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79
178. 청건의 천주 6
“이게 그림스로운의 파편인가?”
아자딘은 너무나 따뜻한, 살덩이 같은 나무토막의 질감에 기겁했다.
“예. 그림스로운이 당신을 택했습니다. 당신께서 새로운 청건당의 천주이십니다.”
“아니, 딱히 그런 계시를 받은 건 없는데.”
아자딘은 괜히 감격하는 지스와를 피해 정신을 집중해보았다.
아자딘의 손에 들린 나무토막, 그림스로운의 신체가 변이하더니 아자딘의 월각궁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것 같아서 해본 건데 진짜 되잖아?’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몸이 월각궁을 집어삼키는 걸 보며 당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월각궁을 당겨보니 헤비 크로스보우의 철궁보다 더 강한 장력이 느껴졌다. 이런 크기의 나무 활로서는 있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었다.
게다가 휘어짐도 아주 좋아서 당기는 힘 대부분을 화살에 실어 보낼 수 있었다.
“이건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군.”
아자딘은 무게만 많이 나가는 철궁을 내려놓았다. 그림스로운의 월각궁이 부서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림스로운의 힘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자딘의 청건당 도사용 곤봉이 그림스로운의 수액으로 번들거렸다.
“아무래도 대장을 선택한 것 같네. 아니면 뭐랄까? 우리가 접근하는 동안 열심히 부하들을 보내서 공격했는데도 잡혔으니까 대장이 자길 불태워 버리기 전에 굴복한 거 아닐까? 괜히 까불다 힘에 밀려서 지배당하기보다는 자기가 선택하는 게 모양이 더 그럴싸하잖아?”
“네더의 신족인 것 같은데 그 파편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을 거야. 뭔가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인데?”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축복을 받은 활과 곤봉을 챙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글 전체에 가득하던 적개심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는 강제로 뜯어가기라도 하려고 했습니다만 세상에. 이런 기적이 일어날 줄이야.”
지스와는 여전히 감격해서 목이 멘 모양이었다.
“어째 온갖 기적을 달고 다니네. 신들이 당신을 좀 좋아하나 봐?”
샤티가 조금 부러워하는 데도 아자딘은 시큰둥했다.
“신들이 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신자란 것들이 기본적인 좋은 교리는 안 지키면서 자잘한 걸로 남들에게 행패만 부려서 그런 게 아닐까?”
“당신도 남들에게 행패는 부리면서.”
샤티는 아자딘이 남들에게 하는 짓을 떠올려보았다.
“어쨌거나 이제 이걸로 청건당 천주와 이야기를 해볼까? 천주는 브투마에 있다고 했지?”
“네.”
“그럼 브투마로 가보자.”
아자딘은 키말하지의 검은 정글, 성지의 숲을 다시 되돌아 나왔다.
*********
그림스로운의 파편을 무사히 손에 넣은 아자딘 일행은 브투마로 향하기 위해 다시금 키말하지 백작령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브투마는 오로지 길을 따라 이동하거나 그게 아니면 강과 바다를 통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은 곳은 죄다 순식간에 풀과 나무가 자라나서 도저히 지나갈 만한 곳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자딘 일행은 길가에 서 있는 코끼리와 무장병력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의도가 아닌데?”
코모살과 그 부하들이 서 있었다. 길가에 있는 놈이 20여 놈 정도, 나머지는 정글에 매복해 있는데 뛰어난 사령술사인 스콧이 대충 수를 헤아려 보았다.
“대략 50여 놈이야. 어떻게 할까? 대장?”
현재 짐수레를 끌고 있는 것은 콥스 어보미네이션이 아니라 정글에서 발견한 대형 표범이었다.
이 표범을 돌격시켜봤자 사람이 너무 많다.
물론 아자딘이 저들에게 당할 리는 없겠지만 아자딘은 브투마에 온 건 이들을 설득해서 나가들과 싸우기 위해서지, 자신이 먼저 이들을 휘저어 죽음과 부상을 안겨주기 위함이 아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굳이 내홍을 일으켜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다.
