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34
133. 코랄 사하르의 폭풍 1
란타릭에서 코랄 사하르, 코라사르 왕국의 수도로 가는 길은 보통 배를 이용하고는 했었다.
코라 강이 바다와 접하는 삼각주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 해상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도시가 바로 코랄 사하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계속되는 가뭄으로 코라 강의 수위가 낮아져서 배들은 강의 정중앙, 그나마 수심이 좀 유지되는 곳으로 느리게 운항하고 있어 승객을 태워줄 만한 여유가 있는 곳이 없었다.
“육로로 가야겠군. 뭔가 도움은?”
아자딘은 란타릭 지부의 보부상 조합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아자딘을 돕는 것을 거절했다.
“글쎄. 우리가 대놓고 도우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나?”
“알아서 가란 말이군. 큰일인데. 우리 쪽에 많이 처먹는 놈이 있어서.”
스콧을 동료로 받아들인 지금 아자딘 일행은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과거라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살라스마의 가뭄, 란타릭의 전쟁 등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여기저기 정세가 불안정해졌다.
왕화의 빛이 그 힘을 잃고 각지에 마물들이 들끓으며 네더의 존재가 현세를 배회하고 있는 지금, 안정적인 식량과 물자공급을 해줄 보부상 조합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래도 도울 수 없다. 아라엘의 동생. 적어도 코랄 사하르로 가는 길에는 말이지.”
“왜지?”
“원로원의 세력들이 코랄 사하르에 남아 있고 보부상 조합의 상층부인 다섯 가문, 특히 에타르 혈족인 고위층들이 코랄 사하르 지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지.”
이들의 태도가 어찌나 완강한지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가 없다.
‘예전엔 잘 굴러가던 조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약점이 있었군.’
전령일족이 하나가 되었을 때는 상인 조직, 전령 조직이 서로서로 견제하긴 하되 도우며 잘 굴러갔었는데, 전령일족 내부에서 파벌이 갈라져 분쟁을 벌이자 일족의 기능 대다수가 마비되어 버렸다.
‘칼립소가 현명하긴 하군. 이럴 때는 한 발짝 물러서서 관망하는 게 낫지. 다만 나는 아라엘과 혈연관계라 관망하고 있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황제의 전령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칼립소처럼 이 상황이 정리되길 기다리던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아라엘 지파나 원로원에 참여해 정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다만 아자딘은 아라엘의 동생이기 때문에 칼립소처럼 태업하면서 시간을 끌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걸 부탁하기로 했다.
“그럼 심판자 젝트의 행보나 알려주고 조심하도록 해. 그 성기사는 어딘가 이상하다. 네더의 힘을 쓰고 있어.”
“알겠다. 성기사야 항상 경계 대상이지.”
“그럼.”
아자딘은 보부상 조합을 빠져나와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이스마일이 한마디 했다.
“누나가 대성해서 기쁘시겠군요.”
“무슨 뜻이지?”
“당신을 중히 쓰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녀에게 저항해도 그녀는 당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더군요. 왜 그녀에게 투항하지 않습니까?”
“너는 정말 나를 싫어하는구나.”
“제가 당신을 좋아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상식적인 종사라면 자신의 상사인 전령에게 최소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을 거다. 처세술이란 점에서는 좀 많이 모자라구나. 물론 딱히 나에게만 그러는 것 같지는 않더만.”
아자딘은 아라엘이나 화조풍월의 4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덤벼들던 이스마일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녀석은… 그거겠군. 불쌍한 녀석.’
아자딘은 이스마일의 정체를 대충 눈치챘다. 그의 정체를 감안하면 이스마일이 이렇게 날 선 채로 누구에게나 틱틱거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겨졌다.
“뭡니까, 그 시선은?”
“아, 아니. 그냥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하고.”
“네?”
이스마일은 자신이 틱틱거려놓고 아자딘이 진지하게 듣지 않자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돌아가서 란타릭을 떠날 준비를 하자.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겠지.”
아라엘이 란타릭 성에 출몰했었으니 이곳에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 생각한 아자딘은 돌아가자마자 란타릭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아자딘 일행이 막 떠나려 할 때 누군가가 아자딘 일행을 뒤에서 불렀다.
“어이. 아자딘!”
“칼립소?”
“잠깐 멈춰봐. 코랄 사하르로 가지 마! 큰일이야!”
“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방금 소식이 들어왔는데 코랄 사하르가 공격받고 있다!”
“뭐에게?”
“그것이….”
*********
코라사르의 국왕은 안세투스 4세로 젊은 시절에는 똑똑하고 뛰어난 인간으로 경쟁자들을 죄다 꺾고 왕위를 차지한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그에 의해서 왕위를 얻지 못하고 물러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살라스마 백작인 카젤이었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 그는 향락에 빠져 국경을 도외시하고 별궁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왕권을 확실히 다진 후에는 거짓말처럼 총기를 놓아 버리고 사치 향락에 사로잡혀 쾌락주의자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안세투스 4세는 지금 정무 회의를 열고 오래간만에 정력적인 태도로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창밖에서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라사르의 여름에 태풍이 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태풍이 움직이지 않고 1주일 내내 계속 비바람을 뿌려대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며 심각한 피해를 낳고 있었다.
“부둣가는 불어난 바닷물로 파괴되었고 저지대와 강가는 역류로 침수되었습니다.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고 현재 구조작업을 벌이는 이들은 3교대로 일주일 째 쉴 틈 없이 작업해서 버틸 수 있는 이들이 없습니다.”
코랄 사하르에 태풍이 몰아쳐 인근 저지대가 침수되기 시작하자 태업을 벌이던 국왕 안세투스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정무를 봐야 했다.
