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3
162. 학질의 비약 5
인딤은 청건당 무리를 주의하라는 아자딘의 말을 자신의 실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다.
“흥. 저런 오합지졸 따위.”
“두렵지 않다고? 그렇게 방심하다 원로원에 털리지 않았나?”
“…….”
인딤이 말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라엘 지파가 승승장구할 때는 원로원과 알디스를 우습게 보았을 텐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왕좌를 그들에게 빼앗겨 버리면서 아라엘 지파가 붕 떠 버리고 말았다.
방심하다가 대부분의 기반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아자딘의 말은 정말 급소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네놈은 대체 뭐냐? 원로원 편 아니었냐?”
바람의 알레프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손님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작별을 고한 뒤 아자딘에게 달려와 물어보았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딤과 달리 얼굴을 드러낸 알레프는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얼굴에 멋들어지게 자란 수염을 곁들인 미남자였다.
게다가 그의 눈은 오른쪽 눈이 녹색, 왼쪽 눈이 검은색인 헤테로크로미아였는데, 신비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미남이라서 그런지 먹고 살기 힘든 이런 환경에도 여성들의 관심을 사고 있었다.
“나는 내 신념대로 행동할 뿐이지.”
“그렇다면 디미아에게서 빼앗은 신왕진서 사본을 내놓으시지? 원로원의 편이 아니라는 걸 그걸로 증명해봐라.”
“내가 한 말을 오해하나 보군. 내 신념에는 너희들도 부합하지 않아.”
“이봐, 아자딘. 지금 내가 너에게 말하는 건 부탁이 아니야. 명령이다. 아라엘 님의 동생이라고 해서….”
“나도 너에게 말하는 게 윗사람에게 징징대는 게 아니야, 알레프. 현재 나는 제2령이다.”
“하. 무안의 아자딘. 네놈이 제2령이라고? 원로원이 아주 후하게 선심 썼군.”
“내가 제2령 정도는 되어줘야 디미아의 체면이 서지.”
아자딘은 꽃의 디미아가 자신에게 패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자 알레프가 분개했다.
“이 자식. 그때의 디미아는 의식을 치르느라 화조풍월의 조화가 깨진 상태였다. 제 실력이 아니었다고. 설마 그걸로 우리 화조풍월의 4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겠지?”
“아, 지금 자존심 싸움할 때가 아니잖아. 내가 잘못했다. 아라엘 있으면 만나게 해줘.”
“아라엘 님이 네게 연락하실 거다. 지금은 물러나. 청건당 놈들이 감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청건당에서 아자딘 일행에게 아라엘 지파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는데 둘이서 서로 구면인 티를 내면 의심할 것이다.
‘이미 틀린 것 같은데. 그건.’
아자딘은 그리 생각했지만 일단 물러났다.
*********
그날 밤, 코랄 사하르에서 몰려온 비구름 때문인지 아디로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야영지에 깔린 천막들이 들썩였다. 난민들이 제대로 된 천막을 가져온 게 아니라서 빗물이 그들을 적신다.
아디로프는 사시사철 따뜻한 지방이라서 비에 젖는다 해도 춥지는 않지만, 열병에 시달리던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큰일이군.”
아자딘은 방수천으로 만든 지붕 밑에 있었다.
아자딘도 지벡도 여행용 짐에 천막을 챙기지 않았다. 그저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작은 방수포를 한 장씩 가지고 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 방수포를 이용해 어떻게든 지붕을 만들긴 했지만 부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자딘 혼자라면 방수포 한 장으로도 충분했지만, 샤티나 스콧은 방수포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설프게 지붕을 만들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대장. 각종 생물들의 근육을 모아서 사령술로 지붕을 지탱시킬 수 있는데. 그러면 하나의 천으로 충분히 넓은 영역을 판때기처럼 가릴 수 있을 거야.”
“하지 마.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
아자딘은 그런 사소한 일들에 사령술을 쓰려고 하는 스콧을 제지했다.
그때 빗줄기 속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자딘. 브투마에서 보자고 했는데 여기서 보게 되는군.”
“아라엘….”
아자딘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아라엘이 아자딘을 찾아온 것이었다.
“육로로 이동하더니만 여기서 멈춰 섰군.”
“가르나헤어 백작이 황제의 보물고 열쇠를 얻은 곳이 이곳, 아디로프 남작령이니까. 브투마로 피신하던 도중에 조사할 생각이었지.”
아라엘은 놀랍게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심복, 인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라엘 님. 저 녀석이 원로원의 끄나풀일지도 모르는데 황제의 보물고에 대한 정보를 줘도 되겠습니까?”
“아니. 아자딘은 원로원의 끄나풀이 아니야. 그렇지?”
아라엘은 단언했다.
“글쎄? 알디스 님은 내게 전령 2령의 직위를 내려주셨어. 내 후견인인 그녀가 아라가사 최고의 권력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아라가사의 권력 핵심에 들어서게 되는데 어째서 내가 원로원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네 일행에 성기사가 있잖아. 게다가 오크와 나가라니. 참 다양하군.”
“…….”
스콧과 샤티가 변환 마법을 이용해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라엘은 너무나 쉽게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아라엘이 아자딘의 비가림막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아름답고 강력한 모습이었지만 어째 그녀의 눈은 지쳐 보였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군, 아자딘.”
