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1
10. 이빨의 권속들 1
분명 소문에 의하면 아자딘은 전령일족 사상 최악의 얼간이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서 아자딘과 결혼시킨다고 위협하곤 했었다. 그러나 미디암의 눈앞에 있는 아자딘은 현명하고 능숙하고 노련하기까지 했다.
이제 3개월 된, 그것도 편법으로 된 전령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뭐야? 왜 날 계속 쳐다보냐?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소문에 의하면 당신은 저주를 받았다고 하던데요. 당신 얼굴에 그 저주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그래서?”
“그런데 지금 보면 잘생겼네요. 하긴 당신의 누나인 아라엘이, 절세의 미녀라지요?”
“으웩.”
아라엘의 이름을 언급하자 아자딘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다.”
전령일족에겐 장유유서의 풍습이 있어 한날한시라도 먼저 태어난 쪽이 더 큰 책임과 권한을 갖게 된다.
“그쪽은 자기가 누나라고 주장하던데요.”
“만나봤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들었어요.”
“그렇다면 헛소문을 들은 거다.”
아자딘은 그렇게 단언하고 걸었다.
전령일족들도 귀천이 있어서 창립자 일족 다섯 가문이 제일 위에 있고 그 밑으로 평민들, 그 밑으로는 천하디 천한 천민들이 있다.
아자딘과 아라엘 남매는 반역자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천민인지라 뭐 상속받을 것도 없고 명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딘이나 아라엘이나 둘 다 자신이 윗사람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후후.”
미디암은 그런 아자딘의 모습이 왠지 우스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
반면 이스마일은 그런 미디암의 웃음을 보며 침묵했다.
*********
한나절 내내 걸어 고개를 넘자 이제야 좀 초목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근처에서 물이 새어 나와 길이 젖어 있는 게 보였다.
“아, 이건?”
“근처에 샘이 있다. 마침 거기에 내 보급품을 놔뒀으니까 찾으러 가볼까? 너희들도 산양에게 물을 먹여야 하지?”
아자딘은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이끌고 샘으로 갔다. 바위틈에서 졸졸 물이 새어 나오는, 샘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곳이었다.
“여기도 수량이 많이 줄었군. 큰일인데?”
아자딘이 보았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줄어 있다. 그래도 산 동쪽보다는 상황이 많이 양호한 편이었다. 그곳은 거의 사막화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아, 저기 있다.”
그 샘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던 케림 산양이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녀석이 아자딘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달려왔다.
“옳지. 스웨터, 잘 기다렸냐?”
케림 산양은 말보다 균형감각과 점프력이 뛰어나 험지를 잘 다니지만 털이 길어서 더위와 건조함에 취약하다.
그래서 아자딘은 물이 나오는 곳에 일부러 산양을 풀어놔 풀을 먹이고 자신만 따로 건조한 지역에 와서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 경우 맹수에 의해서 산양이 죽거나 강도들에게 약탈당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산양이 무사히 살아 있었다. 아자딘은 산양을 쓰다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여기서 좀 쉬도록 하자. 나도 보급품을 되찾아야겠군.”
“보급품이요?”
아자딘은 샘 근처 커다란 바위를 들고 그 밑에 감춰둔 자루를 꺼냈다.
“좋아. 보급품 상태도 멀쩡하군.”
황제의 목소리가 시간을 너무 촉박하게 줘서 무리해서 달려오느라 지니고 있던 물품의 상당수를 여기에 묻어두고 맨몸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걸 무사히 되찾은 아자딘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 좀 씻을 수 있을까 했더니만.”
미디암은 바위틈에서 졸졸 새어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물줄기를 보며 실망했다.
“산을 내려가면 점점 수량이 늘어날 거야. 지금은 당장 산양을 먹이는 것에 만족해라.”
그때 수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읍. 아니 이게 뭐야?”
“이봐! 누구 허락받고 우리 샘에서 물을 퍼가는 거야?”
