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7
176. 청건의 천주 4
“나도 대장에게 조금은….”
기멜라와 백작이 스콧에 대한 탐욕을 드러낼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아자딘에게 스콧이 한마디 했다.
“실망했나?”
“아니, 감탄했지. 자신의 뜻을 위해서 언제든 부하를 비정하게 희생할 수 있는 남자. 그 정도는 되어야 내 대장이 되기에 손색이 없지. 희생이라고 해봐야 좀 심한 근획득 뿐이고 말야.”
“그러냐?”
지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오크들은 정이 깊어서 부하를 무조건 아끼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부하를 팔 수 있다면 파는 걸 더 현명한 선택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안 할 거야. 근획득 싫어. 그리고 오크 입장에서 오크 아닌 다른 종족과는 좀… 저열한 행동이야. 그런 걸 하는 순간 종족 전체에서 따돌림 당한다고. 얼마나 멍청하고 재주 없고 매력 없는 놈이면 다른 종족이랑 붙어먹냐고 비난받는단 말이야.”
“그래.”
한편 샤티는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넌 또 왜 그래?”
“그, 백작 애인인 그 징 들고 다니는 남자 있지.”
“어.”
“나가야.”
“그래?”
“나가들은 24시간 내내 해야 겨우 자식을 볼까 하는데… 그런 나가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니.”
“…….”
키말하지 백작이 나가 애인들과 24시간 내내 얽혀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엄청난 체력이라고 해야 할지 엄청난 색욕이라고 해야 할지?
“여튼 그 외에도 오가면서 보니까 나가들이 꽤 있더라고. 역시 브투마인가.”
“그 말인즉….”
“나가들이 정말 브투마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지 않을까. 그런데 백작은 보아하니 자신만만한 것 같고 말이 안 통하네. 그냥 그 청건당 성지인지 뭔지를 털어 버리자고.”
“하아. 결국 이런 결론인가. 정말 싫군. 말로 하면 왜 다들 못 알아듣는지 원.”
“대장도 일족을 설득 못 해서 지금 독자적으로 개고생하는 중이잖아. 원래 그렇지.”
“남들을 설득할 때는 모가지에 칼을 들이대야지. 아니면 다들 잘났는데 설득이 되겠어?”
“그러게나 말이다.”
아자딘은 키말하지 백작의 저택에서 기멜라가 준비한 숙소에 머물러 휴식을 취했다.
기멜라는 여전히 욕심을 못 버리고 스콧을 유혹했지만 근획득을 꺼리는 스콧은 기멜라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렇게 거절했는데 앙심 품고 음식에 독이라도 탄 거 아닐까?”
아자딘은 기멜라가 준비해준 식사를 태연히 먹고 있는 스콧을 보며 한마디 했다.
“괜찮아, 대장. 독약인지 아닌지는 간단한 마법으로 검출할 수 있으니까.”
스콧은 그리 말하고 음식을 먹었다.
브투마에서는 쌀과 콩이 주력 작물이라 그런지 음식도 쌀과 콩을 여러 향신료와 함께 버무려 만든 것이 나왔다.
북방 출신인 아자딘에게는 이국적이고 신기한 음식이었지만 의외로 먹을 만했다.
“오히려 좋은데? 안에 들어간 고기에 노린내나 잡내도 전혀 안 나고, 차라리 향신료가 엄청 강하니까 잡내를 잡아주는구나.”
“그리고 근육도 의외로 잘 붙는 음식이지. 나에겐 별로 안 좋은데.”
스콧은 그리 말하면서도 그릇을 싹싹 비웠다.
*********
다음 날 아자딘 일행은 출발할 준비를 했다.
지스와는 사슬갑옷을 구해입고 긴 곤봉에 금속으로 된 새부리가 달린 새부리 곤봉으로 무장했다.
샤티는 나가 곡검과 나가 사슬면갑을 골랐는데 사슬로 된 베일까지 얼굴에 쓰고 있어 누가 봐도 나가의 복장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한 의미가 없지 않아?”
