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2
141. 페어 트레이드 3
“자, 대장. 그럼 힘차게 가볼까? 기운은 좀 차렸지?”
사령술이 걸린 쥐가 스콧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그래, 그래.”
아자딘은 말린 과일을 입에 넣고 씹으며 빗줄기 속으로 뛰쳐나갔다.
밤인지 낮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폭우 속이다. 그 안에서 나가들은 눈을 빛내며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고 몇몇 나가는 마을의 물자들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본진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바다뱀 나가들은 순찰부대 일부가 죽어서 실종되었기 때문인지 특별 순찰대를 운용해서 꽤 꼼꼼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 바다뱀 나가들이 부리는 사역마인지 날치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다 물에 들어가면서 주위를 감시한다.
“날치가 온다! 마법에 걸린 날치야!”
“어디서?”
“대장 뒤쪽에서!”
“알겠어.”
아자딘은 건물 위를 달리다 지붕을 손으로 잡고 처마 밑으로 쓱 내려갔다. 처마 밑은 이미 물에 어느 정도 잠겨 있어서 아자딘이 밑으로 매달리자 발목이 잠긴다.
“물속에 악어가 있어. 조심!”
“윽! 이거 3층 건물인데?”
아자딘이 보니 과연 물속에 악어가 있다. 몸길이 1.4미터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악어지만 나가들이 데려왔는지 적개심이 상당한 놈이다.
3층 건물의 처마에 매달렸더니 발이 물에 잠기고 악어가 있다니. 코랄 사하르를 덮친 폭풍우의 상황이 심각하다.
‘하필이면 이때 악어가… 한손으로 매달리면 이 처마가 버틸까?’
기와가 비에 흠뻑 젖어 엄청나게 무거워진 탓에 처마를 지탱하는 목재가 삐걱거린다.
아자딘은 한 손으로 처마 목재를 잡고 버티며 두 발을 벽에 붙이고 다른 한손으론 칼을 뽑을 자세를 취했다.
악어가 덤벼들면 벤다. 문제는 칼을 휘두를 때 엄청난 충격이 발생할 텐데 그때 이 건물이 버티겠느냐는 것이다.
“현혹 마법을 걸게.”
스콧의 쥐새끼가 눈을 부릅뜨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충혈되었다. 악어가 아자딘을 발견하고 다가오다가 스콧의 마법에 걸려 몽롱해진다.
“휴우. 걸렸군. 다행이야.”
“…….”
“왜?”
“아니. 잘했어.”
아자딘은 큰 도움이 되는 스콧의 활약상에 솔직히 감탄했다.
원래 스콧을 동료로 받아들일 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죽이기 뭐해서 살려두었던 놈이 이렇게 다재다능할 줄이야. 오크 마법사가 다재다능하다는 이야기는 스승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역시 대단하다.
“그런데 스콧. 너는 쿠르트 신들, 쿠르트 판테온을 섬기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날 도와서 되겠어?”
“대장이 그렇게 멍청한 생각을 할리는 없고 날 시험하려는 거지?”
“그, 그래.”
“그런 멍청한 시험은 하지 마. 그래도 성의 있게 대답해주자면 이대로 내버려두면 나가 놈들이 자기들 잘난 줄 알잖아?”
“…….”
“애초에 그 나가라쟈도 그런 이유로 대장에게 거래를 청한 거잖아? 같은 쿠르트 신족이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최고가 되어야지. 안 그래?”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거 참. 인류 입장에서는 다행이긴 한데 인류도 어차피 다들 자기 이익에 혈안이 되어서 이래저래 쪼개져 있으니 마찬가지인가.’
아자딘은 날치들이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지붕 위로 올라와 이동을 시작했다.
등대 근처에는 다른 나가들보다 훨씬 덩치가 큰, 키가 2미터가 넘는 나가들이 거대한 밧줄에 닻을 매달고 질질 끌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나가들 옆에 인간으로 변신한 나가 마법사들이 함께 있는 걸 보니 무작정 전투로 뚫기는 힘들어 보인다.
“잘 잠입해야겠군.”
