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39
138. 코랄 사하르의 폭풍 6
남들은 얻고 싶어 안달인 근육을 꺼려 하는 오크들의 작태는 다른 종족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아자딘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가 지휘관을 심문해보았다.
“여튼 그럼 코랄 사하르의 왕은? 현재 인간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그들은 왕성을 요새화하고 농성 중이다. 하지만 물이 들이쳐서 그들의 세력을 갈라놓았고 보급선이 죄다 끊어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아직 들어가진 못하고 있다.”
“그래? 어떻게 그런…. 정말 그 제니스라는 여자가 잠시 왕화의 빛을 꺼트렸나?”
“그렇다.”
“그게 가능해?”
“실제로 가능했으니까 우리가 이 도시에 침입할 수 있었겠지?”
“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코랄 사하르의 상태는 심각했다.
코라사르 국왕이 가신들과 함께 왕성에서 농성하고 있고 그 주변을 나가들이 에워싸고 공격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비바람과 폭풍 때문에 구조의 손길은커녕 지금 코라사르에 있는 병력들끼리의 연대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사실이 아직 외부, 왕의 교회나 인근 영지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절체절명이군.”
“내가 아는 건 다 말했다. 풀어다오. 약속대로.”
“…….”
아자딘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그 나가를 돛대에서 풀어주었다.
나가 대장이 풀려나자 아자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명예를 아는 온혈동물이로군. 고맙다. 그리고 저 일족의 배신자는….”
“아니야. 나는….”
“총배설강에 알이나 껴라. 세 개 껴라.”
나가 지휘관은 그 말을 남기고 물로 뛰어들어 유유히 사라졌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그렇지만 당신 미쳤어? 왜 풀어주는 거야?”
“왜는… 추적해야지.”
“추적?”
“그래.”
아자딘은 샤티에게 그리 말하고 이스마일과 미디암에게 선견조를 풀어 방금 자신들이 풀어준 나가 지휘관을 추적하게 했다.
“좋은 생각이군. 그런데 잠깐… 멀미하다가 육지에 오르니까 이건 또 이것대로….”
시온 에타르는 울렁거리는 속에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 마, 좀. 취객들조차 토하는 장면은 남들에게 안 보이려고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냐?”
“지은 죄도 없는데 왜 숨는 거지? 에타르 혈족은 언제나 당당하다.”
“그렇다는데, 미디암. 너도 동의하냐?”
“아, 아뇨. 그거랑 이건 다르죠. 당당한 사람도 화장실 가는 모습을 굳이 남들에게 보여주진 않잖아요?”
미디암은 아자딘의 추궁에 고개를 저었다.
“키를 잡느라 그랬어. 그러니 나는 여기서 잠시 좀 씻고 옷도 갈아입고 가겠네. 배를 잠깐 지킬 테니까 먼저들 가.”
“괜찮습니까? 당신 혼자 남으면 위험할 텐데.”
지벡이 혼자 남으려 하는 시온을 걱정했지만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온은 전직 전령이니까 괜찮겠지. 실력도 상당하고.”
과연 시온은 헛구역질을 하면서 손으로 가 보라고 일행에게 손짓했다.
*********
“으음.”
미디암은 난처해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시온 에타르를 동경했다.
잘생기고 멋진 사촌 오라버니. 에타르 혈족 외에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던 그녀에게 시온은 그녀와 비슷한 세대의 미청년이었다.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머리가 좀 굵고 나서 보니까 이상하다. 사람이 이렇게 이상했었나?
어린 시절의 동경과 지금 본 현실의 갭에 미디암이 당황할 때였다.
“저기 나도 저 시온인지 뭔지랑 남으면 안 될까? 솔직히 돌아다니는 거 너무 스트레스인데?”
