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7
146. 독자 노선 5
왕을 상대로 하기에는 불경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예의를 차리며 이야기해서는 결코 닿지 않는 진심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무례할 정도로 순수한 아자딘의 평가에 국왕 안세투스 4세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한 평가로군. 내가 성군, 현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폭군은 아니지. 암군이긴 한 것 같다만.”
“사실 살라스마랑 란타릭 백작이 저렇게 개판인데 그냥 내버려두시긴 했습니다.”
“…….”
“너무 긴장을 놓으실까 봐.”
“건방진 놈이군. 아자딘이라고 했지? 기억해두지. 어쨌건 그대와 같은 이를 왕좌에 접근하게 허가해주기만 해도 왕의 교회의 성직자들이 발작을 일으킬 걸세. 공식적으로는 허가해줄 수 없군.”
“공식적으로 말입니까?”
“비공식적으로 협력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전에… 자네도 내게 충성을 입증해야 할 것 같은데.”
“충성 입증이라면 뭘 말입니까?”
“전령일족이 식량 창고에 침입해 독을 타고 있네. 그 녀석을 잡아주지 않겠나?”
“음.”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난처해했다.
아자딘 또한 아라엘을 증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라엘 지파와 아예 철천지원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코라사르 왕국을 위해서 동족을 죽이거나 하면 아라가사들은 아자딘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내전 중이라 해도 말이다.
아마 그걸 알고 있으니까 국왕이 아자딘에게 그런 조건을 내건 것이리라.
그렇다고 여기서 그걸 거절하면 이번엔 국왕이 아자딘을 믿어줄 이유가 없다.
“알겠습니다. 독을 타는 건에 대해서 조사해보고 막도록 하지요.”
“좋군. 그걸 해내면 내 별도로 왕좌를 조사하게 해주겠네.”
국왕은 아자딘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주었다.
*********
아자딘도 이 상황에서 한 번쯤 아라엘 지파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 동료들이 무사한지 알아봐야지. 지벡 경이나 샤티, 스콧은 살려둘 이유가 없으니까 무서운데.’
전령일족들 입장에서 왕의 교회의 성기사인 지벡, 나가인 샤티, 오크인 스콧은 살려둘 이유가 없다.
아무리 아자딘이 아라엘의 쌍둥이라지만 아자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서 그들까지 살려두는 ‘양보’를 할 것 같지 않다.
‘무사해야 할 텐데.’
아자딘은 그리 생각하며 식량창고를 조사해보았다.
“독을 탔다는 게 이건가?”
“네. 사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독을 탔다기보다는….”
독을 탔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식량을 오염시켰다고 보는 게 좋으리라.
처음에는 창고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가 워낙 습해서 불이 잘 안 붙으니까 동물 사체와 배설물을 가져와 그 피를 식량에 뿌려 오염시켜놓았다.
이걸 보고 나선 경비병을 잡아 죽이고 그의 내장을 꺼내 내장을 또 식량들에 뿌려서 오염시켰다.
이걸 안세투스 국왕은 독을 탔다고 표현한 것이다.
“애매한데. 그냥 파괴공작 아냐? 이미 한 번 치고 지나갔으니까 다시 여기에 온다는 보장이 없군.”
“그렇지요?”
병사들도 동의했다.
“하지만 독을 탔다고 하면 독을 누가 탔는지 내부를 조사할 빌미가 생기지. 병사나 주민들, 그리고 시녀들을 조사하겠어.”
“네?”
병사들은 당황했다. 전령일족인 아자딘이 왕성 안에 있는 사람들을 내사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국왕 폐하의 어명이잖아? 불만 있나?”
“아니 저기….”
병사들은 아자딘의 말을 듣고 그 의도를 알아챘다.
이 정령일족은 국왕의 명령을 확대해석해서 왕성 안의 이들을 내사하고 아라엘 지파에 속하는 이들을 솎아내려는 것이다.
