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22
121. 웬디고 7
아자딘이 축성을 시작하자 갑자기 시체로부터 무시무시한 한기가 쏟아져나왔다.
“윽!”
시체의 머리에서 순록과도 같은 뿔이 솟아났다. 순식간에 웬디고로 변모한 시체가 입을 벌리자 매서운 냉기가 아자딘에게 쏟아진다.
놀란 아자딘이 망토 자락으로 냉기를 막는 사이 웬디고로 변한 인신공양의 피해자는 뿔로 아자딘을 찌르려고 들이받았다.
하지만….
-퍼억!
아자딘이 가볍게 발로 올려 차자 웬디고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너무 만만하게 봤군.”
이미 웬디고에게 제물로 바쳐진 남자를 장례를 치러서 제물 상태에서 해지한다는 건 야수가 입안에 물고 있는 고기를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다.
기르고 있는 개래도 입안의 고기를 빼앗으려면 물리기를 각오해야 하는 법. 하물며 상대는 쿠르트 신족들도 파멸시키지 못하고 봉인해야 했던 존재다.
웬디고로 변한 제물은 아자딘의 발차기에 맞아 붕 떴다가 천장의 고드름들에 매달렸다.
그 틈에 다른 웬디고들이 아자딘에게 몰려든다. 메제리의 사도인 웨어 랫들, 아트라의 사도인 거미인간들 또한 웬디고로 변이해 아자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제물은 다른 웬디고들이 만든 틈을 이용해 도망친다.
“도망을 쳐?”
아자딘은 활을 꺼내 들고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바로 그의 코앞에서 거미 형상을 한 웬디고가 거미 다리를 이용해 그를 포획하려 했지만 아자딘은 활을 건 채로 공격을 피하고 틈 사이로 화살을 쏘았다.
바람을 가르는 예리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도망치는 제물에게 명중했다.
하지만 웬디고는 언데드. 칼로 베거나 망치로 때리는 것과 다르게 화살로 찔러봐야 큰 손상을 입을 리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자딘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콰앙!
갑자기 화살에서 눈부신 섬광이 일어나며 폭발했다. 아자딘이 화살에 신왕진서 사본을 감아서 발사한 것이었다.
“아니 무슨 그런 무지막지한….”
그걸 본 지벡이 신음을 흘렸다.
이전에도 아자딘은 화살에 신왕진서 사본을 감아서 심판자 젝트 경에게 쏜 적이 있었지만, 지벡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성기사인 그로서는 왕의 교회의 보물, 신성한 신왕들의 언약이라 할 수 있는 신왕진서를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것을 보며 까무러쳤다.
“끼에에엑!”
“끄아아아!”
신왕진서를 감아서 쏜 화살이 효과가 있었는지 웬디고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스콧! 길을 열어!”
“알겠어, 대장!”
오크 강령술사, 스콧이 수결을 맺고 다리를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뻗어 나가며 웬디고들에게 명중하자 도검에 의해 쓰러진 웬디고들이 일어나 그의 조종을 받아 다른 웬디고들을 덮쳤다.
“정말 엉망진창이로군!”
자신의 성기사로서의 길이 꼬여가고 있음을 느낀 지벡은 검을 휘둘러 스콧이 조종하지 않는 웬디고들을 베어 버리며 한탄했다.
“스스로의 양심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으면 설령 오욕에 물들어도 훌륭한 기사라네!”
놋쇠의 기사 브란드 경은 신이 나서 도끼 창으로 웬디고를 때려 부수며 지벡 경의 곁에서 함께 공세에 나섰다.
“한 점 부끄럼 없으면 좋겠는데 양심에 찔립니다.”
그렇게 한탄하는 지벡의 옆에서 이스마일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성기사와 강령술사, 노망난 노인네에 전령. 이런 해괴한 팀이 이다지도 잘 굴러간다니.’
이스마일이 웬디고들의 무릎에 화살을 박아넣어 그들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면 지벡과 브란드 경이 육탄전으로 쓸어버려 길을 연다.
