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6
175. 청건의 천주 3
지스와도 단지 사람이 좋아서 아자딘에게 도사 자리를 넘긴 게 아니다. 아자딘처럼 강력한 이를 자신들의 싸움에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넘긴 것이다.
그리고 아자딘에게도 그건 필요했다.
브투마 왕국을 향해 원로원과 아라엘 양측 모두의 공작이 시작되는 시국이다. 이것에 대항할 조직력을 얻으려면 이런 사이비종교 집단이라 해도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으음. 원래는 여행자들에게 차나 대접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기멜라는 처음의 예상이 빗나간 것에 아쉬워했다.
“이제 와서 너희가 내주는 차를 먹겠냐? 아디로프에서 그 꼴을 봤는데?”
아자딘은 그리 말하면서도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당신 말고 저 근육질 미남은 누구지?”
“스콧 맥그린.”
“그래? 흠. 멋지군. 혹시 브투마식 오일 마사지에 관심이 없나?”
“…….”
스콧은 노골적인 기멜라의 유혹을 듣고 아자딘을 돌아보았다.
“뭐야? 당신 둘이 연인이야?”
기멜라는 스콧이 아자딘의 허락을 구하는 것을 알고 놀라며 물어보았다.
“그럴 리가. 그보다 나에게 정략적인 판단을 물어보는 거지. 당신과 자면서 획득해야 할 이득이 있냐고 나한테 묻는 거야. 그런데 당신도 참. 아이를 대동하고 나왔으면서 잘도 불륜할 생각이 넘치나 보군.”
“이 정도야 브투마 궁정에서는 흔한 일이니까. 이 아이도 나중에 다 이런 재미를 알게 될걸?”
아자딘이 비난했지만 기멜라에겐 아무런 정서적 감흥을 주지 못했다. 브투마에선 이 정도는 정말 일도 아닌 것인지, 아니면 그녀 혼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지만 불륜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음은 분명해 보였다.
“마침 안전한 날이라 약간의 운동부족을 해소할까 했는데. 정말 관심 없어? 긴 여행을 하고 왔을 텐데 기분전환도 되고 몸의 피로도 풀 수 있을 거야.”
“미리 말하지만 부인. 이 몸은 그런 근육 생길 육체 활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맥그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알았는데 역시 오크였군.”
기멜라는 스콧이 근육 생성을 꺼려 하는 발언을 하자 그가 오크임을 알아챘다.
“물론. 이 근육, 이 지성, 우리 오크 외에 어떤 종족이 이러한 재지를 빛낼 것인가?”
스콧이 그리 말하자 기멜라가 입술을 쓱 핥았다.
“오크들이 그렇게나 정력이 좋다던데.”
“아니, 됐고.”
아자딘은 기멜라와 스콧 사이를 말렸다. 아무리 당사자 간에 동의한다고 해도, 브투마에서 그런 게 흔한 일이라고 해도 어린아이 앞에서 당당하게 불륜을 저지르는 꼴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어쨌건 우리가 온 건 당신과 상의할 일이 있어서다.”
“상의라니? 무슨?”
“나가들이 근 시일 내에 브투마 왕성을 공격할 거야. 코랄 사하르가 공격당했던 것처럼. 게다가 이미 북방에는 오우거들이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전령일족이 있지.”
아자딘은 전령일족의 분열, 그 파벌이 노리는 바, 그리고 실제로 코랄 사하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히면서 기멜라를 설득했다.
“맙소사. 당신 전령일족이야? 대단한데? 제2령이라니 엄청 높은 지위인 거지?”
기멜라는 아자딘이 전령일족임을 밝히자 놀라워했다.
“투구 벗고 얼굴 보여줄 수 있어? 목소리가 좋은 게 미남일 것 같은데.”
‘이 여자가 진짜. 지금 국운이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자딘은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짜증이 났지만 투구를 벗어서 맨얼굴을 보여주었다.
“아. 이런. 모처럼의 미남이, 안됐네. 그래도 몸은 꽤 튼튼한데? 오크만큼은 아니지만 근육이… 아, 혹시 당신도 브투마식 오일 마사지에 관심이 있나? 괜찮다면 내 알고 있는 다른 첩이랑 함께 저 오크랑 어때.”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 하아.”
아자딘은 말이 통하지 않는 기멜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코라사르를 침공하려는 것 같은데 그보다는 이쪽이 먼저 침공당하게 생겼으니까 키말하지 백작에게 지금 병력의 일부는 북방에, 일부는 브투마를 지원하도록 설득해줘. 그리고 청건당 천주에게도 쓸데없는 야욕이나 코라사르에 대한 원한 말고 브투마를 지키는 데 협력을 구하고 싶은데.”
“글쎄. 당신이 스스로 정체를 밝히면서까지 말해준 건 고마운데 이쪽 입장도 생각해야지.”
“그쪽 입장?”
“그래. 키말하지를 포함해서 브투마 왕국 전체는 사실 코라사르를 침공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코라사르 쪽에서 온 사람이 자기들 말고 마물이 쳐들어올 테니까 전쟁보다 우선 그쪽에 집중하라고 하면 누가 듣겠냔 말이지.”
“코랄 사하르가 털린 걸 보고도 실감을 못 한단 말이지?”
“오히려 코랄 사하르가 털려서 제정신이 아닌 지금을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게다가 코랄 사하르의 왕좌를 차지한 건 전령일족의 여자라며? 그런데 당신도 전령일족이고. 물론 당신 말에 따르면 당신은 전령일족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할까 하는데.”
“제안?”
“당신이 그 정보를 가지고 아버지를, 그러니까 천주를 만나봤자 설득할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내 제안대로 하는 게 어때? 그러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텐데.”