즉 왕의 명령을 곡해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겠다는 것. 문제는 또 왕명이 있는 건 사실이라 병사들로서는 아자딘을 제지할 권리가 없었다.
“안심해. 나도 설마 전령일족의 모습으로 수사할 생각은 없으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투구를 뒤집어썼다.
“지금부터 나를 감찰관 에페스 경이라고 부르게.”
*********
성안의 피난민들은 화살을 만들고 석재를 옮기고 물을 퍼내는 일에 동원되고 있었다.
계속 들이붓는 비바람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네더의 광기가 그들을 사로잡기에 성의 방어 책임자는 민간인들을 불러들여 일하게 하고 그 대가로 식량을 배급해주었다.
덕분에 성안에 활기가 차고 광기가 덜 번지긴 하지만 그만큼 첩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아자딘은 감찰관 에페스 경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왕성 안에 피신한 민간인들은 약 2만 명,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조사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전령일족들이라면 왕좌에 가까운 곳에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취하리라는 것을 알고 왕성 안 핵심 시설에 접근 가능한 이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시녀들을 조사하자.”
“네? 시녀들이요?”
“그래.”
“시녀들의 신분은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귀족의 혈통도 있어서 저희들이 그렇게 쉽게 조사할 수 있는 이가 아닙니다.”
왕실 시녀라는 것은 확실한 신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며 왕의 교회의 성직자나 성기사가 되기엔 마법적 재능이 없는 귀족 자제들이 취직하기 좋은 자리였다.
그러니 병사들은 시녀들 사이에 전령일족이 침투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자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까? 반대로 말하면 미인이고 품위가 있어 보이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곳 아냐?”
“그게 무슨?”
“미인이고 어려운 예법을 알고 있는 여성이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서를 들고 나타나서 자신이 귀족 자제라고 하면 어디 확인이나 하겠어?”
“그래도 당신이 시녀들을 감찰할 수는….”
“그렇습니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떻게?”
병사들이 그리 말했지만 아자딘은 투구를 눌러쓰고 거드름을 피웠다.
“지금 나는 감찰관 에페스 경이니라. 에헴.”
‘이 새끼가?’
병사들은 아자딘의 황당한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좀 왜곡하긴 했지만 왕이 아자딘에게 사건을 조사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
아자딘은 시녀장에게 시녀 명단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녀들 숙소로 가볼까?”
“시녀들 숙소 말입니까?”
“저, 절대 안 됩니다.”
“숙소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야. 시녀들 주변에 공작원들이 접근할 거란 말이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숙소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인물을 발견했다.
가죽 캡을 눌러쓴 거구의 석공 한 명이 시녀들의 숙소 근처에서 벽을 고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째 눈에 익었다.
‘카흐산이잖아?’
전령일족, 활 부수는 카흐산이 석공으로 분장해서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시녀로 잠입한 이와 긴밀히 정보를 나누기 위해서 이 근처에 오기 쉬운 일을 잡은 것이리라.
카흐산은 투구를 눌러쓰고 있는 아자딘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자딘을 뒤따르던 병사들이 말했다.
“아무리 국왕폐하께서 당신에게 명을 내렸다고 해도 시녀들에게 무례를 범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시녀들 사이에 전령일족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
그 순간 카흐산이 무심코 아자딘 쪽을 바라보았다.
-투확!
카흐산이 벽을 고칠 때 쓰던 공구, 끌을 아자딘에게 날렸다.
“쳇!”
아자딘은 병사들의 경솔한 발언 때문에 일이 틀어진 걸 느끼며 자신의 얼굴로 날아드는 끌을 쳐냈다.
“힉?!”
“비켜!”
아자딘은 투구를 벗어서 휘둘러 병사들에게 날아가는 돌조각도 받아냈다.
“아자딘?!”
“카흐산. 네가 여기 와 있다는 건 네프티도 와 있나 보지?”
“칫!”
카흐산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곰만 한 거구가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순식간에 멀어진다.
“서!”
