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
15. 이빨의 권속들 6
“우린 그저 마물을 공격하자는 거요! 마물을 쓰러뜨리고 나면 그다음에 전령일족을 잡든지 뭐 그렇게 합시다!”
“아! 그, 그렇지요!”
“마물부터 공격합시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활을 들고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
아자딘은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화살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쏘는 것에 비하면 다들 비실비실하기 그지 없는 활이다.
개중에는 강궁들이 좀 있긴 했지만 그런 강궁들조차 살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빨에 맞아 튕겨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나름 돕겠다고 활을 쏘는 것 같긴 한데 아자딘으로서는 저들이 쏘는 화살이 아까웠다.
‘그 화살, 나나 주지.’
하지만 사람들의 공격 방향이 철저히 마물에게만 치우쳐져 있는 걸 보니 저들의 결의를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마물과 싸울 때까지는 아자딘을 자신들의 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물이 쓰러지고 나면 돌변할지 모르지만 어쨌건 지금은 저들이 아자딘 자신을 동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 그는 만족했다.
“그럼….”
아자딘은 약간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어깨를 풀기 시작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기지개를 펴고 팔을 붕붕 돌리기도 하면서 몸을 푼다.
“뭐 하는 거냐! 에이이잇!”
이빨의 왕의 권속이 된 고블린이 짜증을 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아자딘이 자신의 촉수 공격이 닿는 거리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깎아친다는 걸 알고서부터 놈은 점점 거리를 좁히려 했다.
그러나 가까워지면 마을 사람들이 쏘는 화살도 그만큼 아파진다. 공격의 정밀도가 오르고 투사체의 위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들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아자딘은 어깨를 어느 정도는 풀 수 있었다.
“좋아. 그러면….”
아자딘은 소화액에 찌든 검을 내려놓았다.
“시작해볼까. 아직 어깨를 다 풀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소화액에 부식되기 시작한 검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대신 바닥에 떨어진 이빨을 주워들었다. 마치 삼각형의 도끼머리 같은 예리한 이빨이다.
상어의 이빨과 닮아 있는 그것을 집어 든 아자딘은 잘 풀린 어깨를 이용해 옆으로 휘두르며 던졌다.
-쐐액!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이빨은 촉수마저 찢었다.
-퍽!
그리고 이빨의 왕의 권속, 그 몸통에 박혔다.
“키에에에엑!”
갑작스런 격통에 이빨의 왕의 권속이 몸부림쳤다.
“좋아! 이 정도면 먹히는군.”
아자딘은 그동안 검으로 떨군 이빨들을 주워 빠르게 던지기 시작했다.
아직 어깨와 팔꿈치가 잘 풀리지 않아서 전력투구를 하진 않지만 대신 깔끔한 중심이동과 정확한 타이밍으로 던지기 시작하니 어깨와 팔꿈치에 큰 무리를 주지 않고도 빠른 투척이 가능했다.
아자딘의 손에서 벗어난 이빨들은 예리하게 날아가 이빨의 왕의 권속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격통을 버티지 못한 권속의 몸체에서 문신한 고블린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네, 네놈이! 나는 이빨의 왕이 될 거다. 더 위대한 존재로, 신으로 거듭났는데 고작 인간 하나 때문에….”
“공교롭게도 내가 신왕살해자이기 때문이지.”
아자딘은 그리 대답하며 다시금 날카로운 이빨을 던져 고블린의 머리통을 쪼개 버렸다.
*********
고블린의 머리통을 쪼갠 후로도 이빨의 왕의 권속은 계속 살아 있었지만 이미 승부는 나 있었다. 아자딘이 던질 투척물은 바닥에 무수히 깔려 있고 권속이 가하는 일반적인 공격은 아자딘을 맞출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이빨의 왕의 권속이 마법을 시전하는 것뿐인데 아자딘은 고블린 머리가 튀어나오면 나오는 대로 박살내 버리니 오히려 권속의 수명만 단축시켰다.
“아, 안 돼! 이빨의 왕 카라론이여!”