“싸워야 할 때는 나가로 변신할 거야.”
“뭐 스콧이야 스콧이고.”
“가자고, 대장.”
“그전에 잠깐….”
아자딘은 키말하지 백작령의 하인들에게 코라사르에 대한 소식을 물어보았다.
키말하지 백작이 정말 코라사르 왕국을 침공할 생각이라면 왕국의 정보에 대해서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었다. 역시나 그들의 정보는 빠르고 정확했다.
“어젯밤에 막 들어온 새로운 정보입니다. 전령일족에 의해서 장악된 코라사르 왕국을 구하기 위해 왕의 교회가 출동했습니다만 오히려 전령일족들에게 주교가 사로잡히고 성기사들이 패퇴했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곧 브투마에 정식으로 왕의 교회에서 토벌령을 내릴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들이 브투마와 코라사르 연합왕국을 설립할 수도 있을 겁니다.”
코라사르를 집어삼키는 게 오랜 꿈이었는지 그들은 연합왕국이라는 단어도 서슴치 않고 말했다.
황제가 팔왕국 전체를 집어삼킨 것을 끔찍한 역사로 기록하고 있는 왕의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연합왕국 역시 황제주의자로 몰릴 만한 부정하고 불길한 단어였다.
그러나 브투마인들의 야욕은 이미 왕의 교회가 막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왕의 교회 역시 전령일족에게 팔왕국의 일각을 빼앗기느니 브투마에 연합왕국을 허락해줄 것이다.
“심판자 젝트는?”
아자딘이 젝트에 대해서 물어보자 하인들이 답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젝트라는 심판자가 코라사르 전선에서 패퇴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브투마에 흘러 들어올지 모르니 성기사들을 전부 면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군.”
아자딘은 젝트가 패퇴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안도했다.
그를 보았을 때의 그 흉측한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역시 왕좌를 차지한 알디스의 적이 되진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복잡한 기분이로군.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며 나가들이나 다른 쿠르트 신족들과 협력하는 원로원을 거부하는 내가 있고, 또 아라가사들이 지지 않길 바라는 내가 있어.’
아자딘의 입장에서 원로원은 잠재적인 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허망하게 패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아자딘 역시 아라가사이기 때문인가.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럼 부인께서 당신들의 무운을 빈다고 하십니다. 이건 부인의 선물입니다.”
기멜라의 성의라면서 하인들이 금화가 담긴 자루를 아자딘에게 넘겨주었다.
“뭘 이런 걸 다…”
아자딘은 기멜라의 성의에 감탄했다. 금화가 다섯 장이나 들어 있는데 그냥 찾아온 사람에게 주는 선물치고는 지나치게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난민들 데려오면서 재정에 구멍이 났던지라 고맙게 그 금화를 받아들였다.
*********
스콧의 콥스 어보미네이션이 한 걸음씩 뗄 때마다 주위 풍경이 쉭쉭 지나간다. 아자딘의 산양은 그런 어보미네이션을 쫓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덥고 습한 브투마 지방에서 케림 산양은 그야말로 탈진 직전이어서 아자딘은 산양을 어보미네이션의 수레에 올려놓았다.
“곧 도착합니다.”
지스와가 길 안내를 하면서 그렇게 말한다.
“아까도 곧이라고 했잖아. 덕분에 내 산양이 탈진했다.”
“털을 깎아주는 건 어떻습니까?”
“케림 산양은 양이랑 달라서 털을 바짝 깎아 버리면 다시 안 나는 경우가 많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더운 지방에선 깎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케림 산양의 털에서 나오는 지방이 전령일족들에겐 또 매우 소중한 방청유라서… 일단 급한 대로 다리털 정도나 깎을까?”
그때 콥스 어보미네이션이 멈춰 섰다.
“이런.”
스콧이 신음했다.
“성역이 가까운가 봐. 언데드가 더 이상 가려고 하지 않는데?”
“언데드가 들어가길 꺼려 한다고?”
“그래. 자율조작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제부터는 직접 조작을 해야겠는데.”
스콧은 눈살을 찌푸렸다.