아자딘이 추격하자 카흐산은 달리면서 손에 잡히는 걸 뒤로 집어던졌다. 아자딘은 날아드는 집기들을 망토를 풀어 걷어내며 카흐산을 추격해 거리를 좁혔다.
“이런 젠장!”
“꺄악!”
카흐산의 앞에서 세탁물을 지고 있던 하녀와 시녀가 그만 부딪히고 말았다.
카흐산은 아자딘 보라는 듯 하녀를 붙잡아 계단 아래쪽으로 집어던졌다.
“윽!”
아자딘이 몸을 날려 하녀를 붙잡아 그녀를 구하자 그 순간 카흐산이 주문을 시전했다.
작은 돌멩이에 ‘화조풍월 황학’을 걸어서 쏘아내니 횡으로 크게 꺾이며 급소를 향해 날아든다.
보통 화살에 걸어서 횡으로 크게 변화를 주는 마법이지만 관통력 또한 어마어마하게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 돌은 그야말로 창과도 같았다.
아자딘은 자신의 항마력을 끌어올려 발바닥으로 그 돌을 받아 찼지만 카흐산은 그 틈에 더더욱 거리를 벌렸다.
“야! 이 자식! 윽….”
아자딘이 황학이 걸린 돌을 받아친 다리가 마비되는 걸 느끼며 다리를 저는 사이 카흐산은 도망쳐 버렸다.
“아니 저 덩치도 커다란 놈이. 윽….”
아자딘은 짜증을 내며 하녀와 시녀들을 복도에 올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병사들이 뒤늦게 아자딘을 따라왔다.
“헉…헉헉헉….”
“마, 말도 안 되게 빠르네요. 당신!”
“그,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전령일족은?”
“아 진짜…. 실례지만 아가리를 좀 다물지 않겠어? 전령일족을 찾는다는 걸 광고하고 다닐 셈이냐? 너희 때문에 상대가 알아챘잖아?”
“저희 때문에요?”
“그래. 다 듣는데 전령일족을 찾고 있네 마네 하면서 말하는 바람에 얼굴을 감춘 보람이 없이 상대가 눈치채고 도망쳤잖아.”
“그, 그럼 상부에 보고 하실겁니까?”
병사들은 겁에 질렸다. 아자딘이 말하는 대로라면 이번 일을 실패한 것은 그들의 책임이 되고 그럼 상급자에게 매질을 당할 수도 있었다.
병사들에 대한 처벌인 책형은 나무 기둥에 묶어두고 채찍으로 등을 치는 것인데 매우 가혹해서 절대 당하고 싶지 않은 형벌이었다.
“됐어. 놓친 나도 뭐 잘한 거 없지. 상부에 말은 하겠지만 너희들 실수는 덮어두지.”
“…….”
병사들은 아자딘의 의외의 말에 당황했다. 전령일족이 자신들을 챙겨주다니.
“그럼 어쩌실 겁니까? 시녀들을 조사하겠습니까?”
“아니. 방금 소동으로 시녀로 잠입한 이도 알아채고 도망쳤을 거다. 그보다 석공들에게 탐문을 해.”
*********
카흐산은 재빠르게 달리면서 아자딘의 추격을 따돌렸지만 성안에서 갑자기 달리는 행위는 주위의 이목을 사기 충분했다.
게다가 이미 거구인 그였다. 인상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그는 사람을 죽여서 시체를 내다 버리고 그 틈에 숨어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아자딘은 병사들을 대동하고 석공 반장을 만나보았다.
“…재, 재주가 좋더군요. 란타릭에서 온 석공이라고 해서 그 말을 믿었습니다.”
석공 반장은 그렇게 말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평소에 자주 만나던 사람은?”
“시녀인 리테루아입니다. 옛날 주인님 댁이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지요.”
“리테루아? 키는 어느 정도지? 머리색은? 인상착의는? 왜 그가 시녀들 숙소 근처에서 작업하고 있었지? 업무 지시는 누가 내린 거야?”
아자딘이 빠르게 물어보자 석공 반장은 정신을 못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