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54
153. 석영 왕좌 7
‘하지만 강해….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강해질 수가 있지? 지금 내가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내 상태가 온전하더라도 이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디미아는 할 수 없이 주문을 시전해 크라슬리의 뒤틀린 무릎을 회복시켰다.
“윽.”
넘쳐나는 백색 마력 덕분에 크라슬리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아자딘이 엄포를 놓았으니 크라슬리는 일어나질 못하고 아자딘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완전히 치유하래?”
“아니, 그게 어쩔 수가 없다니까. 아자딘. 나도 백색 마력은 그리 능숙하지 않다고.”
“그러고 보니 백색 마법은 어떻게 다루는 거지? 마도서도 없을 텐데?”
“아라엘 님이 주셨어.”
“아라엘이?”
“그래. 신왕진서 사본의 일부를 해석해서 주신 거야. 놀랍지? 신왕진서 사본이 다 모이기만 해도 아라엘 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풀어줄 거라고.”
“흐음. 그래서 다들 아라엘에게 껌뻑 죽는 거로군.”
아자딘은 내심 놀랐다. 아라엘 지파가 입수한 신왕진서 사본의 일부를 해석한 것만으로도 이런 치유마법을 쓰게 하다니.
만약 모든 사본이 다 모이면 그것만으로도 아라엘은 신왕진서를 터득하게 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대체 왜 에타르 혈족처럼 자존심 강한 이들마저 아라엘을 지지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정말 나 혼자 역적이 되는 거 아냐? 이래도 되나?’
하지만 아자딘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더의 사신을 소환하고 휘브리스인들을 학살하는 걸 정당화할 수는 없어. 그런 힘이 있다면 더더욱 신왕진서 사본만 모으면 될 거 아냐? 왜 이런 무의미한 학살을 하는 거지?’
아자딘은 지벡에게 부탁했다.
“지벡 경. 크라슬리를 목 졸라서 기절시켜요.”
“네? 음… 어.”
지벡은 당황했다. 그가 보기에 크라슬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런 상대의 목을 졸라서 기절시키라고?
“죽이진 말고.”
“…….”
지벡이 크라슬리에게 다가가니 크라슬리는 저항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해했다. 지벡과 크라슬리의 시선이 서로 얽히자, 디미아가 크라슬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이 무슨 꼴사나운 일이람.”
크라슬리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지벡의 손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럼 지상으로 돌아가지. 크라슬리는 이대로 놔두고 디미아. 손발을 묶겠어.”
“…그래.”
디미아는 아자딘에게 손발을 단단히 묶이면서 투덜거렸다.
“피가 안 통해. 너무 세게 묶는 거 아냐?”
“살짝 묶으면 풀어 버릴 거잖아?”
“그나저나 아자딘,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 카자스 해서를 터득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했나? 이 누나에게 비법 좀 알려주지 않을래?”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고 휴식과 영양을 골고루 신경 쓰는 거지.”
“…….”
아자딘이 한 말은 어린 시절, 디미아가 아자딘 기수의 소년 소녀들이 물어볼 때 써먹던 대답이었다.
아자딘은 디미아의 팔다리를 단단히 묶고 그녀를 들쳐 업었다.
“그럼 지상으로 돌아가자. 아라엘이 자기가 불러온 재앙을 처리하고 구세주인 양 행세하는 걸 놔둘 수는 없지.”
‘제법인데.’
꽃의 디미아는 아자딘에게 붙잡혀 지하도를 이동하면서 내심 감탄했다.
‘아라엘이 불러온 재앙을 처리하고 구세주인 양 행동한다.’
그것은 아라엘 지파의 계획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었다.
아라엘 지파는 이미 해석이 끝난 신왕진서 사본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나가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을 위해 왕화의 빛을 흩어 네더의 사신들을 강림시킬 것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서 바다뱀 나가들은 엄청난 숫자의 인신공양을 통해 네더의 사신을 불러들일 준비를 하고 군대를 동원해 코랄 사하르를 침공했다.