“무슨 제안이지?”
“우리 청건당의 신체를, 성지를 약탈하는 거야.”
“…성지라면 네 아버지가 번개 맞은 곳?”
“그래. 네더의 신, 그림스로운의 신체가 있는 곳이지. 그곳을 약탈해서 그림스로운의 신물을 당신이 손에 넣는다면 아버님도 당신의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 청건당이 움직이면 브투마 국왕도 외면하지 못할 거야. 지금 브투마에서는 청건당이 왕의 교회나 구난기사단을 밀어내고 대세 종교가 되었으니까.”
“그림스로운의 신체라. 정확히 뭐지?”
“늪지대에, 어느 한 곳에 그림스로운의 고목 한 토막이 나와 있어. 그 위에서 아버님이 쉬다가 번개를 맞고 그의 권속이 되어 버렸지. 그 후 몇 번이나 그 신체를 떼어내서 브투마로 옮기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네더의 마물들이 나타나서 전부 실패했지 뭐야.”
“그 신체를 내가 주워오면 확실히 청건당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나?”
“아마도. 다만 일개 인간에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 청건당의 용사들, 도사들이 다 덤벼들어도 못한 일이거든. 하지만 전령일족이 정말 영혼 없는 불경자로, 신왕들을 죽여대던 신왕살인마라면 가능하지 않겠어? 그것도 당신은 제2령이나 되잖아? 그건 전령일족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는 뜻 아냐?”
“으음.”
아자딘은 기멜라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여자는 그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여자가 아닌 다른 이들과 대화해 봐도… 설득되지 않을 것 같다.
코랄 사하르의 왕좌를 차지한 것은 전령일족.
그런 소문이 돌고 있으니 전령일족이라고 아자딘이 스스로를 소개하면 코라사르 왕국을 꿀꺽 집어삼킨 전령일족들이 시간을 벌기 위해 헛소리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나가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미 한 번 코랄 사하르에서 남 좋은 일을 시켜줬는데 브투마에서 또다시 그런 일을 벌이겠느냐? 하면서 말이다.
“일단 생각해보지. 그런데 혹시 키말하지 백작과 만날 기회는 줄 수 없나?”
“우리 남편? 글쎄. 봐서 좋을 거 없을 텐데.”
“그래도 소개해줘.”
“그냥 안 보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게 최선이라니까.”
“…이봐, 코모살. 너도 청건당 도사니까 백작을 만나볼 수 있지?”
“아, 아가씨 말대로다. 백작님도 코라사르에 대한 야욕으로 가득 차신 분이고 고작 말 몇마디로 야심을 버리실 분이 아니다.”
지스와도 그런 의견에 동조했다.
“네. 백작님은 좀. 그냥 설득이 안 될 겁니다. 베갯머리 송사가 아니면 말이지요.”
“응? 베갯머리 송사라니?”
“백작님은 그, 남색가이십니다.”
“…….”
“오크를 좋아할 겁니다.”
“아하. 그렇다는군. 스콧, 좋아. 시원하게 설득해 보자.”
“아니, 대장.”
스콧이 아자딘의 태도 변화에 혀를 찼다.
*********
키말하지 백작은 기꺼이 아자딘 일행을 맞이했다.
그는 근육질의 남자들을 대동하고 자신의 침상에 누운 채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참, 훌륭한 근육질의 남자로군.”
백작은 스콧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
아무래도 여기서 스콧의 인기가 폭발하는 것 같다.
아자딘은 키말하지 백작에게 기멜라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지만, 백작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자네를 믿지 않는다는 건 아니네. 보아하니 자네는 진심으로 전령일족들이 브투마도 침략할 거라고 믿고 있군. 하지만 그런 게 역정보가 아니겠냐는 거지. 지금 코랄 사하르에는 왕의 교회가 공격을 가하고 있네. 전령일족들이 왕좌를 차지하는 걸 용납할 수 없는 거겠지.”
“그렇지만 왕의 교회가 이제 와서 손을 쓴다고 해서….”
“아마 전령일족들도 그렇게 여유가 있진 않을 걸세. 코랄 사하르를 방어하는 데 급급할 테고, 그러고 나면 왕의 교회는 자력으로 수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당연히 인근 국가들에게 연합왕국을 허락해줄 것이야. 그리고 브투마는 북방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야만의 땅이 아니라네. 학질로 고통받고 있지만 그런 만큼 쌀과 콩의 인구 부양력이 어마어마하고 금광도 많거든.”
브투마는 풍토병과 넓은 정글,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나가 제국 때문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검은 땅, 미개척지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실 팔왕국 중 두 번째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도 엄청나고 경제력도 대단하다.
그런 혜택이 있지 않으면 풍토병을 버티며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브투마 땅을 차지한 귀족들은 자긍심과 함께 일종의 열등감 또한 있었다.
자신들의 영토 경영이, 통치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항상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싶어서 안달 나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친구, 혹시 육체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생각은 없는가?”
백작은 아자딘의 경고보다는 오히려 스콧의 육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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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백작을 설득하는 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기멜라가 권한 대로 지금 이 상황에서 브투마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높으신 분들을 설득하려 나서기보다는 차라리 청건당의 성지를 답파하고 ‘늪의 고목’ 그림스로운의 신체를 얻어서 청건당 천주를 설득하는 게 더 빠른 길이라 여겨졌다.
“후우. 갑자기 모든 게 다 싫어지는군.”
나가 제국의 위협을 이야기하는데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브투마의 위정자들에게, 그들의 야욕에 아자딘은 크게 실망했다.
백성들이 죽건 말건 그들은 자신들의 야욕을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