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15
114. 타락귀족이 너무 많다 7
아자딘은 사망한 웨어 랫에게서 벗어났다. 피가 얼어붙게 만드는 끔찍한 냉기의 힘은 웨어 랫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동해서 그를 얼어붙게 했다.
“엄청난 마력이군. 조심해라. 다들 방한복을 입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스콧이 경고했다.
“바, 방한복이라고요? 이 여름에?”
브록 경이 당황해서 물어보았다. 다들 갑옷을 입고 전투할 것을 예측해서 얇게 하고 온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모포라도 둘러요.”
아자딘 일행은 가지고 다니는 모포를 풀어 망토와 묶어서 두르고 방한 장비를 단단히 했다.
“결국 자네의 아내와 애첩이 싸워서 생긴 일이란 말이로군. 대체 이게 무슨 사달인가.”
“소, 송구스럽습니다.”
브록 경은 브란드보다 높은 신분이지만 그의 호통에 찍소리도 못했다.
그때 안개 너머에서 기괴한 소리가 또 들려왔다.
*********
안개 속에서 젊은 여성이 걸어 나왔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은 짙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브록 님.”
“…프랑!”
브록은 그녀를 알아보고 당황했다. 여자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달뜬 눈으로 브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 찾아오셨군요. 역시 그 여자가 아니라 제게 올 줄 알았어요.”
그때 브란드가 나서서 고함을 쳤다.
“어허! 거기 처자!”
“…….”
“이미 그대가 거미여왕 아트라의 권속이 되었음을 알고 있네! 그러니 현혹하려 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브란드가 호통을 치자 보고 있던 이들이 모두 실소했다.
“화끈하네.”
“뭐 쓸데없는 절차를 안 밟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이스마일이 그렇게 말하고 활에 화살을 걸었다.
“절 퇴치하러 왔나요? 브록?!”
“프랑. 나는….”
“절 이 꼴로 만든 건 그 여자예요! 이 새높이 요새를 그렇게 만든 것도 그 여자인데. 당신도 결혼생활이 구속이라고 말했잖아요!”
“…….”
“그야 딸 만한 젊은 여자애 속여먹으려고 하는 소리지. 처자. 자네는 결혼의 구속에 얽혀 있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게. 남자건 여자건 혼외자에게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대부분 허풍이네.”
브란드가 그렇게 말하고 브록을 흘겨보았다.
“저기 브, 브란드 경. 안 무섭습니까?”
브란드는 기사가 아니라 서기지만 기욤발트는 브란드를 경이라고 불렀다. 지금 말을 걸어오는 저 여자에게서 심상치 않은 요사스러운 기운이 펄펄 솟구치는데 브란드는 정말 여염집 아낙 대하듯 편하게 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관없네. 내가 올바른 뜻으로 행하고 있는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게 무엇이 있는가?”
“부끄러워서 몸 사리는 게 아닌데.”
무서워서지.
“브록. 절 선택해주세요. 그 여자와 싸우는 것도 그만두고 그냥 둘이 도망쳐요. 어딘가 남들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거예요.”
‘감탄스럽군.’
아자딘은 산통을 다 깨뜨리는 브란드를 무시하고 브록에게 말을 걸어오는 저 여자에게 존경심마저 느꼈다. 이 정도로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걸 보면 집착이 대단한 모양이다.
“프랑 나는….”
브록은 고통스러워했다. 브란드가 말한 대로 아직 철없는 어린 여자를 위해서 침대 머리맡에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결혼을 깨트릴 생각도 없으면서 아내는 자신을 구속하고 괴롭히는 악녀이니 진정한 사랑은 너뿐이다. 내가 귀족으로서, 기사로서 책임이 없다면 진작에 이혼하고 진실한 사랑인 너와 함께 할 것인데 슬프게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딴 식의 감언이설로 여성을 속여왔는데 이 여성은 그걸 다 진실로 믿었던 모양이었다. 브록 본인도 너무 많이 쏟아내서 기억하지 못하는 거짓말을 믿고 이렇게 끔찍한 상황에서도 집착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당신들의 잡소리를 좀 지워 버려야겠군요. 언제나 그랬어요. 브록 경은 자신의 책임과 위치 때문에 진실한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프랑! 아니야! 그냥 내가 비겁한 거야!”