그가 제일 우선 움직인 것은 해군들이었다. 해군들은 폭풍우로 정박된 선박 대신 쪽배를 이용해서 침수된 저지대의 사람들을 구조하고 고지대로 피난시켰다.
여기까지는 일이 잘 굴러갔는데 문제는 비가 그들의 예상 이상으로 계속 내린다는 것이다.
“고지대 쪽에 산사태가 일어나서 피난민들을 위한 캠프가 산사태에 휩쓸렸습니다.”
“난민들을 구하도록….”
“그게 이미 다들 완전히 탈진한 상태입니다.”
“3교대로 1주일 내내 쉴 새 없이 사람들을 굴렸더니 그만… 과로로 죽거나 기절해서 강물에 떨어져 죽는 이들이 빈번합니다.”
사람들을 구조하고 피난시키는 과정에서 이미 병사들은 잔뜩 지쳐 있었다.
게다가 비가 곧 그칠 거라고 믿고 고지대로 피신시킨 게 문제였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지면서 고지대는 산사태에 휩쓸리게 되었고 산사태에 쓸려나간 피난민들을 구조하려면 인력을 2중으로 투입해야 했다.
“다른 난민들을 이동시켜야겠군. 사람이 부족하면 다른 지역에서 사람을 불러오도록.”
“그게… 국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고에는 돈이 얼마나 남아 있지?”
“은이 약 2000량입니다.”
량은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무게 단위로 2000량의 은이면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거금이다.
하지만 코라사르의 전성기 세입은 약 120000량.
지금도 60000량의 연 세입을 거두고 있었다.
평화시에 자금을 적립해 두었다가 전쟁이나 기근에 대비하는 게 원칙이니 금고에는 이보다 많은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별다른 일도 없었는데 금고가 바닥나다니.
“내가 왕이 되었다고 너무 놀았군. 대체 얼마나 많은 도둑놈들이 국고에 손을 댄 거지?”
“…….”
“백성들이 나에게 화내고 있겠군. 그렇지?”
국왕 안세투스는 가신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가신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당한 왕이 아닌데 왕좌에 앉아 있으니까 왕화의 빛이 비실비실해서 살라스마에 가뭄이 찾아오고 코랄 사하르엔 태풍이 오지!’
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태업한 이라고 해도 왕은 왕이고 가신은 가신, 왕의 감시가 느슨할 때 국고를 털어먹은 것이 바로 지금의 가신들 아닌가.
“그, 그게….”
“귀공들을 추궁하지 않을 테니 적당히 갖고 있는 걸 내놓으시오.”
“…….”
“그래서 자금과 인력이 충원된다 치면, 피난민들을 멀리 피난시켜서 해결 볼 수 있겠나?”
“그게 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어떤 소문?”
“사람들이 말하길 밤이면 기괴한 어인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해친다고 합니다.”
“에이! 그건 뜬소문이 분명합니다. 저희 왕립 해군이 조사하였는데 아직 어인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사고사나 과로사지요.”
코라사르의 해군대장 딕시온 공작이 치를 떨며 말했다.
“해군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탈출시키고 상인들에게 식량을 매입하도록. 산사태가 나는 곳을 철저히 피하고 안전을 확보한 곳에만 피난 캠프를 만들도록.”
결국 국왕은 원론적인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칼립소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코랄 사하르가 지금 완전히 거덜 났다는 거야. 그 소식이 최근에 들어왔다.”
“…이해가 안 되는군.”
아자딘은 칼립소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전령일족들은 단지 걸어 다니며 말로 전하는 게 아니라 황제의 목소리라는 인공정령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양한 마법을 써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2주나 태풍이 계속되어 코랄 사하르가 침수되었다면 그 사실이 진작에 알려졌어야 한다.
아무리 전령일족이 아라엘 지파와 원로원 파벌,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고 해도 이런 중요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는다는 건….
“그 태풍이 마법적이라고 하더군.”
“마법적인 태풍? 코랄 사하르 담당 전령이 누구였지?”
“전령 위계 24령 제니스. 꽃의 디미아 님의 동생이지.”
“…….”
“그래서 말인데 갈 건가, 아자딘? 그냥 여기서 쉬면서 아라엘 님과 화해하지? 화해하는 김에 나도 좀, 좋은 자리를…. 사실 오래전부터 아라엘 님을 흠모하고 있었거든. 아라엘 님은 아직 독신이지? 약혼자도 없지?”
“아 진짜. 됐어. 간다!”
아자딘은 칼립소를 파리 내쫓듯 손을 휘저어 내쫓으며 란타릭의 성문 밖으로 나갔다.
아자딘 일행이 코랄 사하르로 길을 떠나다 보니 과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친 눈으로 서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코랄 사하르로 향했다가 허탕을 친 상인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코랄 사하르로 가지 마시오!”
“국왕이 징발령을 내렸소!”
“모든 식량과 화물을 빼앗고 전표로 주고 있소이다!”
“비 맞으면 지워지는 전표요! 종이도 어디서 이런 얇은 걸 구했는지! 재주도 용하지!”
보통 전쟁이 나서 물자를 징발하고 전표를 작성해서 줄 때는 천이나 양피지처럼 비교적 튼튼한 것에 글을 써서 주기 마련이다.
종이, 그것도 얇은 것에 적어서 내어준다는 것은 전표를 써준 이들이 돈을 갚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뜻이었다.
왕의 교회의 신앙은 국왕이나 귀족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강요하지만 그 기반은 바로 재앙이나 마물로부터 세상을 수호한다는 왕화의 빛이다.
바꿔 말하면 재앙이 들끓고 마물들이 출몰하면 지금의 왕이 정당하지 않은 왕이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