“언제부터 그렇게 내 걱정을 해줬다고?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알디스 님에게 코라사르의 왕좌를 빼앗기고 난 후에는? 설마 지금까지 네게 충성하던 이들이 다 돌아섰나?”
“그래. 내가 제시한 비전을 고스란히 빼앗겼으니까. 당연한 결과지.”
“꼴좋군. 이제 어쩔 거야? 알디스 님은 널 설득해서 데려오면 죽이지 않고, 불문에 부치겠다고 하는데. 이제 와서 마음을 고쳐먹을 생각은 있냐?”
아자딘이 물어보자 아라엘이 코웃음 쳤다.
“아직 내 뜻은 꺾이지 않았다. 알디스의 호의는 고맙지만 그것만 믿고 이제 와서 그녀의 휘하에 들어갈 수는 없어. 그리고 아자딘. 너도 사실은 알디스를 의심하고 있잖아?”
“내가? 알디스 님을?”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렇게 나와 만나지도 않았겠지. 정확한 타이밍에 더러운 일은 내가 하고, 좋은 일은 자기가 주워 먹는 원로원의 행각을 보면서 의심이 들지 않았어?”
“…….”
아라엘의 말은 그대로 아자딘의 아픈 곳을 찔렀다. 하지만 아자딘은 애써 부정했다.
알디스의 호의를 의심하면 아자딘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원로원이야 그럴지 몰라도 알디스는 아닐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알디스는 철저히 순수하게 만들어진 존재니까.”
“무슨 뜻이지?”
“아자딘. 지금 말하면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코랄 사하르에서의 추태는 계산된 일이었다.”
아라엘의 주장이 너무나 황당해서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아자딘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
“그러니까 밥 다 지어놓고 알디스에게 빼앗긴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짓이었다 이건가? 아라엘 지파니 뭐니 하면서 우리 일족들 대다수를 포섭했다가 한 방에 빼앗긴 것도?”
“그래.”
“그것참 대단하군. 얼굴에 철판 깔았냐?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지? 아라엘. 일부러 네 비전, 정책, 기반, 그 모든 걸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거야? 진심으로 물어보는 건데 혹시 네더 마법을 너무 연구해서 미쳤나?”
아자딘이 그리 물어보자 인딤이 분노했다.
“닥쳐라. 이 원로원의 개야! 아라가사의 원로원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악한 존재들이다. 절대로 그들이 이 세계를 장악하게 해서는 안 돼! 아라엘 님만이 희망인데 감히 그녀를 욕보이다니!”
“그녀가 희망이라? 네더의 사신을 강림시켜 코라사르 왕국을 멸망시킬 뻔했던 이가 할 말인가?”
참지 못하고 옆에서 듣고 있던 지벡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인딤이 지벡을 노려보았다.
“닥쳐. 성기사.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이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니 말이다. 아라엘 님을 모욕한다면….”
“저기 아라엘. 인딤 입 좀 다물게 해.”
아자딘이 아라엘에게 요구하자 아라엘은 말없이 인딤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인딤은 최대한 아자딘을 외면한 채 아라엘 쪽을 바라보며 사죄했다.
“내가 한 짓이 휘브리스의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더 큰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연출은 필요한 법이지.”
“사람의 목숨을 그딴 식으로 저울질하다니 역겹군. 뭐 내가 널 역겹다고 느끼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그게 예상된 일이었다니 대체 뭐라고 변명할 거지?”
“알디스를 끌어내기 위한 일이었다. 성공적이었지.”
“아니, 그 결과의 어디가 너희들에게 성공인데? 기껏 모은 기반을 싹 털렸잖아? 게다가 왕좌를 얻으려고 한 너희들의 행동은 진심이었는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왕좌를 얻어서 그 힘을 내가 차지할 수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알디스가 나타나서 이 왕좌를 빼앗으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왕좌를 빼앗긴 게 결과적으로 너희들에겐 더 좋은 일이었다? 장난해?”
“이해하기 힘들겠지, 아자딘.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번 더 끌어내야 할 인물이 있다.”
“알디스 말고? 누군데?”
“두령 하티르.”
“두령 하티르?”
“그래. 그는 황제와 하르코니아의 아들이다. 알디스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인물이지. 5년 전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알디스보다도 훨씬 더 적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왕좌를 빼앗긴 지금, 어떻게 할 거냐?”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지. 아자딘. 다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널 보고 우리 편에 들어오라고 하면 그것도 무리겠지?”
“날 회유할 셈인가?”
“그래. 그런 의미에서 말해주는 거니 잘 들어라, 아자딘. 지금 우리는 황제의 보물고를 찾으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 청건당이라는 저놈들이 황제의 보물고로 향하는 진입로를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아라엘이 작은 도자기 약병을 하나 꺼내서 보여주었다.
“청건당의 음식에 이것을 타라. 네더의 권속들을 잠들게 하면 우리가 보물고에 접근할 때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너희가 직접 하지 않고?”
음식에 약을 타는 것은 최상위권 전령이던 아라엘이나 화조풍월의 4인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굳이 아자딘에게 요구하는 이유가 뭘까?
“우린 할 수 없어. 그 도사라는 놈이 아주 예리해서 말이지.”
그때 지벡이 말했다.
“이들의 몸에는 이미 네더의 마력이 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아마 그 도사도 네더의 권속일 테니 다른 계파의 권속을 자각하는 능력이 뛰어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