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2
11. 이빨의 권속들 2
“이 개자식!”
“죽을 때까지 저주할 거다!”
눈알 두 개 중 하나를 잃은 이들은 방금까지 아부하던 게 거짓말처럼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었다. 개중엔 상당히 창의적인 욕설도 많아서 아자딘을 감탄케 했다.
“혈기가 넘치는 것도 좋지만 상처 덧나지 않게 잘 싸매라고. 깨끗하게 씻고. 독주로 시신경 절단한 부분을 씻어내는 게 중요하다. 나을 때까지는 술 마시지 말고.”
아자딘은 그들에게 앞으로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충고해주고 산양을 끌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도 그의 뒤를 따라 산양을 끈 채로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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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들은 물과 풀을 충분히 먹고 회복되었는지 잘 걷는다. 미디암은 뒤에 남겨진 불한당들을 보며 웃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벌도 없이 그냥 봐주는 줄 알고 놀랐어요. 하지만 하는 걸 보니 또 이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약자를 괴롭히고 약탈하는 이들은 자신들 또한 약자가 되어봐야 그 심정을 알겠지. 눈 하나 빼앗으면 원근감이 떨어져서 앞으로 싸움박질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많아질 거야. 그렇게 되면 약탈하는 강자의 입장에서 약탈당하는 약자의 입장이 될 거고, 참회와 회개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겠지. 사람은 입장이 바뀌어보지 않으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거든.”
“즉 당신이 하는 건 저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뿐 아니라 영혼까지 구하는 일이로군요. 저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다니 말이에요. 하긴 다른 일족들 같으면 그냥 죽여 버렸을 텐데 살려준 것만 해도 그게 어디에요? 아, 그런데 저러다 상처가 덧나서 죽으면 어떻게 하죠?”
“뭐 그건 내세를 기약하는 수밖에. 나도 무력한 인간인지라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지.”
아자딘은 분명 선인이지만 그렇다고 호구는 절대 아니었다. 처단할 놈들은 처단하고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것도 감수한다.
어떤 면에서는 깔끔하게 죽이는 놈들보다 더 잔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살려둬도 괜찮을까요? 저들은 이제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만.”
이스마일은 여전히 아자딘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는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고개를 휘휘 가로저을 뿐이었다.
“뭐 지금은 살아서 산을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들이 날 고발하더라도 이미 많이 늦은 뒤가 될 거란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데.”
“네?”
“카젤 변경백이 신왕진서 사본을 찾고 있다는 게 말이지. 신왕진서 사본을 갖고 싶어 하지 않을 이유가 없긴 하지만 그 정도 위치의 귀족쯤 되면 사리분별을 해야 할 텐데?”
“카젤 변경백이라면 오는 중에 들었습니다만, 코라사르 왕위계승권 서열이 제법 높은 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왕위계승 싸움에서 져서 대부분의 영지를 빼앗기고 변경백이 되었다고….”
이스마일이 오면서 들은 풍문을 전해주었다.
“정치적으로 왕위계승권 싸움에서 밀려났지만 신왕진서 사본을 얻어서 마법의 힘으로 어떻게든 다시 기어오르려 하는 게 아닐까요?”
“그 점이 이상하다는 거야. 코라사르 왕은 카젤 변경백보다 더 젊어. 건강에도 문제가 없지.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왕진서 사본을 입수하려 한다면 음… 위험한 인물이군. 카젤 변경백의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가면을 벗어야겠군.”
전령의 상징인 매의 가면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기 때문에 신분을 감추고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벗어야 했다.
“아, 드디어 당신 맨얼굴을 보는군요.”
“너무 좋아하지 마라. 흉측해서 볼 게 못 되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가면을 벗었다. 그 순간 미디암과 이스마일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면을 벗고 드러난 아자딘의 얼굴은 수려한 콧날과 선명한 눈썹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다만 그의 눈이 있어야 할 곳에 가로로 긴 흉터가 나 있는 걸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누, 눈이 없잖아?”
“그래서 아자딘….”
아자딘이란 이름은 전령일족의 옛 신화에서 나오는 눈 없는 악룡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신의 화신인 무안의 사룡 아자딘과 정의로운 천사 아라엘이 선과 악의 투쟁을 계속해나가다 마침내 세상의 마지막 날, 둘이 공멸함으로써 신화시대가 종말하리라는 것이 전령일족에게 전승되는 신화의 종말론이었다.
눈이 없는 그에게 무안의 사룡 아자딘의 이름은 썩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전혀 장님같은 기색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그게… 볼 수 있단다. 꼬마… 미디암.”
“눈이 없이도 볼 수 있다고요? 어째서요?”
“나도 모르지. 다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없는 채로 볼 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아자딘이라는 이름을 받은 거지.”
아자딘은 가면을 품에 넣고 케림 산양의 안장에 매단 지팡이를 꺼냈다.
“뭐 덕분에 어디든 쉽게 통과할 수 있지. 장님 흉내를 내면 병사들도 그냥 내버려 두거든. 그래서 혼자 다닐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이번엔 너희들이 붙어 있으니 말을 잘 맞춰주길 바란다.”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다 혀를 찼다.
“아니 그런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일단 안전한 곳까지 가서 거기서 갈라서자. 응?”
“아이 참. 그냥 종사로 받아주면 안 돼요? 벌써 정도 많이 들었는데.”
“싫어. 내가 귀찮아진다니까.”
아자딘은 애교를 부리는 미디암을 무시하고 활과 화살을 풀었다.
“장님이 활을 들고 다니면 이상할 테니까 화살은 넣어두고….”
아자딘은 자신의 화살을 넣어두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갔다.
훌륭한 장님 순례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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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가도.
