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24
123. 란타릭 진입 2
아자딘 일행은 새높이 요새에서 기욤발트와 함께 행정작업에 들어갔다.
브록 경과 리즈 부인 사이에는 아직 어린 자식이 있었는데 브록 경이 봉토를 반납하고 성직자가 되는 바람에 그 아들의 신분이 뜨게 되었다.
이에 기욤발트가 브록 경의 아들의 후견인이 되기로 하고 그동안 새높이 요새와 그 휘하의 장원을 통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청지기와 서기들에게서 이곳의 재산이나 내정상황을 인수인계 받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기욤발트는 회계 등에 재주가 뛰어나서 일 자체는 금방 끝났다.
기욤발트가 영지 관련 업무를 하는 동안 아자딘은 쿠르트 신족 추종자들의 연합, 쿠르트 판테온 연합의 소굴을 뒤져보았다.
“나가 제국이야.”
샤티는 이곳 비밀기지의 주인이 나가 제국이라고 주장했다.
“음 그러시겠지.”
아자딘은 서류나 편지 등을 찾아보았지만 나가 언어와 이빨쐐기 문자로 이루어진 것들은 아자딘도 읽을 수가 없었다.
“샤티. 읽을 수 있나?”
“내가 그걸 해석해줄 것 같냐?! 비록 너희들의 포로지만 내 마음은 어디까지나 나가 제국에 일편단심이다!”
“응? 뭐라고? 다시 말해봐.”
미디암이 활에 화살을 걸자 샤티가 흠칫 놀랐다.
“한 번만이다!”
“말 잘 듣네.”
“아니 근데 믿기 힘들겠지만 대부분이 쓸데없는 잡동사니라니까. 보니까 이미 고위직은 다 여길 버리고 떠났어.”
샤티는 그리 말하고 서류들을 읽었는데 대부분은 대금이나 금액들을 적은 장부였다. 실제로 나가의 언어를 모르는 이들이 보아도 숫자들이 많이 적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신왕진서 사본을 네 장이나 여기서 얻었는데 고위직이 안 남았다고? 신왕진서를 남겨두고 떠났다면 그걸 관리할 고위직이 있었을 텐데?”
“웬디고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네더의 사신을 강림시키는 짓을 하는데 소중한 물건을 남겨둘 이유가 없지. 반면 그 위력은 확실하니까 신왕진서 네 장 정도는 투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즉 신왕진서 네 장을 소실하더라도 웬디고를 강림시켜서 인간들 세상을 박살 내는 게 더 이득이라고 여겼다는 뜻이리라.
“스콧은 어때? 뭐 알 만한 게 있나?”
“특별히 괜찮은 정보는 없군. 이미 명령권자는 다 탈출했어. 살라스마의 작전이 실패한 시점에서 여기 기지는 버리려고 했는데 웬디고의 제단을 쓸 수 있겠다는 그 리즈 부인인지 뭔지 하는 여자의 의견 때문에 강경파들이 남아서 웬디고를 해방한 거야.”
“고위 간부들은 떠나면서 정보를 죄다 파기했다?”
“그래.”
“흠. 서류 파기라는 게 그렇게 잘 되는 건가? 뭔가 찾아보면 남는 게 있을 텐데. 샤티나 스콧 너희는 원래 이쪽이었잖아? 뭐 아는 거 없어?”
“오크들은 보통 용병 계약직이지.”
“나는 나가들 중에선 직위가 그렇게 높지 않아. 아는 게 없다. 너무나 기쁘게도 아는 게 없어서 가르쳐 줄 수가 없네!”
샤티는 그렇게 말하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때 이스마일이 쿠르트 판테온 추종자들의 시체 사이에서 검은 비늘에 뒤덮인 책을 찾아냈다.
“아자딘. 이걸….”
“흠. 이건 뭔가 그럴싸해 보이네.”
“마도서일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그래. 아닌 게 아니라 딱 봐도 마도서구만.”
