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
16. 귀족의 부산물 1
아자딘은 지치고 피곤한 상황에서도 계속 행군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쫓아오면서 아자딘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우거와 이빨의 왕의 권속이 나타났다는 건, 어쩌면 중부 내륙지에서 계속해서 마물들의 군대가 몰려오는 게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그럼….”
“내가 본 바로는 오우거에 마법 쓰는 고블린도 있었고 분대장으로 홉고블린도 있었으니까 정규군이란 느낌이었어.”
아자딘은 그들이 신왕진서 사본을 노리고 있었다는 걸 떠올리며 말했다.
신왕진서 사본을 찾기 위해 보내어진 마물들의 척후병.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리라.
‘그렇다는 건 내가 오늘 얻은 완드가 잔뜩 있다는 건가?’
아자딘은 궁금해서 완드를 꺼내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미디암, 이거 뭔지 알 수 있겠어?”
“음, 마법 완드인가요?”
미디암이 아자딘이 꺼낸 뼈 완드를 받아 보았다.
“본격적으로 집중하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도 지금 피곤해서. 아, 그런데 이걸 제게 부탁하시는 거면 절 종사로 인정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만리타향에서 만난 동족이잖아? 그 정도는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으음. 여전히 그렇게 나오시는군요. 그럼 저도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요?”
“어떤 거?”
“음. 그, 글쎄요? 또 막상 생각해 보니 종사로 받아들여 달라는 거 말고 부탁할 만한 게 없네요?”
“그렇지?”
“그럼 나중에 생각나면 부탁할게요.”
“그런 거는 좀.”
“하여튼 이거 완드 검사하려면 좀 집중이 필요할 것 같네요. 자고 일어나서 해도 될까요?”
“하긴 나도 방금 전 전투를 했더니 피로하군. 계속 걷기도 했고.”
“그럼 여기서 쉴까요?”
“아니, 서두르자. 산양들 사료값도 꽤 나가니까 너무 지체하지 말자고.”
장님 순례자 행세를 하면서 관문에 도착했을 때 관문 밖 여관에서 산양들에게 쇠죽을 먹이고 자신들도 음식을 사 먹었다. 여행이란 결국 지출, 지출, 지출의 연속인 것이다.
“따라와라. 아, 그 전에 변장부터 다시 해야겠군.”
아자딘은 다시금 장님 순례자의 모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옷을 뒤집어 입고 몸을 웅크리니 키가 한 척이나 줄어들어 보이고 팔 길이, 다리 길이 또한 줄어들어 보인다.
몸이 어찌나 유연한지 몸의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전혀 달라 보였다.
다시 장님 순례자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자딘은 일단 그길로 피난하는 사람들을 쫓아갔다. 그들은 인원이 많고 밤길이라 그런지 얼마 가지 않아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무사했군요.”
“다행입니다.”
그들은 아자딘 일행이 무사한 것에 기뻐했다.
“네. 저는 귀가 좋아서 마을에서 승리의 환성이 들리는 걸 들었습니다.”
“네?”
“마을 쪽으로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혹시 등불 신호 같은 걸로 연락할 수 있습니까?”
“그게….”
“혹시 마을이 보이는 쪽이 있으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
피난가던 사람들은 아자딘의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산 위쪽에 관문 마을에 등불이 밝혀져 있는 걸 보고 마을이 무사함을 알았다.
“일단 소수의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서 확인해보고 그다음에 움직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아자딘이 제안하자 사람들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물들이 쳐들어와 피난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약자와 여자들이 마을을 떠나 험한 산길을 내려가는 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살라스마 변경백 카젤 백작이 백성들에게 그리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기에 자기 마을을 버리고 도망친 피난민들을 관대하게 받아줄 리도 없다.
그러니 안전하다면 가급적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는 게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 그러지요.”
사람들은 일단 피난을 멈추고 발이 빠른 사람을 뽑아 마을로 돌아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곧 그들은 마을에서도 보낸 사람과 중간에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역시 오우거 무리의 침략이 해소되자 발 빠른 사람을 뽑아서 피난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파발을 보낸 것이었다.
“전령일족이 나타나서 오우거를 물리쳤다고요?”
“그래. 오우거가 문제가 아니었어. 여보! 글쎄 커다란 마물이 나타났는데 그걸 뭐라고 해야 하지? 하여튼 마을 사람들 중에 누가 전령일족을 불렀나 봐. 그래서 말인데 외부인들에게 입단속을 시켜야….”
“외부인들이면 상인이요? 아니면 그 순례자?”
“그래. 그 순례자들은 어디 갔지?”
“네? 아? 어라?”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진 순례자 일행에 당황했다.
*********
야음을 틈타 빠져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자딘은 다시 복장을 갈아입고 투덜거렸다.
“내가 하는 거지만 정말 귀찮군.”
“그래도 대단하네요. 변장만 해도 인상이 확확 변하는데요?”
“뭐 옷이 아직 크니까 감출 여지가 많지. 더운 지방에서는 못 한다. 주의해야 해.”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산길을 내려갔다.
“오우거들이 다시 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을 굳이 저 마을로 보내야 했을까요? 위험해질 것 같은데요?”
“아니, 보내야 했다. 저들은 가족이잖아. 아예 마을을 버리고 떠나려면 가족들이 함께 피난을 가는 게 낫지. 뿔뿔이 흩어져 피난을 가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겠어?”
“그래도 괜히 마을에 남아 있다가 봉변을 당하면….”
“자경단의 리더가 노련한 사냥꾼이던데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거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그런데 당신은 싸움을 벌였잖아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긴 하지만 여비를 벌어야 하니까.”
