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0
159. 학질의 비약 2
‘내가 미쳤냐. 재생마법이 있고 없고 얼마나 차이가 큰데 널 놔주게? 게다가 넌 이미 내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데다가 나가들 사이에서 지위가 별로 높지 않아서 풀어줄 수도 없어.’
부상을 치유할 수 있는 재생 마법은 너무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샤티는 나가들 사이에서 직위가 그리 높지 않다. 아자딘이 그녀를 풀어줘 보았자 나가들에게 그녀가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오히려 아자딘에 대한 정보만 쪽쪽 빨릴 뿐, 나가들은 그녀에게 획득한 정보를 이용해서 신왕진서 사본을 대량으로 획득한 아자딘을 집요하게 공격할 게 분명하다.
샤티를 위해서도 아자딘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저 나가라쟈가 사람이 좋아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외유 중이니까 그런 거고, 자신의 왕국에 돌아가면 절대로 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샤티.”
“어느 정도 벌을 받는 건 각오했다고. 채찍 좀 맞고 눈알과 혀를 뽑히고 팔다리 좀 잘리는 정도야 뭐….”
그 정도는 감내할 만하다. 인간에게는 말도 못 할 끔찍한 형벌이겠지만 나가들은 재생능력이 있어서 그런 형벌도 영구적인 손상이 되진 않는다.
“아직도 모르겠어? 샤티? 내가 널 놓아주고 싶지 않단 말이야.”
“…….”
“너와 함께 하고 싶다.”
‘재생 마법 술사와 함께 여행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듣는 사람들은 모두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무사히 가게.”
데하레스는 아자딘과 작별을 하고 배를 타고 떠나갔다.
*********
“정말, 말이 잘 통하는 나가로군요.”
지벡은 데하레스가 내비치는 품격에 내심 감탄했다. 그러자 스콧이 으스댔다.
“하지만 나가니까 인간을 먹을걸? 저 녀석들 식량엔 인간도 있어. 내가 인간이 아닌 걸 다 먹으니까 슬슬 인육을 먹어야 하는데, 인간들 앞에서 그 꼴을 보여주기 싫으니까 내리게 한 거지.”
‘아니, 그런데 원인을 따지고 보면 네가 손님들한테 내줄 음식을 다 먹어 버려서 그런 거 아니냐? 뭐 잘했다고 으스대?’
인육을 먹는 괴물, 나가들을 옹호하기도 쉽지 않은데, 데하레스의 배려를 생각하니 스콧이 이러는 게 은근히 밉상이었다.
“그러나저러나 여긴 해안절벽 지대인데 어떻게 올라가지?”
해안절벽 아래에 약간의 모래톱이 있는 지형이라 인근에 민가는커녕 짐승의 길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줘도 이런 데 내려놓다니.”
“케림 산양이 있으니까 크게 문제는 안 될 거야.”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절벽들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는 길 하나를 발견했다.
“이걸 기어오르자고?”
“기다려 봐. 내가 먼저 올라가지.”
아자딘은 케림 산양의 안장가방을 덜어내어 짐을 가볍게 하고 산양에 올라탔다. 산양은 능숙한 솜씨로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비탈길을 어렵지 않게 오른다.
“와.”
“좋아. 그럼 이제….”
아자딘은 위에서 밧줄을 풀어서 밑으로 내리고 근처 바위에 밧줄을 건 뒤 산양의 안장에 밧줄을 연결했다.
“좋아! 말을 묶어!”
“마, 말을 말입니까? 엄청 무거울 텐데요?”
지벡이 반신반의하면서 아자딘이 시키는 대로 군마를 밧줄에 묶었다. 그러자….
“흡!”
아자딘이 절벽 위에서 밧줄을 당겨 군마를 끌어올리는 게 아닌가? 놀란 군마가 벽을 발로 밟자 벽에 충돌하는 일 없이 절벽을 그대로 올라올 수 있었다.
“자, 다음!”
아자딘은 그렇게 지벡과 스콧, 샤티를 끌어올렸다.