이 폭풍우, 군대, 그 모든 것을 동원하는 데 나가들이 치른 희생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렇게 나가들을 희생양으로 코랄 사하르를 위협하고 네더의 사신이 강림하면 코랄 사하르의 왕좌에 아라엘이 앉아서 그 힘으로 네더의 사신을 격퇴한다.
아라엘이 황제의 혈통으로서 정당한 왕좌의 주인임을 만천하에 선언함으로써 왕의 교회의 위엄을 훼손하고 전령일족이 더 이상 박해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가오는 멸망, 목성의 시대를 극복할 구세주임을 천명한다.
그것이 아라엘 지파의 계획이었다.
‘전령들이 정략이나 군략을 배우기는 하지만 이 녀석 똑똑하네. 과연 아라엘 님의 쌍둥이라 이건가? 그러고 보니 복무의 저주로 태어나는 이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전령이 된다고 했지. 지금까지는 그 저주의 혜택을 받은 게 아라엘 님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면 이 녀석도 그럴지도 모르겠네?’
디미아는 아자딘의 영특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
침수 구간을 헤엄쳐서 나오니 밖에는 전령일족의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음?”
“디미아 님?!”
그들은 아자딘이 밧줄로 디미아의 손발을 묶어서 무슨 시장에 내다 팔리는 가축 꼴로 만든 것을 보며 당황했다.
“아. 다들 진정해. 마법 의식의 실패 때문에 이런 거니까. 그렇지?”
“…응.”
디미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인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디미아가 아자딘을 끌어안고 친한 척하며 말했다.
“아라엘 님의 동생이잖아. 믿어.”
“어?”
보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랐지만 아자딘은 태연히 전령일족의 하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네더의 사신은 어떻지?”
“지금 난리가 아닙니다. 바다뱀 나가들 중 일부가 네더의 권속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나가들도 통제가 안 되는 모양이에요.”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광란에 빠진 나가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어요.”
“성문에는 계속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는데 성기사들의 백색 마법이 약해지면서 많이 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아라엘은?”
“아라엘 님은 저희도 잘….”
“필요한 때 나타나시겠다고 하셨으니 근처에 계신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럼 난 왕성 쪽으로 가지.”
“네. 저,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너무 밀리면 골치 아프니까 나가들을 상대하는 걸 도와줘. 어차피 여기까지의 동맹이었잖아?”
“예. 알겠습니다.”
하인들은 아자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가려고 했다.
“아, 잠깐. 그 전에.”
“네.”
“화살 좀.”
아자딘은 화살을 보급받는 걸 잊지 않았다.
*********
뇌광이 번뜩일 때마다 바다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제 딱히 마력적인 재능이 없더라도 다들 네더의 사신, 그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히이익!”
“모, 목성의 시대다!”
“맙소사. 신들이시여.”
“히익…. 보, 보지 마. 우리가 저들을 보면 저들도 우리를 본다!”
사람들은 네더의 사신, 그 그림자만으로도 벌벌 떨었다.
아직 현세에 직접 관여하지 않지만 바다에 몸 절반이 잠겨 있음에도 등대보다도 더 높이 치솟은 거대한 거인의 그림자는 보기만 해도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으아. 그동안의 가짜 신들을 버리겠습니다. 네더의 신이여. 이름을 가르쳐 주시면 당신께 귀의하겠습니다!”
개중에는 야에가스 신족에 대한 신앙을 버리겠다고, 네더의 신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친놈들! 무슨 짓이냐! 비켜라!”
하사관들이 광란에 빠진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고 목재 가구들을 가져와 문과 진입로 쪽에 보강을 시작했다.
“고생이 많군.”
아자딘이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당당히 걸어왔다.
“윽? 너는?”
“황제의 전령 108령 아자딘이다! 안세투스 4세께서도 직접 내게 명을 내렸으니 길을 비키도록 해라.”
“…….”
“이게 뭔지 알겠느냐?”
아자딘은 안세투스 4세에게 받은 목걸이, 수중호흡의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음. 진짜군.”
