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8
147. 석영 왕좌 1
“그 석공에게 어, 업무 지시를 내린 건… 저, 접니다.”
“뇌물을 받았지?”
“아, 네. 그, 그런데 이건 다 받는 겁니다.”
석공 반장은 책임이 자신에게 올 것 같자 사색이 되어서 몸을 떨었다.
“그 카흐산이 성내에 들어올 정도면 상당히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군.”
“네?”
“저 친구는 저번 달에 나랑 충돌한 적이 있어서, 그때 출몰했던 위치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를 고려해보면 상당히 많은 인원이 공들여 준비했을 거야.”
아자딘은 혀를 찼다.
카흐산이 출몰했던 곳에서 코랄 사하르 왕성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카흐산 단독으로 잠입할 수는 없다.
아마도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 미리 왕궁에 작업을 해두고, 언제든지 잠입할 수 있도록 수를 써둔 거겠지.
그러나 지금 아자딘의 행동은 국왕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을 언급하거나 그들과 접촉하면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 전령일족이라는 걸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라가사의 정보는 감추면서 적당히 성과를 내야 하는데 까다롭네. 이거.’
감출 건 감추고 드러낼 건 드러내며 아라엘 지파에만 피해를 줘야 한다. 이걸 임기응변으로 해내야 하니 아자딘으로서도 골머리가 아프다.
그때 병사 한 명이 다가왔다.
“저, 아자딘 님?”
“응?”
“국왕 폐하께서 부르신다고 서기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알겠어. 장소는?”
*********
코라사르 국왕 안세투스 4세가 보자고 한 장소는 왕성 내원 입구였다.
그런데 거기서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는 이는 왕의 조카라는 성기사 알도프 경이었다.
“하.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아자딘은 자신을 여기로 부른 병사가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걸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너, 영혼 없는 불경자 놈아. 감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왕성 안을 배회하느냐? 내가 네놈을 용서치 않으리라.”
“진정해. 제정신이냐? 왕명을 위조하다니.”
아자딘이 그리 따지고 들었지만 알도프 경은 코웃음 쳤다.
“네놈이 죽으면 알려질 일도 없지.”
“아니 이 멍청한 놈아. 아 진짜.”
아자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성기사는 안세투스 4세의 조카이니 왕의 교회에서도 굉장히 높은 신분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여기서 아자딘을 노리는지 모르지만… 아자딘은 누군가가 그를 부추겨 이런 일을 만들었음을 꿰뚫어 보았다.
‘여기서 내가 상대하기 싫다고 무시하고 나가면 그다음에 이 녀석을 부추긴 놈이 이놈을 죽이겠지? 그리고 나면 이 녀석이 죽기 전 만난 사람이 내가 되니까….’
아자딘과 이 성기사 녀석이 함께 함정에 빠졌다.
하지만 정작 성기사 알도프 경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칼을 빼 드는 게 아닌가?
“나는 정당한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으로서 너! 영혼 없는 추악한 것을 참아주지 못하겠다! 그래도 사내놈이라면 어디 칼을 뽑아 보거라!”
“내가 왜? 난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어. 당신도 성기사라면 설마 싸울 의지도 없이 무기도 안 뽑은….”
아자딘이 그리 말한 순간, 이 성기사가 아자딘의 심장을 향해 칼을 찔러 들었다. 성기사가 되어서 빈손의 상대에게 검을 찌른 것이다.
하지만 아자딘은 양손으로 그의 검을 잡고 휙 비틀어 간단히 칼을 빼앗았다.
“억?!”
알도프 경이 바보 같은 비명을 질렀다.
‘같은 왕족이라고 다 강한 건 아닌가 보군. 젝트에 비하면 전혀… 아니 지금까지 본 성기사들 중 가장 약하네?’
아자딘은 그 검을 살펴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검신 전체가 아주어 스틸, 청강으로 만들어진 검이다.
“너무 비싸서 청강전 만들 때 살짝 쓰는 청강으로 칼 전체를 만들다니. 이게 얼마야?”
“이 무엄한 자식! 내, 내놔라! 그 칼은….”
“아, 음. 그래 돌려주지.”
