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0
9. 당돌한 도전자 5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아자딘을 쫓아 그의 눈치를 살피며 걸었다. 그제야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자신들이 받은 걸 떠올렸다.
“아, 잠시. 아자딘.”
“…….”
아자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 전령님?”
“…….”
“거기 길 가는 멋진 분?”
“풉.”
이스마일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자딘이 한숨을 내쉬고 멈춰 섰다.
“또 왜?”
“잊고 있던 게 있었어요. 당신에게 줄 편지가 있어요.”
“편지? 누가 보냈는데?”
“살라스마의 지역장님이요.”
“쳇.”
아자딘은 지역장이라는 말에 실망했다.
“달리 기대하던 편지가 있었나 봐요?”
“아니.”
아자딘은 고개를 저었다.
“하아. 알겠어. 줘봐.”
아자딘은 이스마일에게 편지를 받고 열어보았다. 내용은 중간보고를 너무 누락한 것에 대한 질책과 신왕진서 사본이 최근 세계 각지에 출몰하고 있으니 이를 회수해오는 것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소리였다.
‘편지 내용에 적을 정도면 이미 다른 전령들은 다 알고 있겠군.’
아자딘은 지역장의 편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도 이 내용은 알고 있냐?”
“네? 편지는 안 읽어봤는데요?”
“최근 세계에 신왕진서 사본이 나타난다고 하던데.”
“아, 그건 알아요. 신왕진서 사본이면 당신의 아버지가 일족을 배신하고 세계에 뿌린… 아야!”
미디암이 생각 없이 말하자 이스마일이 참지 못하고 그녀의 발을 밟았다.
“너 뭐야? 왜 그래?”
하지만 미디암은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됐고. 그래, 너희들까지 알고 있단 말이지?”
종사 후보생, 그러니까 아직 정식 종사도 되지 않은 아이들도 알고 있다면 전령일족들 상당수가 신왕진서 사본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입수는 얼마나 되고 있나?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했는데 얼마의 가중치로 반영하는 거지?”
“신왕진서 사본입수요? 그, 글쎄요?”
“그런 건 모르나? 음, 지역장을 찾아가봐야겠군.”
아자딘은 결국 편지에 적혀 있는 대로 지역장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탄했다.
“좋아. 편지 전해줘서 고맙구나. 잘 받았다.”
“그럼 편지의 사례를 주시겠어요?”
“사례?”
“네. 절 종사로 인정해주세요.”
“아니, 그건 안 돼.”
“왜요?”
“우선 첫째로 너희들이 날 찾아온 동기가 불순해.”
“동기 말인가요?”
“그래. 내가 우스워 보여서 나에게 결투를 신청하러 온 거 아니냐? 그런데 내가 왜 너희를 종사로 거둬야 하지?”
“그, 그건 분명히 제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전령은 어쨌건 종사를 거둬야 하잖아요?”
“그게 바로 두 번째 이유지. 원칙상으로는 전령과 종사의 관계는 당사자만의 문제지만 관습적으로는 각 가문이 배려해서 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꼬마 아가씨. 에타르 혈족에서 과연 너의 스승으로 날 인정할까? 나는 일족 모두가 경멸하는 바로 그 아자딘인데? 너희 가주에게 날 스승으로 섬기겠다고 말하고 허락받고 여기 온 거냐?”
“아. 그, 그건 아니죠.”
미디암은 그저 아자딘을 꺾고 자신이 전령이 될 생각에 뒷일 생각하지 않고 돌진했던 것이다. 아자딘이 그 점을 정확히 지목하자 그녀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 네가 멋대로 저지른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
“그럼 절 노예로도 받지 않는 건 제가 에타르이기 때문인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아.”
“그, 그렇군요.”
미디암은 아자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납득이 되었으면 이제 물러나 주겠니?”
“어. 음.”
미디암은 당황하다가 물었다.
“그, 그럼 가는 데까지 길동무는 안 될까요?”
“길동무? 내가 왜?”
“그야… 그동안 일족에 있었던 일도 전해드릴 수 있고요.”
“…….”
미디암이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이스마일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원래 에타르 혈족의 미디암은 오만하고 시건방진 성격이다. 그런데 아자딘은 철저히 그녀를 무시하고 미디암은 그런 그에게 어떻게든 얽히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가는 길이 어차피 같으니까 거기까지만이라도 안 될까요?”
“뭐 이 길을 내가 전세 낸 것도 아니니 뒤따라오는 건 마음대로 해라.”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전령일족은 108명의 전령 외에 그 전령들을 수행하는 종사와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길드 형태로 세계 각지에 퍼져서 전령들을 지원하는데, 그런 길드 출장소가 바로 지역 본부.
그곳의 전령 연락책을 지역장이라고 한다.
본래는 전령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장사라는 게 어설픈 마음으로 접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장사에 진심이 되어서야 길드가 굴러가기 시작하다 보니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전령이 길드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우리가 처음 상거래를 하니 기존 길드의 텃세가 심하다. 기존 길드들의 가족을 납치해 거래해야겠다.’
‘XX지역의 출입관리가 뇌물을 요구하면서 우리의 상품을 압류했다. 뇌물을 한 번 주면 계속 줘야 할 테니 아예 죽여서 경고를 하고 싶다. 그놈의 온 가족을 잔혹하게 죽여서 전시해 두어라.’
이런 식의 임무에 전령들을 투입한 것이다.
아자딘은 그게 싫었다. 비록 복무의 저주 때문에 일족 전체가 묶여 있다고는 하지만 황제가 전령일족에게 원한 것은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지 암살이나 납치, 공갈, 협박에 가담하는 게 아니었다.
