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49
148. 석영 왕좌 2
아자딘에게 기습을 가할 때만 해도 알도프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렵다. 두려움이 그를 위축시키니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을 변명을 찾아내는 것이다.
위축되어 가만히 있으면 그게 오히려 죽음으로 직행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심이 그를 죽음으로 밀어붙인다.
합리가 결여된 행동이지만 그것이 본능인 것.
알도프 경은 기사도를 빌미로 절망에 빠져 웅크려 있었다.
“아, 귀찮게.”
아자딘은 어렴풋이 알도프 경이 처한 상태를 알아채고 그의 손에서 아주어 스틸로 만들어진 보검을 슬쩍 집어 들었다.
“어쩔까요? 네프티?”
“죽여.”
“으음. 몸정이 무섭다고 죽이기 아깝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카흐산이 안타까워하며 활을 당겼다. 하지만 그때였다.
“당신들 뭐야?!”
“이런….”
기사들과 병사들이 내원 쪽으로 다가오다 이 상황을 발견했다.
“이런!”
인원이 너무 많다. 숫자가 좀 적으면 죽여 버리고 계속 진행했겠지만, 상대는 1개 소대 정도에 기사들까지 있어서 단번에 죽일 수 없는 인원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자딘을 쉽게 제압하려면 흑강전을 써야 하는데 이 많은 병력이 있으면 흑강전을 아자딘에게 집중시키기 힘들어진다.
“철수한다!”
시온은 아자딘을 제거하는 걸 포기하고 물러났다.
“너, 너희들!”
“야! 서라!”
“무기 버려!”
그들은 네프티와 시온, 카흐산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화살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쳇!”
아자딘이 뛰어들어 화살들을 쳐냈지만 모두 지켜줄 수는 없었다. 몇몇 병사가 화살에 쓰러지자 병사들이 추격을 주저하고 그 틈에 시온 일당은 빠르게 탈출해 버렸다.
“으윽.”
“야! 전령일족 놈!”
기사들은 아자딘이 화살을 쳐내 병사들을 구조해 주었음에도 아자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때 알도프 경이 일어났다.
“그만! 너희들을 구하려 했던 걸 모르겠느냐?!”
“네? 알도프 경. 하지만….”
“그만둬라! 이자는 적이 아니야!”
알도프는 아자딘을 옹호하며 손을 내밀었다.
“음. 그래. 악수.”
아자딘이 악수를 하자 알도프 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그래. 청강검 말이지.”
아자딘은 알도프 경에게 다시 아주어 스틸 보검을 돌려주었다.
“전령일족. 이름은?”
“황제의 전령 제108령, 아자딘.”
“오늘 날 도운 것은 잊지 않겠다. 하지만 당신도 오늘 알게 된 일을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거. 네프티? 아니면 카흐산?”
“…….”
“이 경우는 둘 다인가? 안심해. 입은 무거운 편이니까.”
“부, 부탁한다. 제발 비밀로….”
알도프는 카흐산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알도프가 잠잠해졌군.”
안세투스 4세는 아자딘에게 감탄했다.
“게다가 식량에 독을 탄 문제도 처리했다지?”
“처리는 못했습니다.”
“아니. 내가 말도 안 했는데 기대한 이상을 해줬더군. 전령일족들과 사투도 벌였다면서? 사실인가?”
“사투라기보다는….”
아자딘은 흑강전들을 꺼내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흑강전이로군.”
“흑강전을 아십니까?”
“강력한 마법을 축적할 수 있는 흑강으로 만든 화살 아닌가? 그냥도 예리하고 묵직하지만 엄청난 저주와 마법의 힘을 담고 있지.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화살이라기보다는 철창 같군.”
“네. 상대가 이걸 아낌없이 쏘더군요. 덕분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만날 때는 저도 죽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자딘이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은근히 드러내자 안세투스 4세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전령일족도 하나가 아니란 말이지.”
“예. 어디나 그렇지 않습니까?”
