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25
124. 란타릭 진입 3
기욤발트는 단 일주일 만에 새높이 요새와 인근 장원을 완전히 접수했다.
그동안 아자딘은 나가 제국의 비밀기지를 탐사했다. 네더어 해석서를 제외하면 특별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지만 돈과 무기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강행군을 해왔기에 일주일 동안 비밀기지를 탐사하고 휴식과 정비에 충분히 시간을 기울였다. 늑골이 부러졌던 부상도 완전히 치료하고 여행을 다니며 쌓인 피로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이곳을 떠나야 할 일이 생겼다.
*********
“아자딘! 심판자 젝트 경이 인근 마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벡 경이 아자딘에게 그 사실을 알리러 왔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데리고 훈련을 하고 있던 아자딘이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
“젝트가? 어느 정도의 거리지?”
“하루 거리입니다.”
“아 젠장. 별로 시간을 못 벌었군.”
아자딘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을 벌다니요?”
미디암이 물어보았다.
“네프티에게 신왕진서를 줄 때 그녀에게 내 자취를 남겨놨거든. 젝트의 추적을 따돌리려고.”
아자딘은 전령일족 75령 네프티에게 신왕진서 한 장을 건네주면서 자신의 피로 만든 액막이를 넣어두었다. 젝트가 마법적인 힘으로 아자딘을 추적하려 하면 네프티 일행에게 가도록 만들어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걸 했었군요. 어쩐지 곱게 신왕진서를 한 장 내줬다 싶었어요.”
미디암이 감탄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신왕진서를 줄 이유가 없지.”
“저는 당신이 아라엘 지파와도 사이좋게 지내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요.”
“뭐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그것도 아예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아라엘과 나는 본질적으로 서로 맞지 않아.”
“아직 저 멀리 장원 쪽에 있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벡 경이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맞서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맞서 싸운다면 쫓아가서 길가에서 매복했다 암살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싸워서 젝트가 흑마법을 쓰는 장면을 본 증인들을 양산할 것인가?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인적 드문 길가에서 암습해도 이득보단 실이 많을 것 같고 사람들 많은 데서 싸우게 되면 녀석이 네더 마법을 안 쓰고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쓸까? 아니면 목격자를 다 죽여 버리는 쪽을 택할까?”
아자딘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찌 되었건 싸우면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피할 수 없어. 도망치자. 젝트가 사용하는 네더 마법은 본인에게도 부담이 상당히 갈 거다.”
“웬디고를 물리친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 성기사가 무서워서 도망치나요? 네더의 사신을 물리쳤는데도요?”
“우선 첫째로 내가 기적을 일으킨 게 아니다. 기적이 나를 일으킨 거지. 그리고 둘째로….”
이스마일의 질문에 아자딘은 피식 웃었다.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는 녀석은 바보일 뿐이지. 그래. 젝트 그놈은 무섭다.”
“기적을 일으켰는데도 굉장히 수수한 방식을 택하는군요.”
“사람은 한 치 정도만 칼에 찔려도 잘못하면 죽어. 용을 죽이는 용사래도 어린애 돌팔매에 죽을 수 있지. 방심은 금물이다. 그래서 도망칠 준비는 다 해뒀지?”
아자딘 일행은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도록 짐을 싸두고 산양과 말의 편자도 싹 갈았다.
*********
기욤발트는 기꺼이 아자딘의 뜻에 따라 젝트를 피해 도망치는 데 합류했다.
“그런데 병사들을 데려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브란드가 물어보았다. 새높이 요새에는 브록 경의 부하였던 병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데려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싸운다면 애들러와 그 최측근만 상대해야지 괜히 싸움을 크게 벌릴 필요 없어요. 병력을 많이 데려가면 그만큼 일이 커집니다.”
기욤발트는 그렇게 브란드에게 대답하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버님이 전령일족들을 부하라기보다는 객장(客將)에 가까운 느낌으로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게 혹시 황제의 보물고를 미끼로 거래한 것이라면 애들러도 황제의 보물고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미 보물고를 열어 버렸을지도.”
“그럴 리는 없습니다.”
아자딘은 단언했다.
황제의 보물고가 열리고 그 안의 내용물이 아라엘에게 들어갔다면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아무런 소리가 안 나올 리 없다.
아라엘 지파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황제의 보물고를 얻었음을 알려 아직 중립적인 다른 전령들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젝트 경을 잘 따돌렸는지 아자딘 일행은 별 일 없이 하루 정도 란타릭을 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간만에 보는 비로군.”
건조한 지역, 특히 가뭄과 기근이 닥친 살라스마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아자딘은 오랜만에 보는 비에 기뻐했다.
하지만 잠시 후….
바람은 광풍이 되고 비는 폭우가 되어 한 치 앞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길에 빗물이 워낙 불어나서 황제 가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죄다 진흙탕이 되어 넘쳐흘렀다.
“뭐 날씨가 이리 제멋대로람?”
“워워! 미끄러진다!”
황제 가도나 제국 가도, 혹은 왕국 가도라 불리는 가도는 포석이 깔려 있어서 비가 와도 진창으로 변하지 않았는데 대신 포석들 위로 빗물이 흐르면서 산양들 발굽이 미끄러진다.
아자딘 일행은 급한 대로 말과 산양을 길가로 걷게 했다. 그러자 진흙에 발이 빠지고 산양에 연결해서 휠체어를 끌게 하는 스콧이 비명을 질렀다.
“우엑! 가, 가마 가져올걸.”
“당신이 가마를 가져와도 우리가 들어주는 일은 없을 거야.”
미디암이 가마를 언급하는 스콧에게 짜증을 냈다.
“역시 지성이 낮아서 육체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군. 언드데를 쓰면 되지 않겠나?”
