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4
173. 청건의 천주 1
비록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괴물이지만 콥스 어보미네이션을 만든 이후로 일행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농가에서 구한 짐마차를 끄는 콥스 어보미네이션은 아무리 많은 짐이나 사람이 실려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자딘 일행은 브투마의 국경을 넘어서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키말하지 백작령에 당도했다.
물과 흙이 많은 브투마라 그런지 키말하지 백작령의 외성벽은 죄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안쪽의 중요한 성벽은 돌을 쌓아 만들고 바깥의 성벽은 토성으로 만드는데 이러한 토성은 비바람에 쉽게 손상을 입기에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성벽을 보수하기 위해서 흙을 퍼 올려 나무틀 안에 부은 뒤 코끼리가 올라가서 밟으면서 안을 다지고 있는 게 보였다.
“오. 코끼리… 놀라운데? 처음 본다. 그림으론 봤지만 실제로는 정말 크네.”
태어나서 처음 코끼리를 보는 아자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운 것은 코끼리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키말하지 백작령에는 이미 상당수의 청건당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난민이라기보다는 원주민들로 보였다. 그들은 열심히 토성 축성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곳 키말하지 백작령이 바로 청건당의 성지입니다.”
지스와가 설명해주었다.
“성지라고?”
“예. 이곳에서 저희 천주님이 번개를 맞고 청천의 이치를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천주님이 여기 있나? 가능하다면 브투마를 구하는 데 조력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군.”
“애석하게도 천주님은 그 후 키말하지를 떠나서 브투마 전역을 순례하시며 청천의 이치를 전하시고 현재는 브투마 왕국의 수도 브투우마에 계십니다.”
“그래? 그래도 청건당원이 많은 것 같은데. 폭주하지 않을까 걱정이군.”
아자딘이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누군가가 아자딘 일행을, 정확히는 지스와를 불러세웠다.
“오, 지스와 형제. 그래 코라사르에서 포교는 많이 했나?”
누가 말을 걸었나 하고 보니 성벽을 보수하던 검은 피부의 브투마인이 코끼리를 탄 채 비웃는 표정으로 지스와를 보고 있었다. 청건당 도사의 상징이라는 곤봉을 무슨 안마기처럼 등짝을 두들기는 데 쓰고 있었다.
지스와는 불편해하며 답했다.
“코모살 형제. 실은 사고가 있었네.”
“사고라니?”
“아디로프령에서 청천의 도를 사람들에게 포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폭주하면서 네더의 권속이 되지 않았겠나. 그래서 많이 죽고 포교도 더 이상 무리라고 여겨져서 돌아왔네.”
“사람들이 폭주해서 네더의 권속이 되었다고?”
“그래. 여기서는 그런 일이 없었나? 학질이나 열병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우리가 준 약이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얼마나 많은 코라사르 놈들이 죽었나?”
“뭐?”
“좀 많이 죽였으면 훌륭한 성과를 올린 거지.”
놀랍게도 이 청건당 도사는 신도들이 폭주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래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그것을 물어보고 있었다.
마치 폭주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 태도에 지스와는 당황했다.
“잠깐! 지금 그게 무슨….”
그러나 그때 지스와의 어깨에 아자딘이 손을 얹었다.
“지스와 형제. 날 소개해주게.”
“아… 네.”
“응? 이자는 누군가?”
“이분은 날 대신해서 청건당 도사가 된 아단 형제네.”
“뭣? 대신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청건당 도사의 중책을 맡기에는 부덕하여 역부족이라 여겼는데 마침 덕이 높고 의협심이 강한 아단 형제가 기꺼이 도사의 직을 대신하여 주셨네.”
“보시다시피.”
아자딘이 청건당 도사의 상징인 곤봉을 들고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안마를 했다.
“그런!”
코모살은 지스와가 멋대로 처음 보는 놈에게 도사 지위를 양도했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그런 걸 보면 과연 지스와의 돌발행동에 놀란 것은 아자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청건당 도사의 지위를 맡은 이상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자, 그럼 설명은 들었으니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코모살 형제? 형제라고 불러도 되지? 나도 청건당, 당신도 청건당, 우리 모두 형제 아닌가?”
“…….”
“마침 우리가 청건당 형제들, 그리고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난민들을 데려왔네. 이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게.”
“일자리라니?”
“지금 토성을 쌓고 있지 않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걸로 보이는군.”
“아, 그, 그건….”
“그리고 여기 쓰다 남은 비약이 있는데 한 잔 쭉 들이켜 주실까?”
아자딘이 약병을 꺼내 들었다.
“윽?!”
코모살은 아자딘이 내미는 약병을 보고 흠칫 놀랐다. 마치 독약이라도 보는 듯한 그 태도에 아자딘은 확신했다.
“보아하니 비약에 장난을 친 것 같은데?”
그러나 아자딘이 코모살을 윽박지르자 토성을 쌓던 인부들이 삽과 망치를 들고 다가왔다.
“코모살 도사님!”
“이놈들은 누구입니까?”
“보시다시피 청건당 형제들이지!”
아자딘이 곤봉을 들어 보이자, 그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의아해했다.
“코모살 도사님?”
“이, 이자들은 가짜다! 타락한 지스와가 도사의 직책을 엉뚱한 놈에게 팔아넘겼다! 체포해!”
코모살이 그리 외치자 그들이 삽과 나무망치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 모습에 아자딘 일행의 청건당원들도 일어났다.
그리고….
“아니, 나는 일어나기 싫은데. 지금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근육 찌는데.”
스콧이 일어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인간으로 둔갑해 있지만 오크 특유의 잘 발달된 근육은 그대로 둔갑술에 반영되어서 지금의 스콧은 엄청난 근육질의 거구로 보였다.