콥스 어보미네이션을 직접 조작해서 들어가기에는 이제 길도 오솔길이라서 큰 괴물이 들어가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안 되겠군. 분해해야겠어.”
“분해한다고?”
“뭐 네크로맨시가 다 그렇지. 시체라는 게 아무리 아껴 써도 그냥 두면 썩고, 움직이면 닳으니까. 매번 새로이, 새로운 예술품을 만들어야 하는 게 네크로맨시의 숙명이라니까.”
스콧은 무슨 생활 소품 만드는 공예사라도 되는 양 네크로맨시를 설명했다. 그리고 콥스 어보미네이션을 분해해 작은 크기의 언데드로 재조립을 시작했다.
“으아.”
그 끔찍한 광경에 아자딘이 시선을 돌렸다.
지벡이 자리에 없으니 망정이지. 그가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스콧의 목을 따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안간힘을 써야 하리라.
“그나저나 지스와. 언데드가 진입을 거부할 정도라면, 여기가 성역 근처 맞지?”
“네. 거의 다 왔습니다. 여기부터는 순례자들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스와가 짐수레에서 내려서 앞으로 가더니 나무 사이에 쳐진 밧줄을 가리켰다.
“이 금줄 너머가 성역입니다.”
“그래. 그럼 나도 준비해야겠군.”
아자딘은 신왕진서 사본을 꺼내서 백색 마력을 빨아들이고 그 힘을 전신으로 고루 퍼뜨렸다.
예전에는 페이지 한 장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한 번에 두세 장의 마력을 다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백색 마력을 흡수하고 나면 몸 안에서 폭풍이 날뛰는 듯한 충격이 찾아온다.
“읍….”
아자딘은 코를 쓱 훔쳐보았다.
코피가 나온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몸에 힘도 격렬하게 끓어오른다.
“대장. 카자스 해서를 지워 버리고 마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건 어때? 강해지긴 분명히 강해지고 있지만….”
스콧은 아자딘의 상태를 보고 진지하게 전향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전령일족인 아자딘에게 전령일족의 마도서인 화조풍월을 지우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물며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힘을 잃게 되는데 말이다.
“이제 와서 그럴 수는 없어.”
코라사르에서, 브투마에서, 각지에서 전령일족의 음모가 무수한 민간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아자딘이 여유롭게 이전 마도서를 지우고 새 출발할 시간은 없다.
아자딘은 청건당의 성역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
청건당의 창시자, 천주라 불리는 남자는 유랑상인으로 도적들과 가혹한 세금을 피해 이 검은 숲에 들어왔다가 네더의 존재인 ‘늪의 고목 그림스로운’을 만났다고 한다.
정확히는 그 육체의 일부분이었다. 왜냐면 그림스로운은 구난기사단이 섬기는 삼위의 대천사들에 의해서 현세에서 한 번 퇴치당했기 때문이었다.
즉 천사들이 그림스로운을 격퇴하고 그 육체의 일부가 이곳에 떨어졌는데 천주는 바로 그 그림스로운의 육체인 줄도 모르고 고목 둥치 위에서 캠프를 쳤다가 갑자기 떨어진 낙뢰를 맞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그때 그는 무의식중에 그림스로운의 수액과 피를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누가 들어도 사교잖아? 그런 말을 듣고 신앙심이 생겼나? 지스와?”
“네. 왜냐면 그때는 이미 저도 그림스로운의 수액을 먹고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미 그림스로운의 수액을 먹은 상태라면….”
“학질로 죽어가는 것보다는 나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천주께서는 수액을 상시 얻을 수 있도록 그림스로운의 파편을 실어내려고 했습니다만….”
“실패했나?”
“네. 이 검은 숲의 모든 마물들이 덤벼들었다고 하더군요.”
“과연.”
아자딘 일행이 숲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늑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낮인데도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수풀들이 슥삭이는 소리가 흡사 사람들의 잡담 소리, 비웃음 소리처럼 들렸다.
사방에서 소리가 그들을 맴돌며 희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