브록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애인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자 거미줄이 안개를 뚫고 브란드를 노리고 날아왔다.
-핑!
하지만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스마일이 화살로 거미줄을 공중에서 맞춰 버렸다.
“원래는 저 여자 머리통을 뚫어 버리려고 했습니다만… 하는 이야기가 재밌어서 멍 때리고 보고 있었네요.”
이스마일이 투덜거리며 다시 화살을 꺼내 활시위에 걸었다.
“그래. 너희도 조심해라.”
“거미줄을요?”
“아니 너희도 아라가사인데 그런 거에 당하겠냐? 바람피는 놈의 뻘소리에 속지 말라고.”
아자딘도 그리 말하고 브란드에게 손짓했다.
“알겠네!”
브란드가 목창이 실린 휠체어를 밀어 전진한다.
“따라가요!”
“이, 이보게!”
브록 경은 자신의 애인을 가차 없이 적으로 돌리는 아자딘 일행에게 당황했지만, 그때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
새높이 요새의 마을 안, 2층, 3층의 목조건물들 위로 거미줄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그 거미줄에는 웨어 랫과 나가들의 몸이 묶여 체액을 빨려 납작해진 채 죽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종탑과 요새 벽 사이, 서리가 얼어붙어 얼음 폭포처럼 변한 거미줄 장벽 위에 거대한 거미가 서 있었다.
거미의 몸 위에 여성의 상반신이 달려 있었는데 바로 조금 전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랑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광기에 가득 찬 눈으로 브록에게 외쳤다.
“브록 경! 당신을 얽어맨 책임의 굴레를 제가 풀어드리지요. 저들을 해치워서!”
“힘들 텐데?”
아자딘은 코웃음을 치고 지벡에게 신호했다. 지벡이 녹슨 철퇴를 꺼내 던졌다.
-단죄의 철퇴!
강력한 백색 마법이 철퇴를 매개로 펼쳐지려 하자 거미 여자가 잽싸게 거미줄을 펼쳐 철퇴 자체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 아자딘이 화살을 쏘았다. 철퇴 자루에 정확하게 화살이 충돌하며 철퇴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거미줄을 피해 버린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궁술은….”
이미 이스마일이 화살로 거미줄을 맞추는 기술을 보였지만 우연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던 브록 경이었지만 이번 걸 보니 확실해졌다.
“전령일족!? 아, 아니 하지만 성기사….”
지벡이 성기사인건 명약관화하다. 아니 이렇게 강력한 백색 마력을 쓰는 성기사는 성기사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인재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기사와 전령일족이 힘을 합친다고?
“뜻이 높으면 동지가 모이는 법이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브록의 곁에 붙었다. 그 사이에 지벡이 펼친 단죄의 철퇴가 거미여인을 향해 떨어진다. 하지만 거미여인은 상공에 거미줄을 치고 자신은 거미줄 밑으로 들어가 피했다.
단죄의 철퇴가 상공에서 폭발하며 거미줄을 부숴 버리고 거미줄이 걸려 있던 요새의 기왓장, 종탑의 피뢰침이 함께 부서져 무너져 내린다.
“꺄악!”
거미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거미여인은 종탑 뒤로 돌아가서 추가적인 공격을 피해냈다.
“소용없어!”
미디암이 화살을 날렸다. 그녀가 날린 화살이 공중에서 바람을 찢으며 꺾어 들어가 종탑 뒤로 숨은 거미여인을 추격한다.
“대, 대단해!”
브록은 경악했다. 어린 소녀가 쏜 화살이 이렇게나 강한 데다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다니. 전령일족이 대단하다고 소문만 들었지만 이제 보니 진짜 신왕과 그 귀족들을 죽이고도 남을 실력이 아닌가?
거미여인이 종탑 뒤로 돌아가 울부짖자, 주위의 땅이 꺼지고 땅 밑에서 작은 거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다고 해도 크기가 사냥개만 한 거미들이다. 거미 독 같은 게 없더라도 물리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게 되리라.
“아니 잠깐만! 프랑! 내 이야기를 들어봐! 내가 다 잘못했어!”
