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17
116. 웬디고 2
거미여인을 죽인 브록 경은 너무 심적인 충격이 컸는지 다리가 풀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브록 경?”
지벡이 그런 브록을 부축했다.
“죄, 죄송합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심적 고통이 크실 테지요. 하지만 아직….”
아직 위험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위험은 당신의 아내일 것이다.’
지벡은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주위의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소리가 무언가에 흡수당한 것 같은 감각이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안개 위로 산이 보였다. 안개가 구름처럼 깔린 지면에 깔린 위로 드러난 산은 너무나 장엄해 보여서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산이 움직인다.
“저게… 네더의 괴물인가.”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짐승이었다. 회색의 털로 뒤덮인, 인간과도 비슷한 형상의 그것은 털이 많이 난 인간이나 곰 같은 것이기도 했다.
다만 다르다면 장엄함을 느낄 정도로 거대한 몸체와 그것에게서 느껴지는 명명백백한 이질감. 마치 이 세계에 존재해선 안 될 것을 보는 듯한 혐오감이 전신의 모공을 곤두서게 한다.
그때 그 괴물이 앞발 같은 것을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워낙 몸이 거대해서 여기서 보면 천천히 움직이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지상에서 돌풍이 일었다.
“젠장! 오, 온다!”
아자딘과 그 일행들은 즉시 건물 돌벽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저런 거대한 괴수가 앞발을 휘두르는데 인간이 만든 건축물 따위로 버틸 수 있을까?
과연. 거대한 괴물의 앞발이 지면을 할퀴고 그대로 벽을 투과해 아직 도망치지 못한 브록 경을 할퀴었다.
“히익!?”
놀란 브록 경이 몸을 떨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마치 신기루나 환영처럼 거대한 괴물의 앞발이 브록 경을 그냥 투과해서 지나간 것이다.
-그우우우우우우!
하지만 강풍이 뒤따르며 브록 경이 공깃돌처럼 지면을 나뒹굴었다. 바람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진 브록 경은 지면에 버려진 서까래에 충돌했다.
“크억!”
“오. 맙소사! 네더의 괴물! 아직 우리 세계에 완전히 현현하지 않았지만 얼마 안 남았어! 바람이 움직일 정도면 곧이야!”
오크 강령술사 스콧 맥그린이 되찾은 자신의 휠체어에 앉은 채 바닥의 밧줄을 잡고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저게… 현현한다고? 곧?”
아자딘은 거대한 산과 같은 괴물을 보며 기겁했다.
아직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덕분에 브록 경이 살아 있는 것이지만, 저런 거대한 괴물이 물질의 형태를 갖추면….
그 존재만으로 위협적이다. 걷다가 앞으로 한두 번 쓰러지기만 해도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저게 현현되기 전에 술자를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포함해서 이 일대의 모든 것들이 다 죽을 거다!”
“하지만 수, 술자라면.”
브록 경이 몸을 일으켰다. 저 거대한 괴물이 일으킨 돌풍에 휩쓸려 떨어졌던 그였지만 전신 판금 갑옷이 워낙 좋아서 그 충격에서도 그의 몸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내 아내를 죽이자는 소리 아닙니까?!”
“…….”
모두가 아연실색해서 브록 경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자네가 제대로 집안을 관리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지!”
브란드가 일침했다.
“제가 잘못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요! 다들 하는 짓인데 왜 제게는 이다지도 잔혹한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아직 애새끼로군. 음?”
그때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이 불면서 저 거대한 괴물, 네더의 괴물이 투명해지더니 다시 사라졌다.
“사라졌다?”
“사라진 게 아니야! 아직 이쪽 세계에 현현할 수 없는 거지. 왕화의 빛이 저것의 존재가 이 세계에 현현하는 걸 막고 있는 거다!”
스콧이 설명하는 그때 갑자기 거미줄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거미줄에 붙잡혀 있던 나가와 웨어 랫의 시체들을 중심으로 검은 마력이 모여들더니 그것들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네, 네크로맨시!”