“휴우. 대단한데, 대장. 엄청난 힘이야. 신왕진서 사본으로 카자스 해서가 더 강화되었나.”
“그런 것도 있지만 당연히 나 혼자 끈 게 아니지. 내 산양이랑 같이 끌었어.”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힘인걸. 그 정도면 난 다시 휠체어를 만들어서 타고 다녀도 되겠군. 아니면 지게는 어때? 이렇게 나무로 만들어서 대장이 등에 짊어지고 내가 그 위에 타는 거야.”
“입으론 대장이라고 부르면서 짐꾼 취급하네.”
“적재적소라는 거지. 육체파인 대장이 몸을 쓰고 두뇌파인 내가 두뇌를 쓰고.”
“두뇌만 쓰지 왜 입을 그렇게 써서 처먹어서 쫓겨나게 만들어. 조금 덜먹었으면 편하게 배 타고 갈 수 있었는데.”
“자자, 됐고. 지금 중요한 것은 부족한 식량과 마초를 보급하는 일이야. 식량은….”
그러자 지벡 경이 말린 생선들을 꺼냈다. 배를 타는 동안 지벡은 부지런하게 낚시를 해서 나가들에게 넘겨주고 일부는 바닷바람에 말려 건어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양은 스콧이 하루면 다 먹을 양이었다.
“마초가 떨어진 게 문제지.”
스콧은 뻔뻔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마초가 부족할 때 먹이는 콩이나 귀리가 다 떨어져서 자루가 텅 비어 있다.
“가까운 마을을 찾아봐야지.”
*********
푸른 두건을 머리에 두른 청년들이 마을의 상인과 창고들을 털어 값진 물건들을 수레에 옮겨 싣고 있었다.
“우리는 청건당이다!”
“병량이 부족해서 징발표를 주고 징수해가는 것이지 결코 도적질이 아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마물과 도적들을 물리쳐주는 덕분에 너희들이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는 세금으로 생각해야지!”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식량과 물자를 약탈하면서 대신 종이에 적은 징발표를 내주었다.
전쟁이 나서 군대가 급한 대로 현지의 물자를 조달할 때 나중에 갚아주겠다는 징표인 영수증, 그것이 징발표였다. 그런데 이들이 뭐라고 징발표를 발행한단 말인가?
어이없어하던 한 상인이 대표로 들고 일어나 따졌다.
“이 징발표, 언제까지 어디서 주겠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습니까!”
“어허. 세상이 태평해진 후 청건당 본부로 오면 지불해 주겠다니까!”
“그 본부가 어딨습니까?”
“그야 청건당의 세상이 오면 온 세상 여기저기 생길 예정이지!”
“아니 그런데 네놈, 뭔 불신이 그렇게 많은가! 혹시 쿠르트 사교도인가?!”
자칭 청건당이라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따지는 상인을 창칼로 윽박질렀다.
“시, 식량이야 그렇다 칩시다. 은식기를 거둬가는 것은 뭡니까?!”
“야영 중 집기가 부족해서 거둬가는 것뿐이다.”
“그럼 나무 식기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저도 군대에 있어봐서 압니다. 솥이나 냄비를 걷어가는 거야 야전에서 조리할 필요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대체 은식기는 왜….”
상인이 끝까지 따지고 들자 징발표를 내주던 서기가 피식 웃었다.
“이봐요, 노인장.”
노인장이라 불린 상인이 흠칫 놀랐다.
마치 혀에 독이 발려 있어서 내뿜는 숨결마다 독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음습한 어조로 돌변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우리가 도적 떼다? 그렇게 말하는 길 원해? 그런데 그러면 당신들 끝장이야. 알아? 보아하니 저기 당신 딸인가? 첩인가?”
“따, 딸이오.”
“반반하게 생겼는데 우리가 그냥 도적 떼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는 나름 군율을 유지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우리가 눈 돌아가면 무슨 일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
“…….”
“얌전히 징발표를 받고 우리 청건당이 우뚝 서길 바라라고. 그러면 나중에 이거 다 돌려준다니까.”