브록 경이 애원했지만 거미여인은 브록 경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당신은 지금 봉신으로서의 사명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거예요! 봉신으로서의 사명, 기사로서의 사명을 지지 못하게 하면 오직 사랑만을 생각하겠지요.”
듣고 있던 아자딘이 혀를 찼다.
‘어린 여자 하나 홀리려고 대체 뭔 소리를 한 거야? 이 작자는?’
아마도 자신의 결혼생활이 최악이지만 기사나 봉신 된 도리로 이혼은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애인과 재혼하지 않는 걸 납득시키며 만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스콧이 중얼거렸다.
“야. 나가 여자가 도망친다.”
아자딘 일행이 거미들과 싸우는 동안 샤티가 도망쳐서 건물들 사이로 달려가고 있었다.
“쉿. 조용히 해.”
아자딘은 샤티를 추적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도망치게 놔두었다.
물론 브록 경에게 이 근처에 상회나 창관이 어딨냐고 물으면 굳이 이런 수작을 쓸 필요 없이 나가들의 소굴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샤티가 자신의 발로 길을 안내해주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럼 저 거미여자는 빨리 처리해야지? 내가 손을 쓸까?”
스콧이 물어보았다.
“아니. 강령술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쓰는 건 좀 참아주시지.”
“강령술만 쓸 수 있는 게 아닌데.”
“흑색 마력 말고 무색 마력을 써. 거미여자는 냅두고 새끼거미들만.”
“저 거미여자는 어쩌게? 살려둘 셈인가?”
“아니. 보아하니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활과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거미들이 일제히 아자딘에게 덤벼들었지만….
-투콱!
아자딘이 검을 휘둘러 달려드는 거미들의 다리를 날려 버리고 활을 쥔 손을 흔들었다. 활줄이 아자딘의 상완에 감기며 팔에 활이 끼이고 손이 빈다. 아자딘은 그렇게 순식간에 활을 쥐고 있던 손을 비게 하고 주먹을 내질렀다.
아자딘의 주먹이 거미의 배를 꿰뚫고 그 상태로 죽은 거미를 집어 들었다.
“자 그럼!”
아자딘은 그 거미를 방패처럼 들어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거미줄을 거미로 받아냈다.
-촥!
거미여인이 아자딘을 향해 거미줄을 발사한 후 잡아당겼지만 애꿎은 새끼거미만 뽑혀서 날아가 버렸다.
“아! 이런!”
거미여인은 아자딘 대신 새끼거미가 잡히자 안타까워했지만, 앞발에 새끼거미가 잡히는 순간 그녀의 밑부분, 인간으로서는 골반 부분에 해당하는 거미의 입이 열리더니 새끼거미를 붙잡고 쭈욱 빨아먹기 시작했다.
새끼거미가 체액이 다 빨려서 납작해진다. 동작이 너무 빠르게 이어지는 걸 보니 별다른 의식 없이 앞발로 뭔가를 잡으면 바로 이빨을 박아넣도록 본능이 시키는 모양이었다.
“안됐군. 이미 짐승이 되어 버렸어.”
아자딘은 거미를 대신 잡아가 버린 프랑을 향해 다시 활을 잡고 화살을 연거푸 날리기 시작했다.
한 대를 쏠 때도 강하게 잡아당겨야 할 강궁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으면서 쉬쉬쉭 연거푸 날린다. 그리고 아자딘은 자신이 자른 거미의 앞다리도 집어 들어서 활줄에 걸고 쏘아서 날린다.
-퍼퍼퍼퍽!
연속적으로 화살과 거미 다리가 몸에 꽂히자 거미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피가 튀며 발이 적셔지자 거대한 거미여인은 자신의 거미줄에 매달리지 못하고 미끄러져 떨어진다.
게다가 거미줄이 얼어붙어서 산산조각 나니 마치 얼음 폭포가 녹아내리듯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쿠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거미여인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아! 왜들 그래! 나는, 그저 브록 경을 구하고 싶을 뿐인데! 왜 방해하는 거야!”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게 된 거미여인은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자딘은 긴 탄식을 내뱉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멍청한 귀족의 불륜 행각치고는 일이 너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