“아, 대장. 조심해야겠어.”
“왜?”
“상공에 선견조가 있어.”
“뭐? 선견조라고?”
아자딘이 가면을 쓴 채로 손을 겹쳐 망원경처럼 만들고 그 사이로 등대 주위 상공을 살펴보았다.
과연, 선견조가 날고 있는 게 보였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선견조를 내버려두면 등대 외벽을 기어오를 때 훤히 보이게 된다. 그렇다고 공격하면 선견조 술자에게 바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선견조의 시선을 피해서 등대 안쪽으로 잠입하자니 등대 입구에 경비병인 바다뱀 나가들이 꽤 많이 있었다.
“비가 와서 기어오르기도 쉽지 않은데.”
아자딘은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 생각하며 우선 활을 만져보았다.
헤비 크로스보우에서 떼어 온 강철 바에 활줄이 걸려 있는데 이게 무게가 상당하다. 아자딘은 거기에 화살을 걸고 당겨보았다.
그냥 화살을 걸면 활줄이 화살 뒷머리를 다 부숴 버리므로 깍지를 끼고, 그 깍지로 활줄을 당긴 후 그 위에 화살을 걸었다.
아자딘은 화살을 당기고 심호흡을 했다.
“뭐하려고? 대장?”
스콧이 궁금해할 때 갑자기 천지가 번쩍였다. 하늘을 뇌광이 수놓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자딘이 화살을 날렸다.
-퍼억!
등대 진입로 근처의 나가가 아자딘의 화살에 머리가 날아갔다. 말 그대로 두개골이 찢어져 무슨 칼로 쪼갠 수박처럼 윗부분이 날아갔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나가라 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위력이다.
-우르릉 쾅!
그리고 뒤따르는 천둥소리가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경비를 서고 있던 나가들은 자신의 동료가 쓰러졌는데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좋아…!”
아자딘은 화살을 한 발 더 날리고 앞으로 달려갔다.
이번에 노린 대상은 신장이 2미터가 넘는 거구의 나가였다. 이 나가도 머리에 화살이 꽂히자 수박을 깨뜨린 것처럼 머리의 25%가 날아가 버렸다.
“아니?!”
나가 마법사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아자딘이 그의 바로 앞까지 뛰어든 뒤였다.
-퍼억!
아자딘은 칼을 뽑지 않고 철궁을 휘둘러 나가 마법사의 머리통을 후려 갈겼다. 관자놀이가 함몰되며 나가 마법사가 쓰러졌다.
“역시 튼튼하군. 나가 머리통을 날려도 휘어지지도 않네.”
아자딘은 즉시 등대 입구로 들어갔다. 등대 안에는 나선형의 긴 계단이 나 있었는데 아자딘은 계단과 벽을 박차며 빠르게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등대의 정상의 문을 열자….
-끼익.
눈을 어지럽히는 끔찍한 네더 문자들이 바닥과 천장, 벽, 모든 부분에 새겨져 있었다.
“흠?”
그 한복판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장년 남자가 일어났다.
“아. 이게 누구인가. 아자딘 아닌가.”
장로 세발리 에타르가 아자딘을 알아보며 환영했다.
“절 아십니까?”
“유명하지 않은가? 배신자의 아들, 복무의 저주로 태어난 저주받은 아이. 무안의 아자딘. 많이 자랐지만 못 알아보면 바보겠지.”
“…….”
“설마 여기까지 오다니, 놀라운데. 선견조를 깔아두긴 했는데 그걸 넘어오다니.”
“장로 세발리 에타르….”
“잘 왔네. 잡혀 있던 나를 구하러 온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야.”
“어떻게 된 겁니까?”
“보시다시피 나는 그들에게 잡혀서 이곳에 감금되었지.”
장로 세발리 에타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자딘은 주위에 다른 인물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 혀를 찼다.
선견조는 등대로 접근하는 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즉 이곳에서 선견조로 등대로 접근하는 이들을 감시한 장본인이 바로 이 장로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자딘이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자 세발리 에타르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런 이런. 별로 똑똑하지 않은 친구로구만.”
