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1
140. 페어 트레이드 2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건물 지붕 위에서 아자딘의 동료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옥상으로 올라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 아자딘이 계단을 올라왔다.
“배로 도망가라고 했는데 안 가고 기다리고 있었군.”
“오래 걸렸군요?”
미디암이 아자딘을 반겼다.
“그래.”
“그럼 이제 배로 도망칠까요?”
“아니. 배로 도망치기보다는… 좋은 정보를 얻었거든?”
“정보라뇨?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스마일이 황당해했다.
처음에는 아자딘이 뒤에 남아서 올라오는 나가들을 격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후에는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다들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자딘이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올라온 것이다.
“재밌는 나가를 만나서 거래를 했더니 이걸 주더군.”
아자딘이 팔찌를 보여주자 샤티가 깜짝 놀랐다.
“라쟈의 눈물?!”
“알아?”
“라쟈의 말을 상징하는 팔찌지. 거기에 쪼개진 옥이 붙어 있지? 그 옥이랑 반대쪽 옥을 맞춰야 병권을 움직이곤 했어. 옛날에는….”
“병부 같은 건가. 엄청난 걸 줬군.”
“요새는 그냥 마법이 발달해서 마법으로 말을 전달하니까 폐기된 거지만 여전히 라쟈의 병권을 상징하는 것이긴 하지. 어떻게 얻었어? 설마 라쟈를 죽였나?”
“아니. 물뱀 부족의 라쟈 데하레스와 거래했다. 바다뱀 쪽만 치면 묵인하겠다는군.”
“…마, 말도 안 돼. 데하레스라고?”
“아는 사이야?”
“나 같은 게 라쟈를 알리가! 모르지.”
“그런데 왜 아는 체를 해? 어쨌건 데하레스가 사람들도 풀어주겠다고 했는데.”
“아! 저걸 보세요!”
미디암이 건물 아래쪽을 가리켰다.
정말 물뱀 나가들이 건물 안에서 생포한 사람들을 놓아주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들은 건물 안에서 먹을 것들을 챙긴 상태였는데 그 먹을 것을 가져가는 것도 허락했는지 사람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비스킷이나 보릿자루를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나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화끈한 성격이군. 나가라쟈 이 친구 마음에 드는데?”
“사람들을 놔줄 것도 거래했어요?”
미디암이 놀라서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보아하니까 그 나가라쟈는 우리가 물뱀 부족 말고 바다뱀 부족을 엿 먹이길 바라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런 걸 하려면 사람들을 풀어주면 좋겠다고. 그래야 내가 의욕이 좀 더 날 거라고 했더니만 들어주네. 나가이긴 하지만 신의가 있는 친구로군.”
“대, 대단해.”
미디암은 이 상황에서 나가를 설득한 아자딘에게 경탄했다. 미디암 뿐만이 아니다.
“말도 안 돼.”
샤티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란 말이지? 샤티. 네가 가지고 있어.”
아자딘이 라쟈의 눈물이라 불린 팔찌를 샤티에게 건네주었다.
“어? 내, 내가?”
“아무래도 나보다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더 그림이 나오지 않겠어?”
“그야 그렇지만.”
“그보다 등대부터 가봐야겠는데? 아니 그 전에 화살을 보급해야 하나?”
아자딘은 처마 밑으로 피해서 데하레스에게 받은 지도를 펼쳐보았다. 지도는 겉 부분이 방수가 되는 어피(魚皮)에 싸여 있고 어피 안에 기름종이를 발라서 만들어져 있었는데 펜으로 긁어야 글씨가 새겨질 정도로 두껍고 단단했다.
이 정도면 거의 가죽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방수에 신경을 써서 만들어져 있었다.
‘물뱀 부족이니 언제 물로 다닐지 몰라서 이렇게 만든 걸까? 단가가 꽤 들겠는걸.’
이 지도는 각 부족들의 관할구역과 정찰부대, 순찰부대의 순찰 루트를 나타낸 작전 지도였다.
“이 지도에 물뱀 부족의 은근한 협력이 있다면 확실히 별로 적을 만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겠군. 의외의 조력을 얻었는걸. 하지만 이런 걸 보면 나가들도 복잡한 정치가 있나 봐?”
“당연하지. 음.”
