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0
169. 북방의 위협 1
비바람이 그치자 다시 모기들이 극성을 부렸다.
스콧과 샤티가 마법을 써서 다가오는 모기들을 내쫓고, 아자딘은 케림 산양의 등에 올라탄 채 가지고 있는 신왕진서 사본들을 순차적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몸 안에서 마력을 정제하였다.
신왕진서 사본에 축적되는 강력한 백색 마력을 순환시키며 몸 안의 마력을 강화시킨 이후로 화조풍월, 카자스 해서도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실감이 안 가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확실히 강해진 게 느껴진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동 중에 해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라엘이 말한 것들이 아자딘의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녀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아자딘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준 알디스나 카자스는 결국 원로원의 계획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었다
개개인은 선량할지 모르나 원로원의 뜻은 분명히 사악한 것이니, 원로원에 충성하는 이들 역시 악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할 수 있었다.
‘브투마에 나가가 공격해오고, 두령이 브투마의 왕좌를 빼앗으려 한다라…. 음, 어떻게 막아야 하지? 그리고 만약 내가 두령에게 맞서게 되면 과연 그들의 야욕을 제지할 수 있을까? 거기다 스승님이나 알디스가 두령의 편에 서면 난 어찌 되는 거지? 지금은 황제의 2령으로 복귀했지만 다시 복무의 저주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이래저래 생각이 복잡해진다.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나서긴 했지만 사실 그도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그가 불안해하면 그를 따르는 모두가 불안에 떨 테니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아자딘도 사실은 미지의 영역을 가고 있는 중이다.
‘청건당이 세력이 꽤 큰 것 같으니 그들을 이용해서 어떻게 조력을 얻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과연 잘 될까? 아라엘이 말한 대로라면 청건당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한 일이 될 게 아닌가?
그때 상념에 빠진 아자딘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
“어…. 좋은 날이오.”
아디로프령과 브투마 왕국 사이, 애매한 경계선인 곳에서 길가에 모닥불을 피워두고 야영을 하는 일단의 무장 세력이 아자딘 일행에게 인사를 해왔다.
꽤 괜찮은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사냥용 활과 화살을 가지고 불을 피우고 있는데 사냥꾼이라기엔 갑옷을 묵직하게 입어서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냥 도적 떼구만. 우리 인원이 많아서 경계하는 거네.’
아자딘은 이들이 도적 떼임을 알아보았지만 굳이 먼저 시비걸지 않고 인사를 받았다.
“좋은 날입니다. 브투마로 가는 길인데 뭐 소식 없습니까?”
“소식이라면, 몸 조심하십시오. 괴물로 변하는 미친놈들이 우리 아는 사람들을 죽이고 브투마로 도망쳤습니다.”
“괴물로 변하는 미친놈이라니? 늑대인간 말입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
“아니면 고목나무로 변하는?”
아자딘이 고목나무를 언급했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하여튼 엄청난 괴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저기 보이십니까?”
“…….”
아자딘이 보니 길가에 나무가 부러져 있었다. 그 나무에 뭔가가 묻어 있는데 핏자국이 시간이 지나 비바람에 씻겨 내려간 흔적이었다. 어제 비가 쏟아졌으니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놈들이 우리 형제를 쳤는데… 나무에 날아가서 처박히면서 저렇게 되었소. 나무가 부러지고 사람이 정말….”
“장례를 치르려고 시체를 수습했는데 조각들을 주워서 자루에 담아야 했습니다.”
도적들은 그리 말하며 치를 떨었다.
“브투마와 코라사르 국경에서 계속 출몰하면서 사람을 죽여대고 있다고 하니 주의하십시오.”
“우리도 형제의 복수를 위해 찾고는 있습니다만 솔직히… 자신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자딘은 그들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눈앞에 보이는 이들은 도적이 분명한데, 나름 의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동료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고 가망도 없는 싸움에 나서다니 말이다.
‘그래도 무장상태가 좋은 걸 보니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 같군.’
아자딘은 나무에 다가가 혹시 뭔가 남은 게 없는지 살펴보았다.
곧 어렵지 않게 약간의 살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 틈바구니에 끼인 그 살 조각은 몸에서 떨어진 지 꽤 지났을 텐데도 마치 거머리처럼 번들거리는 몸통을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런 방식의 네더 권속을 아자딘은 잘 알고 있었다.
“으음… 이거는….”
“뭡니까?”
“지벡 경. 이게 뭔지 알 것 같지?”
“아, 이거는….”
지벡은 그 벌레 같은 살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젝트 경인가요?”
“젝트 본인은 아닐 거야.”
“젝트 경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야 왕의 교회 이단심문관 입장에선 브투마로 오기보다는 코랄 사하르 왕좌의 주인이 바뀐 게 더 큰 사건이잖아? 그리고 그 작자가 그 휘황찬란한 금박 갑옷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은데. 젝트 경이라면 금박 성기사가 오갔다고 이야기가 나왔겠지. 아마 젝트 자신은 코랄 사하르 방향으로 갔을 거고 이놈들은 따로 움직인 게 아닐까?”
“그건 그렇군요.”
지벡은 아자딘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고 감탄했다.
매번 아자딘은 약간의 정보만 있어도 빠르게 추리하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곤 했었다.
성기사인 지벡도 훈련을 받지 않은 건 아닌데, 그럼에도 아자딘은 격이 달랐다.
“그래도 준비는 해둘까.”