이빨의 왕의 권속이 되어 찬탈 의지를 보였던 고블린 주술사는 마지막에 자신이 죽을 때가 되자 이빨의 왕에게 청원하며 스러졌다.
결국….
-쿠르르릉!
거대한 살덩이와 이빨덩이, 이빨의 왕의 권속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아직 레서 데몬이나 그런 것들이 나타날 우려가 있지만….’
아자딘은 살덩이에 닿는 것에 주의하며 앞으로 뛰어들어 바닥에 떨어진 완드를 회수했다.
‘잘은 모르지만 이놈, 이걸로 신왕진서의 위치를 찾곤 했던 것 같은데?’
만약 정말 이게 신왕진서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면… 아자딘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고작 척후인 놈이 들고 있었을 정도니 마물들 사이에서는 꽤 흔한 물건일지도 모르겠군. 뭐가 되었건 챙겨둬야지.’
아자딘은 그것을 챙기고 돌아섰다.
“으음.”
“영혼 없는 불경자!”
마을의 자경단들이 아자딘을 노려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활시위를 당기는 놈들까지 있었다.
‘매너가 없는 놈이군. 활시위를 당기는 건 실수해서 발사할 수도 있는 일인데.’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물이 날뛸 때까지는 공투가 가능했지만 결국 그는 박해받는 전령일족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분명 자신들을 도운 아자딘에게 고마워하고 그를 환영하는 이도 있지만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자경단의 리더로 보이는 사냥꾼이 대표로 질문을 던졌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저 마물들을 왜… 왜 퇴치한 것이냐?”
“그건 아마, 저놈이 데려온 마물일 겁니다!”
“맞아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마물이 나타나다니!”
몇몇 사람은 전령일족이라면 학을 떼는지 되도 않는 억지를 부렸다. 황제의 전령이 영혼 없는 불경한 것들이며 죽어 마땅한 끔찍한 것들이라고 배웠을 테니 저리 생각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시골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이들은 왕의 교회에 의해 약탈당하면서도 교회가 주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아자딘은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나는 황제의 금화에 따라 사명을 다할 뿐이다. 누군가가 너희들을 위해 황제의 금화를 써서 소원을 빌었다.”
“네?”
“누군가가?”
“호, 혹시 우리 중에 있나?”
“그건 말해줄 의리가 없고, 말할 권한도 없다.”
아자딘은 당황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관문 방벽 앞에 섰다. 화살과 돌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일이 끝났으니 이제 지나가도 되겠지?”
“…….”
“아니면 왕의 교회를 위해 나와 싸울 건가? 방금 전까지 귀족의 사생아에게 약탈당했으면서?”
“그건….”
“우리의 신실함을 모욕하지 마라.”
“그래, 너희들은 신실한 백성들이지. 암, 그렇고 말고.”
아자딘은 하품을 했다. 금화의 임무 때문에 강행군을 해서 가뭄이 든 개척 마을을 주파한 데다가 연이어 이런 사투를 벌였으니 아무리 단련된 전령이라 해도 피로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지나가겠다.”
“윽?!”
활에 시위를 건 이가 발사하려 했지만 그런 그를 사냥꾼이 제지했다. 그 사이 아자딘은 가볍게 방벽을 박차고 올라 벽에 손도 짚지 않고 사뿐히 관문에 올라섰다.
“화살 몇 개는 가져가도 되겠지?”
아자딘은 방벽 위에 놓인 화살통에서 화살을 한 움큼 챙겼다.
“…….”
“으음.”
“금화의 악마가, 금화 때문에 우리를 도왔다고?”
“마을 사람 중 누가 금화를 썼다는 거잖아?”
“누구지?”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의심하며 눈치를 보았다. 물론 그런 사람은 없다.
‘거짓말이니까.’
아자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방벽에서 뛰어내려 관문을 넘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사냥꾼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군.”
