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
13. 이빨의 권속들 4
커다란 흑요석 도끼를 들고 다니며 짐승들을 산채로 찢어서 먹어치우는 저 탐욕스러운 괴물, 오우거를 보면 다들 전의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아자딘이 그들의 눈을 하나씩 뽑아 버렸는데 남은 눈알 하나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지금 그들에게 펼쳐진 장면은 끔찍했다.
어떻게든 자신들이 갇힌 고기 상자의 틈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노력했지만 그 밑에서 고블린들이 따라다니며 틈 사이로 삐져나오는 피와 살점들을 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여기서 빠져나가 봤자 저 고블린들에게 당할 뿐이다.
그때 오우거가 발걸음을 멈췄다.
“인간 마을. 크고. 강한 성채. 고기가 많다.”
오우거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배를 두들겼다.
“두목. 어떻게 할까?”
“뭐?”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보통 오우거와 홉고블린, 고블린으로 이뤄진 무리는 오우거가 두목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오우거는 분명 고블린들 중 하나에게 두목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고블린들 중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심지어 사람만 한 크기의 홉고블린도 아닌, 인간 어린 아이와 비슷한 크기의 고블린인 이놈은 몸에 검푸른 안료로 새긴 문신이 가득하고 손에는 짐승의 뼈로 장식된 완드를 들고 있었다.
“위대한 이빨의 왕께서 신왕진서를 원하신다. 저 마을에 신왕진서가 있으니… 그건… 위대한 이빨의 왕… 크르르르륵!”
마치 사람처럼 말을 잘하던 고블린이 갑자기 손톱으로 자신의 얼굴을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스스로 자해한 고블린이 눈을 희번득하게 떴다.
“신왕진서! 그건 내 꺼야! 내꺼! 이빨의 왕!? 내가 신왕진서를 가지고 이빨의 왕이 될 거야! 똥이나 먹으라지! 이빨의 왕은 멀고 난 가까워! 신왕진서는….”
고블린은 뼈로 장식된 완드를 들어보였다. 그 완드 위에 불길한 노란 불꽃이 피어올라 바람도 없는데 꼬리를 흔들며 한 방향으로, 마을 쪽으로 향했다.
“내가 신왕진서를 가질 거야! 가자! 골두!”
고블린은 그리 말하고 오우거에게 닦달했다.
“골두. 고기 저장한다.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저장해서 오래오래 먹는다. 골두 위기에 대비해 투자할 줄 아는 머리 좋은 오우거.”
오우거는 자신의 배를 두들기곤 다른 고블린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곧 화톳불을 밝히고 있는 관문이 그들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마을의 자경단원들은 망루에 서서 다가오는 오우거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망할.”
“엄청 많군요.”
오우거 하나에 홉고블린 셋, 그리고 그 홉고블린에 딸린 고블린들이 10여 마리 되는데 전부 다 클랜 문양으로 치장된 옷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돌아다니는 마물이 아니라 정규 클랜의 일원, 선발대나 척후라고 할 수 있는 놈들이다.
“괜찮습니다. 우리의 관문은 튼튼….”
사냥꾼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부웅!
커다란 바위가 날아와 관문 벽에 충돌했다. 오우거가 커다란 바위를 들어서 집어던진 것이었다.
문은 버텨냈지만 빗장이 크게 튀어오르고 문의 틈 곳곳에서 먼지와 나무조각들이 쏟아져내렸다.
“힉?!”
“이런!”
“쏴라!”
사냥꾼의 지시에 따라 궁사들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우거가 커다란 나무들을 짜서 만든 고기 상자를 앞으로 돌려 맨 상태여서 화살들이 그 상자에 맞아 떨어질 뿐이었다.
“영차!”
오우거가 다시 바위를 집어 든다. 홉고블린들은 방패를 들고 관문을 향해 접근하고 고블린들이 그들을 따라 돌진한다.
“큭!”
