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16
115. 웬디고 1
“…가, 강력하군.”
기욤발트는 아자딘이 저 거대한 거미여자를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맞서는 걸 보며 경악했다.
‘전령일족이 왕조차 살해하는 자들이라고 들었는데 그럴만하네. 무섭잖아? 저 괴물을 이렇게 쉽게 잡아내다니.’
만약 그를 전율케 하는 아자딘이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도저히 써먹을 길 없는 낙오자로 여겨지고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면 다시금 놀랄 것이다.
곁에서 기욤발트의 표정을 살펴보던 이스마일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놀랄 거 없어요. 덩치가 크니까 화살 꽂을 데도 많은 것뿐입니다.”
기욤발트가 전령일족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아자딘의 활약은 놀라운 것이지만 전령일족들에게는 평범한 것이다. 그런 인상을 심어주어 기욤발트가 감히 그들을 넘볼 엄두를 못 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목책을 짜서 휠체어에 얹어서 가져오는 바람에 거미여인이 함부로 접근전을 못 걸었고 그 결과 화살밥이 된 거지요.”
미디암이 보충해서 설명했다. 원래 종사들은 전령이 행한 행동이나 정략, 전략 등을 복기하면서 전령으로서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쌓아나가는 게 일이다. 그녀의 행동은 아자딘의 전술과 전략에 대한 복기였으니 종사로서 합당한 행동이라 하겠다.
“우회해서 공격해올 수도 있지 않았나?”
기욤발트가 물어보았다.
“우회하려면 깔아둔 거미줄과 건물들을 피해서 평지로 와야 하는데 거미여인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웠겠지요.”
미디암은 웃으면서 목책 옆으로 피했다. 지벡이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새끼거미들을 베어 넘겼다.
거미들은 별 힘을 못 쓰고 속수무책으로 아자딘 일행에게 당하고 있었다.
*********
땅에 떨어진 거미여인 프랑은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 안 돼! 그 여자가 웃고 있어! 내가 죽으면 그 여자가 당신을 차지할 거야!”
“아니 저 아저씨가 뭐 그렇게 미남이라고….”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평민 중에는 귀족에게 막연한 동경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다. 귀족이라는 입장, 앞서는 경제력과 경험. 그런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를 세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프랑. 안됐지만 지금 당신은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고 있고, 당신의 몸을 변이시킨 이 저주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아트라의 감염은 당신을 거미야수로 바꾸고 있어. 인간성을 지닌 채로 야수로 살아가는 것은 당신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비참한 일이니 여기서 끝을 맺겠다. 혹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
“아아… 브록. 나는 그저. 그 여자에게서 당신을 구해주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그녀는 이 순간에도 브록 경의 거짓말을 믿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브록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프, 프랑. 아니야. 그건. 그냥 내가 피해자인 척하고 젊은 네 몸을 탐한 것뿐이야. 내가 한 말 대부분은 거짓말이라고. 나는 그저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쓰레기 같은 놈이야!”
“브록. 그럼 절 사랑했나요?”
“그, 그야 물론이지.”
“…….”
보고 있던 아자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모질게 끊어내면 그녀도 집착을 버릴 텐데. 나쁜 놈이 되기 싫은 건가. 뭐 어차피 그녀는 오늘 죽으니, 차라리 자신의 사랑이 진실되었다고 믿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거미여인은 발작하듯 버둥거리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당신 손으로 절 끝내주세요. 적어도 영원히 당신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게.”
“…….”
그녀를 지배하는 야수성이 부상 때문에 잠들었는지 그녀는 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브록에게 자신의 처형을 요구했다.
브록 경은 그 말을 듣고 거미여인에게 다가갔다. 프랑이란 여성은 차분하게 피를 흘리며 브록이 다가오는 걸 보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하지만 그녀의 밑, 거미 부분은 몸을 버둥거리더니 순간 앞발을 날려 브록 경을 노렸다.
