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6
145. 독자 노선 4
아자딘은 그들의 난처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인구밀도가 높고…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이 얼마 없군. 식량이나 물자가 성에 비축되어 있다고 해도 오래 버티기 힘들겠어. 상대는 아라엘과 아라가사들이니 말야.’
코랄 사하르 왕성에는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과 구난기사단의 성기사들, 그리고 병사들이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자딘이 성의 전령과 함께 움직이자 싸늘한 시선이 꽂힌다.
알현실에 들어서자 확연히 공기가 달라진다.
야에가스 신족의 옥좌. 그것은 대지 깊숙이 박힌 거대한 석영으로 만들어진 옥좌였다. 그 석영 옥좌 위에 현 코라사르 왕국의 국왕, 안세투스 4세가 앉아 있었다.
좌우에 기사들이 시립하고 국왕이 옥좌에 앉아서 맞이하다니.
‘아주 정석적인 알현이로군. 사석에서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 텐데?’
아자딘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나 이야기는 공적인 자리에서 만인들 앞에서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걸 감안하면 이런 정석적인 알현은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물론 아자딘이 알현을 요청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왕을 대하는 형식상의 예의였다.
‘은밀하게 만나자고 따로 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혹시 내가 암살자일까 봐 걱정해서? 그런데 국왕 표정이 어째 어두운데?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지금 상황에서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지낼 입장은 아니긴 하지.’
코라사르 국왕 안세투스 4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아. 대담하군. 전령일족. 설마 단신으로 여기 들어오다니. 우선 그 무모함을 칭찬해주마.”
“가면을 벗으시죠. 왕의 어전입니다.”
시녀들이 아자딘에게 가면을 벗을 것을 요구했다.
“예.”
아자딘이 가면을 벗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눈이 있어야 할 위치에 큰 상처가 가로로 나있었다.
“장님?”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는데?”
“…….”
모두들 아자딘이 태연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다. 설마 눈알이 없을 줄이야.
“가면을 써도 좋다.”
“예. 감사합니다.”
아자딘은 국왕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가면을 다시 썼다.
“그래서. 그대는 누구인가?”
“황제의 전령, 108령 아자딘이라 합니다.”
“108령? 최하위가 아닌가? 코라사르도 우습게 보인 모양이로군. 팔왕국의 국왕을 만나는데 최하위 전령을 보내다니.”
안세투스 4세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108명의 전령 중 최하위인 아자딘이 왔다는 것에서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희의 인력이 부족하여 저처럼 전령의 말석을 차지한 이가 감히 폐하의 어전에 나서서 어심을 어지럽혔으니 송구스럽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현재 저희 일족은 둘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있어 그만 그러한 점에서 고려가 부족했사옵니다. 부디 생각 짧은 이들의 우행을 너무 탓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내전?”
“예. 반역자 아라엘을 필두로 한 이들이 코라사르의 왕좌를 손에 넣기 위해 나가들을 준동하고 네더 마법을 사용해서 이 폭풍우를 불렀지요.”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반역자가 벌인 일이… 폭풍우를 부르고 나가들을 꼬드겼다고?”
“…무섭군.”
전령일족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라 그중 일부가 한 일이 코라사르 왕국을 이런 위기에 처하게 했다는 뜻이 아닌가?
신하들이 겁에 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때 왕의 교회의 성기사로 보이는 이가 나섰다. 꼬장꼬장해 보이는 장년 남자로 외눈 안경을 끼고 있었다.
“폐하!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알도프 경…. 말해보게.”
“지금 당장 저 이단자를 잡아 고문해야 합니다.”
“날 찾아온 자를 욕보이란 말인가?”
“전령일족은 입을 열면 거짓을 밥 먹듯 하는 비천하고 불경한 것들입니다. 저들이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역정보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자 하는 수작임에 틀림없습니다.”
알도프 경이라 불리는 기사는 아자딘을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게다가 저 눈알 없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도 전혀 장님 같지 않으니 틀림없이 사악한 술법으로 시력을 대신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악한 술법으로 오염을 퍼뜨리고 있으니 당장 잡아 죽여야 합니다!”
아자딘은 그런 알도프 경의 말에 실소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날 공격해봐야 왕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지. 제정신인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평화롭게 사절을 자처하며 온 이를 죽이는 것은 손해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합리주의자를 뒤흔드는 데는 꽤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합리주의자를 흔들어서 정상적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교섭술로써, 위협은 쓸모가 있었다.
‘아 그렇군. 날 흔들려는 게 아니라 국왕을 흔들려고 하는 거구나.’
아자딘은 왕좌로부터 마력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 걸 확인했다.
왕이 앉아 있지만 왕좌로부터 왕화의 빛이 뿜어져 나오지 않고 있었다. 즉 왕의 교회 입장에서 지금 국왕 안세투스 4세는 정당한 국왕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알도프 경이 뒤의 누구를 신경쓰는 게 느껴졌다.
‘코라사르 추기경인가.’
아자딘은 알도프 경의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성직자를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렇게 정쟁을 벌일 여유가 없을 텐데.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뭣이?!”
“아라엘의 목적은 코라사르의 왕좌입니다. 나가들이 왕성을 부수고 들어오면 그녀가 나타나서 코라사르의 왕좌를 노릴 겁니다.”