샤티는 자신의 손목에 찬 라쟈의 눈물을 보며 황홀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심해. 바다뱀 부족은 코브라 여왕이 아니라 네더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고 하더군.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까 예상 이상의 괴물이 될 거야. 무기부터 좀 보급하자. 속옷까지 흠뻑 젖은 상황에서 월각궁을 쓰는 건 별로 안 좋아. 애쉬우드 장궁이 낫겠는데.”
아자딘은 지도를 보고 알아낸 바다뱀 부족 권역의 병기고를 가리켰다.
“가는 도중에 물뱀 부족은 피하도록 하자.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나가라쟈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겠지.”
“하지만 저 사람들을 지금 놔준 뒤 나중에 죽일 수도 있잖아요?”
이스마일은 나가를 불신했지만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보아하니까 나가라쟈는 매우 자기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을 그렇게 쉽게 뒤집을 사람은 아니야. 아, 이 경우는 사람이 아니라 나가라고 해야 하나?”
“당연하지! 나가는 명예를 아는 종족이다!”
샤티가 아자딘의 말에 호응했다.
“…….”
“왜?”
“아니, 샤티가 그러니까 또 살짝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아자딘은 샤티에게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나가라쟈에게는 동족들에게 뭔가 정보를 전달하는 재주가 있는지 물뱀 부족들은 의도적으로 태업하며 아자딘 일행을 피했다.
덕분에 아자딘 일행은 어렵지 않게 물뱀 부족의 지역을 지나 바다뱀 부족들이 담당하는 지역에 당도할 수 있었다.
“저게 바다뱀 부족인가.”
물뱀 부족이 매끈매끈한 비늘을 가지고 있다면 바다뱀 부족들은 마치 산호초 속 물고기들처럼 몸 곳곳에 가시가 자라 있고, 전체적으로 덩치가 더 크고 위협적이었다.
아자딘 일행은 나가들의 정규순찰, 비정규 순찰부대의 진행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가들에게 들키지 않고 건물을 이동해서 무기고 근처를 경비하고 있는 나가들의 배후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휴. 곰팡이 슬겠다.”
스콧은 말린 과일을 오독오독 씹으면서 투덜거렸다.
“말린 과일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슬 것 같아. 다 먹어야지.”
“…….”
말린 과일은 건량 중에서 비싸고 좋은 편이었다.
물론 그만큼 습기에 약한 것이니 스콧이 하는 말이 틀리진 않을 테지만 귀한 건량을 혼자서 거의 다 처먹는 놈이 뭐라고 말하니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아, 너무 눈치주지 마. 일은 확실히 할 테니까. 휠체어 안 타고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내가 얼마나 성의를 다하고 있는지 알 텐데?”
스콧은 폐옥에서 뜯어낸 각목을 집어 들어서 마법을 걸었다.
그걸 손에서 놓자 무서운 기세로 날아간 각목이 바다뱀 나가들을 공격했다.
“쿠웩!”
“크웍!”
“좋아!”
아자딘도 돌을 집어서 무서운 위력으로 투척해 나가를 때려눕히고 돌진했다. 지벡도 뒤따라서 나가를 칼로 꿰뚫고 칼날을 비틀어 흉곽을 절개했다.
바다뱀 나가들이 물뱀 나가보다 더 튼튼하고 강력했지만 이놈들의 순찰 루트를 알고 있으니 기습하기가 쉬웠다.
“좋아. 빠르게 끝났군요.”
지벡이 쓰러뜨린 나가의 목뼈를 잘라 버리고 칼날을 닦아냈다.
“병기고를 살펴보자.”
병기고 안은 이미 나가와 인간들이 가리지 않고 마구 무기를 집어가서 남은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가지 않은 화살과 장궁, 그리고 커다란 헤비 크로스보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쓸 만하겠군.”
아자딘은 헤비 크로스보우의 철궁 부분을 분리했다.
“그거 사람이 당길 수….”
지벡은 아자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석궁을 해체하는지 알고 경악했다.
숙련된 석궁병도 헤비 크로스보우를 장전하려면 발걸이에 발을 걸고 양손으로 크랭크를 돌려서 크레인을 감아서 조금씩 조금씩 활줄을 당겨야 했다.
그런데 아자딘은 그런 철궁을 그냥 손으로 쭉 당기는 게 아닌가?