-퍽!
지벡과 아자딘이 검을 휘두르며 나와 앞다리를 잘라 버렸다. 둘 다 이렇게 될 걸 알고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히익!”
“조심해. 아저씨. 저 프랑이란 여자랑 거미야수는 공존하고 있는 상태니까. 앞발에 잡히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서 씹고 독니를 박아넣는다. 방심하면 죽어.”
“차라리 그녀의 손에 죽고 싶습니다.”
“헛소리하지 마. 당신을 죽이려는 건 저 거미 부분이고 저 여자는 당신을 죽일 생각 따윈 없어. 당신이 죽으면 그녀의 손에 죽는 게 아니라 그녀를 좀먹는 거대한 악에 의해서 죽는 거야. 여기서 죽는다고 당신의 죄가 속죄되는 게 아니라고. 도망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구차한 짓을 저질렀는지 직시하도록 해.”
아자딘은 스스로 죽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브록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렇다네. 어설픈 애욕 때문에 이게 뭔 짓인가.”
브란드도 그리 말하고 날아오는 거미 다리를 단창으로 후려쳐냈다.
“어리석은 짓을 한 건 알겠습니다만 브록 경.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지벡도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마물화된 여성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아… 네.”
브록 경은 눈을 감고 있는 프랑에게 다가가 그녀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크우아아아!
거미 몸통 부분이 분노하며 몸을 일으켜 광분했지만 이미 아자딘의 화살들이 거미를 거덜 낸 데다가 다리도 몇 개 잘려서 자기 체중을 가늠하기도 힘들어진 상태였다.
거미가 버둥거리다 쓰러지자 브록이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으…으아아.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자를 지위와 감언이설로 속여서 애인으로 삼았지.”
아자딘은 냉정하게 말했다.
“이 여성의 죽음은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야. 철저히 자신을 사랑하도록 기만하지 않았나? 성욕이나 술기운에 져서 벌어진 하룻밤 실수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서도 혼외로 연애를 즐긴 대가지.”
“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알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거야! 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불쌍한 프랑!”
“일단 보기에는 후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부디 그 후회가 당신 인생의 남은 나날들을 바꾸어주었으면 좋겠군. 가자. 아직 당신 아내가 남아 있으니까.”
아자딘의 말에 브록 경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 버렸다.
*********
“좋아. 따돌렸다!”
샤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는 마법으로 보호가 되어 있으니까.”
마을의 창관에는 나가들의 마법으로 감춰진 문이 있었다. 샤티는 그 문의 보호 마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열림 주문을 써서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피가 좀 묻어 있긴 하지만 부상을 입은 나가들이 있었다.
“크윽. 너는….”
“배신자 아냐!?”
놀랍게도 이곳에는 스콧 맥그린을 고용해 란타릭 백작의 교두보 요새를 공격했던 나가들이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 도망갔을 테니 여기 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아니, 아닙니다. 저는 살라스마의 잠입 요원이었습니다.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거라고요.”
“포로? 웃기고 있네.”
“적극적으로 협력하던 게 아니라? 이미 네 이름을 상부조직에 고스란히 보고했으니까 각오해라.”
“그러지 마세요. 제가 배신했다면 저 혼자 여기 왔겠습니까? 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네더의 마물이 소환되었다가 제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제어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의 영역이 아니야.”
“그건 아직 우리의 현실 세계에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나타나면 여긴 다 끝장이다.”
“네?”
“으윽… 추워.”
나가들이 신음했다. 보아하니 그들 역시 아까 지상에서 보았던 웨어 랫과 비슷한 상처를 입었다. 상처 부위가 얼어붙으며 피까지 얼어붙고 있었다.
“이건….”
“술자 여자를 죽여야 해. 그녀를 매개로 네더의 마물이 현세에 간섭하고 있다.”
샤티를 스파이라고 비난했으면서도 이들은 아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술자 여자도 네더의 마물과 비슷한 차원에 끌려가서 쉽게 현현하지 않는다.”