“나 아냐.”
스콧이 그렇게 말할 때 시체들이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시체들의 골격이 부서지고 피부가 터지며 안에서 털이 자라난다. 마치 케림 산양의 털 같은 억세고 두꺼운 털들이 자라나고 시체의 머리에서는 뿔이 돋아난다. 그리고 그것들의 숨결에서 무서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게 저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의 정체로군.”
거대한 네더의 마물을 축소시킨 듯한 모습의 괴물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라는 이야기야.”
아자딘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샤티에게 설명해주고 자신의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날을 살펴보았다. 날이 빠지고 칼이 비틀려 있는 게 도저히 써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여길 찾아왔다고?”
“그래. 카라갈라의 종탑인지 뭔지 따위가 범접할 크기가 아니었어. 산이 움직이더라니까.”
“카라갈라의 종탑도 겁나 크거든?!”
“그러시겠지. 그런데 육안으로 본 적은 있고? 나가 제국이 멸망할 때 무너져서 그 후로 못 봤을 텐데?”
“윽. 그래도….”
“지금 그 괴물이랑 나가 제국 시절 건물을 놓고 자존심 싸움할 때가 아니야. 저게 현현하면 야에가스 신족이나 쿠르트 신족 간의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고.”
아자딘은 칼의 몸통을 손가락으로 퉁 튕겨보고 쯧 하고 혀를 찼다. 칼을 벽에 세워두고 샤티가 들어왔던 트랩도어 입구를 보았다.
계단 위쪽 트랩도어가 작아서 아자딘과 이스마일, 미디암이 끌고 온 케림 산양은 물론 기사들의 말들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스웨터. 너는 여기에 지켜. 그리고 음….”
아자딘은 안장에서 무기들을 꺼냈다. 번쩍이는 보검과 적당히 괜찮은 강철칼을 두고 고민하던 아자딘은 두 개 다 자신의 허리에 찼다.
“그 괴물들 모피가 두꺼워서 칼날이 너무 잘 상하더라고.”
그리고 짧은 단창을 꺼내 브란드에게 내주었다. 브란드도 괴물들을 상대하는 동안 무기를 부러뜨려 먹은 것이다.
“고맙네.”
“아뇨. 제가 더 감사하지요. 지벡 경은…?”
“저도 무기 교체 부탁드립니다.”
지벡의 강철검도 날이 무뎌져 있었다. 다시 갈아서 날을 세우면 못 살릴 것도 아니다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느긋하게 날을 갈 수는 없었다.
“끙. 무기 재고가 순식간에 바닥나는군.”
아자딘은 투덜거리며 자신의 산양 안장가방에서 무기를 꺼내 일행들에게 배분했다. 짐이 가벼워진 아자딘의 산양이 기쁨의 투레질을 했다.
“배고파. 먹을 것을 좀.”
스콧은 이 상황에서도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럼 지하도로 가 볼까? 브록 경. 당신이 이곳의 영주이니 안내 부탁드리지.”
“저도 잘은 모릅니다. 아버지에게 이곳의 봉신 계약을 승계받을 때 한 번 지하도를 돌긴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그저 오래전에 만들었던 도시가 침강해서 그 위에 새로 마을을 만들었고 옛 도시는 지하수로와 하수구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안의 길은 잘 모르고?”
“길을 표시한 지도가 커다란 동판으로 만들어져서 각 구획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걸 필사하면 길을 잃지는 않을 겁니다.”
“흠. 그래? 당신 아내는 이곳을 알고 있나?”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거 나쁜 소식이로군.”
아자딘 일행은 말과 산양의 안장가방에서 물자를 빼내어 재정비를 마치고 바닥에 쓰러진 나가의 시체는 도끼로 후려쳐 팔과 목을 끊어놓았다.
“가자!”
*********
“그런데 대체 당신들은 뭡니까?”
브록 경은 아자딘 일행을 궁금히 여겼다.
“나도 그게 궁금했어.”
