파티의 힐러였다.
힐러가 양손 둔기를 휘두르는 기마병에게 머리통이 터지는 걸 시작으로 몇 초도 안 되어 다섯 명의 스트리머가 학살당했다.
-?
-이벤트 던전이라 레벨 보정되는 거 아님?
-그거랑 상관없음. 쟤들 레벨은 높아.
-음… 실력 처참한 거랑 별개로 저기 난이도도 돌았는데?
-탑이면 층으로 구분되고 등반하는 콘텐츠일 텐데… 처음 입장하자마자 저런 몬스터들 나오고 바로 쓸려 버리는 거 보면 LOST가 LOST 했다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여러분.
역시나 이번에도 월드 이벤트의 난이도는 양심이 없었다.
원래 새 이슈가 생기면 기존에 뜨겁던 떡밥은 빠르게 식고, 그쪽이 타기 마련.
PvP 대회, 콜로세움 L, 도진 등으로 불타올랐던 검색 트래픽은 순식간에 새로운 월드 이벤트 쪽으로 쏠렸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관심은 돈이다. 당장 라엘 그룹이 PvP 대회 하나로 창출한 부가가치만 해도 엄청났다.
직접적으로 찍힌 돈의 액수만 따져도 엄청났고, 전 세계적인 광고 효과까지 더하면 그 크기는 몇 배는 더 뛴다고 봐야 할 정도.
그걸 보며 부러워만 하고 있던 다른 기업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기회에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친숙한 게이머의 친구! 데스그랩 게이밍기어와 함께하는 LOST 월드 이벤트 공략 이벤트!] [LOST 월드 이벤트 ‘탑이 세워진 땅’과 관련된 공략 이벤트가 진행됩니다.이벤트 기간 동안 많은 유저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략을 데스그랩 공식 채널에 올려 주세요!
높은 조회 수와 추천 수를 기록한 분들에게 푸짐한 상품과 커다란 상금을 지급합니다!]
이벤트 시작 하루도 안 되어 공략 공모전이 시작되고.
어떤 통신사에서는 공략도 통신도 속도가 생명이라며 빠른 공략에 현상금도 걸었다.
-무슨 게임 이벤트 현상금이 100만 달러나 돼?
-자체적으로 사설 이벤트 진행하면 그것보다 돈 더 많이 드니까 ㅋㅋ 게임사 이벤트에 그냥 숟가락만 얹는 거 생각하면 별거 아닐지도.
-3등만 해도 30만 달러임 ㄷㄷ
-LOST에서 월드 이벤트 1, 2, 3등에 들어가는 놈들이 저게 돈으로 보이겠냐? ㅋㅋ
-돈이지 병신아. 아무리 부자라도 100만 달러면 큰돈이야.
걸리는 상금도 어마어마했다.
PvP 대회에서는 그 파이를 먹을 기회조차 없었던 대형 길드들, 공략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어차피 이번에도 도진 독주 아니겠냐?
-지금 대형 길드들 굴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공략팀 굴린다고 선언했고, 스폰서까지 붙어서 지원 무한히 받는 곳도 한둘이 아니긴 함.
-그런 거 다 감안해도 도진이 지금까지 보여 준 게 너무 개쩔어서 ‘이번에도?’ 하는 생각 드는 게 무섭긴 하네.
관심이 돌아왔다.
PvE가 주무대인 사람들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규모가 아주 크지 않은 방송에는 큰손들의 고액 미션이 걸렸고.
규모 큰 방송인들에게는 크고 작은 기업들의 후원 및 광고 문의가 쇄도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많은 제안이 쏟아진 건 라엘 엔터테인먼트 쪽이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이 광고 못 넣으면 진짜 잘려요. 여기 미국이라 진짜 내일 해고될지도 모른다니까요. 진이 안 되면 테레사라도 어떻게 좀…….」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지금 쌓여 있는 광고 계약 건만 소화하기에도 바빠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광고 계약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벤트가 시작된 지 하루도 안 됐음에도 온갖 곳이 떠들썩했다.
그만큼 LOST가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진 거다.
1층. 유령 기사단.
분위기를 보아 문지기에 불과한 것들임에도 난이도가 상당했다.
진도가 제일 빠른 길드의 방송에서도 하루, 이틀로는 공략이 어려울 거 같다는 의견이 채팅창을 도배하는 상황.
이벤트가 본 게임으로 넘어가기 전에 최대한 이번 이벤트에서 파생될 이득의 지분을 챙겨 둬야 했다.
[의문의 탑 입장 조건 ‘기사단의 시험 통과’가 클리어되었습니다.] [의문의 탑 로비 플로어가 개방됩니다.] [지금부터 의문의 탑 로비 플로어에서 월드 이벤트 퀘스트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찬물이 끼얹어졌다.
-뭐야? 갑자기 유령 기사단 싹 증발했는데?
-공지 봐. 누가 클리어했대.
-어어? 맵 변한다! 유령 기사단 사라지고 1층 지형 완전히 뒤바뀌고 있음!
이벤트 시작 8시간 만에 문지기인 유령 기사단을 공략한 사람이 나온 것이었다.
-도진이다. 도진 말고는 없다.
-뭐 올라왔음?
-그건 아닌데. 다들 개고생하는데 휙 깨 버리는 게 걔 특기잖아.
-시발, 깰 거면 방송 켜라고!
즉시 사람들은 범인으로 도진을 의심했다.
이미 전과가 잔뜩 쌓였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