“흑강전을 주고받을 정도면 연기가 아니라 정말 서로 죽고 죽이려고 작정했나 보군. 아니면 그대의 명성이 높아서 흑강전 정도로는 못 죽인다고 생각해서?”
안세투스 4세의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여전히 너희들이 짜고 대립하는 척하면서 접근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108령입니다. 최하위 위계지요.”
아자딘이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보통 108령 정도의 전령이 자기보다 상위 전령들을 상대로, 그것도 흑강전을 사용하는 데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리는 짜고 치는 게 아니다.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세투스 4세는 아자딘의 넉살을 웃어넘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코랄 사하르의 왕좌에는 접근할 수 있는 지하도가 있지.”
“지하도 말입니까?”
“성의 비밀통로이기도 하고 왕좌가 대지에 뿌리내린 그 기반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 하지만 지금 비가 많이 와서 물에 잠겨 있다.”
“아.”
“이 비가 오기 전에 그쪽으로 뭔가 작업을 해놨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실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네. 그냥도 확실히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었거든. 나는 그저 내가 왕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지.”
“…….”
“야에가스의 왕좌는 이게 참 저주란 말이지. 정당한 왕이 앉아야 왕화의 빛이 세계를 수호한다니. 왕화의 빛이 약해지면 너는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꼴이 아닌가. 그게 참으로 두렵고, 한심해서, 나 자신이 싫어진단 말이네.”
“그럼에도 지키셔야 합니다. 야에가스의 신왕은 좌절할 자격이 없는 자리입니다.”
“크크크. 좌절할 자격이 없다라. 맞는 말이지. 설마 전령일족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안세투스 4세는 자신의 목걸이 중 하나를 풀어서 아자딘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수중호흡의 목걸이다. 차고 있는 자의 생명력에서 스스로 마력을 축적하는 마도구지. 전령일족인 자네에겐 필요할 거야.”
“수중호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까? 유효시간은?”
“내 경우 하루 정도 차고 있으면 다음 날에 약 1분 정도 쓸 수 있더군.”
“고작 1분입니까?”
“1년을 차고 생활했으니 적어도 200분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군요. 왜 200분입니까?”
“밤일 할 때는 빼놨거든.”
“아, 네.”
아자딘은 그 목걸이를 받아 자신의 목에 걸어 보았다.
“주는 거니 그냥 가져가게. 전령일족에겐 필요할 거야.”
안세투스 4세는 한 소리를 또 반복했다.
전령일족의 마도서, 화조풍월에는 수중호흡의 마법이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자딘은 안세투스 4세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
“대장!”
내성에서 나오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아자딘을 불렀다.
오크인 스콧 맥그린과 나가 샤티가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지벡 경은?”
“지벡 경은 저기.”
지벡 경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자딘을 보고 일어났다.
“그래. 다행이군. 그런데 어떻게 날 찾았지?”
“대장을 찾는 건 쉬웠지. 여기 성안에 당돌한 전령일족 이야기가 장난 아니게 돌던걸? 찾는 건 너무 쉽지.”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어? 시온 에타르가 풀어줬나?”
아자딘은 그리 말하며 전령일족의 흑강전을 받아치다 부상을 입은 팔을 샤티에게 내밀었다.
“아니, 이게 진짜 뻔뻔하게.”
“부탁해.”
“어휴.”
샤티는 투덜거리면서 아자딘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 틈에 스콧이 그간의 일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배 타고 온 그 토악질 하던 전령일족 놈이 자기 부하들과 함께 찾아와서 우리들을 암습했어. 제일 먼저 내가 기절했고….”
“그다음은 나였지. 이스마일 그 꼬마 놈이 내 목을 거의 부러뜨릴 정도로 쳐서 기절시켰어.”
샤티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마도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에타르 혈족의 웃어른인 시온에게 저항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벡 경은?”
“그게… 부끄럽게도 투항했습니다. 인질들이 잡히는 바람에 싸우지도 못하고.”