아무리 봐도 불한당으로 보이는 이들 여섯 명이 몰려들었다. 어딘가의 패잔병인지, 아니면 유랑민들이 아무 갑옷이나 주워입은 건지 파츠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갑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아자딘의 눈치를 살피며 무기에 손을 얹자 아자딘이 그들을 제지하고 불한당들에게 물었다.
“싸울 생각은 없다. 뭘 원하지?”
“그야 모두 원하는데.”
“야, 계집애는 생포하고 사내놈들은 죽여!”
불한당들은 자신들이 더 인원이 많고 상대는 고작 어린 소년 소녀 둘에 아자딘 한 명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감이 넘치는지 으스대며 다가왔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인물이 아자딘 한 명뿐인 것으로 파악하고 방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아자딘이 바닥의 돌을 차올려 손에 쥐었다.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정말 타협의 여지가 없나?”
“아니 이 자식 무슨 잔말이 이렇게 많아?”
“얼굴에 가면을 쓴 걸 보니 뭐야? 광대냐?”
“그래?”
아자딘이 손에 쥔 돌을 움켜잡고 쪼갰다. 그와 동시에 쪼개진 돌이 탄환처럼 쏘아져 나가 선두에 선 불한당들의 사타구니에 명중했다.
“꺼윽?!”
“으악!”
불한당 두 명이 순식간에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 아….”
“뚜, 뚫렸어!”
바지가 뚫리고 사타구니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이, 이 자식이!”
분노한 불한당들이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아자딘은 그들을 밀치고 그들의 우두머리, 그러니까 여자애는 생포하고 나머지는 죽이라고 명령했던 이에게 다가갔다.
“어?”
“실례.”
아자딘이 가볍게 주먹을 날리자 돌풍이 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쐐액!
선혈이 튀며 불한당의 우두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끄아아아아!”
“두, 두목?!”
“무, 무슨?”
너무나 가볍게 날린 주먹이라 대체 왜 두목이 저거 한 대 맞았다고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선 이들은 흠칫 놀랐다. 그들의 두목 얼굴이 절반 정도 뜯겨져 나간 것이었다.
코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으스러져 뼛가루가 보이고 그 밑으로 눈알이 덜렁거리며 뽑혔다. 사람 주먹에 맞았다기보다는 곰 앞발에 맞은 것 같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끄아아아아!”
“힉… 뭐, 뭐야?”
“…….”
그 모습을 보고 놀란 건 불한당들만이 아니었다. 이스마일과 미디암 역시 경악하고 있었다.
‘뭐야, 이 위력은?’
‘설마 마법이 아니라 그냥 때려서 이렇게 만든 거라고?’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느새 불한당도 셋이 쓰러져 남은 것은 셋. 그들은 단숨에 자신들을 무력화하는 아자딘의 활약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만 기사님을 몰라보고!”
“하지만 너희들은 모든 걸 원하지? 타협할 생각이 없다면서?”
“아이고 아닙니다.”
“그럼 왜 무기를 들고 있지?”
“아이쿠!”
불한당들은 즉시 무기를 내려놓고 엎드렸다.
“미디암과 처진 눈. 무기를 회수해와.”
“…….”
미디암은 이름을 부르고 이스마일은 처진 눈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정말 애정이 담긴 별칭으로는 부르지 않겠다는 고집이 느껴졌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불한당들이 내려놓은 무기를 회수하고 아자딘에게 돌아왔다.
“그럼 질문을 해볼까? 너희들 왜 여기에 있지? 보아하니 그냥 도적인 것 같지는 않고.”
‘응? 도적이 아니라고?’
‘도적 맞는 거 아닌가?’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아자딘의 말에 당황했으나 불한당들은 그의 말을 듣고 화색을 띠었다.
“네, 맞습니다. 저흰 그저 선량한 양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선량한 양민은 아니지. 미디암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 불한당들은 살고 싶은 일념 때문인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 뱉어내기 시작했다.
