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33
132. 침몰선 2
“지벡 경?”
“젝트 경이 쫓아올 것 같은데 어쩌실 겁니까?”
“일단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을 들러서 정보를 얻고 고위직들에게 보고하려고 접촉할 거야. 당신 입장에선 번거롭겠지? 여기서 헤어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시지요. 아자딘. 솔직히 말해서 젝트 경이 멀쩡한 이상 저는 어딜 가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한동안 계속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당신을 따르더라도 왕의 교회의 성기사로서 파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왜?”
“당신의 누이가 황제의 혈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애들러 공자가 자기 혈통 가지고 시건방을 떨자 고깝게 여긴 아라엘이 자신은 황제의 혈통이라고 말한 걸 아자딘 일행은 방 밖에서 듣고 있었다.
“쌍둥이 누이가 그렇다면 당신도 그렇겠지요.”
“왕의 교회는 황제라면 치를 떨지 않았어?”
“그렇다고 해도 고결한 혈통인 건 틀림없습니다.”
“고결한 혈통은 무슨…. 당신 평소엔 괜찮은데 가끔은 좀 머저리 같아. 왕의 교회 출신이라 그건 어쩔 수 없나?”
아자딘은 지벡이 어떻게든 성기사로서 자신의 자아, 그동안 성기사로 살아오면서 쌓아온 가치관을 아자딘과 양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본인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가치관 붕괴와 재정립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이런다는 걸 알고 참아주기로 했다.
‘성기사는 정말 중증이로군. 뭐 어쩔 수 없나? 그러니까 성기사인 거지. 오히려 기존 교리를 너무 쉽게 버리고 갈아타면 그건 그것대로 신앙이 돈독지 않은 거니까.’
한편 스콧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취해서 휘청거리는 남자와 또 충돌했다.
“힉, 딸꾹. 뭐야? 이건. 왜 다리 병신 새끼가 이런 걸 타고 다녀서 사람을 쳐? 아이고 나 다쳤다. 치료비 배상해라, 이것아.”
취객은 그렇게 드러누웠다가 지벡이 노려보자 벌떡 일어났다.
“아이쿠. 성기사님 일행이면 말씀하시지.”
“아니 젠장. 여기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군! 이 저능한 놈들! 몸이 불편한 사람도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그의 유전자를 후대로 물려받아 자신들의 종족이 내포한 모든 가능성을 다 끌어내야 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스콧이 불쾌함을 표하자, 아자딘이 대꾸했다.
“우선 너는 우리 동족이 아니고, 둘째로 몸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는 게 아니라 그냥 근육을 안 쓰려고 타는 거잖아?”
“나처럼 여건 좋은 이도 휠체어로 돌아다니지 못할 판인데 실제로 부상이 있거나 해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더 힘들겠지. 흥.”
스콧이 그렇게 말할 때 아자딘이 멈춰 섰다.
상회의 출장소들이 모여 있는 상업 구역이었다. 부두 노동자들을 위한 싸구려 선술집이 끊어지고, 야간 순찰을 하는 경비대가 있어서 거리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지벡 경은 일단 이 근처에서 대기해 주시죠.”
뜻이 높으면 동지가 생기는 법. 그렇게 말하며 성기사가 붙은 이유를 얼버무리던 아자딘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지부에 도착할 때는 아무래도 성기사를 데리고 다니는 건 좀 번거롭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스콧하고 샤티도 부탁합니다.”
아자딘은 지벡에게 스콧과 샤티를 맡기고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 사무실로 향했다.
*********
“그런데….”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원로원은 내 저주를 풀어줄 거라고 기욤발트 경에게 큰소리 뻥뻥 쳤는데 말야.”
아자딘은 란타릭의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 사무실을 보며 툴툴거렸다.
살라스마에서 보았던 보부상 조합의 전직 전령, 데릭과 아자딘에게 패했던 전령 위계 106령, 칼립소가 란타릭 조합본부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자딘이로군. 음. 네가 요구한 고아들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미 네가 거둬갔더군.”