그것은 황제 야에슬라트가 대륙을 통일한 이후 만든 길이었다.
대륙 전체의 주요 도시들을 관통하는 이 길은 놀라운 공학 기술과 마법 기술의 결정체로 건설된 지 삼백 년이 지났지만 별다른 유지 보수 없이 아직도 새것처럼 말짱했다.
왕의 교회에서는 이 길의 명칭을 대륙 가도로 바꾸어 부르게 하였지만 사람들은 이 길을 건설한 황제, 야에슬라트의 힘이 아직도 건재함을 두려워하며 교회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황제를 경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가도 위, 순례자들이 있었다.
구난기사단의 대천사 신앙, 야에가스 신족들을 섬기는 왕의 교회.
이들 교회의 교리와 상관없이 휘브리스의 백성들은 윤회전생을 믿었다. 살면서 공덕을 쌓아 윤회를 거듭해서 보다 높은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
그 공덕을 쌓기 위한 순례 여행은 왕의 교회나 구난기사단 모두 인정하는 행위였다. 아자딘 일행은 그 순례자인 양 행세하며 황제 가도를 걸었다.
“야, 그만 보라니까.”
“아니 그런데 눈을 다쳤다고 생각하니까 또 볼만하네요. 원래 굉장한 미남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다친 걸로 보여요. 당신 정말 하관이 잘생겼군요?”
“뭐?”
“어설픈 눈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처가 있다고 보니까 더 나은 것 같아요. 당신의 상처가 있는 곳을 제 상상력이 때우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인물이 괜찮아 보이네요.”
미디암은 아자딘의 얼굴을 보며 감탄했다.
“아라엘 같은 말을 하는군.”
“아라엘 같은 말이라니. 그녀도 그렇게 말하던가요?”
“아니.”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얼굴에 상처를 낸 장본인이거든.”
아자딘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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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내륙지에서 황제 가도로 이어지는 샛길들의 교차점, 황제 가도 입구가 되는 곳에는 약 300여 호가 넘는 마을이 하나 있었다.
인구 밀도가 낮은 북방에서는 상당히 큰 도시라 할 수 있는 규모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중부지방에서는 300여 호나 되는 이 마을에 변변찮은 이름조차 없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동방 관문’ 마을이라 부르고 있었다. 마을은 현재 카젤 변경백의 사생아 타르키가 끌고 온 용병단이 주둔하며 마을 사람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의 짐을 뒤지며 신왕진서 사본을 찾고 있었다.
물론 용병들이 짐을 뒤지다 신왕진서 사본이 없으면 곱게 다시 포장해주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짐 중에 귀중품이나 돈이 있으면 태연히 가져가 버린다.
즉, 이것은 공공연한 약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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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관문 마을은 이름대로 황제 가도로 이어지는 길목의 관문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 관문에서 검문과 수색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그 광경에 당황했다.
“어?”
“분명히 저번에는….”
그들이 저 관문을 넘어올 때는 이렇게까지 심한 행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간단히 통행료를 내고 지날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누가 봐도 불량해 보이는 용병들이 공공연하게 약탈하고 있었다.
“음.”
장님 행세를 하며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던 아자딘도 당혹스러워했다.
‘설마 내가 코젤 공자를 해쳐서 저러는 건가? 아니 코젤 공자를 해친 건 엊그제 일인데 벌써 알려졌을 리가 없는데?’
그때 마침 옆에서 상인들이 아자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보게. 자네 눈이 안 보이나?”
“아 예.”
“이 아이들은?”
“저와 같이 순례 중인 고아들입니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성호를 그어 보였다. 그것은 그가 천사 신앙, 구난기사단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신호였다.
“아, 그런가? 고아들을 거느리고 다닐 정도라면 자네도 귀족인가 보군.”
“귀족은 아니고… 그저 기적을 갈구하며 떠돌아다니는 순례자이지요.”
“원 세상에. 삼위의 대천사들의 가호가 있기를.”
상인은 아자딘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냐고? 최근 신왕진서 사본이 나돈다는 소문을 못 들어봤나?”
“신왕진서 말입니까?”
“그래. 소문에 의하면 전령일족이 그 신왕진서를 훔쳐 사본을 만들었다는데, 그 사본이 지금 세계 각지에 나타났다는구먼. 그걸 찾겠다고 지금 카젤 변경백의 사생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어. 뭐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오면 왕의 교회에 보내지 않고 기사 작위를 준다나 뭐라나.”
팔왕국의 상속법은 장자상속 원칙을 따른다. 작위와 왕국을 쪼개지 않고 장자가 모든 영지를 상속받으며 그 상속을 받지 못한 이들은 운이 좋으면 관료나 봉신이 되어 자신의 형제 밑에서 근무하게 되지만….
그렇게 나누어 줄 봉토도 없는 경우 모험가나 상인이 되거나 아니면 왕의 교회로 출가해 성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왕의 교회의 성직자라는 건 이름은 그럴싸해 보일지 몰라도 사명은 많고 이득은 적은 자리라서 다들 기피하는 일이었다.
귀족의 사생아도 그렇게 편한 자리는 아니지만 왕의 교회의 성기사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편안한 삶이다. 그러니 강제로 출가당하기 싫다면 눈에 불을 켜고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아니면 신왕진서 사본을 찾겠다는 핑계로 약탈에 열을 올리거나.
‘큰일이네?’
문제는 아자딘이 지금 신왕진서 사본을 한 장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품에 잘 감추어두긴 했지만 저들이 사람들의 짐을 뒤지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다. 지금도 아자딘의 눈앞에서 상인 한 명이 속옷 안에 숨겨둔 보석을 용병들에게 빼앗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