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7
166. 권속의 폭주 3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왔군, 아자딘. 그 마법사 손 풀게 해. 아니면 저놈 죽인다. 농담 아니다.”
아라엘은 긴장하는 부하들을 제지하고 아자딘에게 스콧을 제지할 것을 요구했다.
“스콧, 수결 풀어.”
“어, 대장.”
스콧은 마지못해 수결을 풀었다. 그때 지벡이 아라엘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아라엘 양. 맞으시지요?”
“그래. 당신은?”
“왕의 교회의 성기사, 지벡이라고 합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저 청건당의 사람들을 폭주시킨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아니. 내가 아니다. 그들이 폭주한 것은 그들 자신의 결함 때문이지.”
“청건당 도사는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당신들을 의심하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의심하니 우리 보고 무죄를 증명하라는 거냐? 오만하구나.”
아라엘의 곁에 있던 인딤이 참지 못하고 단도를 빼들었다. 하지만 지벡은 물러나지 않았다.
-스르릉!
칼날이 울며 서슬 퍼런 검광이 어둠 속을 밝힌다. 지벡이 칼날을 뽑아들자 인딤의 적의가 더더욱 불타올랐다.
“우습게 보이나 보군. 고작해야 성기사 나부랭이가!”
지벡과 인딤, 둘 다 물러서지 않고 맞선다. 그들의 적의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할 때, 움직임이 있었다.
아자딘이 성큼 걸어 나와 지벡과 인딤의 사이를 가로막고 입을 연 것이다.
“그걸 움직일 수 있으면 커다란 불곰 가지고 저글링도 할 수 있을 거야. 너희들 바보냐?”
깜짝 놀란 인딤과 지벡이 아자딘이 바라보는 곳을 보니, 아라엘의 부하인 세라프와 알레프, 둘이 황제의 조폐기에 붙어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자딘이 그걸 비웃자 아라엘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군. 아자딘 말이 맞아.”
“아라엘 님.”
“우선 청건당 그놈들은 늪의 고목, 그림스로운의 권속들이다. 그림스로운의 비약이 그들을 질병에서 치료해주긴 하지만, 권속이 일정량 이상 늘어나면 현세에 악영향을 끼치지. 목성의 시대에 그렇게 많은 잠재적인 권속을 한자리에 모은 게 그들의 실수야.”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 우리가 적어도 저 권속 폭주 사건에서는 무죄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겠지? 솔직히 말해서 내가 화가 나는 건 고작 휘브리스인들 좀 죽었다고 내가 변명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네?”
“고작 너희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거짓말을 할 것 같으냐?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나갈 때 저 밖에 있는 휘브리스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지. 어때?”
“알겠습니다. 적어도 이번 건에서 당신들은 관련이 없다 그 말이군요.”
지벡은 칼을 거두었다,
아라엘의 목소리에는 휘브리스 백성들에 대한 증오와 멸시가 담겨 있었지만, 그녀가 이번 사건에서 정말 저 폭주를 일으키지 않은 게 분명하다면 여기서는 칼을 거두는 게 공정하기 때문이었다.
지벡이 칼을 집어넣자, 인딤도 마지못해 칼을 거두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자딘. 나와 협력은 어떻게 생각해?”
“우선 나는 네 밑으로는 들어가지 않아. 하지만 대등한 협력관계라면… 조건에 따라서 생각해보지.”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화조풍월의 4인이 반응했다.
디미아와 알레프는 피식 웃었고 세라프와 인딤은 감히 아자딘이 아라엘과 대등한 관계를 논하는 것에 분개했다.
“이 낙오자 자식이 감히….”
“우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할 놈이 아라엘 님에게?!”
“다들 진정해. 좋아, 아자딘. 동등한 대접을 약속해주지. 이제 마음에 드나?”
“그래. 그럼 정보를 공유해주겠어?”
“거저 정보를 먹겠다니 전혀 동등한 대우가 아닌데?”
