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02
101. 나이트 크롤러 3
아직 나이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 대놓고 비난하자 병사들이 분개했다.
“아니 이 자식이?”
성기사 지벡이 앞에 있으니 덤벼들진 못하지만 이미 민간인을 약탈하던 이들이다. 피 맛을 본 인간들의 눈이 충혈되어 번들거린다. 지벡이 없다면 이스마일을 덮쳤을 터였다.
이스마일은 그들의 태도에 코웃음 치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어찌나 전광석화 같은지 병사들은 이스마일에게 화를 내고 있으면서도 그가 칼로 자신들의 아랫배를 그어 버리는 걸 멍하니 지켜보았다.
병사들의 아랫배에서 피와 내장 대신 목걸이와 반지, 은제 식기 등이 굴러떨어졌다.
“…….”
“살자고 도망치는 와중에 짐이 많군.”
지벡도 빈정거렸다.
“아, 그게 이건….”
“그냥 놔두면 돌이 되잖습니까. 아까운 보화들도 폐허에 묻히면 돌덩이 같으니, 사물을 올바르게 쓰고자 그만….”
배운 것도 없는 놈들이 자기들을 변호할 때는 묘하게 달변가가 된다. 지벡은 실소를 머금었다.
“일단 우리 야영지로 돌아가서 상의합시다. 물고기도 가져가고.”
*********
“주둔지도 언데드에게 습격당했다고?”
“내 말이 맞지요?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오.”
브란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말이 옳았다고 으스댔다.
“아니, 아마 특정 술자가 있을 겁니다.”
지벡은 브란드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냈다.
“흑마술사가 의도적으로 언데드들을 만들어서 공격하지 않으면 이렇게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흑마술을 너무 전능하게 여기는 것이오. 보통 강령술사들은 잘해야 언데드를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움직이는 게 고작이오. 그런데 많은 언데드를 만들어서 군대를 격파하다니. 왕화의 빛이 멀쩡할 때는 그런 게 불가능했단 말이오.”
“…알겠습니다.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다고 칩시다.”
지벡이 브란드의 고집을 들어주자 듣고 있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성기사가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다고 인정해 버린 것이 아닌가?
“그나저나 이 병사들은 어쩔까요? 구역질 나는 약탈자들입니다.”
이스마일이 생선을 뜯고 있는 아자딘에게 물었다. 아자딘은 생선을 가시째로 우득우득 씹으면서 이스마일을 바라보았다.
“죽이길 원하냐?”
“뭣?!”
“이 자식들! 우리를 뭘로 보고!”
분개한 기사가 칼을 빼 들려고 했지만 미디암이 먼저 손을 썼다. 그녀는 앞발차기로 칼을 뽑으려 하는 기사의 배를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기사의 칼을 오히려 그녀가 뽑아 목에 칼끝을 겨누었다.
다른 병사들도 움직이기 전에 이미 이스마일의 곡검과 화살이 그들의 목에 겨누어졌다. 화살촉이 목에 닿아 살을 찢자 피가 그 주위에 방울방울 맺혔다.
“그만. 죽이지 마.”
“…….”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샤티가 혀를 내둘렀다.
‘원 세상에. 역시 전령일족, 명불허전이군. 애새끼들조차 이렇게 매섭다니 이거 도망치는 것도 무리겠는데. 이 자식이 가지고 있는 신왕진서를 탈취하는 건 꿈도 못 꾸겠어.’
“너희들, 살라스마의 주민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지?”
“아니 이건 우리가 죽이고 빼앗은 게 아니라….”
“남이 죽이고 빼앗은 걸 우리가 들고 왔을 뿐이야.”
“이만한 금은을 만들고자 광부들과 장인들이 얼마나 노력했겠소. 그들의 노력이 헛되이 되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알곡 한 알 한 알에 농민의 정성이 담겨 있듯 금은붙이 하나하나마다 광부와 제련공의 정성이 담겨 있지 않겠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일자무식이 분명할 놈들이 왜 자기변명을 할 때는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고 판결을 내렸다.
“당신들, 교두보 주둔지로 우리를 안내해.”
“네? 시, 싫소!”
“그건 죽으러 가는 거요!”
그 말에도 아자딘은 콧방귀를 꼈다.
“어차피 이 뒤쪽으로도 언데드들이 깔려 있어. 그냥 뒤로 가도 당신들 죽어.”
“무슨 소리요?”
“어젯밤 란타릭 백작의 군대가 언데드에게 습격당해서 패했다. 우린 거기서 도망쳐 온 거거든.”
“……!?”
지벡은 아자딘이 또 숨 쉬듯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며 혀를 찼다. 문제는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다. 적절하게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말해서 병사들의 저항 의지를 꺾는다.
“으음.”
“어차피 당신네 군대가 살라스마 인근을 다 초토화시켰지? 근처에 멀쩡한 마을은 없어. 그리고 멀쩡한 마을이 있으면? 거기엔 살라스마 백작의 병사들이 있을 텐데 당신들을 살려두겠어? 그러니 내가 하는 대로 따르도록.”
“아, 알겠소. 그럼 교두보로 안내하겠습니다.”
“좋아.”
“그런데 당신들은,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도네어 아나?”
“도네어 님이라면….”
“그 란타릭 경비대장 하던 분 말입니까?”
“최근 그 거시기한 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보아하니 이들은 도네어가 누구인지 아는 건 물론 그가 백작을 위해서 여러 가지 더러운 일을 수행하는 첩자라는 것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 그 도네어보다 높은 분이라고 할 수 있지.”