“밖에 선견조가 있길래 제니스나 디미아를 만날 거라 예상했었습니다만 설마 멀쩡한 장로님을 만날 줄은 몰랐군요. 어디 묶여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아자딘이 은근히 장로 세발리를 비난했다.
“하하하. 그래. 너무 뻔했구만. 그런데 자네는 지금 파직당한 상태지? 그런데도 원로원에 충성하고 있나?”
“그렇다기보다는 지금 아라엘 지파가 하는 짓이 제 충성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체 지금 코랄 사하르에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코랄 사하르의 옥좌를 얻으려 하고 있지.”
“코랄 사하르의 옥좌를 말입니까? 여기 나가들은 그 옥좌를 자신들이 얻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이 나가들을 제칠 수단이 있습니까? 상당히 많이 몰려왔던데?”
“있다네. 나가들이 모든 일을 해내고 저 코랄 사하르의 왕과 가신들, 기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난 뒤에는 우리가 함정을 발동시켜서 나가들을 치우고 옥좌를 우리의 것으로 할 걸세. 그리되면 아라가사의 비원이 달성되는 셈이지.”
왕의 옥좌를 손에 넣으면 신왕진서 사본이 아니라 신왕진서 그 자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복무의 저주에서 해방되길 원하는 아라가사들 입장에서는 바라 마지않는 일일 것이다.
그래. 고결한 오대 가문, 에타르 혈족에 속하는 장로조차 반란군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유혹이겠지.
“자네도 아라가사라면 우리의 비원을 알겠지? 이 비원을 달성할 수 있는 날이 이제 코앞에 다가왔네. 그러니 기뻐하게나.”
하지만 아자딘은 코웃음 쳤다.
“하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장로님.”
“뭔가?”
“아라가사는 아라가사이기에 살 권리를 얻습니까?”
“무슨 뜻인가?”
“보아하니 그 함정이라는 건 네더의 존재를 현현시키는 거군요. 바다뱀 나가들이 네더의 존재를 숭앙한다고 해도 네더의 존재가 그들을 정말로 한 편으로 받아들이고 봐줄지 의문이고, 또 물뱀 나가들은 네더의 존재들에게 먹히고 싶지 않아 할 테니 그 틈에 왕좌를 손에 넣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라가사에게 그런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까?”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장로는 기이하다는 듯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아라가사의 비원을 자네는 부정한다는 건가?”
“세간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라가사를 저주받은 종족,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비난에 직면해서 주눅 들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건 저를 부끄럽게 하는군요.”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그려진 네더 문자를 가리켰다.
“이런 짓을 하면 대체 무슨 긍지가 있습니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코랄 사하르의 주민들을 죄다 죽여 버리면서까지 우리들이 존속할 자격이 있습니까? 이미 코랄 사하르의 몇 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을 테고, 아라가사 전체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나가들이야 적이니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코랄 사하르에서 살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자네는 이상하구만.”
세발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랄 사하르의 주민? 그놈들은 휘브리스인들이야!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의 운명을 봉인한 것들이지! 그놈들은 우리보다 약한 주제에 우리들을 경시하고 우리보다 더 많이 가졌어! 우리는 생존해야 하고! 가져야 하고! 지배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이니까!”
“바로 그것이 아라엘이 제게서 충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점입니다.”
“하하하하. 제정신인가. 아자딘. 그렇다면 너는 원로원에게도 배신자가 될 것이다. 아라가사의 운명과 다른 휘브리스 백성들의 운명을 같은 저울에 재겠다고? 그건 아라가사가 아니야! 우리 하나하나는 휘브리스의 백성들 수천 명보다, 아니 전부보다 더 무겁다!”
세발리는 그리 말하고 양손에 수인을 맺었다. 바닥으로부터 검은 그림자를 머금은 칼이 떠올라 그의 손에 잡혔다.
“아무래도 네놈은 정녕 영혼이라는 게 없는가 보구나! 우리 아라가사의 원통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다니!”
아자딘도 칼을 뽑았다.
“그런 게 영혼이라면 저는 영혼 없는 불경자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