아자딘은 흔들리는 산양 위에 올라탄 채 나무를 다듬어 철전촉을 끼워 화살을 만들고 헤비 크로스보우에서 뽑아온 강철 대궁을 준비했다.
“뭐, 뭘 하시는 겁니까?”
지스와가 당황해서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전투 준비. 너무 걱정하진 마. 별거 아니니까.”
“그, 그렇습니까? 아니 전투 준비가 별거 아닐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스와 뿐만 아니라 난민들과 청건당원들마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뭐야? 청건당의 당원들은 뭐 이 근처 도적들과 마물들 잡고 그랬다고 자랑하면서 남들 삥 뜯더니만 왜 떨어?”
“그, 그게….”
“저희가 순찰을 도니까 도적들이 길에서 물러나서 피했다 이거지요.”
“즉 실전 경험은 없다?”
“그, 그렇습니다.”
“그럼 그동안 약자들 앞에서만 으스대고 괴롭혔군. 안심해라. 이번에 내가 너희들을 사나이로 만들어주지.”
“어, 네.”
“그, 그게.”
청건당 당원들은 부서진 나무와 그 나무에 끼인 살점들, 그리고 조금 전 길거리에서 야영 중이던 도적들의 무장을 떠올렸다.
오합지졸인 청건당과 달리 도적들의 장비는 매우 훌륭했다. 틀림없이 전투 경험이 풍부한 도적들조차 당해내지 못한 상대 앞에서 자신의 ‘사나이다움’을 어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현재 청건당 도사는 아자딘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돌려 도망치기에도 늦었다.
“남의 이야기가 되니 아주 재밌네.”
아자딘에게 끌려다니는 신세인 샤티가 잔뜩 주눅 든 청건당원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
“크…르르.. 말도 안 된다. 우리. 이빨의 왕의 자식들. 너희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
피투성이가 된 오우거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빨의 왕의 자식들, 엄청난 수의 오우거와 홉고블린, 고블린 군대가 산을 내려왔다.
산지에서 야크를 키우며 사는 이빨의 왕의 자식들은 배가 고파지면 인간을 약탈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편성해 산길을 따라 내려와, 인간을 습격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기이한 인간들, 아니, 인간 형상의 괴물들에게 몰살당한 것이다.
“우리들, 나가 제국과 함께 브투마 습격한다. 너희들 만약 우리 편이라면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다.”
“크크크. 우리가 쿠르트 판테온의 추종자로 보이냐?”
“지금 들었어? 오우거가 목숨 구걸을 한다!”
오우거들의 군대를 쓰러뜨린 이 인간 형상의 괴물들은 웃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그저 인간? 그럼 오우거가 먹고, 인간이 먹힌다.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콰직!
남자는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는 오우거의 입안에 자신의 팔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확장시킨다. 검붉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오우거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 가더니 그를 안에서부터 뜯어먹기 시작했다.
고통에 오우거가 몸부림쳤지만 이미 전신 사지를 다 분쇄해놓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후우.”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블린의 시체가 50여 구가 넘고 오우거도 세 마리나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다 죽였다.
“엄청난 전과다. 전설 속의 영웅이나 할 법한 엄청난 일을 내가 해내다니.”
그렇게 말하는 이는 한때 란타릭과 살라스마의 경계에서 스스로 도적왕이라 칭했던 남자, 도네어였다.
“네. 저희들도 점점….”
도네어의 부하들 역시 고블린의 시체 산 위에서 자신들의 힘에 취해 있었다.
전투의 승리가 가져오는 고양감과 전능감,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벌레들이 시체를 뜯어먹으면서 느껴지는 육체의 쾌감이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 정도 힘이라면 진짜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습니다.”
“네. 그 이단심문관 녀석에게도 말이지요.”
그들이 말하는 이단심문관은 타락한 왕의 교회의 심판자 젝트를 말하는 것이었다.
젝트에 의해서 마물이 된 그들은 젝트의 명에 따라 이곳, 브투마 왕국 국경에 와 있었다. 왕화의 빛이 가장 약한 곳이 바로 국경지대. 이곳에서 그들은 사람들과 마물들을 습격하며 힘을 키우고 정보를 모으고 있던 중이었다.
“그럼 이제 어쩔까요? 이제는 그 이단심문관 녀석에게 질 것 같지 않은데? 계속 그놈의 명령대로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래도 한동안 계속 이곳에서 힘을 키우자. 왕화의 빛이 우리를 괴롭히니 말이야.”
도네어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왕화의 빛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마물이라 불러야 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계속해서 강해지는 마물로서의 힘이 그들의 야심과 야욕을 일깨웠다.
마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부터 도네어와 그 일당은 사람을 괴롭히고 폭행하는 것을 즐겨왔다.
인간이었을 때 그들이 브란드에게, 그리고 그 일대의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폭력과 고문은 끔찍하고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이미 폭력의 광기로 미쳐 버린 그들은 이제야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육신의 껍데기를 갖게 된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일대를 지나는 여행자들에게 크나큰 재앙이었다.
“음?”
그때 도네어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여행자 무리가 들어왔다. 일부 무장한 세력과 그렇지 못한 자들, 상인이라기엔 행색이 초라한 것으로 보아 유민들로 보인다.
“또 손님들이 찾아왔군. 잡아서 죽이자.”
도네어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젝트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은 잠시 잊고, 왕화의 빛에 의해 내몰리는 마물 신세가 되었다는 현실도 내려놓고, 그저 폭력의 흥분에 흠뻑 취하고 싶다.
도네어와 그 부하들은 열망에 채찍질을 가하면서 언덕길을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