“…….”
보고 있는 지벡으로서는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언제 칼부림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이렇게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다니.
물론 무력으로 완전히 압도한 상황이니까 자신 있게 나갈 수 있는 거겠지만 병사들을 속여 넘기는 걸 보면 그냥 거짓말을 잘한다.
‘거짓말하는 데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군. 이런 사람이 어째서 백성들을 구하는 데는 또 진심일까?’
지벡은 아자딘에게 다시금 감탄하고 말았다.
“아, 알겠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너무 지쳐서 좀 쉬어야 합니다.”
“그래.”
아자딘은 병사들의 휴식을 허가해 주고 브란드에게 말했다.
“그럼 도하는 취소하지요. 언데드가 물속에도 드글거릴 텐데 판자 모아서 만든 뗏목 같은 거로는 도하 못 합니다.”
본래 아자딘 일행은 좀 쉬면서 이 근처에서 판자를 모아 작은 부목을 만들고, 말과 산양을 붙여서 강을 건너려 했다. 코라 강은 본래 크고 넓은 강이지만 최근 살라스마의 가뭄 탓에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서 간단한 뗏목만으로도 도하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에 던져진 시체가 언데드가 되면 강바닥을 걸으며 물을 지나는 사람을 끌어들여 죽이기에 함부로 뗏목 같은 걸로 도하했다간 배가 뒤집어진다.
“교두보 주둔지에는 제대로 된 배가 있겠지? 그걸 확보해서 강을 건넙시다. 아니면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장본인을 쓰러뜨려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
병사들의 기력이 회복되었을 때는 밤이 되었을 때였다.
“바, 밤에 언데드와 싸우러 가잔 말입니까? 무모합니다.”
병사들은 반발했지만 아자딘은 뒤쪽을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이 없어. 뒤에서도 언데드들이 와서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네?”
“오히려 이때가 더 나아. 상대는 언데드만 있는 게 아니야. 살아 있는 술자와 언데드가 혼합된 세력이다. 그렇다면 밤의 야음을 틈타는 게 적들의 이목을 흐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아자딘은 언데드들이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보아 이 언데드들이 그냥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술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종당하는 것이라 여겼다.
밤이 되면 언데드는 강해지지만 술자의 시야와 감지능력이 약해지므로 결과적으론 밤에 움직이는 게 더 이득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처음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아자딘.”
미디암은 선견조를 날려보고 혀를 찼다.
“선견조와 비슷한 정찰용 마법이 펼쳐져 있어요.”
“그래?”
“네. 죽은 새가 날고 있는데요.”
죽은 까마귀가 하늘을 날며 주위를 정찰하고 있었다.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바로 들킬 수밖에 없다.
“제법이군. 강력한 네크로맨서인데? 아마도 오크일 것 같다.”
아자딘이 오크를 언급하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 머리 좋은 괴물들 말입니까?”
“…….”
“잠깐. 그건 그냥 들어넘길 수 없겠는걸.”
나가인 샤티가 가슴을 내밀고 으쓱거렸다.
“우리들이 더 머리가 좋아.”
그녀는 자신들, 나가 종족이 오크보다 더 머리가 좋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병사들이 있기에 그들 앞에서 스스로 나가임을 밝히진 않았다.
“아 네. 그러시겠지요.”
아자딘은 샤티의 발언을 무시하고 화살을 활에 재웠다.
“활을 쏘게요? 잠깐. 저렇게 멀리서 날아다니는 새를 맞추겠다고요?”
길을 안내하던 병사들이 기겁했다. 달이 밝게 떠올라 있는 날이지만 그런 만큼 거리 감각이 떨어진다. 사람처럼 지면에 붙어 다니는 표적도 맞출 수 없는 상황인데 하물며 3차원으로 날아다니는 1척짜리 까마귀를 맞추겠다니.
그러나 아자딘이 화살을 날리자 상공을 날던 까마귀가 화살에 맞아 떨어졌다.
“……?”
“뭐, 뭐야?”
병사들은 정말 저 작은 까마귀를 쏴서 떨구는 솜씨에 깜짝 놀랐다. 아자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화살을 연거푸 날려 하늘에 날고 있는 새들을 전부 쏴서 떨궜다.
“말도 안 돼.”
“이런 활 솜씨는 전령일족이나 가능한 거 아냐?”
“…….”
지벡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가볼까.”
아자딘이 손을 들어 진로를 가리켰다.
“미디암, 이스마일. 오른쪽으로 북상해서 저기 숲에서 대기해라. 흑마술사가 직접 육안으로 관측하기 위해 이쪽으로 오면 저기서 보일 거야.”
“네.”
“알겠습니다.”
이스마일과 미디암은 아자딘이 정한 매복 포인트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저희는 뭘 합니까?”
“그야 미끼가 되어야지.”
“네?!”
“언데드들을 좀 떨구자.”
아자딘이 그렇게 말할 때 과연 주둔지에서 언데드들이 걸어 나왔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둔지 병사였던 란타릭 백작의 군인들과 그들에 딸린 사람들, 그리고 그들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주민들의 시체가 어기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시체들의 숫자가 상당하다.
“마치 지옥의 군대 같군!”
브란드는 그리 말하며 창을 들고 병사들의 곁에 섰다.
“괜찮습니까 노인?”
“염려 말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브란드는 그리 말하고 언데드 군대에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