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1
160. 학질의 비약 3
때마침 창을 빼앗겨 빈손이 된 병사가 마을 입구에서 들어오는 또 다른 인물들을 발견하고 기겁해서 외쳤다.
“서기! 저기, 성기사가!”
전신 판금 갑옷을 입고 왕의 교회의 휘장을 두른 기사가 말을 타고 마을 어귀로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젠장. 어떻게 된 거야?”
“퇴각!”
청건당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약탈품들을 내려놓고 부상자들을 챙긴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
해안절벽에서 기어오른 아자딘은 한동안 길을 헤매야 했다.
“아라가사의 지도도 이곳은 그다지 잘 표시되지 않아서.”
아자딘은 코라사르 방면의 전령으로 임명되면서 아라가사 원로원에게서 코라사르 방면, 자기에게 할당된 영역의 지도를 받았다.
이곳 아디로프 지방은 그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곳이라 아자딘도 이 지방 지리에 밝지 못했다.
“아디로프라면… 란타릭 백작의 영지 중 하나 아닙니까?”
“그래. 황제의 보물고에 대한 비밀이 이곳에 있다고 했었지.”
전임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의 서기였던 브란드의 말에 의하면 가르나헤어는 아디로프에서 황제의 보물고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근 마을에 들러서 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마을에 무장병력이 있는 것 같은데?”
“네?”
“일단 지벡 경은 워낙 화려하니까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알아볼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먼저 잠입했다가 청건당이라는 일당을 만나고 만 것이다.
“상황을 알아본다면서 싸워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지벡이 타박한다.
“어느 정도 나쁜 놈들인지 몰라서. 약탈은 하는데 징발표를 뿌리고 사람도 죽이거나 폭행하지 않으니까.”
아자딘은 원칙이 확고했다. 그냥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그런 아자딘의 원칙상 청건당이라는 이들은 아직 죽이거나 영구적 손상을 입힐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아자딘은 짐수레를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성기사 님의 일행이신가요?”
“그런 셈이지. 아참, 콩이나 귀리를 좀 사고 싶은데.”
아자딘은 은화를 꺼내서 상인의 손에 들려주고 안장에 매달린 자루를 내주었다. 콩과 귀리 자루를 채우기엔 충분한 돈이다.
‘사람들을 도와주고도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 후. 역시 황제의 전령다운 품격 있는 행동이라니까. 하지만 이 상인이 설마 은혜를 갚겠다고 돈을 안 받으면 어쩌지?’
아자딘이 그런 걱정을 할 때였다.
텅 비어 버린 자루를 받아든 상인이 기뻐하며 막 청건당들에게 징발당할 뻔한 짐에서 몇 됫박을 퍼 아자딘의 자루에 담아주었다.
그런데….
“응? 그게 끝? 나 은화를 낸 것 같은데.”
“어허. 요즘 식량이나 곡물이 비싸다오. 최근에 그 코랄 사하르에서 피난민들이 많이 몰려와서 식량값이 폭등하고 있단 말이오. 자루를 더 채워주길 원하면 돈을 더 내시오.”
상인이 그리 말하며 아자딘에게 손을 내밀었다.
“…….”
방금 청건당들에게 털릴 뻔한 걸 구해줬는데 제값을 다 받아야겠단 말인가?
‘뭔가 인사치레를 기대하고 한 짓은 아니지만 이 인간 엄청 밉상이네.’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고 돈을 더 꺼내서 상인에게 얹어주었다.
“좋소. 이 정도면 뭐, 귀리 한 됫박 덤으로 더 드리리다.”
“아. 네.”
아자딘은 고작 귀리 한 됫박의 덤을 주면서 생색내는 상인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평년이면 손수레를 가득 채울 정도의 곡물을 살 수 있는 돈을 냈는데 자루 두 개 겨우 채워주면서 됫박 하나 가지고 생색이라니.
“코랄 사하르에서 난민이 몰려들었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저 청건을 머리에 둘러쓴 놈들은 뭡니까?”
