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5
174. 청건의 천주 2
그러나 아자딘은 결코 허언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신왕진서 사본을 대량으로 입수한 이후 아자딘은 지속적으로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오우거들을 몰살시킨 도네어 일당마저 아자딘에게 상대도 되지 못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런데 이 자식들이….”
그때 코모살이 분개하며 아자딘과 지스와를 찾아 왔다.
“이 자식들아! 성 앞에 저렇게 큰 이상한 코끼리를 세워두면 어떻게 해!”
“코끼리…?”
스콧의 역작, 콥스 어보미네이션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외관이 너무 흉측해서 방수포를 구해다 덮어두었는데 그래서인지 다들 그냥 코끼리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기멜라 아가씨께서 부르신다! 냉큼 튀어와라!”
“아, 그런데. 코모살 형제. 경호원들이랑 이렇게 다섯이서 왔나?”
“형제는 얼어 죽을, 네까짓 놈이랑 형제 먹은 기억이 없다!”
코모살이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아자딘이 코모살의 경호원들에게 뛰어들어 양손으로 그들의 경동맥을 조였다.
“윽?!”
“억?!”
아자딘의 손아귀에 목이 잡히자 그들은 바로 풀썩 기절했다.
“아니!?”
“이 자식이 본색을 드러냈….”
그러나 지스와가 혈마법을 시전해 또 한 명의 경호원을 기절시켰고 샤티도 마법으로 경호원을 기절시켰다.
어느새 코모살 혼자만 남게 되었다.
“어?”
“자, 그럼 코모살 형제. 우선 비약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코라사르 쪽으로 보낸 비약에 뭔가 장난을 쳤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코라사르 방면에서 청건당 형제들이 폭주해서 괴물이 되고 난민들도 포함해서 다들 죽었는데… 그 건에 대해서 아는 게 있냐는 거지.”
“모, 모른다! 나는….”
“그렇다면 현재 가설은 청건당 비약을 먹은 이들이 한곳에 많이 모이면 힘이 폭주한다는 이론인데 이 경우는, 비약을 먹은 이들을 미리 삭초제근 할 수밖에 없거든?”
“……?!”
“죽이겠다는 소리야.”
“미쳤냐? 네까짓 놈이 혼자서 청건당 형제들을 다 죽일….”
“우리가 가져온 거 코끼리 아니다.”
“…….”
“그건 종말을 부르는 거대한 재앙의 짐승이지.”
아자딘은 콥스 어보미네이션을 최대한 은유의 표현으로 그럴싸하게 불렀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니 코모살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고 상상력이 그 어떤 고문보다 효과적으로 절망을 안겨주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소, 코모살 형제. 이분은 폭주하는 네더의 권속들을 잡초 뽑듯 뽑은 분이오.”
“대체 뭐 하는 놈인데? 심판자인가?”
“아니. 황제의 전령 제2령 아자딘이다.”
“헉?!”
황제의 전령이라는 말을 듣자 코모살이 흠칫 놀랐다.
“제2령…. 노, 높은 직위가 아닌가? 시, 신왕살해자!”
만약 예전처럼 108령, 말석의 지위였다면 아자딘이 전령임을 밝혀도 그렇게 겁을 먹지 않았을 텐데…. 제2령의 직위에 오르자 그것만으로도 듣는 이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래. 이야기가 빨라지겠지? 자, 그럼 손톱이나 좀 뽑으면서 이야기를 나눌까?”
“윽….”
“네놈들이 장난질을 쳐서 청건당 비약을 받아먹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을 죽여야 했어.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살했는지 아나? 치료해주었는데도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람들이 죽었다고. 그런 이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네놈을 발바닥부터 조금씩 튀겨서 끔찍한 화상의 고통을 안긴 후, 살과 피가 썩어 들어가는 패혈증의 고통 속에서 열과 통증으로 신음하다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게 하고 싶어.”
코모살은 묘하게 현실적인 아자딘의 협박에 기겁했다.
“즈, 증거가 없지 않나!”
“지금 그렇게 대꾸하는 게 확신을 안겨주는걸.”