아자딘은 흑요석 면도날을 준비하고 서적을 펼쳤다.
“네더어의 해석서로군. 음. 그런데….”
아자딘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더어 해석서라고요? 그럼….”
“절대 한 번에 많이 보면 안 돼. 정신이 오염된다. 뭐 나야 많이 읽어봤으니까 괜찮지만. …근데 이건 좀 이상한데?”
아자딘은 책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페이지를 몇 차례나 넘기면서 마치 책 안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책을 읽는 데에 열중했다. 마치 부분부분, 자신이 원래 알고 있던 걸 확인하고자 보는 것 같다.
일행들도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펴보았는데, 아자딘의 태도가 점점 이상해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오래 보면 안 돼요!”
미디암이 말렸지만 아자딘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책을 펼쳐 안을 살펴보았다.
“아니 한 번에 많이 보면 안 된다면서요?”
“나는 항마력이 강해서 괜찮아. 그보다 이건….”
“야! 말려!”
휠체어에 탄 스콧이 이스마일에게 아자딘을 어떻게 해보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이스마일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 네더어 서적을 보던 아자딘의 가면 틈으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자딘!”
“이런, 너무 오래 봤다.”
아자딘은 얼른 가면을 벗고 본래 눈이 있던 위치, 그러나 지금은 아라엘에 의해 남겨진 상처를 흑요석 면도날로 베었다. 아자딘이 잘라낸 피부가 꿈틀거리며 검붉은 벌레로 변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히엑. 그게 뭐야?!”
샤티가 기겁한다.
“쳇!”
아자딘은 그 벌레를 발로 짓밟았다.
“…현세의 존재가 네더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면 오염된다. 피부나 표면을 갉아내서 몸에서 절제하는 게 좋지.”
스콧은 그리 말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대장은 도저히 마법을 쓸 수 있는 몸이 아닌데 어째서 네더어를 다루는 데 이렇게 익숙하지? 그리고 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본 거야?”
“…….”
흑요석 면도날을 가죽 벨트에 닦으며 책을 덮으면서도 아자딘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왜 그래요?”
“아니. 이거 이스마일이 가져왔지? 대체 어디서 났지?”
“저기….”
이스마일은 나가의 시체를 가리켰다. 다른 나가들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장신구와 커다란 곡검을 차고 있는 것만 딱 봐도 귀한 신분의 나가였다.
“뭔가 이상한 게 있었습니까?”
“그래. 이 책, 카자스가 연구한 문장이 들어 있어.”
“네?”
“나가가 왜 우리 아라가사 원로원에서 연구한 것과 같은 성과를 가지고 있지?”
“그야 마법 좀 한다고 하는 이들은 네더의 언어를 연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너희 전령일족들이 연구한 걸 우리 나가들이 못 알아채라는 법이 없잖아? 아마 우리들의 연구 결과가 더 많이 나와 있을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자딘은 나가들이 연구하던 네더어 서적을 집어 들었다.
“설마 아라가사 중에서 쿠르트 판테온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마일이 물어보았다.
“가능성이… 아니. 아니야.”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더 언어를 연구하던 연구자는 카자스 장로. 그런데 이게 유출되었다면 그 유출의 원인은 카자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카자스는 원래 아라가사가 아니다. 아라가사들에게 도전했다가 붙잡히고 속죄를 이유로 지식을 제공하게 된 엘프이자 감금된 원로다.
즉 과거 아라가사의 적이었던 인물이며… 엘프들은 본래 나가 제국의 봉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아자딘의 스승 카자스가 아라가사의 배신자라는 소리가 된다.
‘아니, 아직 근거는 미흡해. 이것만으로는 무리지.’