“아니, 잘했어요. 괜히 싸워서 피를 볼 필요는 없지. 그래서 어디에 갇혀 있었습니까?”
“여기 성 감옥에.”
“이곳 코랄 사하르 왕성 말야?”
“그래. 전령일족들이 상당히 많이 잠입했는지 아주 조직적이던데?”
하기야… 왕도 코랄 사하르에는 바로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총본부가 있었다. 원래부터 이곳에는 전령일족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탈출은 어떻게 했어?”
“미디암이 우릴 풀어줬어.”
“아, 스스로 탈출한 건 아니고?”
“그렇게 됐습니다.”
지벡이 여전히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요. 싸우다 잡히거나 죽는 거야 일상다반사지.”
아자딘은 부끄러워하는 지벡을 만류하고 스콧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이야기를 들으려면 스콧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겠다.
“본인은 에타르라 일족의 뜻을 저버릴 수는 없지만 우리 보고 대장을 도우라고 하더라고.”
“흥. 배신자 주제에!”
샤티는 미디암의 선택을 평가절하했다.
‘아니,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나가 일족의 배신자 신세가 된 샤티가 미디암이나 이스마일을 배신자라고 부정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다. 언제부터 아자딘 일행이었다고 배신하고 말고를 따진단 말인가.
“뭐 그대로 잡혀 있었으면 죽었을 테니까. 풀어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스콧은 의외로 뒤끝이 없었다.
‘의외가 아니라 이 녀석은 이상하게 뒤끝이 없지.’
아자딘은 뒤끝 없이 담백하게 말하는 스콧을 보며 감탄했다.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군.”
미디암이 풀어줬다고 쉽게 말하고 있지만 아자딘은 그 말만으로도 미디암이 느꼈을 고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에타르 혈족들이 아라엘 지파로 돌아선 지금, 미디암은 에타르 혈족으로서 그들을 거부하거나 배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딘의 동료들을 생각해서 그들을 풀어주는 일을 벌인 것이다.
“아자딘. 당신의 종사 미디암, 그녀에게 화가 미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풀어주었으니 곧 들킬 겁니다.”
지벡은 미디암 같은 소녀에게 부담을 지웠다는 것 때문에 안달이 나 있었다.
번듯한 성기사가 자신이 평소 적대하던 미디암의 희생으로 살아났으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 그녀는 에타르의 상속녀이니 당신들을 풀어줬다고 에타르 혈족이 그녀를 해칠 리는 없어. 하지만 빨리 내가 뭔가 해야겠군. 상대를 정신없이 흔들어놔야 그런 거로 자기들끼리 치고받지 않거든.”
“알겠습니다. 적극 협력하지요.”
“좋아. 그럼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줄게.”
우선 아자딘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들과 떨어졌을 때 알아낸 사실들을 공유해주었다.
전령일족, 아라엘 지파는 왕화의 빛을 모종의 수단으로 약화시키고 나가들과 동맹을 맺어 코랄 사하르의 왕좌를 노리고 있다.
나가들이 코랄 사하르를 완전히 함락시키면 그때 전령일족들이 나타나 코랄 사하르의 왕좌를 차지하고 그 힘으로 나가들을 격퇴.
그 후 왕좌의 신왕진서를 이용해서 전령일족에게 걸린 복무의 저주를 푼다.
그런 계획을 듣고 있던 지벡이 혀를 찼다.
“엄청난 이야기로군요. 왕의 교회의 성기사 입장으로는 정말 상상조차 못할 일입니다.”
“문제는 상당히 많은 이들이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이 도박에 뛰어들었다는 거야. 아마 아라엘이 뭔가를 보여줬겠지.”
“아,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지금 제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알고 참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벡은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성기사의 규율 때문에 살라스마 백작의 아들, 코젤 공자가 패악질하는 것도 마지못해 묵과했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너무나 급변해서 이제 왕의 교회의 규율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어린 시절부터 그 영혼 깊숙이 새겨진 성기사의 규율이 지벡을 옭아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