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26
125. 란타릭 진입 4
“그, 실은 이 무기는 그 살해현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좋아 보여서 집어 들었는데….”
“아주 웃기는 변명이군. 도적들이 흉기를 남기고 갔는데 그걸 들고 왔다고? 아까는 그 무기가 시체와 상관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그, 길가에 무기를 버리는 건 너무 아깝지 않소? 그래서 그냥 들고 왔는데 이런 오해가 있을까 봐 그만… 변명을 하고 말았소.”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아자딘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다.
“기욤발트 경?”
결국 이 자리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기욤발트가 약식으로나마 재판을 진행해줘야 피를 안 보고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
“음. 일단 편지를 봅시다. 건네주시오.”
기욤발트가 편지를 요구했다.
“앗!”
그러자 무장상인들이 흠칫 놀랐다.
“저기 그 편지는 저희 비밀이 담겨 있어서….”
기욤발트가 슬쩍 브란드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브란드가 신이 나서 외쳤다.
“무엄하구나. 란타릭 백작 대행이 그대들의 편지를 조사하려는 것은 사건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자 하는바. 그런데 그대들 장사치들은 지금 란타릭 백작 대행의 명예를 의심하는가?”
“…….”
평소에 연습하고 다녔는지 아주 그냥 고풍스러운 호통이 좔좔 쏟아져 나온다.
상인들로서는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펴보는데….
‘어쭈?’
아자딘은 그들의 눈에 살기가 감도는 걸 눈치챘다.
편지 내용이 뭔지 몰라도 본 사람들을 죽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내용인 것 같았다. 심지어 그게 기사인 기욤발트라 해도.
문제는… 아자딘 일행이 인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텔바린 무장상인들이 숫자가 좀 많다고 해도 기사와 성기사에게 덤벼들 만큼 싸움에 자신이 있진 않겠지.
하지만 그들은 살기를 여전히 띄고 있었다.
‘이 자식들 뭐지?’
아자딘은 이들이 예사롭지 않은 상인들이라고 느꼈다.
‘일단 엘프가 리더인 것 같으니 이야기를 해볼까?’
아자딘은 일단 엘프에게 어설프게 배운 엘프어로 말을 걸어보았다. 카자스에게 배운 엘프어를 써보자 엘프가 놀라워한다.
“설마 여기서 엘프어를 말하는 이가 있다니….”
그는 아자딘에게 엘프어로 답했다.
주위 사람들은 엘프와 아자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해했지만 아자딘은 일부러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계속 엘프와 대화를 나누었다.
“음. 좋다. 편지를 보여드리도록 해라.”
아자딘에게 설득된 엘프가 부하들에게 편지를 보여줄 것을 명했다.
“네? 하지만 두목….”
“상관없어. 보여드려.”
상인들은 마지못해서 자신들의 편지를 기욤발트에게 건네주었다. 기욤발트가 보니 과연 밀납으로 된 봉인은 뜯어져 있고 피가 묻어 있었다. 편지의 수취인은 애들러 공자였다.
“아.”
왜 이 상인들이 기사가 달라는데도 편지를 주지 않고 뻗대고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편지는 애들러 공자가 주문한 물자들, 뼈톱, 갈고리 수술칼, 방부제, 순도 높은 화주, 아편과 각종 마법과 연금술 재료들에 대한 목록과 납품 예상 일자와 단가가 적혀 있는 일종의 청구서였다.
아편을 포함해 몇몇 금지 물품들이 들어가니 도시로 들어갈 때 협력 부탁드린다는 당부도 빠지지 않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애들러와 거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당신들 애들러와 거래하고 있었군. 게다가 이 품목은….”
기욤발트는 아자딘에게 편지를 내주었다. 아자딘이 그 편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언데드를 만드는 재료들이군.’
애들러 공자는 강령술사가 쓸 법한 재료들을 사 모으고 있었다. 역시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처럼 애들러 공자도 사악한 흑마법들에 손을 대고 있는 타락 귀족임이 분명했다.
