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04
103. 나이트 크롤러 5
“오크에, 나가들이군.”
아자딘은 어둠을 꿰뚫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교두보 주둔지에서 나온 오크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그 배후에는 나가들이 서 있다.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샤티?”
“자, 잠깐만. 나는 이 거리에서 안 보여.”
샤티는 그렇게 말하고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안경이었다.
“어?”
아자딘이 그 모습을 보며 놀라워했다.
“그거 안경이군. 와, 처음 본다.”
“우리 아라가사는 다들 눈이 좋으니까요.”
“조용히 좀 해봐. 나가들은 눈은 좀 근시일지 몰라도 기척은 기가 막히게 잘 읽으니까.”
샤티는 안경을 이용해서 주둔지의 나가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잘은 모르지만 어디에 속하는 이들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이들에게 말하는 건 나가들에 대한 반역이 된다.
‘어떻게 거짓말로 잘 무마할 수 없을까? 안 되겠지?’
샤티가 그리 생각할 때였다.
“딱 봐도 나쁜 생각하는 표정인데?”
“역시 이 나가, 쓸모도 없는데 죽여 버리죠.”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샤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죽이자는 소리를 함부로 하다니, 샤티는 기분이 나빠졌다. 아자딘이나 브란드 외 성기사인 지벡이나 전령일족의 종사 미디암, 이스마일은 샤티를 너무 싫어했다.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섞여 있다.
“아니 잠깐, 치유해줬잖아. 치유. 엄청 쓸모 있지 않았어?”
“그래도 대놓고 거짓말을 하면….”
“아직 안 했어!”
“아직 안 했다면 앞으로 하겠다는 소리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샤티는 어쩔 수 없이 아자딘에게 부탁했다.
“당신, 얘들 좀 어떻게 해봐! 왜들 이렇게 성질이 급해?”
“그래서 저 나가들은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겠어?”
“눈이 나빠서 잘 안 보여. 하지만 음… 아마 신왕진서 회수팀일 거야.”
“신왕진서 회수팀? 여기를 공격한 게 신왕진서와 관계가 있나?”
“신왕진서는 너희 인간들을 조지면 튀어나오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아자딘은 샤티의 말에 황당해했지만 아예 마음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가 입수한 신왕진서 중에는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이미 저승에 간 죽은 자들이 알려주어서 얻은 것도 있다. 메제리의 사도들이 인간을 고문, 학대, 학살하는 현장에서도 얻었었고.
“어떤 원리지? 애초에 신왕진서는 어디에 존재하는 거냐?”
아자딘이 물어보자 샤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원리까진 잘 몰라. 그냥 상급자들이 그렇게 말해서 알고 있을 뿐이야. 본격적인 마법을 연구하는 연구자라면 잘 알겠지.”
“그렇다면 저기 오크를 잡고 물어보는 쪽이 빠르려나?”
아자딘은 오크가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걸 보았다. 아마도 언데드들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상황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근처 언덕으로 올라가서 육안으로 보기 위함이리라.
아자딘은 애초에 이런 상황을 상정해서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이곳으로 매복시켜 두었다.
“화살이 닿는 거리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스마일은 아자딘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죽일 마음으로 쏴. 어차피 이 정도로 죽진 않을 거다.”
아자딘이 말하자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화살에 마법을 걸고 쏘았다. 아자딘도 즉시 화살을 잡았기에 오크 한 명을 향해 전령일족 셋이 이선궁을 펼친 셈이었다.
샤티는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이놈들 화살은 거의 투창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화살로 기습하면 아무리 재생력이 좋은 나가라 해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오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대로 계속 전령일족인 아자딘에게 끌려다니고 싶지 않은데 꼴을 보아하니 이들의 기습으로 끝날 것 같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다는 길을 택하는 오크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크는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식사량을 충족하기 위해 많이 활동해야 했고, 그것은 곧 근육량 증대로 다가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강령술사들은 강령술을 이용해 자신들의 육체를 최대한 혹사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죽음에 취약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몸을 안 쓰려고 드러누워 있거나, 스콧처럼 휠체어를 이용해 앉아 있으면 기습에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기습을 방비해주는 강력한 보호자가 필요했다. 스콧은 사악하고 변덕스러운 악령, 나이트 크롤러와 계약했다. 위기의 순간 자신을 지켜주는 대신 성과를 이룰 경우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나이트 크롤러를 다루는 강령술사는 강령술의 달인이어야 가능하므로 오크들 사이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스콧이 오크들 사이에서도 천재 강령술사로 불리는 것은 그가 나이트 크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자 악령이 발동했다. 날아오는 화살 여섯 발, 특히 그중 두 발은 마법이 걸려 있어서 형태가 없는 검은 악령 나이트 크롤러조차 고통으로 신음하게 만들었다.
“헉?!”
스콧은 자신이 기습당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 당황했다. 화살들이 또다시 날아왔지만 나이트 크롤러가 현현하여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검은 그림자의 악마 같은 형상이 손을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낸 것이다.
“그만!”
스콧은 육체가 있는 좀비와 구울들을 불러 자신 주위로 방벽을 치고 나이트 크롤러를 돌려보내려 했다. 기습을 막아내 준 건 고맙지만 이런 나이트 크롤러는 잠깐 현현해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요구한다.
‘기습을 알아차린 이후의 공격까지 굳이 나이트 크롤러로 막을 필요는 없지!’
스콧은 나이트 크롤러를 가라앉히고 나가들에게 연락했다.
“기습! 적이 여기까지 왔어 뱀대가리들!”
“뭐?”
“어디냐?!”
나가들이 튀어나왔다.
*********
“이런… 이번에 죽였어야 했는데.”