“여비를 번다고요?”
“저거.”
아자딘이 손가락으로 산 아래를 가리켰다. 마을을 약탈했던 변경백의 사생아와 그 휘하 용병들이 야영하고 있는 야영지가 눈에 들어왔다.
“황제의 전령된 입장으로 강도짓을 해선 안 되겠지만 마을 사람들을 약탈한 놈들에게서 노잣돈을 좀 적선 받는 건 괜찮겠지.”
“적선… 말이지요.”
이스마일은 혀를 찼다.
변경백의 사생아와 그 휘하 병력은 약 20여명 정도. 다들 쟁쟁한 용병들이라 전령일족 입장에서는 오히려 오우거보다 더 어려운 상대일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 아자딘은 피로가 쌓인 상황이다.
‘만전의 상태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해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
혼자서 다수를 상대할 때는 항상 위험하다. 특히 지쳐서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는 더더욱. 실제로 많은 전령들의 사인은 강자나 난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보다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방심하다 큰일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잘 봐라. 아.”
아자딘은 혀를 찼다. 무심코 이 아이들에게 본을 보여주겠다고 말할 뻔했다. 그의 종사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
타르키와 그 휘하 용병들은 지친 채로 야영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약탈품을 지고 산길을 내려오느라 피로가 쌓인 것이었다. 그래도 용병들은 산길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서 보초들을 세워두고 질서정연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보초들은 망을 보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가뭄에 오우거가 남하하지 않나. 그런데 변경백은 지키라는 변경 수호 임무는 내팽개치고 신왕진서를 찾겠다고 설치고 있는 걸 보니 여긴 끝장인 것 같은데?”
“우리야 한탕해서 빠지면 되지 뭐.”
“그런데 빠져지겠냐? 돈 될 만한 게 얼마 없는데? 게다가 고용주가 아직 신왕진서를 못 찾았는데 여기서 그만둘 것 같지 않아.”
“길게 고용되면 급료 높아져서 좋지.”
“그만큼 위험이 다가오는 기분인데?”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꼿꼿한 자세로 경비를 섰다.
그런 그들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꽤 실력이 괜찮은 용병들이군. 코젤 공자가 데려온 놈들보다는 무장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데? 나도 피곤한 상태고.’
바로 몰래 그들의 야영지에 숨어든 아자딘이었다. 그는 상대의 인원을 헤아리며 침입루트를 찾아보았다.
‘무리하지 말고 몇 놈은 재울까?’
끈을 나뭇가지에 걸고 살짝 떨어져서 당겼다.
-부스스.
나무끼리 마찰해서 소리가 난다.
“응?”
“뭐지?”
보초 둘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자딘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겼다가 보초들이 다가오자 간단히 그들 목 뒤 급소를 움켜쥐었다.
“컥?!”
“흑?!”
두 명의 장정이 맥없이 쓰러졌다. 목에 판금 갑옷을 입지 않아서 단번에 급소를 틀어쥘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좋아. 그럼 빠르게 귀중품을 털어볼까?’
용병들의 수레에 접근해 상자를 뒤져보았다. 상자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자물쇠를 딸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약탈한 보물들이 안에 담겨 있었는데 꽤 부피가 나가는 은촛대나 접시 같은 것들이었다. 이것도 돈이 되긴 하지만 금으로 된 것들에 비하면 부피가 크다.
‘금으로 된 건 먼저 코젤 공자가 약탈했던 건가? 흠, 코젤 공자 일당이 그렇게 돈이 많아 보이진 않았는데. 아, 관문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팔고 일부는 자기 집으로 부쳤나 보군.’
아자딘은 은촛대와 접시를 챙기고 다른 것들을 살펴보았다.
카페트나 타페스트리 같은 물건들도 있다. 고급스러운 향목으로 만들어진 상자나 화장대, 은박이 입혀진 작은 책장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것들도 가치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너무 크고 무겁다. 게다가 모양이 뻔해서 처분하면 어디서 훔쳤는지 다 티가 나는 물건들이다. 자기 집 책꽂이나 화장대 같은 건 보면 알지 않는가?
‘은촛대 정도가 그나마 중량 대비 가격이 가장 좋은 물건이군. 뭐 약탈품은 됐고, 원래 용병들 보급품을 뒤져볼까?’
아자딘은 용병들의 화물로 접근해 뒤지기 시작했다. 말의 사료로 쓸 콩과 귀리, 그리고 화살촉들이 있었다.
‘오 좋아. 화살촉으로 가지고 있었군. 좋은데. 싸구려 유엽전이 아니라 진짜 강철화살촉이잖아?’
아자딘은 신이 나서 그 물건들도 챙겼다.
이제는 몸이 무겁다. 아자딘이 보통 인간들보다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그도 짊어질 수 있는 물건들에는 한계가 있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들키지 않게 나가려면 욕심을 버리고 적당히 챙겨야 한다. 그런데 막 용병들의 화물을 뒤적이던 아자딘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라? 이게 왜?’
그것은 뼈로 만들어진 완드였다.
아까 고블린 주술사에게서 얻은 것과 똑같은 완드가 용병들의 화물에 있었다.
‘여기에 있다는 건 이건 약탈품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놈들이 챙겨온 거라는 뜻인데….’
아자딘이 당황한 그때였다.
“앗! 이 녀석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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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키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침낭 밖으로 나와 수풀에서 소변을 보았다.
“아 젠장. 자기 전에 마신 게 좀 잘못인가. 자다 깨니까 춥네. 고지대라….”
투덜거리며 볼일을 보고 야영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보초들이 사라져 있는 걸 발견했다. 2인 1조의 불침번을 세워뒀는데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