“부, 불경한!”
“말도 안 된다!”
야에가스의 왕좌는 스스로 주인을 고르는 강력한 마법의 유물이다.
영혼 없는 불경자라고 천대받는 전령일족이 왕좌를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왕의 교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경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광인입니다! 지금 즉시 처형해야 합니다!”
왕의 교회 측에서 아자딘을 죽이자고 성화를 부렸지만 아자딘은 국왕 안세투스 4세를 보며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훼방을 놓는 놈들이 많으니 좌중을 물리거나 아니면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뭣이?! 지금 네놈이 감히 우리 교회를 우롱하는 것이냐?!”
왕의 교회의 성직자들이 성화를 부렸다. 하지만 왕의 어전, 알현실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이야 말로 왕의 체면을 구기는 짓이다.
‘보아하니 코라사르 국왕도 완전히 몰렸군.’
야에가스의 신왕은 그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왕화의 빛이 발동하지 않아서 수도 코랄 사하르가 침수당하고 나가들이 쳐들어와 위기에 처했는데 원군조차 부르지 못하고 고립된 이 상황.
그것은 왕이 왕좌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래서 코라사르 국왕의 어전임에도 왕의 교회의 성직자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알겠다.”
안세투스 4세는 아자딘의 제안에 응했다.
암살자로 유명한 황제의 전령과 독대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건 국왕으로서도 엄청난 위험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물어뜯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왕의 교회의 성직자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느니 차라리 암살자와 독대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자 가신들도 반대하기 시작했다.
“폐하!”
“전령일족은 다들 비열하고 사특한 암살자들이옵니다!”
“재고하여주시길 바랍니다!”
다들 독대한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아자딘이 독대를 요청한 것이다.
‘국왕도 꽤 힘든 일이구나. 사사건건 끼어드는데 이야기가 되겠냐.’
아자딘은 독대를 허용하는 국왕의 처지를 동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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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현실에서 자리를 바꾸어 왕의 개인실로 위치를 옮겼다.
무장한 기사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왕의 근위기사들이었다.
“그래서 독대를 했다. 설마 날 암살하려고 그러나?”
“아닙니다, 폐하. 아무래도 민감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민감한 이야기라면?”
“왕화의 빛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지요?”
“과연…. 가신들이나 기사들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로군.”
“성직자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폐하에게 들이받는 거 아닙니까? 알도프 경인가. 그자의 신분은 뭡니까?”
“내 조카라네.”
“조카요? 보통은….”
“코라사르 왕족 혈통이면 다른 곳으로 보내지.”
왕의 교회는 왕족이나 귀족들 중 상속권이 없는 이들을 출가시키는 곳. 그렇기 때문에 왕족 출신의 성직자를 본래 그의 왕국으로 출가시키지 않는다.
일부러 왕족들을 멀리 섞어두지 않으면 기어이 복귀하겠다고 자국 내에서 지지자들을 모아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놈은 사생아라서.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약점이 많기는 하지.”
“왕화의 빛이 작동하지 않는 건 네더의 의식을 이 안에서 치렀기 때문입니다. 폐하의 잘못은 아니지요.”
“…….”
아마도 지금 안세투스 4세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그래서. 뭘 하자는 건가. 전령?”
“…제 예측이지만 아라엘은 이미 왕성 안에 잠입해 있을 겁니다.”
“뭣?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되니까요. 그녀는 황제의 특성이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 존재입니다. 전령일족들 사이에 황제의 사생아가 있다는 건 아시지요?”
“황제 야에슬라트의 혈통 말인가.”
왕의 교회는 어떻게든 황제를 거부하려고 하지만 황제 야에슬라트야말로 팔왕국 성립 이후 가장 강력한 야에가스 신족이었다.
혼자서 팔왕국의 왕좌 전부를 차지하고 가장 강력한 왕화의 빛으로 세계를 통치했던 살아 있는 현인신.
그 혈통이 전령일족들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라엘이라는 그 여자가 황제의 후손이란 말인가?”
정확히 말하면 황제의 혈통이 누구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전령일족의 오대 가문들에게는 확실히 황제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 외에도 어떤 이들이 어떤 혼인관계, 혹은 혼외관계로 황제의 피를 나누어 가졌는지 모른다.
다만 나중에 특성으로서 발현되면 ‘아, 이 녀석 황제의 혈통이었구나.’하고 마는 것이다.
“예. 그래서 자신이 직접 왕좌에 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 나가들을 제치고 말이지요. 그러려면 이미 왕좌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건 고스란히 그대에게도 통할 말 같은데. 자네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아라엘인지 뭔지 하는 것이 잠입시킨 첩자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그런 의심은 합리적입니다. 뭐 그래서 제가 열심히 일해서 이 상황을 해결하고 제 진심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군요. 우선 왕좌와 근처를 조사하게 해주십시오. 어떻게 해서 왕화의 빛을 마비시켰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냥 과인이 모자라서 왕화의 빛이 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지금까지 폭군과 암군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왕화의 빛이 아예 꺼진 적은 없습니다.”
너는 그렇게까지 폭군이나 암군이 아니다.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