“대로 한복판에서 언데드로 가마를 짊어지게 하면 성기사가 아니더라도 가만두지 않을걸.”
“그것도 환술로 속일 수 있다.”
“아니 됐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가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휠체어는 여차하면 부품으로 쓸 수 있잖아?”
실제로 아자딘은 휠체어의 바퀴를 이용해서 무거운 물건, 목창을 이동시키는 데 사용했었다.
그렇게 미디암과 스콧이 입씨름을 벌일 때 저 멀리, 삼거리에 커다란 등불을 내건 여인숙이 하나 보였다.
“일단 저기에 가봅시다!”
“그래. 배가 고파!”
스콧이 동의했다.
*********
갑작스럽게 내리는 폭우와 일진광풍으로 길이 험해졌다.
주위에 있던 이들이 전부 이 여인숙으로 몰렸는지 상당히 많은 사람이 여인숙에 모여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굉장히 넓게 만들어진 여인숙 안에는 살벌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날카로운 병장기들이 사람의 손에 들린 채 무딘 빛을 반사한다. 벽난로와 횃불의 빛을 반사하는 무기들, 그걸 들고 있는 이들은 두 그룹의 사람들이었다.
“이 자식들! 어딜 감히!”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 우습게 보이냐?!”
“그럼 텔바린 길드는 우습게 보이냐?!”
“아니 무섭지. 마약조직에 노예상인 아니냐? 아이고 무섭네.”
“어딜 떠돌이 새끼들이!”
무장상인들이 서로서로 곤봉과 칼을 빼 들고 지금이라도 치고받을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보부상 조합과 텔바린 길드?”
아자딘은 이들 중 일부가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임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텔바린 길드라니.
‘노예상 놈들이잖아?’
늪의 마녀의 아이들을 팔아치운 놈들이 바로 텔바린 길드다. 이들 무장상인은 상인과 악당을 겸직하고 있는 놈들로 그 핵심은 엘프 가문이 있는 조직이었다.
세 명의 보부상이 테이블을 엎어놔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고, 나머지 무장상인들 다수가 보부상 조합을 위협하고 있었다.
딱 봐도 숫자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위협하는 무장상인 측은 10여명, 반면 보부상 조합은 고작 세 명에 불과했다. 싸움이 바로 벌어지지 않은 것은 이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워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자딘이 손짓하자 브란드가 나섰다.
“에헴. 여러분. 여기 란타릭 백작이자 남작령의 수호자, 가르나헤어 경의 정당한 상속자, 란타릭 백작 대행 기욤발트 경이 납시오.”
“엇?”
“어….”
“이분은 얼마 전 새높이 요새를 장악하던 안개의 괴물 웬디고를 몰아내고 이제 막 란타릭으로 향하던 길이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고 있소? 어렵고 곤궁한 일이 있거나 송사가 있거든 청원하시오. 란타릭 백작의 이름으로 공정한 판결을 약속하리다.”
“란타릭 백작의 이름으로….”
텔바린 길드의 무장상인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에 대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듯했다. 아니면 저들 나름대로 마음에 짚이는 뭔가가 있던가.
“그래서 무슨 일이지?”
기욤발트가 위엄을 부리며 나서서 물어보았다. 인간 같지 않은 길쭉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못생긴 얼굴이지만 지금은 그 기괴한 모습에 위엄이 서려 오히려 범상치 않은 위엄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인간 아닌 다른 위대한 존재가 인간으로 화해 그 화신이 되어 위엄을 발하는 것 같아서 다들 벌벌 떨었다.
‘그냥 권위에 약한 거지 뭐.’
아자딘은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저기 이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 놈이 이상한 술수를 써서 우리들의 편지를 훔쳐냈습니다.”
“무슨 소리! 우리의 물건 거래 대장과 매입가 등등 업무 비밀들을 훔쳐내는 스파이 짓을 해서 이들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순간 아자딘과 미디암, 이스마일은 아차했다.
‘걸렸냐?’
‘바보들.’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은 전령일족의 코라사르 왕국 지역의 비밀조직. 대외적으로는 상인이지만 그들의 본질은 스파이다. 그런데 스파이 짓을 하다 걸린 것이다.
“아니 저희는 우연히 도적 떼에 당한 사람을 구해주다 그 편지를 발견했을 뿐이오.”
“그런데 왜 편지의 봉인이 뜯어져 있었지?”
“도적들이 읽었나 보오.”
“편지를 들고 가던 파발이 갈고리 같은 것에 찔려 죽었어. 근데 그쪽이 들고 있는 무기랑 상처 흔적이 일치하는데?”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직원이 들고 있는 무기는 블랙잭이었다. 곤봉에 가죽끈이 달려 있고 그 안에 묵직한 돌 같은 게 들어 있는데, 그 돌로 때리기도 하고 약간 변형하면 투척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가죽끈을 끼운 쇠테에 뾰족한 이빨이 나 있는데, 그 이빨에 피가 묻어 있었다. 무장상인들은 그 피가 자신들 동료의 피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거짓부렁이오. 이런 무기 쓰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오?”
“아니. 그것만이 아니지.”
상인 중 한 명이 후드를 벗자 아주 살짝 녹색 기운이 감도는 금발이 드러났다.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머리카락 색, 그가 엘프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뾰족한 귀와 백색 안료로 눈 밑에 선을 그은 워 페인트가 보였다. 아마 텔바린 길드의 고위층일 것이다.
“엘프의 코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 저 무기에 묻은 피가 우리 파발의 피임에 내 조상신들을 걸지.”
“윽.”
“엘프….”
산전수전 다 겪은 코라사르 보부상의 조합원들도 상대 무장상인 중에 엘프가 있자 당황했다.
텔바린 길드가 노예상, 악당, 그런 취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대접받는 것은 엘프란 놈들이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