아자딘은 아주어 스틸로 만들어진 검에 군침을 흘리다가 성기사에게 돌려줬다.
물건이 너무 탐나서 빼앗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런 보검이면 아무리 왕족 출신 성기사라고 해도 귀한 보물이었다.
“이익!”
돌려달라고 말한 주제에 정말 칼을 돌려주자 알도프 경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나이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 이런 걸 보면 왕족이라고 평소에 주위에서 얼마나 배려해줬는지 알 것 같다.
“그 나이 처먹고 아직도 애새끼라니 원.”
“뭣이?! 날 모욕할 셈이냐?”
“응. 모욕하고 있지. 그럼 설마 칭찬하는 줄 알았냐? 하여튼 당신은 내 상대가 안 되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한 번 더 덤비면 그때는 생으로 생식기를 뽑아 버릴 테니까.”
“뭐? 이, 이 자식!”
알도프 경은 왕족으로서 처음 겪는 모욕에 기겁했지만 정말 이놈이라면 산채로 생식기를 뽑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오금이 저려왔다.
왕족이라고 해도 검술 훈련이나 여러 활동 중에 낭심에 대한 충격을 안 받고 살 수는 없다.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고통인데 이걸 산채로 뽑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알도프 경이 그 고통을 상상하며 조용해지는 동안 아자딘은 내원의 수풀 쪽을 바라보았다.
“그만하고 나와. 쓸데없는 함정 파지 말고.”
그러자 내원 쪽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바로 시온 에타르였다.
“흠, 역시 대단하군. 아라엘 님의 동생이라고 할만해. 아니면 카자스 님의 제자라고 해야 속이 시원하려나?”
시온 에타르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걸어 나와 아자딘 앞에 섰다.
“그래서 네가 이 멍청이를 부추겼나?”
“당사자가 듣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본인 입장이 뭐가 되겠어? 일단 나는 아니다.”
“일단 나는 아니다? 그럼 너희 측에서 부추긴 건 맞나 보군? 그보다 시온. 속은 좀 괜찮아졌나?”
“아.”
아자딘의 질문에 시온이 당황했다. 갑자기 자신의 상태를 배려하는 듯한 아자딘의 질문에 당혹감을 느꼈다.
어찌 되었건 그는 같은 아라가사의 일원으로서 아자딘을 배신한 것이다. 처음부터 아자딘의 편이 아니긴 했지만 긍지 높은 에타르 혈족으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했음에는 분명하다.
“상태가 그게 좀.”
“그럼 내 동료들은 무사한가?”
“다들 무사하지. 혈기가 넘쳐서 고민인걸. 그런데 우선 감사를 표하지. 아자딘. 세발리 장로를 살려준 것에 대해서.”
“…….”
“세발리 장로에게 예우를 다해주었으니 우리도 당신 동료를 무슨 일이 있어도 해치지 않겠다. 나 시온 에타르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건 고맙군.”
“그래서 말인데 정말 마음을 고쳐먹을 생각이 없나? 아라엘 님의 동생이란 것 말고도 그대가 세발리 장로님을 꺾었다는 게 알려졌어. 아라가사들 사이에서 당신은 존경을 받을 거야.”
“뭐라고 말해도 나는 네더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그런가.”
시온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쏴아아아!
폭우와 비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자딘은 물줄기를 찢고 날아드는 화살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 화살은 흑강전이었다.
“망할!”
아자딘은 급한 대로 나가 곡검을 뽑아 휘둘렀지만 흑강전과 맞부딪히는 순간 나가 곡검이 무슨 과자처럼 부서져 버렸다.
흑강전은 나가 곡검을 부수고 그대로 아자딘에게 날아들었는데 아자딘은 또 다른 무기 웬디고의 단도로 그걸 막아냈다.
다행스럽게도 웬디고의 단도는 부서지지 않고 흑강전을 튕겨냈지만….
아자딘의 팔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웬디고의 단도를 잡고 있던 손이 벗겨져 피가 흐른다.
“뭐, 뭐야?”
“피해!”
아자딘은 멍청한 성기사 알도프 경을 짓눌러 그를 피하게 했다.