“…세상에.”
“무슨 근육이.”
“오크 같잖아.”
다들 스콧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아자딘이 난민과 청건당원의 일자리를 청탁하다가 이런 꼴이 되었다는 걸 듣자, 청건당원들이 모두 몰려와 아자딘을 편들었다.
“당신들 우리 도사님 자극하다니 제정신이야?”
“우리 도사님이 말야, 괴물들도 아주 추풍낙엽으로 썰어 버린다고.”
“거 괜히 도사님에게 까불다가 골로 가지 말라구. 여기 피바다 되는 거 보고 싶어?”
“우리 도사님 말씀하는 대로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아자딘의 능력을 직접 본 이들은 기세가 등등해서 일자리를 요구했다.
코모살과 그의 청건당원들은 이들의 등쌀에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대체 이 자식들 뭔데 이렇게 기세등등하지?’
‘저 녀석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놈이란 말야? 마치 저 녀석 화나면 다 죽는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
코모살과 아자딘이 데려온 일행들끼리 소란을 일으키자 한 코끼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코모살?”
“아. 아가씨!”
코끼리 위에는 젊은 브투마인 여성이 시녀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기멜라 아가씨.”
“누군데?”
“천주의 따님이십니다.”
“아.”
교주의 딸인 기멜라는 검은 곱슬머리에 자신만만한 녹색 눈을 가진 미녀였다. 그 녹색 눈이 아자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신참인 것 같은데 도사라고?”
“위법입니다! 지스와가 멍청하게 멋대로 도사의 직위를 양도하니 뭐니 해서 천주님의 권위를 해쳤습니다.”
“일단 율법에 도사의 직위를 넘기지 말라고 하는 대목은 없는데.”
“그, 그렇지만.”
“그리고 저 도사야 그렇다 쳐도 다른 이들은 청건을 두르고 있으니 우리 형제가 아닌가? 일자리를 원한다고 했지?”
“네.”
아자딘이 대답하자 이 기멜라라고 불린 여성이 웃음을 지었다.
“좋아. 마침 여긴 일자리가 넘치지. 빨리 토성을 보강하고 화살을 모아야 하거든.”
“북쪽에서 오우거들이 공격해왔기 때문입니까?”
“아, 잘 알고 있네.”
“오던 중에 오우거들을 좀 만났거든요.”
“그래?”
기멜라는 아자딘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코모살은 기멜라가 아자딘에게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보며 불안에 떨었다.
“아, 아가씨.”
“됐어. 코모살. 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식량을 대가로 주도록. 그러면 해결될 일 아니야? 그렇지?”
“…네.”
“그럼 해산.”
기멜라라고 하는 천주의 딸은 상황을 해산시키면서 힐끔 스콧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기, 그 새로운 도사와 지스와, 그리고 그 일행은 잠시 후에 내게 오도록 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으니 말야.”
“…응?”
기멜라의 시선이 스콧의 근육질 몸을 훑고 지나간다. 명백히 관심이 있는 눈빛이었다.
“아, 이것 참.”
스콧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멜라의 눈빛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미남은 골치 아프단 말이야.”
*********
기멜라의 중재 덕분에 아자딘이 데려온 난민들과 청건당원들은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키말하지 백작령은 북방에서 몰려오는 오우거들에 대항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성을 보강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곳은 원래부터 교역으로 부강한 곳이라 씀씀이가 나쁘지 않았다.
“여기는 방어 잘 할 것 같은데?”
샤티는 방어 준비를 하는 키말하지 백작령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평가했다.
그때 아자딘이 샤티를 불렀다.
“이봐, 샤티.”
“왜?”
“나가 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겠어?”
나가 제국이 브투마 정글 안에 있으며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나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다. 게다가 강력한 마법과 독충, 겹겹이 구성된 방어진이 길을 막고 있다는 건 세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아자딘이 그 나가 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샤티에게 물어본 것이다.
“미쳤어?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걸 알려줄 수는 없어. 실제로 나도 잘 모르고.”
“모른다고?”
“그래. 나는 하층민이라 나가 제국 밖에서, 식민지에서 자랐단 말야.”
“그럼 윗선에 보고할 방법은 없나? 이대로라면 또 나가 제국이 전령일족에게 조종당하게 된다.”
“그냥 조종당할 리가 없어. 틀림없이 전령일족이 현물로 뭔가를 줬을 거야. 아마도 신왕진서 사본이겠지.”
“신왕진서 사본을 넘기고 나가 제국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으면 이미 코라사르에서 한 번 당했는데 또 이용당할 리가 없잖아?”
“으음.”
아자딘은 신왕진서 사본이 가지는 힘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중이었다.
이것은 왕화의 빛 그 자체이고, 감히 상상도 못 할 보물이다.
비록 해석이 완성되지 않은 마도서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런 엄청난 보물을 인류의 적인 나가들에게 넘겨주다니.
전령일족이 인류에 죄를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오우거들에게도 신왕진서를 줬을까?”
“오우거는 나가가 끌어들였겠지. 우리 나가가 쿠르트 판테온의 주도 민족이라서.”
쿠르트 신족을 섬기는 이들 사이에서 나가들은 가장 강력한 조직력과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쿠르트 신앙자들의 주도 세력인 그들이 약간의 이익만 약속하면 오우거들을 끌어들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나가라쟈를 만나서 설득할 수 있으면 좋겠군. 이번에도 나가들이 이용당하면 내 손으로 너무 많이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데.”
“하….”
샤티는 아자딘의 오만한 발언에 혀를 찼다.
아자딘은 나가들이 너무 많이 죽을까 봐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