“일단 대화부터 할까? 어이, 코모살! 만나서 반갑네, 형제!”
아자딘이 외치자 코모살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언제부터 네놈의 형제였냐?!”
“청천의 도를 따르고 청건을 두르면 모두 형제라지 않았나?”
“그건….”
교리상 그렇지만 교주인 천주라는 작자조차 브투마 출신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차별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주님이 그랬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좀스러운 것 같아 코모살도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다른 억지를 썼다.
“이봐, 이단자. 감히 우리의 성소를 짓밟았겠다?”
“애초에 그 길을 가겠다고 백작과 기멜라 부인에게 허락을 받았는데 문제가 되나? 그리고 이단자라니? 나는 청건당 도사인데?”
“웃기지 마라. 네까짓 놈이 도사라니. 너는 전령일족이지 않느냐? 전령일족 놈이 도사라니 백작은 인정해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 이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힘이 깃든 곤봉을 들어 보였다.
“뭐, 뭐냐? 해보자는 거냐?”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이게 뭔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림스로운의 파편이다. 늪의 고목께서 그를 선택했다는 증거다! 힘으로 굴복시킨 게 아니야! 그도 천주처럼 번개를 맞았지만 살아 있다!”
지스와가 나서서 외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물론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코모살이었다.
“웃기지 마라. 그런 거짓말을! 이 녀석은 전령일족이지 않은가?”
“네더의 신에게 인간의 인종이나 부족은 아주 사소한 차이일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네더 언어를 잘 말하는 놈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이, 이 자식이 되도 않는 소리를! 네가 감히 가짜 선지자를 참칭하는 구나!”
“…선지자를 참칭한다고 하던가 가짜 선지자로 나섰다고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가짜 선지자라고 스스로 주장한다는 뜻이 되잖아?”
“다, 닥쳐!”
코모살이 분노하며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이야아아!”
코모살의 부하들이 뛰쳐나왔지만 아자딘은 들고 있던 곤봉을 홱 집어던졌다.
바람을 흔들며 날아간 곤봉이 선두에 달려오는 이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놀란 그가 방패를 치켜들자, 곤봉은 절묘하게 회전해 방패를 타 넘고 그대로 뒤에 있던 이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죽진 않았지만 단 일격에 방패병이 흙바닥에 푹 고꾸라졌다.
“아니?!”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곤봉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처럼 날아서 다시 아자딘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와….”
아자딘은 감탄하면서 다시 곤봉을 던졌다.
분명히 대가리를 부숴 버릴 기세로 날렸는데 곤봉은 충분히 회전하면서 힘이 허공에서 줄어들더니만…. 딱 기절시킬 만한 위력으로 사람을 때리고 다시 아자딘에게 돌아왔다.
“특이한 능력이네. 원래 지금 걸로 상반신이 거의 뜯어져야 하는데.”
“뭐, 인마?!”
아자딘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한 이가 아자딘에게 달려들며 창을 찔렀다.
“그거 진담일걸.”
샤티가 아자딘에게 찔러 드는 창을 붙잡았다. 여자가 장정의 창을 막는다고 해서 무시하고 찌르려고 했지만 샤티는 나가,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해도 그 체중이 인간 장정 두 배가 넘는 거구의 생명체다. 당연히 근력도 그만큼 비례해서 매우 강력하다.
“어?”
샤티는 나가 곡검을 휘둘러 공격한 이를 위협해 창을 빼앗았다.
“다, 다들! 겁먹지 마라! 상대는 그저….”
“전령일족이지. 너희들 설마 전령일족이 뭔지 모르나?”
아자딘이 그리 말하고 곤봉을 날리니 과연, 이 곤봉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딱 기절시킬 정도만 때려서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한 번 던지면 반드시 아자딘의 손에 들어오니 예사 마법 무기가 아니다.
