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2
161. 학질의 비약 4
“이런 데 난민이 많군요. 모기들이 많으면 전염병이 퍼질 텐데.”
“그렇다네. 그래서 아주 힘겨운 상황이지.”
서기는 그리 말하고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형제. 이름이 뭐지?”
“전 아단입니다.”
아자딘은 가명을 댔다.
전령일족, 아라가사들은 휘브리스인들과 피가 섞여 여러 방식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자딘의 경우 아주 오래된 아라가사 전통문화의 이름인지라 자신의 근본을 감추기 위해 가명을 쓰기로 했다.
“아단 형제. 보시다시피 현재 다들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네. 이런 혼란 속에서 우리 청건당은 난민들을 보호하고 도적 떼와 마물을 물리치고 있지.”
난민들이 처한 환경이 이러하니 그들 사이로 학질과 이질, 열병 등 브투마 풍토병이 번지고 있었다.
그런 난민들 사이로 청건을 두른 브투마인들이 돌아다니며 뭔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자! 청건당의 약이요! 천주님의 은혜이니 학질, 이질, 어떤 질병이든 이것만 먹으면 나을 것이오!”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전령들에게 전해지는 약학에 의하면 모든 질병에 통하는 약은 마약밖에 없다. 강력한 진통제만이 모든 병의 고통을 덜어줄 뿐, 병 그 자체는 낫게 할 수 없다.
‘마약인가? 하지만 마력이 미약하게 느껴지는데?’
[네더 마법이다.]황제의 목소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네더 마법?’
[저 약재에서 느껴지는 힘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이 근방의 사람들 상당수한테서 네더의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게 느껴지는군. 아마 약을 먹은 사람들일 것이다.]황제의 목소리가 경고하고 있었다.
[난세가 다가오니 거짓된 선지자들이 들끓는구나. 주의하도록. 약을 받아 먹는다고 바로 중독되진 않겠지만 네더의 마법은 쉽게 받아들이지 말도록 해라.]‘그거 큰일인데.’
그때 길을 안내하던 서기가 발을 멈추었다.
“자, 다 왔네. 아단 형제. 여기서부터는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교주님을 뵙는 겁니까?”
“교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아디로프에서 포교를 담당하는 도사님이시지.”
“도사님….”
“무기를 풀어두게.”
“알겠습니다.”
아자딘은 가지고 있던 무기를 풀어 놓고 도사와의 알현장에 나섰다.
*********
알현장이라고 해봤자 커다란 텐트 몇 개가 쳐져 있는 야전군 막사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디로프 남작의 성 앞에 만들어져 있으니 현재 아디로프 남작 대행과 청건당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남작 대행도 우리 청건당의 복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청건당의 당원들은 으스댔지만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사이비 종교가 어쨌건 이 일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당신들 기분을 굳이 망치고 싶지는 않겠지. 남작 대행이면 그냥 행정관료일 텐데 당신들과 사생결단을 낼 리가 없잖아?’
도사는 20대의 귀족적인 인물로, 겉모습으로만 보면 상인이나 학자로 보이는 우아한 자태를 가진 사람이었다. 중성적인 외모라서 혹시 남장한 여자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우선 투구를 벗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나? 투구를 쓰고 이야기하면 어찌 사람됨을 알겠나?”
“죄송합니다. 보기 역겨운 장면이라 감추었을 뿐입니다.”
아자딘이 그리 말하고 투구를 벗자 도사는 물론 주위의 청건당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억?”
“누, 눈이?”
“놀랍군. 장님이었나? 그런데 어떻게?”
“마법으로 시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 마법사인가. 놀랍군. 재주가 뛰어나다고 들었네만 설마 마법사일 줄이야. 어떻게 마법사이면서 성기사와 함께 행동하고 있나?”
“그 성기사 분도 최근 코라사르 왕국 곳곳에서 이변이 일어나서 망설임이 심해진 차였습니다. 게다가 자기 상사와 불상사가 생겨서 교단에서 축출된 상황이지요.”
“아, 그렇군.”
상사와의 불상사가 있다고 하자 다들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제게 청건당의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청건당은 무엇을 따르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전에….”
도사는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주위를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이 병들고 굶주려서 힘겨운 상황이네. 그대가 가르침을 찾아왔다고 하지만 청건당에서의 구원은 한 개인이 혼자 얻는 것이 아니라네. 우리가 백성들을 돕고 백성이 우리를 돕는 세상이 곧 천주님이 원하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보시를 좀 해주었으면 하네만.”
“아, 네. 돈으로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이걸로 필요한 약재와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거니 큰 도움이 될 걸세.”
“흠, 알겠습니다.”
그냥 달라고 하면 약탈당하는 기분이라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지만 고통받는 백성들을 핑계로 대고 있으니 아자딘은 기꺼이 돈을 냈다.
금화를 세 장 정도 내놓자 청건당 도사가 감탄했다.
“상당히 많은 돈이군. 고맙네, 형제. 그대를 청건당의 일원으로 인정하겠네. 입단식은 다음 주에 있을 예정이니 그때까지는 임시지만 우선 이걸 주겠네.”
“이건….”
아자딘은 파란 두건을 받아들었다. 떫은 냄새가 난다.
“나무 열매로 색을 간단히 먹인 거네. 제대로 된 염색이 아니라서 물로 빨면 지워질 테니 주의하게.”
“그럼 가르침을 주십시오. 천주님은 무엇입니까?”
“천주님은 우리의 교주님이지. 그분은 본래 브투마의 상인이셨는데 어느 날 번개를 맞고도 살아남으시면서 천리를 통달하셨네.”