아자딘은 그들이 만든 길로 슬라이딩을 해 빠져나가면서 다시금 제물을 붙잡았다. 신왕진서 사본 한 장이 감긴 화살에 박힌 웬디고가 그것을 뽑아내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때마다 화살로부터, 신왕진서로부터 순백색의 빛이 맥동해 웬디고를 정화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런 웬디고의 다리를 차서 무릎 꿇게 하고 품에서 또 다른 신왕진서 사본을 꺼내 웬디고의 이마에 얹었다.
신왕진서 사본의 페이지가 빛을 발하자 웬디고의 뿔이 잘려나갔다.
“좋아!”
“다시 축성을 해봐요!”
아자딘은 이스마일의 재촉에 다시금 축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오오오오!”
웬디고가, 여기에 있는 작은 웬디고들이 아니라 저 바깥에 안개와 비현실 사이를 배회하는 웬디고의 본체가 포효한 것이다.
그 순간 제물로부터 다시금 사슴의 뿔이 자라난다. 신왕진서 사본의 빛이 눈부시게 번뜩이며 웬디고의 사악한 힘을 떨치려 애쓰지만, 제물을 중심으로 끝없는 사악한 힘과 무지막지한 냉기가 쏟아져나왔다.
“아윽! 뭐 이런!”
방한장비를 단단히 챙겨왔지만 아자딘의 몸에 서리가 들러붙는다. 아자딘은 가지고 있는 신왕진서 사본들을 모두 꺼내 제물에 붙이고 축성했다. 그러나 그도 느끼고 있었다.
‘삼위의 대천사도, 구난기사단의 빛의 힘도 약해지고 있구나.’
왕의 교회와 야에가스 신족이 타락하고 힘을 잃어가듯…. 장사치로 변한 구난기사단 또한 신성한 힘을 잃어가고 있다.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모든 백색 마력의 근원이 약해져 가니 구난기사단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구난기사단의 서책을 읽고 천사 신앙을 가진 아자딘은 그들을 좋게 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눈뜬장님은 아니다.
‘애초에 뜰 눈이 없지.’
구난기사단 역시 타락하고 그들의 평판이 바닥을 기고 있으며 진실된 헌신이나 미덕, 열정이 웃음거리가 되고 있음을… 천사 신앙의 힘이 약해져 가고 있음을 아자딘은 몸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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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난기사단이 섬기는 천사 중 삼위의 대천사들은 본래 천상의 무한한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들이 네더의 사신들로부터 고통받고, 쿠르트 신족들의 추종자들에게 가축으로 취급받는 모습을 본 그들은 물질의 육체를 가지고 화신으로서 이 땅에 강림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쿠르트 신족들과 동맹을 맺고 네더의 사신들을 몰아내는 데 협력했다.
하지만 쿠르트 신족들은 힘을 아끼며 삼위의 대천사가 그 힘을 소진하기를 기다렸다.
삼위의 대천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힘이 다할 때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워 마침내 다하고 말았다. 그들은 휘브리스 반도의 한 요새에서 스스로를 다시 승화시키면서 선언했다.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자비의 미덕을 지키는 자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백색 마력의 힘이 주어질 것이다. 진실로 선을 갈구하는 자들에게 자신들은 언제나 보답할 것이라고.
삼위의 대천사들은 그 약속을 남기고 승화하고 그들의 육신은 돌이 되어 휘브리스 반도의 옛 도시 아래 가라앉았다.
그 옛 도시와 요새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고 삼위의 대천사의 가르침, 그들의 미덕을 수호하고자 모인 집단이 바로 구난기사단.
하지만 지금에 와서 구난기사단 중에 백색 마력을 사용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야에가스 신족과 연관된 이들뿐이고…. 미덕을 지켜 힘을 발휘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들, 왕과 귀족들이 왕화의 빛을 배신하고 타락하였듯 구난기사단들 또한 미덕을 배신하고 타락하였다.