“아, 푸른 나무 열매로 염색한 수건을 두른 놈들 말이오? 자신들이 청건당이라고 하면서 날뛰는 놈들이오. 사이비 종교지.”
“사이비 종교?”
“그렇소. 최근 브투마 쪽을 통해서 육로로 들어온 종교인데 왕의 교회는 대체 뭘 하는지. 하긴 그러니까 코랄 사하르를…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왕의 교회의 성기사 앞에서 왕의 교회를 험담하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하지만 최근 코랄 사하르가 폭풍우에 휩쓸려 난민들을 양산하자, 왕의 교회에 대한 존경심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었다.
‘안세투스 4세만 불쌍하군.’
왕화의 빛이 약해진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암군으로 역사상 길이 남게 될 것이다.
“그 사이비 교도들이 뭘 합니까?”
“뭐긴 뭐겠소. 난민들이나 철없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여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난리를 치고 있지. 유력자들을 잡아가 어떻게 잘 구슬려서 돈을 내게 하고 병대를 훈련하고 있는 중이오. 문제는 난쟁이들이 거기에 붙었다는 건데.”
“난쟁이라면 드워프요?”
“그렇소. 드워프들이 청건당에 지원하면서 놈들 기세가 아주 살았지. 조심하시오.”
“알겠습니다. 아디로프 남작 성은 어느 쪽에 있지요? 혹시 이 근방 지도를 살 수 있습니까?”
“아, 지도 말이오?”
상인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은인이니 싸게 해드리지.”
“…….”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도움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젠장. 바가지를 엄청 씌우네. 곡물은 나중에 사도 될 걸 그랬어.”
아자딘은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지도를 펼쳐보았다.
아디로프 지방의 지도를 보니 이 지역은 놀랍게도 코라사르 왕국과 브투마 왕국의 국경지대에 있었다.
보통 이런 국경지대는 교역이 활발하거나 군대가 주둔해 있어 어떻게든 경제가 발달한 요충지가 되기 마련인데 아디로프라는 곳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국경지대인데 왜 몰랐지?”
“그건 풍토병 때문입니다.”
지벡이 아자딘 옆에서 설명해주었다.
“풍토병?”
“학질과 이질, 열병, 그 외에도 각종 브투마의 풍토병이 아디로프 지방에도 있습니다. 애초에 아디로프 남작 일가가 학질로 몰살당한 후에 후계자가 없어서 모계인 란타릭 백작에게까지 상속된 것은 유명한 사건입니다.”
“아, 그래서 란타릭 백작이 아디로프의 수호자 어쩌구 하면서 언급한 거군.”
아자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도에 보면 브투마로 가는 육로는 아디로프 지방의 주도, 아디프뿐이네. 아디프로 가보자.”
아자딘은 지도를 자주 꺼내 볼 수 있도록 잘 접어서 벨트 포치에 넣어두고 길을 나섰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네놈들!”
“감히 청건당의 행사를 방해했겠다!”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두른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게 아닌가? 못해도 20여 명이 넘는 무리가 창과 바디슈, 활 등으로 무장하고 몰려들었다.
“아이고. 죽고 싶어서 작정했군.”
스콧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아자딘의 능력을 알고 있는 그는 이 정도 숫자가 몰려와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그저 자칭 청건당이라는 이들의 앞날(?)을 걱정할 뿐이었다.
반면 샤티는 불쾌해했다.
“아니, 이러다가 눈먼 화살에 맞으면 그건 또….”
그녀도 아자딘이 패하리라는 건 아예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이미 아자딘은 그들의 눈앞에서 전령일족의 강자들을 꺾어왔고 고대 사신의 강림을 저지하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 이런 오합지졸들에게 위축될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잠깐만 다들 진정하시고.”
아자딘이 양손을 들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뭐야? 이 자식. 너는….”
“아, 이쪽은 성기사라 내버려 두시지요. 곤란해질 겁니다.”
아자딘은 지벡에게도 으름장을 놓는 이들에게 확실히 선을 그었다.
“…….”
