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4
163. 학질의 비약 6
“그러니까 순수한 인간이 필요하다 이거로군. 네더의 힘에 물들지 않은?”
아자딘은 아라엘의 뜻을 그제야 이해하고 신음했다.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 그 약이 어떤 약인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죽여야….”
인딤이 그리 말하며 칼을 뽑으려 했지만 아라엘이 제지했다.
“아자딘에게 손대지 마라, 인딤. 누가 그런 무례를 허락했지?”
“하지만 아라엘 님. 이들이 사실을 누설하면….”
“괜찮아. 적어도 아자딘은 청건당에 우리를 팔진 않아. 내 요구를 거부하더라도 말이지. 그렇지?”
물론 아자딘은 청건당에 이들을 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가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니 약간 기분이 상했다.
“왜 그렇게 단언하지?”
“넌 내 형제니까.”
“내 눈에 상처를 낼 때도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은 바로 해야지. 네게 눈이 어디 있었지? 적어도 지금이 훨씬 잘생겼잖아?”
“야 이….”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볼까? 아자딘. 디미아에게서 신왕진서 사본을 빼앗았지?”
“아, 그거.”
“돌려주면 안 될까? 우리의 우호를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지.”
“싫은데?”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왕진서 사본은 아자딘에게 아주 훌륭한 백색 마력의 마력원으로써 아자딘은 그 사본들을 이용해 계속 마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사용하면 마력이 일시적으로 고갈되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다. 제대로 마법을 쓸 수 없는 아자딘에게도 이렇게 유용한데 이걸 아라엘 일당이 갖게 되면 얼마나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더더욱 넘겨줄 수 없다.
“역시 치고 빼앗아야 합니다. 아라엘 님. 아자딘의 시건방을 언제까지 봐주실 겁니까? 정말 그를 손에 넣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힘으로 굴복시키고 곁에 두심이 옳습니다.”
아자딘이 아라엘의 요구를 거절하자 인딤이 분개했다. 그러나 아라엘은 그런 상황에서도 인딤의 제안을 거절했다.
“언제나 주눅 들어 있던 동생이 이제 기 좀 피고 사는데 그걸 부러뜨릴 생각은 없어. 좋아, 아자딘. 내 밑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원로원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어때?”
“그것도 아직 결정할 수 없어.”
“네가 내 밑에 들어오면, 나도 손을 덜 더럽힐 수 있다. 내 계획들을 민간인들을 덜 죽이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아자딘. 그런데도 정말 제안을 거절할 거야? 거절하면 그것만으로도 너는 장래에 구할 수 있는 몇천, 몇만의 목숨을 내다 버리는 거다.”
“날 바보로 보는군.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고 있냐?”
“협박이 아닌 진실이니까. 하지만 네가 날 싫어하는 것도 이해하겠어. 역시 그때가 다가오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하겠지.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아라엘은 그 말을 남기고 인딤과 함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놀랍군요.”
아라엘이 자취를 감추자 지벡은 감탄했다.
“뭐가?”
“제가 보기에 그녀는 정말 당신을 아끼는 것 같습니다. 위태로운 조직의 수장임에도 당신만은 절대로 침탈하려고 하지 않는군요.”
“내 눈의 상처가 저것의 소행인데? 그냥 본인이 즐기고 있는 거야. 그런 의미 부여할 거 없어.”
아자딘은 아라엘을 평가하는 지벡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아자딘. 제 경험상 저런 타입의 인간은 허언을 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물론 거짓말을 하겠지만 철저히 계산된 거짓말이겠지요. 그녀가 한 말 중 절반만 진실이라고 해도 위험합니다.”
“…….”
아자딘도 그 점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아라엘이 말하는 것엔 허언이 없다.
“뭐 저쪽은 대장에게 어쨌건 혈육으로서 많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바꿔 말하면 대장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높으신 분들의 비호를 듬뿍 받을 수 있는 입장이라는 거 아냐? 오히려 좋지.”
“그게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면 모르겠는데 양쪽 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자딘은 속 편한 소리를 하는 스콧을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스콧이 어느새 또 뭔가를 주워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아자딘이 스콧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천지가 섬광으로 뒤흔들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캠프 곳곳을 강타했다.
“꺄악!”
“으아악!”
“…뭐야?!”
아자딘은 난민 캠프 곳곳에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낙뢰에 당황했다.
들판에 낙뢰가 떨어지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지만 한 들판에 이렇게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이상하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윽!?”
지벡이 일어나 갑옷을 고쳐 입기 시작했다.
“이건….”
스콧도 화들짝 놀라서 입에 물고 있던 걸 꿀꺽 삼키고 부적을 집어 들었다.
“맙소사.”
아자딘도 아주어 스틸 장검을 뽑아 들었다. 서늘한 한기가 칼날로부터 뿜어져 나와 아자딘의 몸을 휘감았다.
빗줄기 속에서 텐트들이 무너지고 괴물들이 나타났다.
“끄아아악!”
“아, 아버지가!”
“아들이!”
“딸이!”
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아들딸, 가족들이 괴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거 그거지? 대장?”
“그래. 청건당의 약을 먹은 이들이….”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청건당의 비약을 먹고 열병, 학질 등을 치료했던 이들이 네더의 사신, 그 권속으로 변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두의 머리가 쪼개지고 그 머리 안에서 마치 떡갈나무 같은 두꺼운 껍질에 싸인 팔다리가 자라났다.
사람의 몸통이 머리에서 자라난 팔다리에 의해 지탱되면서 대롱대롱 떠다니는 모습은 흡사 교수형 당한 괴물 같아 보였다.
“아, 아빠!”
어린 소녀가 그 괴물을 향해 목놓아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괴물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소녀에게 팔을 뻗어왔다. 절대로 가족을 향하는 손길이 아니다.