기욤발트도 아자딘 일행을 궁금히 여겼다.
“허허. 우리는 기사도의 탐구자라네.”
브란드가 가슴을 내밀고 당당하게 말했다.
“…….”
“쳇. 헛소리를….”
샤티가 투덜거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일단 이쪽은 포로, 이쪽은 포로가 되는 대신 용병이 되기로 약속한 전향자.”
“엑? 왜 나랑 저 오크랑 대접이 달라?”
“너는 이번에도 도망쳤지?”
“내가 치료도 해줬잖아?”
“그러니까 살아 있는 거지. 아니면 진작에 죽였지.”
“말은 그렇게 해도 그 뜻을 자세히 들으면 어지간해서는 날 죽이고 싶지 않다는 소리군. 후. 뭐 내 미모에 인간들이 자주 홀리긴 하더군.”
“자 조용히. 지하도에서는 조용히 하지 않으면 우리의 접근을 상대에게 알리게 되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아자딘과 이스마일, 미디암이 소리를 죽여 걸으면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달그락.
-철컹.
금속 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아무리 발소리를 죽이려 해도 쉽게 줄여지지 않았다.
가관인 것은 브란드였다. 그의 경우 헌 가죽 갑옷 위에 철편을 끼워서 만든 어설픈 갑옷을 입고 있는지라 걸을 때마다 무슨 고물 소리가 났다.
“…은밀 활동은 포기해야겠군.”
아자딘은 빠르게 포기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괜찮소? 이렇게 어두운데?”
“아….”
아자딘의 시력은 어둠을 꿰뚫어 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같은 아라가사인 이스마일이나 미디암도 아자딘처럼 빛 한점 없는 곳을 볼 수는 없다.
“여기.”
스콧이 바닥에서 돌을 주운 후 주문을 외워 빛을 발하게 했다. 간단한 무색 마법이지만 스콧은 돌 여러 개에 발광 주문을 걸어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마력 소모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보아 이 정도 마법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천재를 운운하는 녀석이니 뭐 실력이 아예 없진 않겠지.’
아자딘은 그 발광석을 받아서 손에 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하도 안은 본래 위에서 스며드는 물 때문에 습하고 이끼와 곰팡이로 악취가 나야 할 텐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공기가 얼어붙으며 물도 얼고 벽의 이끼와 곰팡이도 죄다 얼어서 바삭바삭 부서지고 있었다.
“춥군.”
“냉기가 밑에 고여 있는 느낌이에요. 밑은 더 추워요.”
“바닥이 빙판인데.”
아자딘 일행은 조심스럽게 옷깃을 여미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지하도가 합류하는 합수부에 도착했다. 상층에서 사용하는 생활하수와 지하수들이 흘러들어 합쳐지는 커다란 합수부 안쪽에 오크 한 명이 도끼 창을 짚고 앉아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서 검은 머리, 검은 피부에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브투마인 여성이 대치하고 있었다.
“리즈!”
브록 경이 그녀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다.
“잘도 내 이름을 부를 수가 있군! 브록!”
“내,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어?!”
“그건….”
“자자. 그만. 지금 당신들 부부싸움 이상의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일단 진정들 하시고.”
아자딘이 이들 부부가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걸 막았다. 한편 오크 강령술사 스콧은 이곳 영주의 아내와 대치하고 있는 오크를 알아보았다.
“월터 아냐?”
“그러는 너는 스콧인가? 짜식, 근획득 피하겠다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더니만 그사이에 근육이 많이 붙은 것 같은데?”
“일이 많다 보니까. 어떻게 된 거지?”
“저 여자에게 물어 봐. 아, 지금 나와 저 여자 사이에 끼어들면 큰일 난다.”
“…실례.”
스콧이 바닥에서 돌을 집어 들어서 오크와 영주부인 사이에 던져보았다.
-빠직!
전기 불꽃이 튀며 돌이 폭발했다. 돌이 저렇게 박살 날 정도면 사람이 들어갈 경우 어떻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