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50
149. 석영 왕좌 3
그래도 지벡이 규율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만 해도 일단 첫발을 뗀 셈이다.
“그럼 다행이고. 그래서 국왕과 이야기해봤는데.”
“안세투스 4세와 직접 알현했단 말입니까?”
“그래. 지금 안세투스 4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테니까. 영혼 없는 불경자건 뭐건 자기편이 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야기할 만하겠지.”
아자딘은 안세투스 4세에게 들은 이야기도 공유해주었다.
“이곳 코랄 사하르에 있는 왕좌는 왕성 지하도 부분에 뿌리가 노출되어 있다고 하더군. 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으로 접근해서 뭔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데?”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샤티가 코웃음을 쳤다.
“여기 왕은 뻔뻔하군. 자신의 품성이 부족해서 왕화의 빛이 약해진 게 아니라 누구의 잘못이라는 건가?”
“그렇지는 않소. 적어도 품성의 문제는 아닌 게 확실하오.”
지벡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세투스 4세가 국정을 그다지 잘 운영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하오. 적어도 안세투스 4세는 성정이 포악하진 않지.”
왕의 성기사가 국왕의 정책이나 성품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어떤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불경한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지벡이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더 이상 고지식한 성기사이길 거부하고 변화를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흐흐. 성기사 씨가 감흥이 많이 새로운 모양이야.”
샤티가 그 말을 듣고 지벡에게 지분거렸다.
“뭐 지벡의 말대로 사실 지금까지 왕들이 그렇게 선정을 펼치거나 하지 않아도 왕화의 빛은 어느 정도는 발동했어. 아예 이렇게 왕성에 마법적인 폭풍이 휘몰아칠 정도로 약해진 적이 없어서 그렇지.”
아자딘은 뼈 완드를 꺼내 보였다.
“샤티. 이걸로 신왕진서를 추적해봐.”
“어.”
샤티는 지벡의 눈치를 살폈다. 이 뼈 완드는 왕의 교회의 성기사 입장에서는 사악한 마법의 일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시오.”
샤티가 간단히 뼈 완드를 발동시켜 가까이에 있는 신왕진서를 추격해보았다.
그런데….
뼈 완드의 불길이 여러 개로 피어나는 게 아닌가?
“엄청 가까이에 엄청 많이 있네?”
“그렇지? 그럴 거라 생각했어.”
아자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왕진서 사본이 왕화의 빛 그 자체이고, 약해진 왕화의 빛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융합되었다면 바꿔 말해서 신왕진서 사본을 들이부었다 뺄 수 있다면…. 마치 둑에 모래주머니를 쌓았다가 빼는 것처럼…. 그 부분을 특별히 약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하지. 대장.”
스콧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왕진서 사본을 왕화의 빛으로 돌려놓으면 한동안 이곳의 왕화의 빛이 강해지다가… 왕국 전체로 평준화된다고. 그때 신왕진서 사본을 빼내면 이곳만 특별히 왕화의 빛이 약해지는 상태가 되는데 그때 저 네더의 존재를 소환하는 짓을 벌이면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겠지.”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엄청난 마법사여야겠는 걸. 왕화의 빛에서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내고 추출하는 건 나로서도 꽤 힘든 일인데 말야. 오크인 내게 힘들다면 평균 지능이 오크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인간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야.”
“…….”
“아라엘이라는 여자가 여기 있는 거지?”
스콧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만치 않은 적이겠구만. 어쩔 수 없이 여기서는 내 미남계를 써야 하나. 아름답고 고결한 오크로서는 추악한 인간과 피를 섞는 건 끔찍한 모욕이지만 대장이 내 처남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걸.”
“참아라. 무슨 미남계야. 미남계는….”
아자딘은 자기 긍정이 끝도 없이 뻗치고 있는 스콧을 말렸다.
“뭐 반은 농담이고.”
“반은 농담이면 반이나 진담이었냐?”
“내가 미남이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 하여튼 대장. 지하도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신왕진서 사본을 이용해서 왕화의 빛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려 한다면 왕좌에 접근해야 할 테니까.”
“문제는 지하도가 침수되어서 그냥 들어가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는 건데. 안이 계속 침수되어 있는지 어느 정도 헤엄치면 숨 쉴만한 공간이 나올지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막연히 물속에 들어갔다가 질식해 죽을 수도 있으니 말야.”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스콧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쓰레기 더미를 발견하고 그걸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너무 배고파서 쓰레기라도 주워 먹으려는 거야?”
샤티의 빈정거림을 들으며 스콧이 쓰레기 더미에서 생선 뼈를 하나 집어 들었다. 조각조각 난 게 누가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였다.
“흡!”
스콧이 수결을 맺고 정기를 불어넣자 뼈에 푸르스름한 귀화가 맺히더니 물고기의 유령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지벡의 표정이 좋지 않다.
“괜찮지?”
스콧은 이미 저질러 놓고 나중에 지벡에게 물어보았다.
“으음. 괘, 괜찮소. 하시오. 더 큰 선을 위해서 필요하니까.”
“그나저나 대단하군. 음식물 쓰레기도 언데드로 만들 수 있나?”
“사실 이건 시대의 천재인 나도 좀 힘들어. 마력, 집중력, 정신력, 그 모든 게 엄청 쓰이거든. 그래도 이걸로 저 물 안을 조사하면 되겠지?”
스콧은 물속으로 물고기 유령을 보내서 칠흑같이 침수된 지하도를 조사시켰다.
“중간에 공간이 있어.”
“그래? 다행이로군. 안에 괴물은?”
“그런 건 잘 안 보이고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목소리가 들린다. 아?”
스콧이 혀를 찼다.
