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5
144. 독자 노선 3
장로 세발리는 아자딘에게 경고했다.
“아라엘은… 예사롭지 않지. 나를 이긴 자네가 그렇게 무모한 짓에 목숨을 던지길 원하지는 않네. 화해할 수는 없는 건가? 보아하니 원로원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
“물론 이해하고 있네. 자네는 자신의 긍지와 철학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 하지만 오래 살면 느끼는 게 하나 있다네. 철학이나 이데올로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더군. 그저 본능대로 살아가는 것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야.”
“그렇게 살기 위해서라도 네더의 옛 신들을 가지고 장난질하는 건 막을 겁니다.”
“아라가사 전원이 갈망하고 있는데도 말인가? 그런 짓을 하면 어디에도 남기 힘들 걸세. 내가 여기에 와 있는 걸 보면 알듯, 원로원에서도 결국 아라엘 지파를 인정하게 될 걸세. 아라엘 지파가 오대 혈족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기만 하면 합의가 성사될 단계에 와 있다네. 그래도 말인가?”
세발리는 놀랍게도 진심으로 아자딘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말해줄 것도 없는 내용이 아닌가?
아라엘의 반란이 있었지만 원로원은 아라엘의 반란을 인정할 것이다. 즉 아라엘의 비전에 저항하는 것은 아라가사 전체에 저항하는 것.
그것을 아자딘에게 경고해주고 있었다.
“우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자딘은 세발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네. 자네가 날 이겼으니, 이제 자네의 어깨에 내 명예가 걸려 있지.”
“그런 이유만으로 그렇게 귀중한 이야기를 해주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나도 한때는 휘브리스인들과의 융화를 꿈꿨다네. 왜냐면 우리의 혈통에는 황제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말이지. 충분히 그들과 융화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네.”
“…….”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보이던 장로도 젊은 시절에는 이상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휘브리스인들에 대한 아라가사의 증오가 너무나 깊어서 영특한 이들의 머리에도 증오의 안개가 끼어 있다.
“아라가사 모두가 자네에게 돌아설까 걱정이군.”
“정말 아무도 양심이 없단 말입니까?”
“하하. 자네는 정말 알디스를 닮았군. 알디스가 애지중지 키웠다더니만. 뭐 나는 패자이니 자네 마음대로 해보게.”
“알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자딘은 코랄 사하르 왕성에 도착했다.
저지대가 물에 잠겨 있고 성문도 사람 키 이상 잠겨 있는 외성은 이미 나가들에게 함락되었고 성안의 인간들은 내성으로 옮긴 상태다.
나가들도 많이 죽었는지 수면에 엄청난 수의 나가 시체들이 보였지만 코랄 사하르가 풍전등화라는 것은 명약관화였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가?”
“성안에 잠입해서 코라사르 왕을 알현해야겠군요. 더해서, 아마도 지금 아라엘의 아라가사들이 파괴공작을 벌이고 있을 테니까 그들을 상대해야겠죠.”
“나는 어쩔 건가?”
“풀어드리지요. 당신을 데리고 성벽을 넘을 수는 없으니까.”
“괜찮은가? 날 풀어주면 인질로서의 의미가….”
“명예를 아신다면 저들이 제 동료를 해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게 요구하는 게 단지 그것뿐인가?”
“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정말 세발리 장로를 풀어주었다.
“자네는 참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로군.”
“그럼 부탁드립니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세발리 장로는 내버려두고 혼자서 성벽으로 달려갔다.
바다뱀 나가들이 당황했지만 아자딘은 전령일족이라고 외치고 몸을 날려 물에 젖은 성벽을 타고 올라 간단히 뛰어넘어 안으로 진입했다.
*********
코랄 사하르 성은 당대 최고의 축성술이 집약되어 엄청난 방어력을 가진 성이다.
코라 강 삼각주 지대를 감시할 수 있게 해안 절벽 위에 만들어져 있어서 물 쪽에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육지 쪽에서 접근하면 끔찍한 3중 성벽을 만나게 되는데 이 3중 성벽은 평소 도개교로 성벽 위를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도개교를 걷어 버리면 성벽 밑을 빙글빙글 돌며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공격 측에 지옥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폭우로 성 축대 곳곳이 취약해져 있었고 성벽을 평지처럼 주파하는 아라가사의 공작원들이 침투해 쉽게 성문이 열려 버렸다.
그리고 물과 육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나가 군대가 쳐들어와서 그들은 너무나 쉽게 외성 제1벽을 잃어버렸다.
안에는 아직 내성이 두 개 남아 있지만 전령일족 공작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쳐들어와서 화살을 꽂고 도망가는지라 피로가 다들 극한까지 쌓여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피로가 쌓이게 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오, 온다!”
지친 병사들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긁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잠을 자게 되면 다들 광기의 악몽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성벽 위에 감시병으로 세워두면 백이면 백, 바다에서 거대한 괴수가 자신들을 굽어보고 있다는 환각을 보았다.
“시, 싫어!”
“네더의 신이 찾아온다!”
“살려줘!”
광기에 사로잡혀 착란을 일으킨 이들이 난동을 부리면 그들을 말리느라 다른 병사들이 끌려와 덩달아 피곤해진다.
“미치겠네. 아니 미친 사람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도 차라리 미치고 싶다고!”
“젠장. 그런데 저도… 가끔 번개가 칠 때면 바다 쪽에 거대한 거인의 그림자를 봐요.”
“보지 마. 정신이 쇠약해져서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 틀림없이 원군이 올 거다. 원군을 요청하러 파발도 보낸 데다가 평소 교역상인들이 얼마나 오갔는데, 틀림없이 원군이 올 거라고.”