아자딘에 의해 한 번 튕겨 나간 흑강전이 살아 있는 뱀처럼 공중에서 휘어지며 다시 날아온다.
전령일족의 마법, 화조풍월 중 황학과 백학은 그냥 써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화살에 걸게 되면 엄청난 관통력을 발휘한다. 흑강전에 걸면 바위도 버터 덩어리처럼 가르며 날아들 것이다.
또다시 흑강전이 날아들어 오지만 아자딘은 웬디고의 단도와 함께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경비대장의 할버드 머리였다.
단도만으로는 막는 순간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손이 벗겨져 버리니까 웬디고의 단도를 지탱하기 위해 할버드 머리를 톤파처럼 잡고 중간을 지탱해 힘을 보태려는 것이다.
-캉!
불꽃이 튀며 흑강전이 튕겨 나갔다. 아자딘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고 피가 튀었다.
경비대장의 할버드 머리도 결국 깨지고 말았다.
“큭! 잘 쓰고 있었는데!”
하지만 흑강전도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흑강전을 튕겨낼 뿐 아니라… 성기사까지 지켜내다니 대단한데. 저런 멍청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 고생을 하다니.”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활을 들고 나타난 이는 네프티와 카흐산이었다.
그들은 또 다른 흑강전을 활 시위에 걸고 있었다.
“으음… 이봐 낙오자인 나에게 그 귀한 흑강전을 아낌없이 퍼붓는 건 너무하는 처사 아냐?”
흑강전으로 무장한 네프티와 카흐산, 그리고 손을 안 쓰고 있지만 시온 에타르 역시 엄청난 실력자일 것이다.
그래도 아자딘은 이들에게 죽지 않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가 도망치면 여기 성기사는 죽게 되고, 그럼 이들은 아자딘에게 성기사 살해의 누명을 씌워서 이들과 아자딘의 연대를 파괴할 것이다.
“아라엘 님의 동생인 널 죽일 수는 없지. 원래는 저 멍청한 성기사를 죽이려고 쏜 건데 네가 막은 거잖아?”
“윽… 리테루아! 어떻게 나를….”
성기사 알도프 경은 네프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기겁했다.
그런데 그녀를 리테루아라고 불렀다. 즉 시녀 리테루아로 위장하고 왕성에 잠입한 것은 네프티였던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리테루아! 나는 널 사랑했는데. 잠자리까지 같이했잖아!”
“험험.”
카흐산이 헛기침을 했다.
“둘이 잠자리를 했다고? 황제의 전령인 네가 미인계를 썼단 말야?”
아자딘이 물어보자 네프티가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미안한데 당신과 잠자리를 한 건 여기 있는 카흐산이야.”
“뭣?!”
“환술이 잘 먹히더라고.”
“아니 그게 무슨.”
알도프 경은 당황해서 카흐산을 바라보았다. 근육질의 거한이 알도프 경을 보며 히죽 웃었다.
“…….”
알도프 경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포기하지 마. 네가 죽으면 네놈의 살인 누명을 내가 뒤집어쓰게 된다고!”
“더, 살고 싶지 않아.”
“멍청한 녀석! 전령일족은 영혼 없는 불경자라며? 저 여자도 아라가사야.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영혼 없는 불경자라고!”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했었는데.”
“남자는 미워하지만 여자는 영혼이 있건 없건 상관없냐? 아니, 네프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오해할까 봐 말하겠는데 그렇게 열심히 꼬시지도 않았어. 자기가 흥분해서 저러는 거지.”
네프티는 자신이 알도프에게 이상한 짓을 한 것처럼 여겨질까 봐 질색하며 말했다.
“제가 좀 재밌게 했습니다.”
카흐산이 네프티에게 그렇게 보고했다.
“아.”
듣고 있던 시온 에타르도 카흐산의 말에 당황한 듯했다.
“이봐. 알도프. 이 틈에 도망가. 얼른!”
“아, 아아….”
“어서 빨리 도망쳐. 당장 여기만 지나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면 살 수 있어.”
“하지만 기사 된 도리로 도망칠 수는….”
“조금 전엔 빈손인 나에게 기습도 걸더니만. 이번엔 또 왜 그러는데?”
“그, 그게….”
알도프 경은 착란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