아라엘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해준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말했지만 아자딘은 그걸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황제의 보물고 맞지? 기대한 것과는 좀 다르군. 황제라면 돈도 무기도 보물도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텅 비어 있잖아? 창고의 흔적만 남아 있고.”
“황제의 보물고는 황제가 서거했을 때 아라가사들이 이미 한 번 약탈했으니까.”
“아라가사? 우리들이?”
“그래. 황제의 마법 유물이나 재산들은 아라가사가 성역으로 가져갔다. 여길 도굴한 게 바로 우리 아라가사란 말이지.”
“아니, 잠깐? 그렇다면 원로원은 이미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 아냐? 왜 그동안 알리지 않았지?”
“왜냐면 원로원은 복무의 저주를 오히려 좋아하니까. 자신들이 마음대로 발동시킬 수 있는 저주를 그렇게 쉽게 풀게 해줄 리가 있나. 실제로 네가 나와 손잡았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만으로 네 복무의 저주를 발동시켰지? 우리 아버지, 아크레는 어떻고? 일족의 제어를 벗어난 이를 저주로 끔찍하게 죽일 수 있다니, 원로원들에겐 너무나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되지 않나?”
아자딘은 아라엘의 말을 듣고 당혹감을 느꼈다. 원로원들이 복무의 저주를 풀 기회가 있음에도 오히려 풀지 않고 이용했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군. 원로원이 이미 황제의 보물고를 알고 있으면서 진실을 감추었다는 건 그럴싸해.’
아자딘도 원로원에 어둠이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좀 눈이 떠지나? 아자딘?”
아라엘은 아자딘을 비웃으며 조폐기를 바라보았다.
“금이 없으면, 지금 당장 저 기계를 돌리는 건 불가능하겠군.”
“그런데 잠깐.”
샤티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앞을 가리켰다.
“저 안쪽에는 하나 더 닫혀 있는 문이 있는데?”
샤티가 가리킨 곳은 폭포의 안쪽이었다. 폭포 너머에 숨겨진 문이 하나 더 있다.
“아, 저건… 통곡의 문이다.”
아라엘은 샤티의 질문에도 대답해주었다.
“아직 우리도 저걸 여는 방법을 모른다. 황제가 서거했을 때 닫혔는데… 드워프들도 어떻게 여는지 모른다고 하더군.”
“그래?”
“전승에 의하면 인류가 정말 위험에 처할 때를 대비해서 황제가 안배해둔 뭔가가 들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군.”
“시도해볼까?”
“해보던가?”
아라엘은 아자딘이 통곡의 문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그럼….”
아자딘은 샤티, 그리고 스콧을 불러서 통곡의 문으로 향해보았다. 폭포 뒤에 마련된 거대한 금속문에는 문을 열 어떤 장치도, 심지어 열쇠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스콧, 샤티. 어때 보여?”
“아무것도 없어, 대장. 사령술사는 생명감지를 할 수 있는데… 문 너머는 감지가 안 돼.”
“그래? 샤티는?”
“나 역시, 안에 풀 한 포기 없어.”
샤티는 녹색 마력으로 풀이나 식물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그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한 문이로군.”
아자딘은 문 앞에 남아 있는 흔적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수레바퀴의 흔적이었다. 뭔가 아주 거대하고 많은 짐이 이 문 너머로 오갔는지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흔적이 돌 위에도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아자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부숴볼까?”
아자딘은 문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마치 산 그 자체를 움직이려는 것처럼 문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부술 수 있겠느냐?”
아라엘이 비웃었다.
오기가 돋은 아자딘이 웬디고의 단도를 뽑아 들었다. 사악한 네더의 존재, 옛 사신의 신물을 휘둘러 문을 후려갈기자 맑은 쇳소리가 났다.
“이럴 수가?”
문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고 오히려 아자딘의 손을 저리게 했다.
“파랑이는 어떨까?”