“번개… 천리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래서 그분은 청건을 머리에 두르시고 목성의 시대에 대비해 사람들을 모으는 한편, 역병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천주님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게 일이라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더더욱 천주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지는군요.”
아자딘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는 때, 네더의 마법을 쓰면서 교세를 확장하는 사이비 종교라니.
황제에게 명받아 백성들의 삶을 지키는 전령으로서도, 그냥 순수한 인간 아자딘으로서도 예의 주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주님을 직접 배알하려면 그만큼 우리 청건당에 헌신해야 한다네.”
“그렇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자네와 함께 하는 그 성기사는 괜찮은가?”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는 현재 교단에서 축출된 상태입니다.”
“그야 알고 있네만. 왕의 교회의 성직자나 성기사들은 고위 귀족이 많아서, 그런 이들은 왕의 교회의 이념이 잘못되었음을, 이 코라사르의 천벌을 앞에 두고서도 청건을 받아들이지 못하더군. 교단에 축출되었다고 해도 막상 청건당에 맹세하라고 하면 맹세만은 못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청건당 일당이 보기에 지벡은 언제든지 사고칠 수 있는 위험 분자로 보이는 것이다.
그나마 이 도사라는 작자는 온건한 사람이라서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지, 강경한 놈들은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주의하게. 아, 그리고 자네가 꽤 실력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탁 말입니까?”
“실은 자네보다 먼저 우리에게 접근한 세력이 있다네.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일단 헌금을 받고 그들을 받아들였네만… 아무래도 첩자 같네.”
“첩자 말입니까?”
“그렇다네. 우리가 학질을 치료하고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천주님의 은혜이자 기적인데 그걸 무슨 사술이라고 생각하고 파헤치려고 하는 것 같아.”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뜨끔했다.
사실 아자딘도 사술이라고 생각하고 파헤치려고 했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먼저 와 있단 말인가?
“왕의 교회의 사람들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인지 자네가 그들을 조사해주지 않겠나?”
“제가 말입니까?”
“그렇다네. 아무래도 교단에 있던 사람들은 꼬리를 밟히기 쉬우니 말이네. 입문 의식이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군.”
“아, 알겠습니다.”
아자딘은 떨떠름해하면서 도사의 제안을 수락했다.
*********
일행에게 돌아오는 아자딘을 향해 스콧이 손을 흔들었다.
“어땠어? 대장?”
스콧과 지벡, 샤티는 아자딘과 함께 도사를 만나지 않고 뒤에 남아 있었다. 아자딘은 주위를 둘러보고 조용히 스콧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삥 뜯겼어.”
“엑?!”
“그것도 있고 만만치 않은데.”
아자딘은 도사가 요구한 조사에 대해 설명했다.
“와, 그거 또 새로운 놈 오면 이번엔 그놈들에게 우리를 조사하라고 시키겠군.”
“그렇지?”
“어쩔 거야? 아자딘. 할 건가?”
샤티도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흠. 일단 그 조사 대상을 만나봐야겠군. 왕의 교회인지 아니면 그냥 신규 세력인지 모르겠지만…. 만나서 그쪽과 상의해봐야 할 것 같아.”
“여기 일은 신경 끄고 브투마로 가서 아라엘을 만나는 건 어떻습니까?”
지벡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아자딘이 놀랐다.
“이들이 여기서 사교를 퍼뜨리고 있는데?”
“헌금 걷고 민간인에게 패악질 좀 저지르는 거로 사교라고 하는 건 너무하는 처사 같습니다. 왕의 교회나 구난기사단도 그 정도 일들은 벌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실제로 학질과 이질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지벡은 왠지 날 선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보통 학질과 이질은 걸리면 죽는다고 봐야 할 만큼 혹독한 질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교라는 것들이 사람들을 치료하고 그들의 인망을 사는 걸 보니 지벡으로서는 회의가 들었다.
자칭 정법이라는 왕의 교회는 치유마법의 힘이 약해져서 사람을 구할 때 그 신분의 고하와 재산의 유무를 따져가며 구했고, 결국 대부분 사람들을 그냥 죽게 방치한다. 정법의 가르침이 사교만도 못한 것이다.
게다가 디미아가 깔끔하게 복원계 치유마법을 사용하는 걸 본 이후로는 더더욱 마음속 갈등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난 이 청건당을 조사할 거야. 이들이 브투마에서 발원한 종교라니 어차피 브투마에 가려면 그전에 이들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주위 청건당 병사에게 물어서 자신이 조사해야 할 세력을 찾아보았다.
*********
청건당 병사들이 안내해준 곳은 유랑극단의 짐마차였다.
4두 마차 위에는 춤추는 두 무희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미소를 팔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약장수, 방물장수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춤추는 무희가 어째 아자딘의 눈에 익었다.
“…제니스와 디미아잖아.”
꽃의 디미아와 그 여동생 제니스가 유랑무희가 되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물건들을 파는 상인은 새의 세라프와 바람의 알레프. 마부는 달의 인딤이었다.
화조풍월의 4인.
전령일족 당대 전령 중 최강이라 할 만한 4인이 유랑상인이 되어 청건당 본부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 육로로 코랄 사하르에서 탈출했구나.’
아자딘 일행은 뒤늦게 출발했지만, 나가들의 배를 얻어타서 비슷한 때에 아디로프 지방에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는 건 아라엘도 이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잘됐군. 브투마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아자딘이 그렇게 말할 때 마부로 변장한 인딤이 다가왔다. 전신에 검은 로브를 두르고 얼굴에도 가죽으로 만든 검은 가면을 쓴 인딤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다.
“아자딘….”
“아단이지. 지금은. 청건당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