궁사들이 첫 공격을 오우거에 집중한 게 실수였다.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 공격으로 고블린들을 좀 쓰러뜨리긴 했지만 이제 적들은 어느새 관문 벽 밑에 달라붙었다.
홉고블린들은 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들어서 막고 있고 그 사이에 고블린들이 톱과도 같은 그들의 무기로 마구 문짝을 두들겨 갉아낸다.
“영차!”
오우거가 다시 바위를 던졌다. 이번의 바위는 관문 방벽 위로 날아와 활을 쏘던 자경단원을 덮치려 들었다.
“으악!”
“어이쿠!”
그때 방벽 밑에서 갑자기 손이 불쑥 올라와 자경단원의 허리띠를 잡고 뒤로 낚아채 피신시켰다. 아슬아슬하게 바위가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가 근처 건물의 탑에 명중해 박혔다.
“히익?!”
“뭐, 뭐야 당신은?”
“어?”
모두들 놀라고 말았다. 얼굴에 매의 가면을 쓴 남자가 관문 벽에 매달려서 한 손으로 사람 허리띠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을 잡고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엄청난 괴력이다.
한손으로 사람을 드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나머지 한손으로는 자신을 더해 두 사람 분의 체중을 지탱하고 있다.
게다가 그 얼굴에 쓴 새의 가면이라니?
“내려갈 수 있지?”
그는 손에 쥔 이를 방벽 밑으로 내려놓고 자신은 방벽 위에 올라섰다.
“관문 방어에 가세하겠다.”
“누구냐 너는?”
“지나가던… 황제의 전령.”
그는 그리 말하고 허리에 차고 있던 활대를 풀어 활줄을 걸었다.
보통 활대에 활줄을 걸 때는 두 다리 사이에 활대를 끼고 전신의 힘을 써서 활대를 휘어둔 뒤 활줄을 맨다. 하지만 이 남자는 마치 어린아이용 장난감 활이라도 되는 양 가볍게 손만으로 활줄을 걸었다.
“황제의 전령?”
“전령일족이라고?!”
“그래, 전령일족이다.”
갑자기 나타난 이는 스스로 전령일족이라고 말하며 바닥에 놓인 궁사의 화살통을 집어 들었다.
*********
“조심하도록 하세요.”
등불을 든 여인이 아자딘을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길을 밝힌다.
노약자와 어린이들, 여성들로 이루어진 피난민 사이에서 그나마 체격이 있는 젊은 여성들이 등불을 들고 길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들 중 두 명이 생전 처음 보는 아자딘과 미디암, 이스마일을 위해서 배치된 것이다.
“괜찮습니다.”
아자딘은 자신들을 배려하기 위해 얼마 없는 등불 중 두 개를 배분해준 이들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워했다.
“한심하군요.”
미디암이 혀를 찼다.
“뭐가?”
“백성들에게 녹을 받아먹는 기사가 그들을 내다 버리다니 말이죠. 우아하지 못해요. 추악합니다.”
“그렇다는 건 너도 휘브리스의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 내다 버리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여기나 보구나.”
“…아.”
전령일족, 아라가사의 민족들은 자신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본래 이 대륙에 살고 있는 이들, 휘브리스의 민족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가 있다. 그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저들은 우리를 박해하니 우리 또한 저들을 증오해야 한다.
저들은 우리보다 열등하니 우월한 우리가 저들을 지배해야 한다.
저주받고 핍박받으며 살아온 아라가사 민족들에게 휘브리스의 백성들은 나약한 주제에 감히 주제도 모르고 덤벼드는 역겨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암은 말하고 있었다. 기사가 백성들을 내다 버리면 꼴볼견이다.
아라가사의 민족은 오랜 세월 박해와 탄압을 받아 휘브리스인들을 증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네요. 아라가사인 제가 휘브리스의 백성들에게 동정적인 게 이상한가요?”
“상관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품에서 가면을 꺼냈다.
“아무래도 장님 행세를 하면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단 말이지.”