아자딘은 그리 생각하면서 네더어 서적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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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타릭 백작의 성은 이미 애들러 공자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신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대로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가 실종된다면 애들러는 가신들을 이용해 장자인 기욤발트를 암살하던가, 그게 아니면 기욤발트에게 출가를 종용하여 애들러가 란타릭 백작위를 계승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욤발트가 왕의 교회로의 출가를 거부하고 란타릭 백작이 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기욤발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애들러와 기욤발트의 나이는 10살 차이. 하지만 애들러가 10살 때 이미 기욤발트는 검술이나 마법, 그 모든 면에서 애들러에게 뒤떨어졌다. 20세의 장성한 기사가 10세 소년과의 대련에서 패할 정도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얼간이 같은 게 기욤발트였다.
그런데 그 기욤발트가 지지하는 가신들도 없이 란타릭 백작이 되겠다고 도전한단 말인가?
“어떻게 된 거야? 셀 소드 조합 놈들은? 기욤발트를 따라다니면서 적당히 구슬리고 감시하는 게 그놈들 임무 아냐?”
애들러 공자는 앞 머리칼의 일부가 은발인 미청년으로 여성과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섬세하고 우미한 외모를 가진 인물이었다.
야에가스 신족의 핏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습만으로도 사족을 못 쓸 순수 혈통의 모습. 그것은 그가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의 오랜 혈통 관리에 의해 태어난 명품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가르나헤어의 불필요할 정도의 총애(?)를 받긴 했지만 애들러는 그러한 것에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란타릭 영지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확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기욤발트가 도전해오다니?
“그게….”
“셀 소드 조합원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가신들은 자신들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망설이면서 말했다.
“뭐? 그놈들이? 왜? 단체로 식중독이라도 걸렸대?”
“기욤발트 경을 암살하려다 역공을 당해 죽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농담이지?”
애들러는 눈을 크게 떴다.
“저 그게. 기욤발트 경이 그동안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 얼간이가 발톱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데 그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최근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기욤발트 경이 새높이 요새의 영웅이라고 합니다.”
“영웅이라는 단어만큼 그 얼간이랑 안 어울리는 것도 없을 텐데 무슨 소리야?”
“새높이 요새에 마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다 도망쳤는데 그걸 기욤발트 경과 그의 동료들이 해결했다고 합니다.”
“아니, 백성 놈들 멍청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딴 소리를 믿어?”
“그런데 실제로 안개가 깔리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그걸 믿냐고! 기욤발트 따위는 내가 한 손으로 상대해도 이길 거다.”
가신들은 짜증을 내는 애들러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본래 애들러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아들답게 겸손하고 침착하여 백작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그런데 백작이 실종되자마자 가신들에게 쉽게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동안 그가 보인 모습은 아버지와 가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식이었던 모양이다.
뭐 가식이라 하더라도 좋다. 군주 될 자가 가신들의 눈치라도 살피는 것만 해도 어딘가. 그러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지금, 이렇게 신경질을 내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다.
“기욤발트 경은 실제로 새높이 요새를 장악하고 마물을 불러온 브록 경을 출가시키고 브록 경의 아들인 세드릭의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뭐? 봉신에게 주었던 봉토를 빼앗았어?”
“예. 그런데 브록 경이 납득했다고 합니다.”
“이상하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애들러는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인물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인물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가능성은… 저희 동료인 것 같군요.”
“너희 동료라면….”
애들러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령일족 말이야?”
“예.”
애들러의 옆에 서 있던 전령일족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아버님이 실종된 것도 그래. 너희 중에 실력 있다고 자부하던 녀석들이 붙어 있었는데도 그런 불상사가 난 거 아냐? 그런데 이젠 또 뭐? 기욤발트에게 네놈들이 붙었다고? 지금 너희들, 우리 란타릭 영지에 수작 부리고 있는 거냐?”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아라엘 지파는 전령일족의 일부일 뿐입니다.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매한 옛 동료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지요. 저희가 그를 잘 설득해보겠습니다.”
“그래. 설득하는 게 좋을 거다. 황제의 보물고를 찾고 싶다면 말이지.”
애들러는 코웃음 치며 손가락에 황금으로 장식된 열쇠를 끼고 빙글빙글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