아자딘이 손을 내밀자 스콧이 부지깽이 하나를 가져왔다.
“아직 덜 달궈졌어, 대장.”
“그래? 좀 더 달궈야겠군. 불 피워봐. 우선 손톱을 뽑자.”
아자딘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코모살의 손톱을 집었다.
“아니, 사람 손으로 무슨 손톱을 뽑….”
코모살은 아자딘의 행동을 비웃었지만, 그다음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자딘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살짝 잡은 것 같은데 무슨 쇠집게처럼 단단하게 틀어쥐고 정말 손톱을 잡아당긴 것이다.
손톱이 버티지 못하고 세로로 찢어지면서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끄억?!”
코모살이 격통에 당황했다. 말도 안 되는 힘이다.
“흠, 잘 안 뽑이고 그냥 쪼개지네. 하지만 이게 더 낫겠지. 좀 더 찢어볼까?”
아자딘이 다른 쪽 손톱을 거머쥐자 코모살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자, 잠깐! 기다려봐!”
“왜?”
“내, 내가 만약 그랬다고 하면 어쩔 건데? 사실을 고하면 용서해줄 건가?”
“진실을 말한다면 당연히 선처할 용의가 있지. 너 혼자서 비약에 손댔을 리는 없어. 그렇지?”
“그, 그건. 그렇지. 사실은 천주님의 뜻이네.”
“천주님의 뜻이라고? 왜지?”
“천주님께서는 과거에 배를 타고 코라사르에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포교하다가 망신을 당하신 적이 있으시네. 그 일 이후 청천의 이치를 전하기에는 코라사르가 너무 미개하다고 여기고 계셨지.”
“그야.”
청건당이 확장하는 데는 학질 같은 브투마 풍토병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병이 없는 코라사르 지역에서 포교해봤자 제대로 포교가 될 리 없다. 왕의 교회와 천사 신앙 외에는 사이비로 여겨져서 목숨이 날아갈 판에 누가 포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너희 교리 뻔하던데.’
아자딘이 본 청건당 경전에서 큰 교리는 가족이 화목해야 하고, 청건을 두르면 모두 청천의 자식이라 한 형제고, 화목하게 재물을 나누라느니 하는 좋은 말들만 쓰여 있었다.
그래서 이런 종교의 경우, 대교리보다는 부수적인 교리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경전의 핵심 교리보다 새우를 먹지 말라던가 남자는 축첩해도 된다던가 하는 자잘한 설교에 더 집착하기 마련.
그런 면에서 볼 때 청건당 교리는 아무리 봐도 사이비였다. 학질을 치료하는 비약 덕분에 교세가 커진 거지 그냥 확장될 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코라사르에서 학질이 유행하는 아디로프 쪽에 청건당을 늘리고 폭주시킬 셈이었군? 폭주시킨 이들이 사람들을 해치면 아디로프의 수호자인 란타릭 백작이나 코라사르 국왕이 나서야 하니까. 네더의 권속을 일반 병력으로 상대하는 건 어려울 테니 병력을 시원하게 소모하게 하려고.”
“그, 그렇소.”
“그렇다는 건… 혹시 브투마 국왕도 가담했나? 아니, 잠깐? 그럼 여기 토성을 보강하는 것도….”
이곳에 오던 중에 오우거들의 침략을 들었던 아자딘은 당연히 이곳의 방어 보강이 오우거들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전쟁 준비가 아닌가?
‘이놈들이 미쳤나. 모두 하나되어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왜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야? 심지어 왕들은 같은 야에가스 신족이잖아?’
아자딘은 브투마 왕국이 코라사르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청건당의 폭주가 바로 그 침공의 전초전으로 계획된 일이었음을 깨닫고 기겁했다.
목성의 시대를 목도하는 아자딘 입장에서는 이렇게 서로서로 이전투구에 힘쓰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난 집에서 자기도 타 죽을 판인데 출구를 막고 평소 마음에 안 들던 이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꼴 아닌가. 배울 만큼 배우고 교양도 있다고 하는 야에가스 신족 귀족들이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기멜라는 알고 있나? 천주의 딸이니까.”