샤티는 아자딘의 뒤를 쫓아다니며 그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여기서 일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나가 제국인 것 같은데 그들에게 찍히면 샤티는 나가들에게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이미 배신자라고 낙인찍힌 판인데 아자딘 일행의 뒤를 계속 따라다니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가들 내부 사정을 잘 몰라서. 획득한 정보를 해석하려면 네가 필요해. 사실 나가들이 물뱀 부족인지 바다뱀 부족인지 마른땅 부족인지 그렇게 나뉘어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아니 보통이면 내가 언제 배신할지 몰라서 신경쓰지 않아? 왜 날 데리고 다니는데?”
“그야….”
아자딘이 말꼬리를 흐렸다.
‘너는 배신해도 한방에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부담이 안 되어서 데리고 다닌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겠지? 적당히 기분을 달래주어야겠군.’
그래서 아자딘은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했다.
“넌 외모도 아름다우니까 같이 있으면 분위기도 화사하고 좋잖아.”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뭐, 그리고 네 재생 마법이 너무 좋은 것도 있지. 많은 힘이 되고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되지.”
“아. 이 자식. 날 칭찬해도 국물도 없어!”
그렇게 말하는 샤티지만 귀가 빨개져서 쫑긋쫑긋 움직인다.
‘칭찬을 엄청 좋아하네?’
나가는 철저한 계급사회이며 태생이 낮은 이들이 계급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생의식을 치러야 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외에는 계급을 높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살라스마 백작 카젤이 나가로 변이한 것도 바로 그 환생 의식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자기 긍정이라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샤티는 대놓고 아부하는 아자딘에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를 칭찬하는 인간 남자들의 수작을 겪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나가, 샤티는 그런 사탕발림을 자신의 몸을 얻기 위한 구애활동 쯤으로 여겼다.
이미 자신을 포로로 확보한 아자딘은 그녀에게 아양을 떨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입장의 강자가 칭찬하는 것은 그 의도를 진심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이, 이거 어쩌지? 기분이 좋아.’
샤티는 자신을 칭찬하는 아자딘의 말에 당황하고 있었다.
“쯧쯧.”
옆에서 보고 있던 미디암은 혀를 찼다.
“그나저나 물뱀 나가 엄청 빠르네요. 물 위를 평지처럼 달리는데 그것 때문에 거리가 계속 벌어집니다.”
이스마일이 선견조를 날려 물뱀 나가를 추격하며 숨을 헐떡였다.
길 곳곳이 침수되고 토사가 흘러내려 무너지는 바람에 코랄 사하르 시내의 길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이러니 물 위를 자유자재로 지나는 물뱀 나가를 추격하는 게 힘들 수밖에.
깊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 흙탕물 진창이나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길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그나마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목에는 가구들을 쌓아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기를 손에 들고 눈만 빛내고 있는 남자들이 있었다.
“헤헤헤.”
“어딜 가시나?”
“먹을 것을 좀 넘겨 달라고. 기왕이면 여자들도 두고 가면 금상첨화겠구만.”
“음?”
그들은 습관적으로 길목을 막았지만 예상보다 아자딘 일행이 많다는 것을 알아채고 당황했다.
현재 아자딘 일행은 아자딘과 미디암, 이스마일, 그리고 지벡과 스콧, 샤티의 6인이다. 여자가 둘이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고, 게다가 스콧의 덩치가 워낙 좋았다.
갑옷을 벗은 지벡 경도 풍채가 좋았지만 갑옷이 없으니 성기사로 보이지 않아서 다들 지벡보다는 스콧을 더 경계했다.
“이 자식들 풍채가 너무 좋은데.”
“으음. 무장도 충실하고.”
한눈에 보아도 아자딘 일행은 예사롭지 않다. 싸우면 희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굶주림과 스트레스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면 굶어 죽기 전에 뭐라도 하자.”
그들이 전의를 다질 때 아자딘이 나섰다.
“황제의 전령, 제108령 아자딘이다.”
아자딘은 대뜸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러자 길목을 막은 불한당들이 흠칫했다.
“저, 전령일족이라고?”
“야 애송아. 네가 전령일족이면 나는 드래곤….”