기욤발트는 연금술 재료나 마법 재료 등은 무시하고 마약들을 문제시했다.
“마약들을 당당히 란타릭 영내에 들이다니. 아무리 애들러가 요청한 거라지만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오.”
“그래서 말인데….”
무장상인의 리더인 엘프가 말을 걸었다.
“애들러 공자를 당신에게 판다면 얼마나 주겠나?”
“무슨?”
“지금 당신들은 란타릭에 들어가는 순간 살해당할 거요. 내가 장담하건대 그렇게 될 거요.”
엘프는 그리 말하고 아자딘과 지벡을 가리켰다.
“당신들 둘은 아마도 지금까지 어떤 도적이나 불한당도 가볍게 처리할 실력자겠지. 호흡과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소. 그러나 애들러 공자 밑에는 당신들 이상의 괴물들이 드글드글하오.”
“…….”
“나라면 당신들이 무사히 애들러 공자를 잡을 수 있게 해주지.”
기욤발트는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아자딘을 보았다.
“대체 저 엘프와 아까 엘프어로 뭐라고 말한 겁니까?”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죄를 묻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러나 저 엘프는 아자딘이 엘프어를 하자마자 그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자신들이 애들러와 거래한다는 증거를, 심지어 마약 거래 증거까지 거리낌없이 보여주었다.
“우선 왜 애들러를 배신하려고 하지? 정말 보수 때문에?”
아자딘이 그 점을 물어보았다.
“왜냐면 그가 사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지. 몇몇 귀족이 마법 연구를 위해 사거나 귀족 부인이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을 사거나 아트라 제단 같은 걸 구해 달라는 경우는 봤지만 이건 그 정도를 넘어섰다.”
“우리가 란타릭에 들어가면 죽을 거라는 이유는 왜?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지?”
“애들러 공자에겐 전령일족이 붙어 있다.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자더군.”
“아….”
“쩝.”
텔바린의 엘프가 전령일족을 칭찬하자 아자딘도,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원들도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전령일족 놈들은 불경하게도… 새로운 여신이 태어났다고 선언하고 있지.”
“여신?”
“여신의 이름은 아라엘.”
“하하. 아라엘이라고?”
아자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혈육이 전령일족의 반역자들 우두머리가 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신을 참칭한단 말인가?
물론 그녀는 황제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사방에 뿌리며 힘을 투사하고 있었다. 왕화의 빛조차 약해지고 천사들조차 힘을 잃어가는 시대. 그녀만이 선열하게 새로운 힘으로 떠오르고 있다.
만약 목성의 시대를 알고 두려워하는 이들이라면. 새롭게 떠오르는 존재, 아라엘을 기꺼이 여신으로 섬길지도 모르겠다.
‘상처가… 쓰라리군.’
아자딘은 아라엘에게 입은 옛 상처가 아파오는 걸 느끼며 분노했다.
그가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소중히 여기던 마음을 짓밟은 아라엘이 여신이 된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흠. 사정이 있나 보군.”
엘프는 아자딘에게서 분노가 느껴지자 한 발짝 물러났다.
“뭐 진짜 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놈들이 정말 강력하다는 건 사실이지. 나는 그놈들을 상대하면서 너희가 섬기는 여신인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할 만큼 간이 붓지는 않았거든.”
“그렇게 두려운데 애들러 공자를 배신하겠단 말인가?”
“전령일족들은 애들러 공자가 가진 어떤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애들러 공자가 죽으면 나에게 보복하려고 하기보다는 공자가 가지고 있던 것을 노리겠지.”
“좋아. 알겠어. 그럼 우리를 그 전령일족들에게 들키지 않게 란타릭 성으로 들여보내 줄 수 있다 이건가?”
“그래. 우리가 당신들 변장을 시켜주고, 우리 짐꾼들 사이로 숨어들어 간다면 란타릭 안까지는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겠지. 다만 그다음은 보장할 수 없다.”
기욤발트는 아자딘의 의향을 살펴보았다.
“어찌 생각하시오?”