아자딘은 칼립소에게 전령일족으로 오해받아 박해당한 여인이 낳은 아이들, 그리고 노예로 거래된 다른 아이들을 찾아서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아자딘이 먼저 찾아버려서 그 아이들을 보부상 조합에게 맡겼었다.
“그래. 가는 길이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은근히 말 놓네?”
아자딘이 칼립소를 패퇴시켰을 때 칼립소는 아자딘에게 선배님, 하며 존대하고 눈치를 살폈었다. 그런데 잠깐 떨어졌다 다시 만나니 은근슬쩍 반말을 한다.
“뭐? 무슨 소리야?”
“아니 됐다.”
칼립소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고 뭐 없던 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별 상관없는 일에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어쨌든 그렇게 먼저 일을 처리했으면 연락이라도 좀 해주던가. 이쪽이 시간을 허비하잖아?”
“보부상 조합을 통해서 알려주라고 했었는데 연락이 안 되었나 보군.”
“아 하긴. 요새 우리 일족 내의 분위기가 좀 그렇긴 하지.”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지?”
“아라엘 님이 알디스 제다하에게 현상금을 거셨어. 그뿐 아니라 원로원 측의 전령이나 가문들을 보는 족족 잡아들여서 설득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처치, 혹은 추적하라고 하셨지. 덕분에 열심히 알디스 제다하를 추격하는 이들도 생겼는데 나는 적당히 태업이나 하려고.”
“아라엘 님인가….”
아자딘은 태연히 아라엘을 추종하는 칼립소의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아라엘에게 저항했다는 건 알고 있나?”
칼립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지, 아자딘. 어린 시절에 괴롭힘 당한 원한 때문에 아라엘 님의 대의를 거부했다면서? 쪼잔하기는.”
“쪼잔?”
아자딘은 자신을 쪼잔하다 말하는 칼립소의 말에 분노했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단순히 말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용서나 화해를 종용하는 쪽이 거부하는 쪽에게 쪼잔하다고 하다니.
‘더더욱 용서가 안 되는군.’
아자딘은 기가 막혀서 칼립소를 노려보았다.
“이미 원로원과 오대 혈족은 가라앉는 배야. 그동안 아라가사를 통치했지만 성과를 낸 것은 없고, 아라엘 님처럼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지. 일족의 미래는 아라엘 님에게 있다. 뭐 상인들은 입지가 있으니까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만 나는 아라엘 님을 마음 깊이, 충의로서 섬기기로 마음먹었다.”
“…….”
“그래서 말인데. 아라엘 님이 뭘 좋아하시지? 혹시 좋아하시는 걸 알고 있나?”
“적어도 싫어하는 건 알고 있지.”
“오 뭔데?”
“너.”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무실 안쪽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자딘을 알아보았다.
제일 커다란 책상에는 외알안경을 쓴 란타릭 지부장이 있었다. 단정한 복장의 중년 여성으로 냉정한 용모가 돋보이는 미녀였다.
그녀는 헛기침을 했다.
“함부로 들어오다니. 본래라면 나는 일반적인 하위 전령을 직접 만나지 않지만 아라엘 님의 동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녀는 우선 그 점을 앞세웠다.
아라가사 일족에게 황제의 전령은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는 지위다. 일족의 모두가 전령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고 도전한다.
하지만 모두가 전령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은 하인이나 상인이 되어 전령일족의 외부조직으로서 활동하게 되고 전령이다가 나이가 들거나 부상을 입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된 자들도 그렇게 외부조직에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이란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존재여서, 그렇게나 전령이 되고 싶어 했으면서도 더 이상 전령이 아니게 되면 자신들의 위치를 전령과 대등하다던가, 전령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특히 상인들은 돈과 물자, 조직력을 갖추고 있어서 현역 전령들도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위세가 등등하다.
‘그러니까 내가 아라엘의 형제라서 만나준다 이거 아냐?’
과연 지부장은 목소리를 낮추고 아자딘에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진 않았네만 아라엘 님의 동생인 그대에게 나쁘게 대하고 싶지 않네. 요구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게.”
“우선, 원로원에 직접 보고하고 싶은데 내가 황제의 목소리를 잃어서… 뜬금없이 파직부터 당했거든?”
처음에는 갑자기 자신을 파직한 원로원의 폭거에 분개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되었다.