사냥꾼은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사냥꾼은 아자딘이 거짓을 말했다는 걸 알아챘던가, 그게 아니면 누군가가 정당한 보수를 지불했다 하더라도 아자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왕의 교회에서는 전령일족과 관련되는 것만으로도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니 이 사냥꾼이 이리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흠, 별말씀을.”
아자딘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가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금화는 무슨… 거짓말을 태연히 하는구나.]황제의 목소리가 아자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계속 왕의 교회를 두려워할 거 아냐?”
[저들이 밉지 않은가? 네가 마물들을 물리쳐 주었는데 저런 태도라니?]“뭐 사람은 누구나 약한 존재지. 저들이 장님 행세를 한 나에게 잘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해. 누군가 무력한 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들 또한 친절을 받아 마땅하잖아?”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사람들을 피해 길을 재촉했다.
“아, 그런데 피곤하다. 장님 행세를 하고 다니면 관문을 편하게 다닌다고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된통 걸렸네.”
*********
이빨의 왕의 권속들로부터 동방 관문 마을을 지켜낸 아자딘은 길을 따라 한 식경(食頃)을 달렸다. 그러자 곧 케림 산양을 끌고 있는 두 소년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횃불을 하나 들고 길을 되돌아오고 있다가 아자딘을 발견했다.
“아! 아자딘! 오셨군요!”
미디암이 기뻐하며 아자딘을 맞이했다.
“괜찮아요? 어디 몸 다친 데는 없지요?”
“없어. 날 기다리느라 돌아왔나? 그냥 그대로 가도 됐을 것을.”
어차피 잠깐의 동행이다. 이미 둘이서 아자딘에게 찾아올 수 있었다면, 이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성역까지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미디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해요.”
“아니 섭섭하라고 하는 말이야. 그래, 그 횃불은 뭐냐?”
“일행 중 한 명이 낙오했다니까 사람들이 준 거예요. 같이 찾겠다고 하는 거 설득해서 돌려보내느라 너무 힘들었다고요.”
“이거라도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아자딘이 사람들 일행에서 이탈해 산길에서 길을 잃었다고 해명하니까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아자딘을 찾으라고 횃불을 준 모양이었다.
“어떻게 잘 떨궈냈구나. 사람들이 어린 너희들을 걱정해서 그냥 보내주지 않았을 텐데.”
“네. 산양이 어지간한 마물은 물리쳐준다고 하니까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알아듣던데요. 휘브리스의 백성들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들이 저희가 아라가사라는 걸 모른다면 어린… 아니 제가 너무 예뻐서 다들 저에게 친절하더군요.”
“후후. 어린 게 아니라 예뻐서 친절히 대해주던가?”
“네.”
미디암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 13살이에요.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니라고요. 북방에서는 제 나이에 결혼한 왕비도 있는데.”
“그나저나 금화도 주지 않는데 쓸데없이 힘을 빼셨군요. 휘브리스인들이 친절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그렇게 힘을 뺄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이스마일은 아자딘과 미디암의 관계가 좋아지는 게 못마땅했는지 굳이 토를 달았다.
“내가 장님 행세를 할 때 그들은 아무 이득도 바라지 않고 날 도왔다. 그렇기에 나도 이득을 도외시하고 그들을 도왔을 뿐이야. 미디암도 말했다시피, 백성들을 돕고 지키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 미학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어지지.”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마물들은? 얼마나 있었죠? 마물들을 물리치니 사람들이 고마워하던가요?”
미디암이 궁금해하면서 물어왔다. 창립자 일족, 에타르 혈족의 일원이라면서 거만떨고 있지만 아직 아이는 아이인 듯 세상을 구경하며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군. 뭐 일족의 아이들은 아무리 창립자 일족이니 뭐니 해도 성역에서 고된 훈련을 받고 자라니까. 세상일에 호기심 많을 나이지.’
아자딘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어보는 미디암에게 대답해주었다.
“오우거 하나에 고블린 일개 소대 정도? 그리고 쿠르트 신족의 권속이 하나 있었지.”
“엑? 권속이요?”
“쿠르트 신족의 권속을 쓰러뜨렸다고요?”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니었어.”
아자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