왕이 평소에 차고 다니던 목걸이라는 걸 알아본 지휘관이 당혹스러워했다.
“쳇! 전령일족 따위랑 손잡으니까 이 모양이지!”
“아. 지금 국왕을 비난하는 건가?”
아자딘은 투덜거리는 하사관 중 한 명을 보며 물어보았다.
“알겠으니까 들어가! 젠장. 우린 다 죽었어! 멍청한 왕 때문에 이게 뭐야!”
“멍청한 왕이라니. 어려워지면 너무 쉽게 숭배의 대상을 바꾸는군.”
“그래. 마음대로 지껄여라. 우리가 내일도 살아 있다면 벌 따위는 달게 받지!”
하사관은 그리 투덜거리며 무기들을 챙겨 배치 장소로 이동했다.
말은 험하게 하지만 자신의 사명은 다하는 모습이었다.
“흠….”
아자딘은 그 모습을 눈여겨보고 왕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우워어어어!
비바람 너머 바다에서 보이는 거대한 거신이 포효한다.
그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마치 화산탄처럼 거대한 돌덩이들이 떨어진다.
그것은 코랄 사하르 시내 곳곳에 떨어져 빗물로 침수된 곳에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고 더러는 건물에, 첨탑에, 돌벽에 충돌해 스스로 터져 죽는다.
터지지 않고 무사히 지상에 착지한 것들은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고 다관절로 이루어진 몸과 무수히 많은 촉각으로 대지를 밟고 돌아서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히익!”
“으아!”
병사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괴물에 기겁하고 있을 때 바다뱀 나가 중 광란에 빠진 나가들은 기꺼이 그 둥근 괴물에게 다가가 자신들의 몸을 바쳤다.
둥근 공벌레 같은 괴물이 입을 벌리자 사람 팔뚝만 한 굵기에 단도처럼 날카로운 입이 드러났는데 공벌레 괴물은 그걸로 나가의 뒤통수를 꿰뚫어 뇌수를 빨아내고 자신들의 몸을 바다뱀 나가에 붙였다.
바다뱀 나가의 눈이 회까닥 돌아가고 입에서 거품을 내뿜더니만… 이내 둘이 한 몸이 되어 일어나는데 몸 전체에서 거무스름한 독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건!”
“젠장! 쏴라!”
병사들은 성벽 위에서 헤비 크로스보우로 변이된 나가를 향해 볼트를 발사했다. 하지만 나가는 몸을 앞으로 숙여서 자신의 등에 달라붙은 네더의 괴물, 그 각질로 철창을 막아냈다.
-팅!
놀랍게도 쇳소리가 나며 철창이 튕겨 나갔다.
“어?”
“마, 말도 안 돼!”
헤비 크로스보우의 위력은 나가 한 명 정도는 가뿐히 관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헤비 크로스보우가 미끄러진다. 전부는 아니고 정확하게 맞은 놈들은 관통당하지만 입사각이 좋지 않은 것들은 미끄러져 버린다.
“맙소사!”
“정신 차려! 계속 쏴라! 파이크 병! 접근을 차단해라!”
하사관들의 명령하에 창을 든 병사들이 앞에 나서고 석궁수들은 즉시 석궁을 재장전했다.
네더의 존재와 결합해 변이된 바다뱀 나가들과 병사들의 처절한 전투가 폭풍우 속에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
안세투스 4세는 야에가스 신족의 왕좌, 석영 왕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밖에서 뇌광이 번뜩이고 곧이어 천둥이 뒤따른다. 선명하게 대지를 비추는 뇌광 속에서 그의 얼굴은 마치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워어어어어어!
폭풍우 속에서 거대한 괴물의 포효가 아스라히 들려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뭔가가 쏟아져 내린다. 저 폭풍우 속의 거신이 입에서 뭔가를 뿌려대는데 그것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랄 사하르 성 곳곳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중 일부가 왕성 첨탑에 부딪히자 첨탑이 흔들리고 왕성 옥좌의 방에도 진동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