심지어 그 곤봉과 아자딘의 활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비교적 직위가 높은 청건당원들도 외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맙소사. 저거 진짜로…. 진짜로 늪의 고목님이잖아?”
“진짜 도사, 아, 아니 천주님이시다!”
청건당 당원들은 더 이상 저항을 포기하고 무기를 내려 아자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 기적이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어?!”
코모살은 자신이 끌고 온 청건당원들이 아자딘의 앞에 굴복하는 걸 보며 당황했다.
일단 몇몇 청건당원이 무릎을 꿇자 다른 청건당원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코모살이 끌고 온 이들이 50여 명에 달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이 작자가 우리를 현혹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창을 든 청건당원들이 코모살에게 창끝을 돌렸다.
“잡아 와서 여기 무릎 꿇려. 죽이진 말고.”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다들 달려들어 코모살을 창대로 후려치고 작신작신 지르밟은 후 정말로 아자딘 앞에 무릎을 꿇렸다.
“크윽….”
“자, 코모살. 네놈 감히 청건당 형제들에게 이상한 약을 타 먹여서 폭주를 일으켰겠다?”
“그건 내 독단이 아니라 천주께서 명한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방금 곤봉 날아가는 거 못 봤냐? 그림스로운은 자비로워서 너희들 머리를 터트리지 않고 살려두는 거? 이리 자비로운 신께서 그런 패악질을 허락했을 것 같으냐?”
물론 네더의 존재를 단지 이것 하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스로운의 곤봉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지 모르지만 아마 그림스로운의 활로 사람을 쏘면 사람이 죽을 것이다. 곤봉이 비살상 무기인 건 그냥 비살상 무기가 필요할까 봐 그렇게 자리 잡은 게 아닐까?
하지만 아자딘은 일부러 위엄 있는 어조로 그림스로운의 자비를 설파한 후 코모살의 행동을 질타했다.
청건당원들은 자기들도 약자를 갈취해 권세를 누렸던 주제에 아자딘이 지엄한 태도로 코모살을 꾸짖자 다들 옳다고 맞장구치며 감격의 눈물마저 흘렸다.
‘죽을병을 앓다가 살아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 종교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하군. 이 안에서 자리를 잘 잡으면 브투마를 침략해오는 나가들에게 대항할 때 좋겠어. 하지만 그냥 브투마로 따라오라고 하면 위험하겠지?’
대규모의 인원을 데리고 왕성으로 향하면 왕이 그걸 옳다구나 하고 볼 리가 없다.
그래서 아자딘은 편지를 써주었다.
“앞으로 2주 안에 큰 환란이 있을 것이다. 나가의 군대가 브투마를 치면 이 물자와 이만큼의 병력을 모으고 깃발에는 이 문장을 써서 북을 치며 브투마 성 동문을 통해서 오도록 해라.”
아자딘은 마치 예언이라도 되는 양 청건당원들에게 편지를 써주고 코모살을 일으켜 세웠다.
“만약 어기면 코모살, 너는 반드시 죽임당하며 네 영혼은 영원히 웬디고의 설원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어.”
코모살은 갑자기 으슬으슬한 한기가 자신을 때리는 걸 느끼고 기겁했다.
사실 아자딘은 코모살에게 설원을 이야기하면서 은근슬쩍 웬디고의 단검을 손가락으로 튕겨 그 마력을 코모살에게 쏘아 보냈다.
차디찬 냉기와 웬디고의 존재력이 코모살을 위협하면서 아자딘이 말한 내용과 어우러져 진짜 빙결지옥을 연상케 했다.
“자, 그럼.”
아자딘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키말하지의 청건당원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브투마로의 여정에 올랐다.
‘코모살이 덤벼드는 걸 보면 천주라는 작자도 설득하기가 그리 녹록지는 않겠구나. 하지만 천주도 나처럼 번개를 맞았다면… 통하는 기술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아자딘은 청건당의 천주를 설득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아예 자신이 천주 자리를 찬탈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