“악어가 내 생선 유령을 먹어 버렸어.”
“악어인가.”
침수된 지하도가 계속 침수되어 있지 않고 어느 정도 헤엄치면 돌파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지만 안에 악어가 있다는 건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큰 악어는 아니야. 수가 많은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수온이 꽤 차서 악어도 헤엄치는 속도가 굉장히 느릴 거야.”
“좋아. 그럼. 악어에 주의하며 진입을 해볼까? 수중호흡은 쓸 수 있어?”
“물론.”
“나가가 그걸 못 쓰면 안 되지. 마른땅 혈족이라고 해도 말야.”
“수중호흡 마법은 나도 가능하오.”
스콧과 샤티, 지벡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겠네.”
아자딘은 마법을 쓰지 못하는지라 수중호흡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일행을 보며 살짝 부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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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지하도의 물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손을 대보니 얼음장처럼 차다. 이래서야 수중호흡 마법이 있다 하더라도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
주변은 어둡고 목재나 석재 등이 가라앉아 있어서 물 안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른다. 악어마저 출몰한다니 보통 담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으, 보기만 해도 추워.”
“헤엄은 다들 잘 치나?”
“나야 나가니까!”
샤티는 인간 형상의 변신을 풀고 나가의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마른땅 혈족이라고 해도 수영은 자신 있지.”
“스콧은?”
“음. 나는 좀 곤란한데 대장.”
수영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냥 근육 생기기 때문에 헤엄치기 싫다는 것이리라.
“샤티! 스콧의 허리에 밧줄을 묶고 끌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녀석 근육 생긴다고 싫다고 그러는 거야. 그런 응석을 다 들어줄 거야?”
“스콧이 지금까지 한 걸 생각하면 그 정도 응석은 좀 들어주자고. 나가 모습이라 기운도 셀 테니까 좀 들어줘.”
“쳇. 알겠어.”
“그럼 지벡 경은?”
“수영에는 좀 소양이 있습니다. 낚시가 취미다 보니까 자연히.”
“좋아. 그럼 가봅시다. 우왁. 물이 얼음장처럼 차네.”
아자딘은 물에 들어가면서 투덜거렸다.
물 안엔 이물질들이 많아서 눈을 뜨고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자딘은 눈이 없으니 눈에 물이 들어올 걸 걱정할 필요 없이 물 안을 잘 볼 수 있었다.
‘악어가 있군.’
몸길이가 1장에 미치지 못하는 크기지만 악어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적이었다. 하물며 물속에서 만나면 더더욱 끔찍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인지라 악어가 느리다는 게 그나마 나은 점일까? 하지만 악어는 이 정도 찬물도 버틸 만한지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아자딘 일행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확실히 먹이로 보고 달려드는 모습이다. 움직임에서 사냥의 의지가 보였다.
‘오면 죽인다.’
아자딘이 악어를 위협했지만 악어가 그런 위협을 알아들을 리 없다.
샤티가 악어에게서 가장 가까웠는데 그녀는 나가 모습으로 헤엄치며 여유만만하게 악어를 피해 버렸다.
결국 악어는 가장 가까운 아자딘을 향해 접근해왔다.
‘젠장.’
아자딘은 느리게 다가오는 악어의 주둥이를 잡고 팔로 휘감아 입을 벌리지 못하게 묶어 버렸다.
악어가 엄청난 힘으로 몸을 비틀려고 했지만 아자딘은 힘으로 악어를 제압하고 그 척추에 웬디고의 단검을 찔러넣고 비틀었다.
단 일격에 악어의 숨통이 끊어졌다.
“푸핫! 으, 엄청 차!”
샤티가 비명을 지르며 수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람 있다니까 조용히…. 응?”
지하도 안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월각궁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아라가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다들 아자딘 일행을 보고 당혹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나, 나가?!”
“뭐야? 동료인가?”
이들은 이미 나가들과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가인 샤티가 수면으로 튀어나온 것을 보고도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때 아자딘이 샤티의 뒤를 이어서 수면으로 나왔다.
“뭐야? 당신들은? 전령은 아닌 것 같고.”
“우리는 어,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네.”
“에타르 혈족의 하인인가? 다들 이름은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황제의 전령 108령 아자딘이다.”
“당신이 그….”
“무안의 아자딘!?”
아자딘의 얼굴까진 모르더라도 소문은 다들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배신자 아크레의 아들, 저주로부터 태어나 눈이 없는 저주를 받은 전령 아자딘.
별로 좋은 소문은 아니지만 아라가사라면 모를 리가 없는 유명인이다.
‘잠깐. 아자딘이라면 분명히, 원로원 쪽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라엘 님의 동생이지만 아라엘 님의 은총을 거부한다는?’
하인들은 아자딘을 보며 당혹감을 느꼈다.
‘적인가?’
‘그럼 저 나가는 뭐지?’
게다가 아자딘의 태도는 아주 당당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지? 왜들 그렇게… 아. 여기서 대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비가 너무 와서 침수되었군?”
“그, 그렇소. 물속에 악어가 있고 그 깊이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몰라서.”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당혹감을 느꼈다. 아자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어떻게 해야지?’
‘아라엘 님의 남동생이니 절대 해치지 말라고는 들었는데….’
‘하지만 주인님은 그래서 오히려 더욱더 보자마자 죽이라고 했었는데.’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을 지배하고 있는 시온 에타르나 세발리 장로, 그리고 그 외 아라엘 지파의 간부들은 아자딘을 아라엘 몰래 미리 제거해서 차후의 문제를 없애고자 했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이들이 그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결정권자가 없는 데다가 상대가 아라엘의 동생이란 애매한 관계이니 어찌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