“기멜라 아가씨는 비약을 오염시키는 것에 반대하셨네. 그래서 내가 직접….”
“정말이야? 천주의 핏줄이라고 네가 감싸고도는 게 아니고?”
“으윽, 아니네. 이건 애초에 천주님께서 계획한 거대한 계획의 일부네! 내가 독단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그래, 천주도 관여했단 말이지?”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청건당 도사 곤봉을 만지작거렸다.
코모살의 증언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청건당 교주, 천주는 아디로프의 참극에 대한 직접적인 죄인이다.
“천주를 만나봐야겠군. 좋아. 우선 천주의 딸부터 만날까.”
아자딘은 스콧을 돌아보았다.
“스콧. 꽃단장해라.”
“뭐 이미 내가 꽃보다 스콧인데.”
“…….”
*********
기멜라의 거처는 키말하지 백작의 성이었다.
놀랍게도 성 안에도 온통 다들 청건을 두르고 있는 걸 보면 청건당 세력이 키말하지 백작령을 꽉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가 청건당의 성지라고 했지.”
아자딘은 지스와에게 물어보았다.
“네.”
“혹시 늪의 고목, 그림스로운과 관련된 유물 같은 게 있나?”
“그건 저도 잘.”
“번개를 맞은 곳에 성지를 만들어뒀을 거 아냐?”
“나중에 안내해 드릴까요?”
“일단 지금 교섭을 보고.”
아자딘은 키말하지 백작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라?”
그런데 지스와는 누가 보더라도 후궁으로 보이는 곳에 일행을 안내했다. 백작과 그 아내, 혹은 애인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곳, 아녀자와 아이들이 생활하는 거처였다.
“기멜라 아가씨는 키말하지 백작 부인이십니다.”
“…아가씨가 아니잖아. 잠깐만, 그러면 좀.”
아자딘은 그녀가 스콧을 유심히 훑어보던 걸 떠올리고 당황했다.
“흔한 일이지.”
샤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기멜라가 이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와줬군. 지스와, 그리고 아단인가?”
“네.”
“코모살은 왜 그리 얼굴이 죽상이지?”
“아가씨. 그게 저….”
“우리가 고문했거든.”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고 코모살의 손을 들어 보였다. 아자딘이 손톱을 찢은 손끝에 고약을 붙여 치료해둔 상태였다.
“아, 저런. 그래서 하지 말자고 했잖아. 청건당 비약을 오염시키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어.”
“이쪽은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절망에 빠졌거든.”
“그런데 나는 진짜로 반대했어. 코모살이 독단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야.”
“코모살의 말에 의하면 천주의 뜻이었다고 하던데.”
“흠. 천주의 뜻에 반감을 품는다니, 도사가 아닌걸?”
기멜라는 아자딘이 천주에게도 적개심을 품고 있음을 깨닫고 능글맞게 웃었다.
아자딘 대신 지스와가 따지고 들었다.
“아무리 천주님이라 해도 절 속이고 이런 비약을 넘겨주셨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미안하군, 지스와.”
“그런데 그 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무슨 짓을 해서 오염시켰지?”
“응?”
“어떻게 오염시켰길래 사람들이 권속이 되어서 폭주했냔 말이다.”
“별건 아니고. 원래는 그림스로운의 수액이 모든 늪의 질병을 치료해주지. 그런데 거기에 그림스로운의 피를 섞으면….”
“권속이 되고 폭주한다?”
“그래. 아니면 도사가 되던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늪의 고목, 그림스로운의 권속이 되었음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이들을 도사로 선별하는 것 같았다.
지스와가 부덕을 탓하며 아자딘에게 도사 직위를 넘긴 것을 말도 안 된다고 여기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사의 자격은 네더의 권속이 되는 것이라고 만천하에 공표할 것도 아니잖아? 지스와가 나에게 도사 자리를 넘긴 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입장일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이거 지스와가 날 이용하는 거잖아?’
아자딘은 청건당의 체계를 이해하고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