아자딘은 자신이 파랑이라고 이름 붙인 아주어 스틸 장검을 뽑아들어 문에 대고 조심스럽게 짓눌렀다. 마치 끌이나 정으로 거목이나 거암을 쪼개듯, 힘을 집중해서 문에 들이밀어 보았다.
그러나 명장이 만든 아주어 스틸 칼날은 스스로 문 앞에서 미끄러지며 자신의 칼날을 보호했다. 이번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다.
“으음. 그럼 결국 이건가?”
마지막으로 아자딘은 흑강전을 꺼냈다. 딱 한 발 남은 흑강전으로 문을 긁어보자 이제야 흠집이 났다.
하지만 손으로 문지르면 바로 지워지는 정도의 흠집이었다. 아주 미세하게 긁히긴 했지만 그것뿐이다.
오기가 꺾이고 체념이 찾아왔다.
“이거 어림도 없겠군. 흑강전으로 긁었는데 이런다고?”
“네가 열 수 있으면 원로원이 진작 열었지. 아자딘.”
“그건 그렇군. 그래서 아라엘. 조폐기로 금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텄고 이제는 어쩔 거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봐.”
“그걸 말할 때 널 믿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원로원의 편에 서지 않을 거라는 건 알 텐데.”
“하지만 원로원을 처죽이지도 못할 테지. 알디스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면 바로 넘어가는 거 아냐?”
“…….”
“농담이다. 쓸데없는 소리로 네 속을 긁을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장로 하티르를 끌어내기 위해 브투마로 향할 거다. 브투마 왕좌도 곧 나가들의 세력이 공격해서 위기에 처할 거야.”
“브투마에서도 코랄 사하르 같은 짓을 벌인다고?”
“그래. 게다가 브투마는 나가 제국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지. 아마 우리 아라가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승부수가 던져질 거다.”
“어.”
그 말을 들은 샤티가 당황했다.
언젠가 브투마를 공격해 함락시킨다. 그건 나가 제국의 오랜 염원이었는데… 설마 아라엘의 입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나가 제국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벌써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나?’
어쩌다 보니 아자딘의 포로(?)가 되어서 협력을 강제당하고 있는 샤티였지만 브투마 공략은 나가 제국의 염원.
그것을 훼방 놓게 될 경우 나가들에게 샤티가 용서받을 수 있을 리 없다. 이제 더 이상 상황에 끌려 다니지 말고 진심으로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한편 지벡은 냉정하게 상황을 꿰뚫어 보았다.
“당신은 마치 나가들이 스스로 브투마를 공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애초에 이것도 당신들 소행이지요? 코랄 사하르를 공격했을 때처럼 당신들이 나가들을 불러들인 것 아닙니까?”
“그렇지. 원래 우리가 나가들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지만, 원로원이 우리의 자리를 대신한 지금도, 아마 계속 진행할걸? 하지만 이게 바로 기회다. 알디스는 코랄 사하르를 지키느라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이번에 왕좌를 차지하러 나올 인물은 두령 하티르뿐이야.”
“두령 하티르….”
“그를 죽인다. 그게 우리들의 진짜 목표다.”
“잠깐. 그거….”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말씀하시면 곤란하지 않을지?”
화조풍월의 4인은 너무 쉽게 기밀을 말해 버리는 아라엘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했다.
아라엘의 추종자 중에는 아라엘이 알기 전에 아자딘을 죽여 버리자는 이들이 많았는데 화조풍월의 4인도 그런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있었다.
아라엘이 자신의 혈육이라고 아자딘을 너무 감싸고돈다.
물론 당사자인 아자딘으로서는 그런 모욕이 없을 것이다.
“너희나 원로원이나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생각이나 해봤나?”
브투마의 왕좌를 빼앗기 위해 나가들을 끌어들이면 코랄 사하르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을 그저 반상 위의 말들 대하듯 하는 건 원로원, 아라엘 지파 가릴 것 없이 똑같다.
이들의 계획이 전부 사람들의 희생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에 아자딘은 역겨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