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3
12. 이빨의 권속들 3
“그, 그건 저희 비상금입니다. 돌려주십시오! 이런 폭거가 어디 있습니까? 신왕진서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마도서는 어떤 형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이것도 혹시 알아? 보석 형상의 마도서일지?”
“우리가 가져가서 정밀히 조사한 후에 신왕진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돌려주겠다니까 그러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용병들이 저렇게 가져간 물건을 돌려줄 리가 없다.
‘속옷까지 탈탈 털어가는군. 이거 걸리겠는걸?’
아자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왕진서 사본이 저들에게 걸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혀를 찼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여기서 정체를 드러내고 저들을 처단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코젤 공자를 해쳤는데 이번에 저들을 해치게 되면 동선이 너무 뻔해진다.
아자딘이 망설이고 있을 때 곁으로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다가왔다.
“어떻게 할까요?”
“싸울까요?”
“잠깐만. 기다려 봐.”
아자딘은 두 소년 소녀를 말렸다. 용병들 사이에 전령이 찾아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용병들이 크게 당황하더니 무기와 약탈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 오늘은 여기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소지품을 뒤진 사람들만 통과를 허락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관문 밖 숙소에 머물도록 하고 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일이지?”
상인들은 당황해 미간이 일그러졌다.
“근처에서 오우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자딘이 상인들에게 말해주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요?”
“제가 귀가 좋아서 저들이 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뭐?”
관문 밖에 머물러야 하는 상인과 여행객들은 그 말에 기겁했다.
“아니 그게 무슨….”
“어?”
아자딘이 오우거를 언급하자 용병들이 혀를 차고 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인과 여행자들은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상인들이 관문의 작은 문, 들창을 들고 안을 두들겼지만 병사들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뭐 이런….”
“지, 진짠가 봐!”
용병들의 반응을 보니 정말 오우거가 이 근처에 나타난 것임에 틀림없었다. 상인과 여행자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
동부 내륙지에는 아누키아 사막에 인접한 고원분지 지대가 있었는데 이곳은 사막에서 날아오는 모래바람 덕분에 비교적 비옥하고 우기에는 비도 잘 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검은 이빨 산맥에서 내려온 오우거들이 고원분지 지대를 장악하고 그곳에서 거주하면서 사람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오우거들은 장정의 두 배에 달하는 신장에 체중은 그 열 배가 넘는 근육질 거인들이다.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머리는 나쁘지만 흉포하고 식인을 즐기는 종족이었다.
살라스마 변경백, 카젤 백작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저 오우거들이 인간들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물들은 장거리 행군을 할 만큼 통일된 조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고원분지 지대의 오우거들은 인간들을 침공하기보다 서로서로를 공격하고 잡아먹으며 끝없는 내분으로 자신들끼리 싸운다.
그래서 그 틈을 타 역대 살라스마 변경백들은 차츰차츰 동쪽으로, 관문 너머로 개척 마을을 일구어왔다. 그런데 최근 가뭄이 계속되면서 오우거들 또한 고통받기 시작했다.
장거리 원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이 낮은 오우거들이지만 물 부족은 내분에서 밀려난 부족들에게 동부 내륙지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할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
“오우거라고? 몇 놈이나 되지?”
살라스마 변경백, 카젤 백작의 사생아인 타르키는 자신을 찾아온 척후에게 물어보았다.
“일단 한 놈만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휘하에 홉고블린과 고블린 병대가 있습니다. 숫자는 미상입니다만 척후가 발견한 바로는 못해도 고블린이 열 놈이 넘는다고….”
“큰일이군. 열 놈이 넘는다면 일개 분대란 소리 아냐?”
제대로 된 오우거들은 고블린과 홉고블린을 부하로 거느리고 다닌다. 즉, 이번에 발견된 놈은 클랜에서의 동족포식에서 도망친 도망자가 아니라 제대로 병대를 이끌고 찾아온 척후, 혹은 약탈병이라는 소리가 된다.
오우거만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인데 거기에 고블린 병대까지 이끌고 있다니, 이미 인간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숫자다.
물론 여기는 관문 요새라서 요새의 장벽과 지형을 활용하면 못 막을 것도 없다.
하지만 타르키가 굳이 자신의 사병을 소모해가며 이곳에서 그것들과 맞서 싸울 이유는 없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전투 때문에 용병들에게 지불해야 할 사례금만 늘어나게 되니까. 실전을 벌이면 통상 급료의 두 배를 지불하는 게 원칙이었다.
“어쩔 수 없군. 약탈품을 가지고 철수하자.”
타르키는 약탈한 물건들을 들고 빠르게 이곳을 비우기로 결심했다.
그때 마을회관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마을 이장 대행인 사냥꾼 남자였다.
“타르키 경, 큰일입니다.”
“큰일? 무슨 큰일? 오우거가 벌써 당도했나?”
“아니, 관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우거가 접근하는 걸 눈치챈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떤 멍청이가 알려줬어?”
타르키는 당황했다. 오우거는 북에서 남하하고 있고 관문 너머 개척지는 동남쪽에 펼쳐져 있다. 즉, 관문 밖에 있는 피난민들과 상인들은 동남쪽에서 올라온 이들이라 오우거의 접근을 알 방법이 없을 텐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누가 전령의 말을 엿들은 모양입니다.”