“그런데 물자의 절반만 적혀 있는데….”
“그야 세금이지. 우리는 지금도 이 아디로프 지방의 도적 떼와 마물들을 퇴치하느라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니까. 우리의 노고를 생각해서 이 정도 세금은 내줘야 하지 않을까?”
“…….”
“당신은 오히려 기뻐해야지. 세금을 적어서 징발표에서 깔 정도면 우리가 갚으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징발표를 적어주던 서기가 상인을 은근히 협박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세금을 반절이나 떼는 놈들의 세상이면 상인들 입장에선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은데?”
“뭐?”
서기가 뒤돌아보니 얼굴에 투구를 쓴 청년 한 명이 그들 뒤에 약탈품들, 아니 세금을 실은 짐수레 위에 앉아 있었다.
‘어?’
‘언제 와 있었지?’
그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은 없고 이 청년 혼자만 이곳에 있다.
“그래서 당신들은 궁극적으로 뭘 원하지? 아디로프의 영주라도 될 셈인가?”
“뭐냐? 넌?”
“지나가던 나그네.”
“나그네?”
“하하. 이 자식.”
청건당 병사들이 창대를 거꾸로 잡고 자칭 나그네라는 가면의 청년을 후려 갈겼다. 하지만 창대는 허공을 갈랐다.
어느새 청년이 짐수레 위에서 내려오면서 자연스레 창이 빗나간 것이다.
“어?”
“아무래도 그냥은 대답을 안 해줄 것 같군. 좋아. 그럼 평화롭게 대화할 분위기를 조성해볼까?”
청년이 그렇게 말하더니 바닥에서 돌을 집어 들었다.
“안 내려놔?”
청건당 병사들이 긴장했지만 청년은 아주 작게, 팔꿈치와 손목의 스냅만으로 돌을 던졌다.
그런데….
-빡!
청건당 병사 한 명의 투구가 찌그러지고 그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던지는 동작과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이, 이 자식!”
“마법사인가?!”
놀란 청건당 병사들이 당황할 때 자칭 나그네가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청건당은 뭐랑 싸우고 어떤 목적이 있지? 아디로프 남작, 란타릭의 백작인 기욤발트 경이 자네들의 주군인가?”
“이 자식!”
“대화할 분위기가 아직도 조성이 안 됐나?”
또 한 명의 병사가 뒤로 나뒹굴었다.
“저, 저 새끼 잡아!”
병사들이 그에게 뛰어들었지만 자칭 나그네는 짐수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사들을 따돌렸다.
“좌우로 나뉘어! 머저리들아!”
서기의 지시에 창칼을 든 병사들은 좌우로 나뉘어 나그네를 덮치려 했지만… 이제 남은 병사가 둘뿐인지라 좌우로 나뉘어 봤자 별로 위협적이지가 않다. 게다가….
-퍽!
또 투석에 병사 한 명이 쓰러졌다.
“젠장!”
마지막 남은 청건당 병사가 분노하며 창을 찔렀지만 나그네는 한 손으로 창의 목을 덥석 잡아 버렸다. 마치 바위틈에 끼인 것처럼 창이 꼼짝달싹도 못 한다.
“징발표를 내주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영구적 손상을 입히진 않겠다. 만약 사람들을 해쳤으면 네놈들을 거세했을 거다.”
가면의 청년은 그리 말하고 손날로 창대를 후려쳤다. 기름을 잘 먹여서 탄성 있고 튼튼하고 질긴 창대가 깔끔하게 절반으로 부러졌다.
“어?”
-쉭!
두 동강 난 창의 날 부분이 날아가 서기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갔다.
나그네가 말한 대로 창이 그의 사타구니를 해치진 않았지만 딱 한치만 더 높게 날아왔다면 서기의 생식능력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했다.
“으억… 이, 이 자식.”
식은땀이 서기의 볼을 따라 흐른다. 너무 빠르게 날아와서 피하는 것도 막는 것도, 아니 인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창날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는 순간 서기는 이 나그네가 원한다면 정말 그들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