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07
106. Orc must die 2
“뭣?”
“성기사 네 백색 마법을 압도적으로 향상시켜줄 수 있지. 그뿐만인가?”
스콧은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쓰는 그 이상한 힘도 강화시켜줄 수 있어.”
“…….”
“마침 나가들과의 고용 계약이 끝난 참이다. 새 고용주로 당신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날 섬기겠다. 그런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기브 앤 테이크, 대등한 계약관계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 주도권은 네게 있지. 너무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 한 말야.”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스콧 맥그린이 말하는 것의 절반만 되더라도 아자딘에겐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알겠어. 오크 강령술사. ”
“스콧 맥그린.”
“계약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현명한 선택이군. 오늘의 선택을 대대손손 자랑하도록 해라.”
“벌써부터 살짝 후회되는데?”
아자딘은 자신이 잘하는 짓일까 후회하기 시작했다.
*********
아자딘은 자신의 산양에 휠체어를 연결해서 스콧을 태우고 끌기 시작했다. 정작 아자딘이 걷는데 스콧은 휠체어에 앉아서 가는 꼴이다.
“포로 주제에 너무 편하게 가는데요?”
미디암이 그 점을 불쾌하게 여겼지만 스콧이 물어보았다.
“그럼 너희가 장례를 치러서 태우고 있는 저 시체 중 일부를 줘라. 그 근육과 뼈대에 네크로맨시를 걸어서 내 휠체어를 밀도록 하지.”
“사자를 우롱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지벡이 반대하고 나섰다. 천사 신앙자인 아자딘도 그 점에는 반대했다.
“됐어. 그냥 휠체어 타라고 해. 근육이 찌면 죽는 체질이라잖아.”
“뭐 그냥 가겠다는 게 아니다. 가면서 나의 지식을 좀 나누어 주도록 하지. 너희들 수준에 이해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만 천재로 태어난 이는 범재와 우재들과 뒤엉켜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하거든.”
스콧 맥그린은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
오크를 보면 죽이고 싶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보기만 해도 두려울 정도의 근육질 몸에 마법까지 익힌 이 사악한 종족들을 보면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오크의 팔뚝이 사람 허벅다리보다 더 굵다. 전신에 차오른 근육은 싫어도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도 소문에 의하면 오크를 보면 살의가 치솟는다고 했다. 실제로 오크를 만나기 전까지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만나 보니 알겠다.
“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주옥같아서 죽이고 싶다.”
미디암이 참지 못하고 살의를 표출했다.
“사소한 좌절을 살해로 갈음하려 하다니. 여태껏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 그 지능으로 태어나서 자기보다 우월한 이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그때마다 죽이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면 쯧쯧. 강령술사인 나보다 네 악업이 더 크고 깊겠구나.”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미디암이 분노했지만 아자딘은 말렸다.
“계속 말 걸면 더 듣게 된다. 그냥 그러려니 해.”
“네?”
“그보다 신왕진서 사본에 대한 정보나 듣자고. 우선 왜 신왕진서가 사라진 거지? 신왕진서 사본은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거고, 왜 요즘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냐? 너희들은 어떻게 신왕진서를 찾으려고 하는 거고? 신왕진서를 현현시킨다는 건 무슨 뜻이지?”
아자딘이 물어보자 스콧이 코웃음 쳤다.
“욕심이 많은 놈이군. 그렇게 다 물어보다니. 차분히 설명해주마. 우선 왕화의 빛과 신왕진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 야에가스 신족이 사용하는 왕화의 빛이라는 건 강력한 제약하에 백색 마력을 순환시키는 시스템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믿음과 존경을 힘으로 바꾸는 거대한 시스템이고, 신왕진서는 그 시스템의 설계도이자 제약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 신왕진서는 곧 왕화의 빛의 다른 형상이고 본질이다. 여기까진 이해가 가능한가?”
스콧은 아자딘의 지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 정도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은 차라리 눈앞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아자딘은 산양과 밧줄로 연결된 휠체어를, 스콧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끌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나도 마법사의 제자였거든. 그래서?”
“너희 전령일족이 신왕진서 사본을 빼돌렸을 때, 왕화의 빛은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야에가스 신족들이, 그러니까 너희 인간들의 왕과 귀족들이 타락해서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었는데 너희 전령일족이 막대한 희생을 들여서 신왕진서 사본을 만든 거다. 그런데 그게 그만 왕화의 빛에 흡수되어 버린 거지.”
“뭐?”
“그건 들어줄 수 없는 이야기로군요.”
듣고 있던 지벡이 분개했다. 사실 성기사인 지벡은 지금 이들의 모임부터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쿠르트 신족의 권속인 나가나 오크들과 함께 하다니.
물론 이들은 아자딘의 포로이지만 스콧은 아자딘을 어디까지나 고용주로 부르고 있고, 샤티 또한 구속되지 않고 자기 발로 걷고 있었다.
이런 몰골을 다른 성기사가 본다면?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것만으로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 이 건방진 오크 포로는 눈앞에서 성기사를, 왕의 교회를 모독한다.
“흠, 왕과 귀족들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성기사?”
“…타락했네. 저 오크의 말이 맞아.”
브란드가 오크의 말을 지지했다.
“아.”
지벡도 브란드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 왕과 귀족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건 그저 지벡의 억지일 뿐, 사실 상당수의 왕과 귀족이 타락했고 심지어 지벡의 스승이던 젝트마저 타락하지 않았던가?