“으음, 이 멍청한 놈들이….”
“어쩔까요?”
“어쩌긴. 지들이 어쩔거야? 관문은 걸어 잠가! 건방진 놈들이로군.”
“네?”
관문을 걸어 잠그라는 말에 사냥꾼은 멍하니 반문했다. 오우거들이 접근해오면 관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놈들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실상 저들을 소모시키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 마을에 신왕진서 사본이 없는 걸 확인했으니 우린 물러가겠다. 자경단원들은 다가오는 오우거와 마물들을 막도록 해라.”
“그게 무슨….”
사냥꾼 남자는 당황스러워했다. 약탈을 할 때부터 눈앞의 애송이가 옛날 이야기 속 기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영민들을 내다 버릴 줄은 몰랐다.
“쓸 만한 젊은이들은 당신들이 징집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들을 남겨두고 갈 것이다. 음, 그들을 병사로서 훈련시켜 주었으니 충분히 쓸 만하겠지.”
“…….”
고작 하루 병사로 징집해놓고선 훈련을 시켜주었다고 생색을 내다니. 뻔뻔한 말투지만 사냥꾼으로서는 감히 이 녀석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럼 하다못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놔 주십시오. 여기의 방어 지휘는 제가 하겠습니다.”
사냥꾼이 그리 말하자 타르키는 코웃음쳤다.
“기사도 아닌 당신이 뭘 하겠다고?”
기사인 네놈이 도망치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사냥꾼은 그리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좋아. 네게 여기 방어를 맡기도록 하지!”
타르키는 그리 말하고 용병들을 불렀다. 그들은 마을의 말과 소, 수레를 징발해 거기에 자신들의 약탈품을 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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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 밖에 있는 여행자와 상인들은 오우거가 온다는 소문에 경악했다.
“아이고 우린 다 죽었어.”
“어쩌지? 지금이라도 길을 벗어나서 도망칠까?”
“하지만 이제 곧 해가 지는데….”
해가 질 때 산길을 지나다니는 건 목숨을 내놓은 짓이나 다름없다. 길가의 야수들, 마물들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며 하다못해 돌부리에 발을 채여도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밤에 길을 가는 건 잘 닦인 제국 가도가 있는 곳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아니면 드워프나 엘프들처럼 밤눈이 기막히게 좋던가.
그런데 그렇게 난처해하고 있는 이들 앞에서 갑자기 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관문을 연 것은 마을의 자경단원들, 그것도 나이든 장년 남자들이 대부분이고 젊은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 어찌된 거요?”
“기사들은?”
“기사와 용병들은 떠났습니다.”
“뭐?”
“그러니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사냥꾼으로 보이는 이가 마을 밖 사람들에게 출입을 허가했다.
아자딘은 여전히 장님 행세를 하며 지팡이를 짚고 산양을 끌며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 안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보아하니 젊은 청년들은 징집해 버렸고 마을의 재물들은 전부 약탈당한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은 재산을 약탈당하고 구성원도 빼앗긴 채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서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들도 마을 방어에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사냥꾼이 정중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 주위에는 창을 든 위압적인 표정의 자경단원들이 있었다.
“도움이라면 어떤 도움을?”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싸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원을 해주십시오.”
“에엑?!”
상인들은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
“아니 그게….”
“보통 돕는다고 하면 전장상인이지 그런….”
상인이 전쟁에 징발될 경우 보통 전장상인이 된다. 전쟁터를 따라다니며 필요한 물자를 사고파는 상인역할을 수행하지 자신들이 직접 나가서 싸우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다.
전투를 벌이는 이들로서도 그렇게 하는 쪽이 더 이득이다. 말하자면 상인들이 보급병이 되어 스스로 운송을 담당해 주는 것이다.
다만 그건 장기적인 전쟁의 경우고, 지금처럼 위험한 적에게서 관문을 지켜내야 하는 단판승부라면 전장상인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그때 한 맹인이 물어보았다. 얼굴에 가로로 긴 칼자국이 나있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의 뒤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망토 차림의 소년 소녀가 있었다. 둘 다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년 소녀들로 조혼 풍습이 있는 남방에서는 성인 취급받을 나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장님과 아이들인가…. 노약자들과 함께 피신하시오.”
사냥꾼은 그리 말하고 방어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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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이빨 클랜의 문장을 새긴 깃발을 등에 짊어진 오우거가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동부 내륙지와 코라사르 왕국의 경계선이 되는 ‘사막의 등뼈’ 산맥의 길은 굉장히 험준해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봉우리를 피해 우회하다 보면 결국 관문 마을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그 여러 갈래의 길을 내려오던 오우거들은 우연치 않게 눈알이 터지고 발이 부러진 인간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너희들, 휴대용 식량. 나 골두의 것이다.”
그들은 도망치는 인간들을 붙잡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커다란 고기 상자에 집어넣었다. 인간과 고블린, 각종 들짐승들의 시체 조각이 가득한 거대한 상자에 떨어진 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사, 살려줘!”
“젠장! 그 망할 전령일족 놈!”
“으아아… 신왕들이시여! 제발 구해주세요!”
시체 더미들 사이로 빨려들어간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구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