아자딘은 상대 오크 강령술사가 이번 공격에서 살아남은 것에 치를 떨었다. 화살을 여섯 발이나 집중 공격으로 퍼부었는데 거대한 검은 그림자의 거인이 나타나 화살들을 막아내는 게 아닌가?
예상보다 저 강령술사는 유능했다. 오크여서 경계하긴 했지만 이 정도 실력자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저거 뭐야? 엄청난 마물이잖아?”
저 그림자 악령은 잠깐 보기만 해도 피부의 솜털이 싹 일어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정면으로 싸우게 된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마물이다.
“저 정도 마물이라면 술자도 부담이 될 거예요. 계속 쏴보죠!”
미디암이 그리 말하고 화살을 날렸지만 이제 상대는 완전히 방비를 시작했다. 주민들의 시체가 오크를 에워싸고 방어하는데 그 방벽이 완벽하다. 아무리 전령일족의 활이 강궁이라고 해도 이 먼 거리에서 시체를 뚫고 강령술사를 상처입힐 수는 없었다.
“안 되겠다. 너희들은 계속 공격해! 나는 접근해야겠어.”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샤티를 돌아보았다.
“어? 나? 무리! 절대 무리야!”
샤티는 아자딘에게 잡혀서 강제로 협력하고 있는 처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요에 의한 것이다. 강요 속에서 살기 위해 몇몇 정보들을 불거나 재생의 마법 정도는 써줄 수 있지만 나가들과 싸우는 데 협력할 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샤티. 당신의 존재만으로 많이 도움이 되니까. 나가로 변신하세요.”
아자딘이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며 샤티를 어깨로 둘러멨다.
“으악! 이 온혈동물! 어딜 만져!”
샤티는 아자딘이 자신을 집어 드는 걸 보며 기겁했다.
“어서 나가로 변신해요. 인간으로 오해받아서 동료들에게 죽고 싶진 않죠?”
“아, 젠장!”
샤티는 인간 형상을 벗고 나가로 변신했다. 그러자 아자딘은 그녀를 멘 채로 상대에게 향했다.
“…….”
샤티는 순간적으로 꼬리로 조이면 아자딘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샤티가 그런 생각을 할 걸 알았는지 아자딘이 허리띠의 단도를 뽑아 들더니 손목 안쪽으로 쓱 숨기는 게 아닌가?
꼬리로 조이기 시작하면 즉시 저 단도로 날 찢을 것이다.
‘까불지 말고 상황을 좀 볼까?’
샤티가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아자딘은 그녀를 둘러메고 달렸다.
*********
“응?”
스콧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남자와 그 남자가 둘러멘 여성 나가를 보았다.
“도와줘!”
남자는 그리 말하며 여성 나가를 보호하려는 듯 칼을 뒤로 들어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는 시늉을 했다.
“……?”
“뭐야 저건?”
“딱 봐도 뱀대가린데? 그럼 저 남자도 뱀대가린가?”
“아니 우리 요원은 이 근처에 없는데? 민간인 나가도 아닐 테고?”
하지만 명백히 나가 여자를 들고 오고 있지 않은가?
“저거 그거 아냐? 그 살라스마 백작한테 파견했던?”
“아, 그런가?”
나가들도 짚이는 바가 있었다. 살라스마의 백작에게 신왕진서를 받는 조건으로 파견했던 나가 술사들과 요원들이 있었다.
“그중 생존자란 말인가? 이 타이밍에?”
“으음.”
나가들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정황상 그게 맞는 것 같긴 한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나타나다니.
“일단 원호는 해주자고.”
“하지만 들여보내진 말고.”
“쳇. 대장이 있으면 알아볼 텐데.”
나가들은 투덜거리며 주문을 시전했다. 나무덩굴들이 자라면서 나가를 업고 달려오는 남자 뒤에 방벽을 형성했다.
*********
‘망했다.’
샤티는 아자딘이 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업고 달리는지 알아채고 경악했다. 이 남자, 은근슬쩍 자신도 나가인 양 위장해서 근접하려고 한다.
샤티가 나가인 걸 보여주었으니 다른 나가들은 아자딘을 인간으로 변신한 동족으로 여기지 진짜 인간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으리라.
‘큰일인데!’
아무리 아자딘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라지만 자신을 이용해 동족들을 기만하려는데 그걸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는다? 그러면 나중에 나가들이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나가들에게 돌아가더라도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러나 내가 뭘 했다간 바로 죽는단 말이지.’
아자딘은 비무장 상태가 아니다. 언제든지 그녀를 찢어 버릴 수 있도록 단도를 숨기고 있다.
‘음, 지금 내가 이 남자의 정체를 까발려봐야 나만 죽고 이 남자는 유유히 빠져나가겠지?’
아자딘의 능력을 가까이에서 보아온 샤티는 지금 상황에서 목숨 걸고 그의 정체를 폭로해봤자 혼자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우리 나가들과 언데드가 잔뜩 모여 있는 한복판에 들어간 뒤에 폭로하는 게 낫겠구나. 하지만 이게 과연 합리적인 추론에서 나온 생각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이 남자를 무서워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군.’
샤티는 자신의 결정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아자딘은 오크와 나가들에게 다가갔다.
“휴우, 덕분에 살았습니다.”
“잠깐!”
그때 오크 강령술사가 아자딘에게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그 이상 다가오지 마. 이야기는 멀찍이서 해도 되잖아?”
“…….”
오크 강령술사가 아자딘을 경계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샤티로서는 아주 다행이었다.
‘역시 오크들이 똑똑하다더니만 사실이네. 명불허전이야. 다행이다.’
그리고 나가들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