“저희들은 그저 막 징집된 처지입니다.”
“징집?”
“예. 카젤 변경백의 자식들이 뭐였지? 무슨 책 사본을 찾겠다고 사람들을 징집해서 마구잡이로 부려먹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내륙 지역에 비가 안 와서 다들 유랑민이나 도적떼가 되는 판국에….”
“저희는 답도 없는 물건을 찾으라고 정찰 명령을 받고 이쪽으로 돌다가 그만, 아니 기쁘게도 이런 귀인을 만났습니다.”
아자딘 일행과의 조우를 귀인과의 만남이라고 칭송하는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아부를 천연덕스럽게 한다.
아자딘 일행과의 만남이 기쁠 리가 있나. 두 놈은 고자가 되었고 아자딘의 주먹에 얼굴이 뜯겨나간 두목은 살아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게 아부가 섞여 있어서 그렇지 벌어진 일 자체에 대해서는 거짓이 없다.
신왕진서 사본을 찾겠다고 카젤 백작이 손을 쓰고 있다.
“이놈들 그냥 도둑놈들인데 변명하는 거 아니야?”
“그렇진 않을 거다. 상인이나 행인이 있을 만한 길이 아니야.”
동부 내륙지에 비가 안 온 지 벌써 한 달. 유랑민들을 약탈하려고 했다 하더라도 인적 드문 이쪽 길목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입을 막기 위해서 죽일 수밖에….”
미디암은 대수롭지 않게 이들을 죽이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잠깐, 미디암. 나는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지 않는단다.”
“네?”
“죽여야 합니다. 정말 이들이 개과천선할 인물이라고 해도 살려두면 우리의 행적이 노출됩니다.”
이스마일은 설령 이들이 개과천선을 하더라도 죽여야 한다는 쪽을 설파했다.
“아, 아닙니다요!”
“잠깐 마가 껴서 그만… 저희들이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먹겠습니까?”
불한당들은 놀라서 머리를 조아린다. 다들 아자딘을 바라보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사람의 목숨은 한 번 빼앗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것, 어찌 나 편하자고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겠냐? 누구나 두 번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아….”
듣고 있던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한숨을 내쉬었다. 간혹 사람을 안 죽이는 불살주의자들이 있는데 설마 전령일족 중에 있을 줄이야?
한편 불한당들은 아주 신이 났다.
“그, 그렇지요. 암요!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것입니다요.”
“역시 어르신! 공명정대하십니다.”
“어르신의 자비심에 그 집안에 만대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은 반드시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요!”
“암요! 암요! 이런 은혜를 입고 어찌 은인을 팔아넘기겠습니까? 저희는 그렇게 염치가 없는 놈들이 아닙니다. 광명정대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분을 배신하면 지옥에 떨어집니다요.”
언제부터 아자딘을 알았다고 아주 그냥 아부가 생활화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궁정에 들어가 내시 짓을 해도 잘할 것 같다.
실제로 거세 당한 놈도 둘이나 있지 않은가?
아자딘은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뭐 다들 영구적 손상을 하나씩 안겨주면 설령 당장 참회하지 않더라도 남을 해치기 힘들어지겠지. 남은 인생에서 얼마든지 참회할 기회가 생기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
“…….”
“네?”
“너무 움직이지 마. 잘못하면 눈알만이 아니라 얼굴까지 날아간다.”
“윽?!”
“우, 웃기지 마라!”
불한당들이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아자딘의 일권이 제일 먼저 일어난 이를 가격해 버렸다. 다른 불한당들의 얼굴에 피와 살점이 튀었다.
“끄아아아아!”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코까지 날아가니까. 얌전히 있으면 눈알 하나만 없애고 끝나는데.”
아자딘은 필요 이상으로 피해를 심하게 입은 불한당을 안쓰러워했지만 그렇다고 손을 멈출 생각은 없는 듯했다.
“끄아악!”
끔찍한 비명이 숲속 나무들 사이로 천둥소리처럼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