“잠깐, 왕화의 빛에 신왕진서가 흡수되었다고? 누군가가 세계의 끝에서 바람에 날린 게 아니라?”
“뭐? 신왕진서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녀서 세계 각지에서 출몰하는 줄 알았냐? 설마, 인간이 멍청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멍청한 놈의 상상력은 늘 나를 놀라게 한단 말야.”
아자딘은 폭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 오크에게 질려 버렸다.
‘아니 이 자식이 진짜 돌았나? 포로 신세인데 왜 이리 말을 함부로 하지? 자기 목이 떨어질까 두렵지도 않나?’
하지만 이 오크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아자딘이 들었던 것은 뭔가?
아자딘의 존재는 바로 신왕진서 사본 찬탈 중에 태어난 저주의 아이. 아자딘의 부친이 바로 신왕진서를 온 세계에 뿌려 버린 장본인, 배신자 아크레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저 왕화의 빛이 약해져서 생긴 일이라니.
‘아버지 잘못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아자딘은 그리 생각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럼 왜 그전까지는 나타나지 않고 지금 나타나는 거지?”
“그야 그만큼 왕화의 빛이 더 약해졌으니까.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야에가스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피가 옅어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지. 더 많은 귀족과 왕족들이 왕화의 빛을 배신하고 이탈하고 있으며 타락이 가속화되니 왕화의 빛은 더더욱 약해지는 악순환이 되는 거다.”
스콧도 목성의 시대를 언급했다.
“쿠르트 신족을 섬기는 너희들도 목성의 시대를 믿나?”
지벡이 물어보자 스콧이 혀를 찼다.
“너희 야에가스 신족을 섬기는 이들은 야에가스 신족들이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고 새 시대를 열었다고 믿는 것 같은데. 본래 그건 우리 쿠르트 신족들의 신화다. 너희의 신화는 그걸 찬탈하고 표절한 거야. 네더의 악신들을 상대로 이 땅을 생명의 대지로 만든 건 바로 우리가 섬기는 쿠르트 신족들이다. 그 사투 때문에 약해져 있을 때 야에가스 신족들이 찾아와 우리가 응당 누려야 할 지위를 찬탈한 거지.”
“그렇다면 너희들도 목성의 시대를 두려워하겠군.”
“그러니까 요새 다들 열심히 돌아다니는 거 아니겠나?”
확실히. 아자딘은 지금까지 여러 쿠르트 신족의 추종자들을 만났었다. 목성의 시대라는 파멸의 예언을 앞에 두고 어떻게든 힘과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신왕진서 사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지?”
“신왕진서는 왕화의 빛과 융화되어 있다. 그리고 왕화의 빛은 제약과 맹세. 백성들이 위기에 처하면 신왕진서가 나타날 거다.”
“그래서 사람들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거로 현현시키려 한단 말이냐?”
“이건 이미 상당수의 야에가스 신족들이, 너희 인간 귀족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너희도 마음에 짚이는 게 있지 않나?”
란타릭 백작이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도 그 일환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살라스마 변경백도 주민들이 가뭄에 고통받고 있는데도 구휼보다는 징벌을 우선적으로 휘둘러 대었다. 그것도 신왕진서를 현현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훨씬 지성적인 방법을 쓴다. 사람들이 많이 죽어 왕화의 빛이 급격히 약해진 곳에서 나의 마법으로 신왕진서를 현현시킬 수 있지.”
“즉 너는 민간인 학살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그런 주장이냐? 그게 변명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지?”
“나는 비가역적인 선택을 싫어해. 신왕진서를 내 마법으로 현현시킬 수 있는데 굳이 인간들을 죽여서 비가역적인 상태로 만드는 건 원하지 않는다.”
“강령술사면서?”
“시체를 조종해서 효율적으로 써먹는 마법은 합리적이야. 그리고 내가 직접 죽이지 않아도 이 세상에 시체는 넘쳐나지. 네크로맨시는 아주 가역적인 마법이며 사람을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군. 병사들이 잡고 있던 포로들이 내가 만든 언데드들에 의해 죽었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걸 네게 믿게 하는 건 무리군. 나도 모르니 말이다.”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이놈은 진짜로 민간인 학살에 관심이 없었군.’
“그래서 어쩔 건가? 날 죽일 건가?”
“아니.”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이진 않겠다. 그냥 포로로서 죗값을 치를 때까지 데리고 다니도록 하지.”
“고용 계약이라고 하면 좋을 것을.”
“아니. 우리 쪽엔 성기사가 있으니까. 널 고용한다고 하면 그가 곤란해.”
“뭐 알겠다. 똑똑한 내가 그렇지 않은 너희들의 입장 정도는 얼마든지 배려해주지.”
다들 말문이 막혔다.
이놈은 방금 전에 죽음의 문턱에 들락날락거렸다. 만약 아자딘이 민간인 살해죄를 물어 그를 참살한다면 아무리 근육질의 오크라 해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아자딘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리 없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군. 나의 두뇌는 많은 양분을 필요로 한다. 너희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지성은 양분 위에 피어나는 것이거든.”
“가만히 휠체어에 끌려가면서 배고프다고? 좀 참아.”
“아니 진짜 배고파. 오크들의 특징이라니까?”
스콧 맥그린이 먹을 걸 요구했지만 아자딘은 다른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도하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아자딘 일행은 주둔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숨겨진 배를 발견했다. 그 배를 타고 코라 강을 건너 란타릭 백작령에 당도하고 나서 야영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스콧 맥그린이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걸 몇 차례나 더 들어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