그 결과 삼위의 대천사는 힘을 잃었고 그들에 대한 기도와 청원 또한 응답받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힘이 다해서 더 이상 보태주지 못하는 천사들을 어찌 비난할 수 있을까?
삼위의 대천사는 이미 끝까지 인류를 위해 싸워왔으니 그들에게 구원을 갈구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주지 않았다고 절망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천사 신앙의 자세는….
“삼위의 대천사여. 저의 결의를 들어주소서.”
아자딘은 다시 어둠의 힘으로 들끓어 오르는 제물의 시체를 붙잡고 천사들을 불렀다.
“저는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당신들의 이야기에 구원받았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믿음은 저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믿음을 배신할까 두려울 뿐!”
아자딘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결의하나니! 저는 반드시….”
그 순간 갑자기 신왕진서로부터 명멸하던 빛이 눈부시게 빛나며….
새하얀 빛의 날개가 아자딘을 감쌌다.
포효하던 웬디고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비명으로 바뀌고 주위의 웬디고들이 차례차례 쓰러져 일반적인 시신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자딘이 붙잡고 있던 제물의 몸에 자라났던 사슴의 뿔도, 그 피부를 찢고 돋아났던 철사 같은 굵은 털들도 사라지고 그저 불쌍한 희생자의 시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웨, 웬디고가 사라졌어?”
지벡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며 당황했다.
“기적이다!”
브란드가 지벡의 심경을 대신했다.
구난기사단의 그 누구도 최근에는 천사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는 전령일족의 아자딘이 놀랍게도 천사들의 호응을 얻어낸 것이다.
“기, 기적…?”
자벡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신왕진서가 뭔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게 아닐까? 이미 아자딘은 상당수의 신왕진서를 사용해서 백색 마법을 끌어냈으니까.
하지만….
‘아니 아니다. 내가 그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은연중에 멸시하였구나. 전령일족이라 해서 그의 신앙이나 믿음이 나의 것보다 못하다고 얕잡아보고 있었어. 하지만 설마 내가 영혼 없는 불경자가 기적의 성자가 되는 모습의 산증인이 되다니?!’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다.
“맙소사. 대장, 무슨 짓을 한 거야?”
천사의 날개가 아자딘의 앞에 현현하는 순간 자신의 강령술이 전부 풀려 버리자, 스콧은 당혹감을 느꼈다.
너무나 신성하고 강력한 고차원적인 힘. 그것은 분명 기적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리라.
아마도 사람들은 감격할 것이다. 그들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위대한 존재가 실존함을 직접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콧은 냉정했다.
“천사들에게 뭔가를 약속하는 것은 악마와 계약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해. 뭐, 멍청한 인간들은 그런 위험성을 모르고 그저 천사라면 선하니까 셈을 두루뭉술하게 할 거라 믿곤 하지만, 마법은 언제나 잔혹하지. 마법과 기적은 그 어떤 고리대금업자보다 더 잔혹한 징수자라고.”
그는 아자딘이 일으킨 기적이 엄청난 맹약을 대가로 일어난 것임을 눈치챘다.
“상관없다. 지금은 웬디고를 막은 게 더 기쁘니까.”
“대장. 대체 뭘 바쳤어? 무슨 약속을 한 거야?”
“말해도 넌 못 믿을 거야. 그보다…. 음.”
아자딘은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자신의 망토를 벗어 피해자인 시신의 몸을 감쌌다.
“지상으로 돌아가자.”
정작 기적의 당사자인 아자딘은 아무렇지도 않게 신왕진서 사본들을 회수하고 웬디고의 제물을 들쳐 업었다.
“기적이라. 놀랍군요. 천사 신앙이라는 게 실제로 실체가 있는 것이었다니. 게다가 그게….”
이스마일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그저 신왕진서 사본의 백색 마력이 가져온 환영일지 아니면 천사 신앙의 기적인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성자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는 전령일족이, 그것도 아라가사들 사이에서도 저주받았다 하는 무안의 아자딘이 기적의 산증인, 당사자가 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