이래서야 그냥 상인 길드에서 고용한 암살자 신세가 아닌가?
그래서 아자딘이 살라스마 지역장의 요구를 몇 차례 거절하자 지역장은 그를 아주 고깝게 보기 시작했다. 특히 아자딘은 배신자의 아들이라는 입장이 있기에 그냥도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천대받는데 지역장과 사이가 나빠졌으니….
그렇게 살라스마 지역장을 피해 다녔는데, 신왕진서 사본이 세상에 나돌아다니게 된 이후 조직 전체에 일단 연락망을 우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모양이었다.
살라스마로 가서 지역장을 만나라고 하지만 아자딘이 현재 있는 곳은 살라스마 변경백의 영지 중에서도 변경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길을 따라 걸어도 살라스마까지 당도하려면 대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게다가 이 근처는 한 달 내내 가물어서 그런지 근처 마을은 벌써 황폐화되어 있었다. 가도에 위치한 찻집이나 여관도 다 도망가 버려서 텅 비어 있는 상태. 그대로 길을 따라 걷다가 해가 지자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아자딘은 길가에서 야영하기로 하고 야영 준비를 했다.
혼자 급하게 오느라 제대로 된 짐이 없어서 망토를 두르고 바위 곁에서 바람을 피하며 앉았다. 그런데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자신들이 데려온 산양들에게 몸을 붙여 체온을 유지하고 건량을 씹었다.
“여기 오세요.”
“아니 됐다.”
아자딘으로서는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꺼지라고 했는데 그들의 산양에 빌붙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디암은 지금을 기회로 여기고 아자딘에게 손짓했다.
“우린 같은 일족이잖아요. 같은 일족이 이 먼 만리타향에서 서로 만났는데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
이스마일은 미디암의 말에 당황했다.
지금 이게 그가 알고 있던 오만방자한 미디암이 맞는가?
아자딘에게 패하고 그에게 필요 없다고 내쳐진 게 못내 서운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취급을 받아본 적 없는 미디암은 어떻게든 아자딘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하기 위해 애썼다.
“물도 필요하지 않으세요? 아직 물 남아 있어요. 제 수통에….”
“…….”
아자딘이 한숨을 내쉬고 조금씩 조금씩 그들의 케림 산양에게 다가갔다. 케림 산양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온기가 확실히 다르다.
“뭐, 만리타향에서 일족을 만났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죠?”
미디암은 배시시 웃으면서 자신의 수통과 건량을 아자딘에게 건넸다.
“으아암. 졸려요. 불침번을 정할까요?”
“황제의 목소리가 경고해주니 전령은 불침번이 필요 없단다.”
아자딘이 답해주었다. 미디암이 힐끗 아자딘을 살펴보니 그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디암은 아자딘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전령의 특징인 새 모양 가면 밑으로 드러난 하관은 아직 앳된 티가 있어 수염이 거의 나지 않은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가면 쓴 모습만 보면 굉장한 미남이라고 추측된다.
‘가면에 감춰진 부분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얼굴 일부만 보면 정말 미남이네. 가면으로 감춰진 부분도 보고 싶다.’
미디암은 당돌한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
긴 여정에 피로가 쌓였었는지 눈을 뜨니 아침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잘 잔 것 같다.
“자, 꼬마 아가씨와 처진 눈. 슬슬 일어나라.”
아자딘이 먼저 일어나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또한 저들의 케림 산양 덕분에 따뜻하게 잤다.
처음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케림 산양의 모피에 들러붙어서 잤던 것이다. 부끄러워진 아자딘이 헛기침을 하고 일출을 바라보았다.
“꼬마 아가씨라. 음, 저는 미디암이에요. 하지만 애정이 담긴 별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그래, 미디암.”
앞으로 계속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면 미디암에게 애정을 가졌다는 소리가 되니까. 아자딘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로 했다.
“어, 저는 이스마일입니다. 별명으로 부르신다면….”
“넌 닥쳐. 처진 눈.”
이스마일은 괜히 미디암을 따라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아자딘은 산양들의 상태를 살피고 말했다.
“간밤에는 너희들의 산양 덕에 따뜻하게 잤다. 고맙군.”
“뭘요. 만리타향에서 우연히 동족을 만났는데 이 정도야.”
미디암은 어느새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그런데 이 산양들은 편자가 없네.”
“편자요?”
“그거 박으면 산양들이 산길을 못 가잖아요?”
“하지만 너희들은 황제 가도를 따라왔잖니.”
아자딘은 길을 가리켰다.
“포석이 깔린 길을 그냥 생 발굽으로 걸으면 발굽이 너무 빨리 닳는다. 내 물품 중에 편자가 있으니 편자를 박을 때까진 산양에 타지 말고 걷자. 마침 산양들도 목말라 하고 있고. 빨리 저 산을 넘어서 물이 풍족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산양들이 버티지 못할 거야.”
아자딘은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 그, 그럼?!”
미디암이 신나서 뒤를 쫓아오자 아자딘이 선을 그었다.
“어디까지나 인근 다른 동족들 만날 때까지다. 거기서 너희들은 돌아가는 거야. 알겠지?”
“아, 네.”
미디암은 여전히 선을 긋는 아자딘을 야속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자딘은 걸어서 길을 가는 데 발걸음이 굉장히 빠르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매우 커서 산양을 타고 있는 이들과 별로 속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미디암은 기왕 속도가 같은 김에 나란히 산양을 몰며 아자딘의 얼굴을 물끄러미 계속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