“피해!”
아자딘이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떡갈나무 껍질에 뒤덮인 팔은 어지간한 도검을 튕겨낼 수 있었지만 아자딘이 휘두른 푸른 검광에 깔끔하게 잘려 버렸다.
그 순간 절단면에서 검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워어어어어!”
괴물이 고통스러워한다.
“아, 아빠!”
“피하게 해! 샤티!”
“아, 알겠어!”
샤티가 달려들어 아이를 보호하는 사이, 지벡이 뛰어나와 방패를 들고 검을 뽑는 대신 근처 나무 그루터기에 박혀 있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카악!”
권속이 계속해서 떡갈나무 뿌리를 뽑아내며 아자딘을 노린다.
아자딘은 그 공격들을 아주어 스틸 장검으로 베어내면서 권속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지벡이 권속의 몸통, 그러니까 아직 인간형상인 육체 부분을 노리자, 권속이 떡갈나무 뿌리로 그 인간의 육체를 감싼다.
“인간 부분이 약점입니다!”
“그렇다면야!”
그 순간 스콧이 뭔가를 돌진시켰다.
사람 팔뚝만 한 크기의 커다란 쥐들이 눈에서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질주해 떡갈나무 뿌리를 기어올라 인간 몸통까지 접근한다.
“시폭!”
거대 쥐가 폭발하며 권속의 몸통이 날아갔다.
“키에에엑!”
떡갈나무 가지가 부들부들 떨더니 마치 밤이나 성게가 까지며 속의 알맹이를 드러내듯, 둥치 안의 뇌수가 밑으로 쏟아지며 메말라 비틀어졌다.
“거기가 약점이군. 하지만….”
아자딘과 지벡이 당황해서 돌아보니 소녀는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기절해 버렸다.
갑자기 튀어나온 놈들이 자신의 아버지였던 것의 몸통을 폭파시켜 버리고 뇌수를 바닥으로 쏟아내게 했으니, 기절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 소녀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통함.
그 모든 것이 뇌명을 꿰뚫고 어지럽게 아자딘을 휘감았다.
‘나는 가족이라고 할 만한 게 없지만….’
아자딘은 전통적인 가족이 없다. 그에게 가족이라면 아라엘과 알디스, 그리고 카자스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통한 울음소리는 그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사람이 애통함으로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그 애간장 끊어지는 목소리에 아자딘은 신음했다.
“자비의 대천사여!”
그때… 무수한 시체 조각들이 기괴한 추진력으로 움직이며 권속들에게 접근해 폭발했다. 스콧이 사령술을 이용해 권속들을 제거한 것이다.
“잘했지? 대장?”
“…….”
아자딘이 말리기도 전에 스콧은 바닥에 떨어진 소녀의 아버지 시체 파편에 나뭇가지를 꽂고 사령술을 걸었다.
절단난 팔뚝에 나뭇가지가 다리처럼 들러붙어서 스스로 땅을 기어간다. 피를 뿜어내는 팔뚝 절단면에 나뭇가지를 꽂은 모습은 매우 기괴했다.
“스콧….”
“가라!”
스콧은 유가족이 보는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 시체의 부분 부분을 개조해서 사령술을 걸고 그대로 권속들에게 돌진시킨다.
떡갈나무의 악귀 같은 권속이 인간을 죽이고 배회하는데 스콧이 만든 사람의 팔로 만든 전차가 그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시폭!”
다시 시체를 폭발시키자 몸통이 잘려나가고, 또 똑같이 뇌수를 쏟아내며 권속이 움직임을 멈춘다. 그렇게 나온 시체 조각들을 스콧은 또다시 개조하기 시작한다.
보고 있던 유족들은 울부짖으며 가슴을 쥐어뜯고 진흙탕에서 뒹굴며 까무러쳤다.
‘이 자식 유능하긴 정말 유능한데. 쓰는 기술이 너무 혐오스럽군. 이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사령술사라면 일단 붙잡고 화형시키지.’
사령술에 거부감이 덜하던 아자딘도 그 끔찍함에 혐오감이 들었다.
지벡은 지금 당장 스콧을 베어 버리고 싶어서 도끼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스콧이 활약하지 않으면 저 권속들은 사람을 죽일 것이다.
*********
청건당의 도사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다, 당했다! 함정이야!”
그의 귀에서는 지금도 떡갈나무 가지가 자라 있었고, 머리에는 마치 사슴의 뿔처럼 나뭇가지가 자라나 있었다.
다른 이들이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청건당의 비약을 받아먹고 청건당원이 된 이들은 네더의 권속이 되었다.
다행히 도사는 자신의 근처에 있는 권속들을 제어해서 그들이 무의미한 살육을 하지 않도록 조종할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된 것부터가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훌륭하군. 넌 상위 권속인가?”
“에이, 상위는 무슨. 그저 아주 최소한도의 이성만 유지할 수 있는 정도겠지.”
도사를 바라보는 이들은 기이한 활을 들고 있었다.
아라엘의 부하가 된 화조풍월의 4인, 꽃의 디미아와 새의 세라프, 바람의 알레프와 디미아의 여동생 제니스가 청건당 도사를 내려다보았다.
“저, 전령일족! 이 무슨 무서운 짓을! 당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하. 우리가 무슨 짓을 했냐고?”
“됐고, 황제의 보물고 열쇠 있지? 내놔.”
“웃기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게는…. 당신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을 죽였는지 아십니까?”
“몰라.”
“네?”
“흥미 없어서 안 세어 봤는데?”
제니스가 손톱을 줄에 갈며 투덜거렸다.
그들은 지금 이 난민 캠프에서 사람들이 죽건 말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