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69
168. 권속의 폭주 5
광장에는 여전히 분노하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코랄 사하르에서 갑작스런 태풍을 맞이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망쳐왔는데, 영문도 모르고 괴물로 변한 인간들에게 습격까지 당했으니 그들은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애통함으로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이런 이들의 앞에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 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째서 사람이 괴물로 변하고….”
“우리 가족을 죽였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사, 사람들이 말하기를 청건당 비약을 먹은 이들만 괴물로 변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아니, 도사님이 그럴 분이 아니다!”
“그 여자야! 기이한 여자와 광대가 우리를….”
“그래, 광대들!”
사람들은 방랑 상인으로 분장해 곡예를 벌이던 아라엘 일행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 옆에서 청건당 대원인지 그냥 사람들인지 모를 이들이 아라엘 일행 쪽으로 사람들의 화살을 돌리려 애를 썼다.
“우선 다들 진정하고 당신들, 어떻게 정신을 차렸지?”
아자딘은 권속이었다가 정신을 차린 이들을 가리켰다.
“그건….”
“도사님이 저희를 정신 차리게 했습니다.”
“그렇지? 그대들의 폭주를 청건당의 도사님이 비술로 구해준 거야. 이번 사태는 청건당의 힘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야.”
아자딘이 노골적으로 청건당 편을 들어주자 청건당 사람들이 내심 안심했다.
다만 청건당이 평소에 패악질도 꽤 부렸던지라 그들을 불신하는 다른 이들이 물어보았다.
“하지만 애초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청건당 비약을 먹은 사람들이 주로 괴물이 되었는데 정말 청건당의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청건당의 당원들은 즉시 모든 책임을 광대들, 그러니까 난민촌에 방물상으로 위장하고 접근해왔던 아라엘 지파에 돌렸다.
“그 광대들이 독을 탄 거라니까! 틀림없어.”
“아니야! 청건당 비약에 독이 들어 있었다니까!”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이런저런 음모를 끌어내며 불안에 떨었다.
“모두 진정!”
아자딘은 그리 말하면서 황제의 목소리를 불렀다.
황제의 전령에게 붙는 인공정령, 황제의 목소리가 아자딘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주어 한 사람이 말하는 것 같지 않은 강한 음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
“…….”
좌중이 모두 아자딘을 주목했다.
“야에가스 신족의 피가 흐려지면서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목성의 기세가 강해지면 네더스트롬에 가라앉은 옛 신들의 피가 끓어오른다.”
아자딘이 배에 힘을 주고 선명하고 큰 목소리로 목성의 시대에 대한 예언을 말했다.
“지금은 목성의 시대, 이 끔찍한 사건도… 코랄 사하르의 폭풍도 모두 네더의 힘이 벌인 일이지.”
지금 이 말에는 거짓이 없다. 청건당이 네더의 힘을 담은 걸 비약이랍시고 뿌리긴 했지만, 어쨌건 모든 사고가 네더의 힘에 의한 것임은 틀림없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코랄 사하르의 왕좌에 강력한 새 왕이 앉았으니 일단 코랄 사하르에서 온 사람들은 그곳으로 돌아가도록. 돌아가서 다가올 목성의 시대를 대비하도록 해라.”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청건당 도사를 불렀다.
“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코랄 사하르로 가는 난민들 일부를 호위하도록 하세요.”
청건당 비약을 먹은 이들이 한곳에 모이면 사신의 추종자들이 모여 의식을 치르는 것과 비슷한 행위가 된다.
즉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청건당의 인원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청건당 도사는 지금 감히 아자딘의 지시에 왈가왈부할 입장이 못 되었다.
“하지만 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이동시키려면 식량이나 물자가 필요한데요.”
“그동안 긁어모은 청건당의 물자를 쓰도록 하세요.”
“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만….”
아자딘은 혀를 차고 돈을 꺼내 주었다.
그간 꽤 많은 재산을 모았던 아자딘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쓰기엔 엄청나게 많은 금액도 난민들, 여러 사람들 입에 풀칠하려니 부족하기만 하다.
“이걸로 사람들 관리에 보태도록 하세요.”
“아,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브투마로 향할 예정인데 혹시 청건당 사람들 만날 때 협력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장 같은 걸 써줄 수 있습니까?”
“추, 추천장 말입니까? 무, 물론이지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걸….”
청건당 도사는 팔뚝만 한 길이의 장식된 곤봉을 아자딘에게 넘겨주었다.
“뭐지요? 이건?”
“청건당 곤봉입니다. 원래 제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추천장을 써드릴 테니 이것도 가져가십시오.”
“…….”
아자딘은 청건당 도사가 자신의 신분증이나 다름없는 곤봉을 주겠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이 자식, 그냥 때려치우고 도망가려는 거 아냐? 나에게 떠넘기고? 말이 청건당 도사지 사이비 종교의 중간 간부 아냐? 뭐 생기는 것도 없고 고난만 가득한 자리를 뭐 선심 쓰듯 나한테 떠넘겨?’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브투마에 갈 때를 생각하면 받는 게 나았다.
“내가 이걸 받으면 당신은?”
기분이 나빠져서인지 자연스럽게 아자딘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났다.
“제 부족함을 느끼고 도사 직책을 당신께 양도하려 합니다.”
아자딘이 껄끄러워하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도사는 넉살 좋게 아자딘에게 떠넘긴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이 곤봉만 받는다고 도사가 되는 건 아니잖아? 당신들 교주가 임명하는 직책 아냐? 그걸 그렇게 쉽게 양도할 수 있어?”