아라엘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화조풍월의 4인, 조장으로 키워진 이들마저 배신했다.
아마 지금 시점에서 원로원과 아라엘 지파가 총력전을 벌인다면 아자딘도 아라엘 쪽이 이긴다는 쪽에 돈을 걸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아라엘의 동생인 아자딘에게 어떻게든 족쇄를 채워놓고 싶었던 것이겠지.
‘게다가 아라엘은 나를 아낀다고 공언한 모양인데.’
주위의 모든 녀석이 아자딘을 보는 눈빛이 다르다.
아라엘의 사랑하는 동생.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덕분에 편하긴 하지만 기분이 비참하군.’
“그래서, 무슨 용무지? 아라엘의 동생?”
란타릭 지부장이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가까운 원로와 만나고 싶은데.”
“우리도 만나고 싶군.”
“뭐? 그게 무슨 뜻이지?”
“우린 현재로서는 중립상태다. 하지만 원로원에서는 아라엘 지파가 기승을 부리고 자신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숨었어. 현재로서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니 잠깐. 그렇다는 건 원로원이 아라엘 지파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리잖아?”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현기증을 느꼈다.
아라가사가 전령일족이 된 지 수백 년이 지났는데, 그 수백 년의 전통이 고작 아라엘 한 명에 의해서 무너지고 있단 말인가?
“그럼 당신들이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해도 당신들에게도 원로들이 연락을 안 하겠군. 나는 어떻게 해야 원로를, 두령을 만날 수 있지?”
“그건 내가 도와줄 수는 없고. 에타르를 만나는 건 어떤가.”
“에타르 혈족?”
“그래. 코라사르 왕국 수도인 코랄 사하르에 가면 그쪽 지부장은 에타르 혈족 사람들이 하고 있지.”
코랄 사하르는 코라사르 왕국의 본래 이름이다.
일반 사람들은 그냥 ‘코라사르’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부장은 굳이 ‘코랄 사하르’라는 옛날 방식으로 불러서 자신의 교양을 뽐내고 있었다.
‘그럴 거면 나도 아사흐딘이라고 부르지?’
아자딘은 쓸데없는 데서 허례허식을 드러내는 지부장의 태도가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미인이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그다지 밉지는 않았다.
미디암은 에타르 혈족 이야기를 하자 마음에 짚이는 게 있는지 손뼉을 쳤다.
“아. 시온 오라버니 말이군요.”
“그래. 에타르 혈족들은 원로들과도 연락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현재 원로원은 아라엘 지파에 밀려 숨어지내고 있다.
아자딘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그들을 만나 복부의 저주를 풀고 싶어도 저들이 만나주지 않는다. 자신들의 위치가 들통나서 아라엘 지파에게 축출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왜 이렇게 된 거야?’
“음….”
미디암이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저기 이 상황에서는 그냥 아라엘에게 투항하는 게 현명하겠는데요.”
아라엘에게 투항해서 일단 복무의 저주를 어떻게 하는 게 낫지 않나. 미디암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건 죽어도 싫은데.”
“그 정도로요?”
“미디암. 너는 에타르이면서 내게 아라엘 지파로 가라고 설득하는 거냐?”
“그렇다기보다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말이죠.”
확실히….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일단 복무의 저주를 풀어줄 아라엘을 택하는 게 낫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사과를 받아들여주는 게 낫지. 돈도 주고 권력도 주고, 심지어 미녀도 준다지 않는가.
아라엘과의 화해를 가로막는 것은 그저 아자딘의 감정뿐인가?
아니 그것은 아니다.
아자딘은 아라엘을 상대할 때 그녀가 네더의 힘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 마법도 아닌데 그렇게 빠르게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네더의 힘을 쓴다고 주장했다가 우스꽝스러운 꼴이 될 수는 없지.’
우선 명백한 증거가 없다. 그리고 지금 분위기를 보면 설령 네더의 힘을 쓰건 말건 계속 그녀를 지지할 인물들이 많아 보인다.
결국 아자딘은 코라사르 왕국의 수도, 코랄 사하르로 향하기로 마음먹고 지부장과의 회담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