“네더의 마물을 쓰러뜨리면 안 될까요?”
“쓰러뜨린다고? 크크….”
“카라갈라의 종탑보다도 거대한 몸으로 걸어 다니는 거인을?”
카라갈라는 과거 나가들의 대도시로 그 어떤 인간들의 건축물보다 거대했다고 한다. 그런 카라갈라의 종탑보다도 거대한 거인이라니? 샤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놈은 안 보였는데요?”
“추위와 안개 속에서 가끔씩 나타나.”
“그때마다 그 권속들이 쏟아진다.”
“우리의 마법 따위는 그 녀석의 털끝 하나 정도 뽑으면 다행이지.”
언제나 오만방자하던 나가들인데 이들이 놀랍게도 자기 비하를 한다.
“다른 생존자들은 없습니까? 이 안에?”
“…시, 신왕진서를 코브라 여왕에게 바치려고 했는데.”
“네더의 마물을 추방하기 위해 신왕진서를 왕화의 빛에 돌려놔야 한다는 미친 오크가 있다.”
“녀석이 웨어 랫들을 죽이고 신왕진서를 들고 지하로 도망쳤다.”
“왕화의 빛…이라고요?”
샤티는 그 말에 기겁했다.
여기는 나가 제국의 출장소 같은 곳, 이 근방에 나가들이 모은 신왕진서 사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나가 제국과 쿠르트 판테온, 쿠르트 신족들을 섬기는 모두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다시 왕화의 빛, 그 저주스러운 것을 강화하기 위해 쓰자고 오크가 나설 정도로 네더의 마물이 두렵단 말인가?
“이곳에는 이전부터 도시가 있었어. 그게 침강하면서 지하수도가 되었고 그 위에 마을이 생긴 거다. 우리가 이곳을 안전가옥으로 선택한 것은 별다른 공사 없이 써먹을 지하 공간이 많기 때문이지.”
“즉 여기에 지하도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조심해라. 안에는 우리를 배신하고 신왕진서를 탈취한 오크 외에도….”
“저 네더의 마물을 불러낸 마녀가, 이곳 영주의 아내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반드시… 아?”
샤티는 나가들의 반응이 끊긴 것을 발견했다. 이들을 좀먹던 냉기가 심장과 골수에까지 미친 것이다.
“숨이 끊어졌군.”
그때 샤티의 뒤에서 들려서는 안 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샤티의 곁에 다가온 아자딘이 나가 청년들의 상태를 살펴보는 게 아닌가?
“엑?!”
놀란 샤티가 돌아보았지만 아자딘은 태연히 턱을 괴고 말했다.
“역시 샤티를 먼저 보내니까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군. 내가 말을 걸었으면 죽어도 말을 안 했겠지.”
“자, 잠깐만!”
샤티는 소리도 없이 자신의 옆에 와 있는 아자딘에게 기겁했지만 이미 그녀의 목에 칼이 드리워져 있었다.
“쉿.”
미디암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지하도라 소리가 울리는군요.”
이스마일도 숨죽이고 그렇게 말했다.
“어?”
샤티는 그들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인간 성기사나 놋쇠의 기사 브란드, 그리고 심지어 오만방자한 오크 강령술사 스콧 맥그린조차 숨죽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들 설마?”
“그래. 네더의 마물이라는 걸 봤어.”
아자딘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카라갈라의 종탑이라니, 나가들은 카라갈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군.”
“네?”
“산이 걸어 다니더군. 카라갈라의 종탑이 그렇게 크진 않을 거 아냐?”
“…….”
아자딘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네더의 괴물은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것인 것 같았다.
“그걸 봤어? 어땠어?”
“어땠냐고? 흠 좋아. 정비하는 겸 해서 이야기해주지.”
아자딘은 네더의 괴물을 만났을 때 벌어진 일을 샤티에게 설명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