“닥쳐, 멍청아. 진짜면 어쩌려고 그래?”
불한당들의 전의가 깎여 나갔다. 전령일족의 악명이 이런 데서 도움이 되었다.
“이봐. 대체 뭘 할 셈이냐?”
“나가들을 끌어들이다니…. 전령일족들은 제정신인가?”
불한당들이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걸 보면 역시, 코랄 사하르에 나가들을 끌어들인 것은 전령일족들, 그것도 아라엘 지파의 소행인 것 같았다.
“글쎄. 우리가 한 일이 아닌데? 전령일족이 나가를 끌어들였다는 건 누구에게 들었지?”
“들은 게 아니라 직접 봤다.”
“도시 서남쪽 등대에서 전령일족의 마녀가 등불을 꺼뜨렸어. 그러더니 갑자기 하늘이 뚫리고 폭풍우가 몰려왔다.”
“그리고 바다와 강으로부터 나가들이 몰려왔지.”
“당신들이 그걸 직접 봤다고?”
아자딘이 물어보자 그들이 난처해했다.
“아니 사실 우리도 그냥. 거 야경꾼에게 들은 건데.”
“난 직접 봤어. 내가 그 부두 창고 경비원이었잖아.”
“미친놈아. 넌 그때 네 마누라도 못 알아볼 만큼 취해 있었잖아.”
“그건 그, 그랬지.”
“…….”
그때 이스마일이 아자딘에게 신호했다.
“추격하던 나가에게 더 이상 접근 못하겠어요. 나가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래? 상황이 어떻지?”
“코랄 사하르 내성을 나가들이 공성하고 있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나가들의 진지가 있는데 나가가 그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내성 공성전 중이란 말야?”
“네. 병력규모가 못해도 천은 되겠는데요?”
천 명의 병력으로 코랄 사하르를 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짓이다.
하지만 현재 코랄 사하르는 폭우로 길이 끊겨 단절되어있고 또 나가들은 하나하나가 일반 병사들의 열 배나 되는 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알겠다. 음. 수고했어.”
아자딘은 이스마일의 보고를 듣고 불한당들을 살펴보았다.
“지나가도 되겠지?”
“그, 그래.”
“그런데 저기. 혹시 먹을 거 없나?”
그러자 스콧이 눈을 부라렸다.
“못 준다! 나 먹을 것도 부족해!”
“…….”
틀린 말은 아니었다.
*********
불한당들의 바리케이드를 지나 들어가보니 과연 나가들의 진지가 보였다.
나가들은 코랄 사하르의 교역소나 상회주재소 등 번듯한 건물을 장악해 자신들의 진지로 삼고 정찰부대들을 후방으로 보냈다.
이미 코랄 사하르 내성을 포위하고 있는 지금 정찰부대의 역할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인간을 잡아오는 것이었다.
나가들의 여왕 데비슬린은 인신공양을 좋아하는 신으로 과거 나가 제국이 휘브리스를 통치할 때는 피의 피라미드를 만들고, 그 거대한 건축물에 피가 마르는 날이 없도록 인신공양을 계속했다고 한다.
정찰 부대가 사람을 잡는 것은 행여 성에서 비밀 통로를 이용해 오가는 이들이나 몰래 보급을 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을 잡아가 보급품, 즉 식량으로 써먹기 위해이기도 했다.
“으악!”
“사, 살려주세요!”
4층 석조 건물로 된 약방 위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가들 일부가 건물 입구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걸로 봐서 나가 정찰대가 이 건물 안을 수색하다가 건물 안에 숨어 있던 이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쩌죠?”
미디암이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현실적으로 아자딘 일행이 저 사람들을 구할 의리는 없다.
그러나 아자딘은 미디암에게 휘브리스의 백성들을 구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선언했으며 미학이 없으면 전령의 임무는 족쇄일 뿐이라고도 말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겠지.”
아자딘은 활줄의 상태를 살피며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