“음. 힘이 너무 많이 들지만 못할 건 아니군. 그런데 활줄이 너무 굵어서 감아쏘기가 잘 안 되겠는데?”
“…….”
“저희는 그냥 애쉬우드 장궁으로 만족하죠.”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그리 말하고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시온 오라버니는 괜찮을까 모르겠군요.”
“그러게. 물뱀 나가와 협약을 맺었다는 걸 알려줘야겠군. 마법으로 연락할 수 있나?”
“네. 일단 선견조를 날려보죠.”
“선견조로?”
“시온 오라버니가 쓰는 걸 보고 저도 생각이 난 게 있거든요.”
미디암은 본래 선견조를 정찰용으로만 다루었지만 시온이 가르쳐준 선견조-가마우지 술법을 보고 자신의 스타일로 변용했다.
“선견조-금관앵무, 라고 할까요? 음… 힘이 많이 드네요. 어디?”
미디암은 선견조를 멀찍이 떨어뜨리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아아, 테스트.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과연 선견조의 인공정령이 미디암의 목소리를 따라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아자딘은 그 모습에 내심 감탄했다.
“인간치고는 좀 재주가 있군. 아, 내가 칭찬했다고 너무 감격하진 말도록.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에서 칭찬하는 것뿐이니까.”
스콧이 아자딘을 대신해 미디암을 ‘칭찬’했다.
“어?”
그런데 미디암이 당혹스러워 했다.
“왜?”
“아니 오라버니가 보이질 않아요.”
“배 있는 곳에?”
“네. 근처에도 없어요. 혹시나 해서 불러보았는데….”
소리를 내서 선견조의 위치를 알리는 것은 선견조와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미디암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미디암이 시온을 불러도 시온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군. 근처에 혹시 나가 시체들이 있나?”
아자딘은 나가 시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만약 시온이 나가들에게 걸렸다면 반드시 죽은 나가들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요. 교전의 흔적은 없습니다.”
“그럼 숨어 다니나 보지? 음.”
“어, 어쩌죠?”
“시온은 전직 전령이지? 그리고 에타르 혈족이고.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진 않고 혼자서 충분히 자기 몫을 할 거다. 지금 중요한 것은 등대를 확인하는 거야. 문제는….”
아자딘은 지도를 펼쳐서 등대 쪽을 살펴보았다.
등대 쪽은 바다뱀 나가들이 삼엄한 경비로 지키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벽을 타고 교전을 피해서 잠입할 수 있겠는데….”
벽을 타는 재주가 없는 지벡이나 스콧, 샤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너희들은 후방에서 대기해. 나 혼자 가보겠다.”
“위험한데요.”
“아니,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힘든 일이야. 그것보다는 이 금관앵무를 나에게 붙여줘. 이걸로 의사전달을 하면서 가도록 하지. 만약의 경우엔 탈출할 테니까 너희가 퇴로를 열어줘.”
“그렇다면야.”
“하지만 금관앵무를 길게 유지하는 건 저로서도 힘든데요.”
“그걸 더 쉽게 하는 방법이 있지.”
스콧이 주변 창고에서 물에 빠져 죽은 쥐의 사체를 꺼내들었다.
“나라면 훨씬 쉽게 양측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다만 사령술을 써야 한다는 건데.”
“사령술….”
지벡은 한숨을 내쉬었다.
“쓰시오. 써.”
“포기했나?”
“이 타협에 대해서 참회 기사가 되어야겠소. 뭐 내 경우는 참회기사가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입장이니까.”
심판자 젝트가 지벡을 살려둘 리가 없다. 그러니 젝트를 어떻게 처리하기 전에는 정상적인 참회기사가 될 기회도 그에겐 없으리라.
“좋아. 한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스콧은 죽은 쥐에 사령술을 걸었다. 쥐의 머리 부분에 뇌수 전체를 차지할 것 같은 커다란 눈알이 나타나고 꼬리가 철사처럼 뻣뻣해졌다.
“우웩. 혐오스럽다.”
미디암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아니 잘 보면 귀여운 면이 있다니까.”
스콧은 그리 주장하며 쥐새끼를 아자딘에게 내밀었다.
“이걸 통해서 연락할게. 귀엽게 대해줘.”
“뭐 어떻게? 뽀뽀라도 할까?”
“하면 좋고.”
“…….”
아자딘은 말없이 사령술이 걸린 쥐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