*********
장님 행세를 하면 친절한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휘브리스의 백성들에게 박해받는 아라가사의 민족으로서 휘브리스 백성들을 모두 미워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친절을 겪고 나면 모두를 미워하기가 힘들어진다.
뭐 장님에겐 친절하던 사람들도 그가 전령일족이라는 사실을 알면 돌팔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왕의 교회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백성을 지키는 건가.]황제의 목소리는 아자딘이 산길을 거슬러 올라 관문 마을로 향하는 걸 보며 외쳤다.
[장하구나, 나의 전령이여!]“그럼 이걸로 금화 한 개분?”
[아니 그건 또 아니지. 하여튼 장하구나. 나의 칭찬은 곧 황제의 칭찬이니 황송하지 않으냐?]“동전 한 닢 안 주면서 공치사는….”
아자딘은 투덜거리며 산길을 거슬러 올라 혼자서 먼저 관문 마을로 돌아왔다.
장님 순례자 행세를 할 때의 옷을 뒤집어 입어 모습을 바꾸었다. 작게 웅크려 있던 몸을 펴서 인상도 바꾸고 가면을 착용한 후 마을에 돌입해 막 희생당하려던 사람 하나를 구해내고 관문 위에 올라선 것이다.
“전령일족이라고?”
“금화의 악마?”
“영혼 없는 불경한 것이… 어째서?”
사람들이 의아해할 때 아자딘은 자신이 구출한 궁사의 화살통을 발로 퉁 차올렸다.
화살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아자딘은 그것에 손을 뻗어 화살을 잡고 오우거에게 쏘았다.
-쐐애애액!
“아니 무리….”
이미 화살을 쏘았지만 오우거가 가슴에 매고 있는 상자에 가로막혀서, 그 외의 부분은 두꺼운 지방 때문에 별 효과를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퍼퍽!
두 발의 화살이 동시에 오우거의 눈을 꿰뚫었다.
“꾸어어어억!”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고 가슴에 달고 있던 상자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헉?!”
“뭐, 뭐야 저건?”
마치 마법같다.
이선궁, 두 발의 화살을 발사해서 거의 동시에 닿게 만드는 전령일족의 특기다. 만약 이선궁이 아니었다면 첫 번째 화살이 눈을 맞추더라도 그 고통에 움추러든 오우거는 두 번째 눈은 반드시 지켜냈으리라.
하지만 아자딘은 이선궁을 펼쳐 오우거가 미처 경계하기도 전에 두 눈을 동시에 빼앗아 버렸다.
“끄아아아! 내 눈! 아파!”
오우거가 분개해서 손에 든 흑요석 도끼를 휘두르며 움직이지만 눈을 잃어버린 놈은 제대로 걷는 것도 불가능했다.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산길에서 휘청거리며 나뒹구는데 오히려 근처 고블린들이 낭패를 보았다.
“대, 대단해!”
단번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가장 강력한 오우거가 무력화되었으니 이제 나머지는 방벽을 이용해서 방어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경단원들이 경악하고 있을 때 단 한 번에 오우거의 두 눈을 빼앗은 이 전령일족은 관문 아래, 고블린 군대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아니!?”
“미쳤….”
자살행위다.
어둠이 깔린 밤, 이 먼 거리에서 오우거의 눈알을 맞출 정도의 신궁이 굳이 방벽의 유리함을 버리고 밑으로 뛰어내릴 이유가 없다.
활로 장거리의 적을 쏠 때와 밑의 난전에 뛰어드는 건 다르니까. 그들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굉음이 울려퍼졌다.
-텅!
아자딘은 방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니?”
방패로 방어하고 있는 홉고블린 위에 내려섰다.
그것은 짓밟기였다. 마치 개미라도 짓밟듯 아자딘은 간단히 홉고블린을 방패째로 밟고 의연하게 서서 주위의 고블린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 오만하고 강하고 의연한 모습은… 황제의 전령을 적대시하는 휘브리스의 백성들, 자경단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대단해.”
저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