“아마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자딘은 이 엘프가 하는 말을 듣고 애들러가 황제의 보물고를 빌미로 아라엘 지파를 포섭했음을 알아챘다.
“그럼….”
“그 전에 잠시….”
아자딘은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원들을 손짓으로 따로 불러내 대놓고 물어보았다.
“너희가 죽인 거 맞지?”
“어허. 말을 똑바로 하시오. 아무리 전령이래도 너무하는 거 아니오?”
보부상 조합원은 아자딘의 말에 반발했다.
“그럼 말을 똑바로 하면 어떻게 되는데? 엘프가 말하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저 엘프가 말한 대로 이 블랙잭의 자루가 저쪽 파발의 머리에 살짝 꽂혔던 건 사실이오.”
“…….”
“블랙잭의 끝부분이 아니라 손잡이 자루 부분이 맞은 것에서 우리의 살의가 없음을 알아주시오.”
“그러니까 자루로 쳐서 기절시키려고 했는데 자루에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그게 그만 실수로 파발의 머리에 들어가 버린 거구만? 두개골을 깨고.”
“바로 그거요.”
“하아. 뭐 돈이랑 물자 주는 거로 퉁쳤으니까 그건 됐고….”
저 엘프 상인과 그 부하들, 무장상인들도 보통 놈들이 아니다.
텔바린 길드는 원래부터 노예상으로 유명한 놈들인 데다가 마약을 거래하고 각종 밀수를 일삼으며 다른 경쟁자들을 무력을 써서 압도하는 놈들이니 그렇다 치자.
“아라엘이 여신이 된다는 건 뭐야?”
“말 그대로요.”
“그대로라니.”
“추종하는 존재들에게 힘을 주고 보호를 준다. 그것으로 그분은 살아 있는 현인신이 될 생각이오.”
“그분…?”
상인들이 아라엘을 어려워하는 게 느껴진다. 아직 전령일족들의 권력의 행방이 갈리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정말 아라엘의 권위와 명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현인신 전략이라. 가능해….’
아자딘은 아라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황제의 목소리와 흡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정령, 다만 황제의 목소리와 달리 네더 마법의 냄새가 강하게 묻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신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백성들을 굽어살피고 마물과 야수가 나타나면 퇴치해 안전을 주고 각지의 물자를 잘 배분해 굶어 죽는 이가 없게 보살피면… 그것이 현세의 사람들이 바라는 신이 아니겠는가?
“아라엘이 애들러와는 왜 손을 잡았지?”
“…….”
상인들은 그런 아자딘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전령일족들은 아라엘 지파와 원로원, 양쪽을 저울질하다 이길 곳에 가담하려고 한다. 양쪽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중에 그런 정보를 공짜로 알려주기는 싫다는 걸까?
“말해줘. 내가 당신들 손해배상금도 대주잖아?”
아자딘이 금화를 건네주자 그제서야 그들이 말을 꺼냈다.
“애들러 공자가 황제의 보물고로 이어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강력한 네더 마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지요.”
“그와 거래하는 저놈들. 돈만 되면 무슨 짓이든 다하는 밀수꾼이자 암살자, 노예상으로 유명한 텔바린 길드 놈들이 아닙니까.”
“…….”
아자딘은 그 말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전령일족의 상인집단,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도 암살과 밀수까지는 다 하고 있잖은가? 노예상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 하나 차이로 상대를 이렇게까지 굽어볼 수 있구나. 놀랍다.
‘역시 사람들은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봐도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본다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황제의 보물고 이야기가 이제 이들에게도 나돈다는 게 놀랍다.
“황제의 보물고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돌고 있었군. 알겠어.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저 엘프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그건 잘….”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조합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라엘 지파와 원로원 양쪽 모두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데 어느 한쪽을 크게 편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태도만으로도 아자딘은 저 엘프가 적어도 믿을 만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예 사기꾼이었으면 이들이 내게 조언하는 데 거리낌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아라엘 지파에 실제로 손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 말을 삼가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