“천주께서는 저희가 부족함을 느낄 때 기꺼이 그 지위를 양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청건당의 율법이나 체제를 잘 모르시는 부분은 제가 붙어서 보필하겠습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이 도사가 돈만 받아들고 도망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자딘은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뭐. 괜찮지 않을까?”
샤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실 일부러 청건당에 가입까지 했으니까, 도사 직위를 받는 건 오히려 환영이지. 다만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자딘은 청건당을 본 순간 평신도로 위장 가입해 그 조직을 헤아려 보고 가능하다면 이용하고자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위 간부라니.
“그래서 당신 이름은 뭐라고 하지?”
“아 저는 지스와라고 합니다. 당신은….”
“나는 한 번 소개하지 않았나?”
“아단이라고 하셨지요. 가명 아닙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무장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인데 범상치 않은 실력과 기상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제 예측입니다만 처음에 접근하실 때부터 저희를 떠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청건당 도사, 지스와는 사실 처음 아자딘 일행이 왔을 때 이들을 의심했었다.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데 상인도 아닌 것 같은 집단이라니. 셀 소드 조합 아니면 강도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또 다른 의심세력, 아라엘 일당을 조사하라고 시켰던 것이었다.
“그걸 알고도 나에게 도사 자리를 넘기는 건가? 그래. 내 진짜 이름은 아자딘이다.”
“전령일족이시군요. 어쩐지 범상치 않다 싶었습니다.”
“전령일족이라는 걸 어떻게 바로 알아챈 거야?”
“아자딘이라면 전령일족의 이름이지 않습니까? 전령일족이 휘브리스에 난파해 왔을 때 상륙했던 곳이 바로 브투마입니다. 브투마 인근에는 아직 전령일족들, 아니, 아라가사들에 대한 제반 지식이 많이 남아 있지요. 만약 정체를 감추고자 하신다면 브투마에서는 계속 아단이란 가명을 쓰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황제의 전령인 내가 청건당 도사를 겸해도 되나?”
아자딘은 그 점을 물어보았다.
이 청건당 도사, 지스와도 아자딘이 황제의 전령인 이상 청건당의 이념 따위에 혹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어지러운 시대지 않습니까?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자딘을 의심하던 지스와였지만 이번 사건에서 아자딘 덕분에 살아나서 그런지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말 아자딘에게 감복해서 그에게 자신의 지위를 넘겨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이게 백작의 자리나 왕위라면 아주 훌륭한 선양의 사례가 되겠지만 사이비 종교의 교주도 아니라 중간 간부직을 넘겨주니 아자딘 입장에서는 독이 든 성배를 강요당하는 것 같다.
‘청건당에 조사 겸 잠입할 생각은 있었는데 막상 멍석을 이렇게 깔아주니까 영 기분이 좋지 않군.’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지벡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모범적인 성기사였던 지벡이 지금은 전령일족에 나가, 오크 사령술사에 이제는 사이비 종교의 혈법사까지 있는 일행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젝트 경의 잘못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리된 것이고 아자딘의 인품에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있지만 아자딘의 인품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벡이 타락했다고 비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청건당의 가르침 같은 건 전혀 모르는데. 정말 내가 도사를 해도 된다고?”
“가르침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속화 폭주가 일어난 것이 정말 그 여자가 말한 대로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면 청건당의 가르침과 청건당의 조직이 서로 불합치합니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난민들을 걱정해 사재를 털어주는 당신이 이미 훌륭하십니다.”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가 그러하듯 청건당의 가르침 역시 좋은 소리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그 좋은 소리 가득한 가르침을 실제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아자딘이 도사가 되어도 무방하다는 게 지스와의 주장이었다.
‘이 자식. 은근히 눈치가 좋은데. 조심해야겠어.’
아자딘은 지스와가 자신의 목적을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자딘에겐 청건당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런 무리한 요구에도 아자딘이 결국 도사직을 받아들일 거라는 걸 아는 것이다.
‘뭘 노리는 거지? 뭐 직접 확인해볼 수밖에 없나?’
아자딘은 지스와를 의심하면서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브투마로 가는 길 안내를 부탁하지, 지스와.”
“예. 아자딘 도사님.”
“벌써 칭호를 그렇게 하기로 정했나? 그냥 아자딘이라고 불러. 브투마 넘어서면 아단이라고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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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은 청건당 도사, 지스와에게서 도사의 자리를 이양받고 브투마 근방의 지도를 얻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스와는 아자딘을 직접 안내하기로 했는데 그런 지스와를 따라 청건당 당원들, 그리고 난민들 일부가 따라왔다.
“저희도 브투마로 가고 싶습니다.”
“브투마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요.”
“이곳은 식량도 일자리도 부족하고 공기도 나빠서 질병이 계속 퍼지는 것 같습니다.”
브투마까지 함께하자는 이들이 몰려오자 지스와가 난처해하며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이제 지스와의 리더는 아자딘, 그들이 가고자 한다면 그 결정권은 아자딘에게 있는 것이었다.
“함께 가도록 하지.”
아자딘은 그들의 동행을 허락했다.
아자딘 일행이야 무력이 출중해 이 정도 길은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난민들에게는 길에서 만나는 짐승들, 마물들, 그리고 도적 떼들이 아무래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브투마로 가볼까? 가만, 지스와. 내가 도사라면 그 천주님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기대되는군.”
나가 제국의 침공이 예정되어 있는 브투마에서, 청건당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분명히 큰 힘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들이 권속이 되어 폭주하는 건 막아야지. 나가들의 공격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청건당이 폭주를 일으키면 그것도 힘들 테니까 말야. 천주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군.’
아자딘은 청건당의 교주, 천주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