청건당 일당은 자신들의 지휘관인 서기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완전무장한 성기사와 싸우는 것은 그들에게도 부담스럽지만, 기껏 상대를 혼내주겠다고 왔는데 무릎 꿇은 것만으로 봐줘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동료가 당했다고 해서 때려주려고 왔는데 그냥 받아들여도 돼?’
‘서기님이 이놈에게 좀 쫄아 있는 거 같은데?’
다들 그런 눈치를 볼 때 서기가 헛기침을 했다.
“험험, 이놈. 이제 청건당의 행사를 방해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느냐?”
“예. 그럼요.”
아자딘은 맞장구를 쳐주며 물어보았다.
“청건당은 종교 집단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침 제가 요새 마음이 심란하고 기존의 신앙이 올바른 것인지 회의하면서 새로운 가르침이 있다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치고자 하는 데 혹시 가르침을 주실 수 있는지요?”
“뭐라고?”
“우선 교리가 궁금합니다만.”
“교리… 교리?”
청건당 당원들은 당황했다. 사실 신흥종교니 뭐니 하지만 교리 따위는 그들도 잘 모른다.
그 전에 왕의 교회에서도 그냥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들인 왕과 귀족들에게 잘 보이라는 굴종만을 강요했으며 구난기사단조차 일반인들에게는 미덕을 잘 지키면 복이 온다고, 너무나 단순하고 원초적인 교리만을 설파했던 것이다.
“음, 청건을 두르고 우리 교주님의 뜻을 따르게. 야에가스 신족의 시대는 끝이 났으니 말이네!”
“저희도 가입할 수 있을까요?”
“그건… 음. 입교 희망자인가?”
서기가 그렇게 말하자 주위의 청건당 병사들이 불만을 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당했다고 들어서 그 보복을 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자신들을 두들겨 팼다는 놈을 아무런 벌도 주지 않고 입교하게 해준다고?
청건당 병사들의 분위기가 흐려지자 서기도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
“음, 이건 변변치 않은 것이지만.”
아자딘이 서기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뭐, 뭔가? 이건?”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찾듯 올바른 가르침을 찾다 보니 그만 마음속에서 보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나 봅니다. 이걸로 제가 다치게 한 사람들을 돌봐주십사 하고.”
“…….”
서기는 헛기침을 하면서 아자딘이 건네는 돈을 받아들이고 슬쩍 옆의 병사들에게 보여주었다. 병사들도 다들 표정이 풀어졌다.
“그런데 옆의 성기사도 우리의 가르침에 귀의할 건가?”
“…….”
지벡은 당황했지만 아자딘의 눈치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겠소.”
“…좋아. 그럼 따라오라고.”
서기는 아자딘에게 받은 돈을 부하들에게 배분해주고 길 안내를 시작했다.
*********
청건당 당원들을 따라가면서 언덕을 넘자, 어마어마한 수의 난민촌이 눈에 들어왔다.
마차들이 평야 곳곳에 펼쳐져 있고 텐트들이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물 빠짐이 좋은 땅은 밭이나 기존의 마을들이 자리 잡은 탓에 코랄 사하르에서 도망쳐온 난민들은 습지대, 물가 옆의 불모지에 야영을 하고 있었다.
-위이잉.
거짓말 좀 보태서 사람 손바닥만 한, 객관적으로는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모기가 사방에서 날아다녔다.
아자딘은 손을 털어서 보이는 모기를 족족 때려죽였다.
그런데 이 모기들을 죽일 때마다 아자딘의 손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이미 모기들이 사람들의 피를 듬뿍 빨고 배회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곳엔 모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진창에서 메기를 잡는 난민들의 몸에 거머리가 달라붙었다.
이렇게나 독충이 많은데도 코랄 사하르에서 쫓겨났던 난민들은 어떻게든 이곳에서 하루하루 버텨내야 했다.
육체노동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좋은 옷을 입은 남자가 진흙탕 속에서 메기를 잡으며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청건당의 당원들이 으스대며 다가가 기껏 잡은 생선 바구니에서 절반을 거둬간다.
그 모습을 보던 아자딘의 투구 안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