그때 내성 성벽 위에 한 낯선 청년이 올라서는 게 아닌가?
“어?”
“원군?! 원군인가?!”
계속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정신이 나가 버린 병사들은 갑자기 등장한 이를 원군이라고 여겼다.
이미 전령일족들의 여러 차례 계속된 잠입 공격으로 외성을 잃었기 때문에 보통 누가 올라오면 전령일족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다들 원군원군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원군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리라.
“원군은 무슨! 전령일족이다!”
반면 그나마 정신 줄 잡고 있던 소대장은 올라선 이를 전령일족으로 여겼다. 얼굴에 투구를 쓰고 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가면이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잖아! 전령일족 중에 이건 진짜 전령이다!”
“잠깐.”
그때 성벽 위로 올라온 청년이 손을 들었다.
“나는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이야기를 하러 왔어.”
“뭐냐? 전령일족 아닌가?”
“전령일족 맞아. 그런데 코라사르 국왕을 알현하고 싶다.”
“우, 웃기지 마라.”
전령일족은 최고의 암살자들이기도 하다. 그런 놈이 국왕을 알현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다.
“무기를 풀어! 무장을 해제하면….”
하지만 정년일족 청년은 무장해제 권고는 듣는 시늉도 안 하며 갑자기 제자리에 앉았다.
“어? 이, 이 자식!”
“뭐냐!?”
그들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취하는 청년에게 당황했다.
청년은 그들이 무기를 겨누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가면을 가리켰다.
“보아하니 기사는 아닌 것 같고 하사관이지? 당신이 날 무장해제 시킬 권한은 없어. 상관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봐. 그때까지 여기 기다리고 있지. 서둘러.”
“아, 아니! 이 자식이!”
소대장은 자신의 무장해제 권고를 귓등으로 듣는 이에게 분개했지만 이 전령일족이 손을 튕기자 허공에서 빗물이 쫙 뿌려지며 살을 에는 듯한 강풍이 그에게 밀려왔다.
“윽!?”
“나도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었어. 좀 쉬지.”
그렇게 말한 전령일족 청년은 품에서 건량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어.”
상대 앞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병사들은 가뜩이나 싸우기 싫은데 상대가 눈앞에서 음식을 먹으니 긴장감이 빠져 버렸다.
“사람들 불러서 날 감시시키고 다녀와.”
“…너는? 뭐라고 해야지?”
“황제의 전령 108령 아자딘이다. 당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아라엘 지파와 적대하는 세력이지.”
“…….”
“전령일족도 하나가 아냐. 우리도 내부에서 권력투쟁을 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아, 이, 일단 알겠다.”
그들은 이 전령일족의 청년의 말을 듣고 병사들을 배치시킨 뒤 물러났다.
*********
‘좋아. 말을 잘 듣는군. 아마도 전령일족과 싸워본 것 같은데?’
아자딘은 하사관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사관이나 기사들은 이미 외성을 함락당할 때 전령일족들의 암살공작에 시달려 전령일족들의 전투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자딘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떨었다.
게다가 네더의 힘이 강해지면서 병사들의 상태가 악화된 것도 한몫했다.
상태가 이러니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겠지. 아자딘이 먼저 공격하려고 하지 않는데 함부로 덤벼들 리가 없다.
무장을 해제시키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것도 허세지.
“그렇지만 정말 상태가 심각하군.”
아자딘은 건량을 먹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를 발견했다. 아직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이가 어울리지도 않는 투구를 쓰고 아자딘을 보며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좀 먹을 건가?”
“…어.”
아자딘이 건량을 건네주자 소년병이 그걸 받고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다른 병사들까지 달려와 자신에게도 달라며 구걸하는 모습에 아자딘은 당황했다.
‘아니 내가 약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설마 보급도 끊겼나?’
약을 탔건 말건 먹을 것에 눈이 돌아갈 정도라면…. 보급이 끊겨 식량이 부족한 상태라는 소리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왕성이 공성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식량을 적어도 1년 치는 비축해두기 마련인데 공성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써 식량이 떨어질 리가 없다.
“식량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연료가 떨어져서.”
“아.”
불을 피워서 조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그때 코랄 사하르 성의 전령이 아자딘을 찾아왔다.
“알현은 허가되었습니다. 다만… 큰 무기는 휴대 불가입니다.”
“좋아.”
아자딘은 등에 짊어지고 있던 나가 곡검을 내려놓았다.
“활도….”
“그러지.”
아자딘은 철궁도 내려놓았는데. 본래 헤비 크로스보우의 부품인 철궁이라 그 무게가 엄청났다.
성의 전령이 대동한 병사와 기사들이 별 생각 없이 가볍게 건네주는 아자딘의 철궁을 받았다가 그 무게에 놀라 성벽 위에 떨어뜨렸는데 떵그렁 하고 쇳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병사들이 그걸 보고 기겁했다.
‘이걸 들고 성벽을 기어올랐단 말이야?’
‘이놈은 괴물인가? 저걸 사람 손으로 당길 수 있나?’
아자딘은 주력 무기들을 내려놓았지만 아직 그에겐 웬디고의 단도와 경비대장의 할버드 머리, 그 외 투척용 비수 등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성의 전령과 기사들은 그것까지 요구하진 않았다.
“그럼 따라오십시오.”
“그러지.”
아자딘은 그들의 안내에 따라 내성을 지났다. 다중 성벽을 가진 코랄 사하르는 아직 안에 내성이 하나 더 남아 있었는데 성안으로 가는 동안 많은 피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이 돌고 있군.’
더러운 물에 잠겨 있다가 나온 사람들은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땅이 침수되어서 피할 곳도 마땅치 않은 탓에 그런 병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숙식을 같이하면서 전염병도 아닌 피부병이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