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
17. 귀족의 부산물 2
“이 자식들이….”
타르키는 혹시나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하지만 누군가 습격해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검을 손에 쥐고 모포를 말고 잠들어 있는 용병들 주위를 천천히 돌아다니다가 곧 모닥불 뒤쪽 바위에 누워 잠들어 있는 두 보초를 발견했다.
“휴. 십년감수했잖아.”
타르키는 발로 보초들을 깨웠다.
“헉?!”
“이 자식들아, 여기서 처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아… 고, 공자님.”
“공자는 무슨. 기사님이라고 불러. 아직은 수련기사니까. 음?”
타르키는 용병들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잠을 잔 게 아니라 습격당해 기절했으니 용병들은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예. 그, 그게….”
“스, 습격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 꿈이라도 꾼 게 아니라?”
“저, 정말입니다.”
“어디 볼까?”
타르키는 병사들을 데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아자딘이 이미 챙길 거 다 챙기고 그들의 야영지를 빠져나온 뒤였기 때문이었다.
“컥? 뭐야? 전리품이!”
타르키는 자신들의 약탈품 상자가 열려 있는 걸 보며 기겁했다.
*********
‘반응을 보아하니 저놈 것은 아닌가 보군. 그럼 용병 놈들 중에 있는 건가?’
아자딘은 멀리서 용병들의 야영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완드는… 쿠르트 신족의 것으로 보이는데.’
비록 마법을 쓰지 못하지만 마법에 대한 교육은 받아두었다. 마법 기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과 냄새, 그리고 그의 시각에 보이는 은은한 기운들은 이것이 쿠르트 신족들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임을 알려주었다.
“신왕진서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황제의 목소리, 너는 뭔가 알 수 없나?”
[없다. 조사하는 것은 인간의 몫. 나는 정령으로 만들어졌으니까.]“도통 쓸모가 없군.”
[불침번 걱정 없이 아무데서나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쓸모일 텐데? 게다가 시간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나? 상당히 쓸모 있다고!]“그건 그렇지만.”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초인 같아 보이는 황제의 전령이지만 그도 결국 인간이다. 피로가 쌓였다.
“아무래도 쉬고 그 아이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겠군.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종사 따위 필요없다고 했다가 녀석들에게 의지해야 하다니.”
아자딘은 아쉬워하면서 물러났다. 좀 더 용병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만약 정말 저들 중에 쿠르트 신족의 마법을 쓰는 놈이 있다면 절대로 만만한 자가 아니다.
‘이 거리에서 들킬 가능성이 있지. 흠,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분인데.’
*********
다음 날 아자딘은 부스럭부스럭 모포를 걷어냈다.
“아함. 자도 자도 졸리네. 스승님도 늘 그렇게 말했는데.”
자리를 걷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몇 시지?”
[오후 2시 4분이다.]황제의 목소리가 대신 시간을 알려주었다.
[이 정도 문명 단계에서 이렇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효용은 엄청난 것이다. 항상 감사히 여기도록.]“…아 네. 네. 그렇습니까. 네네.”
아자딘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누워보았다.
“이 몸 상태를 보면 피로가 아직 더 쌓여 있는데… 그런데도 잠은 안 오는군. 어쩔 수 없나.”
아자딘은 누워 있는 이스마일과 미디암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일어나라, 꼬마들아.”
“윽!”
“네?”
두 소년 소녀가 부스스 일어났다.
“뼈 완드 감정하기로 했지?”
“아 네. 그랬죠. 줘보세요.”
“저주받은 물건일지도 모르니 제가 하겠습니다.”
이스마일이 미디암에게서 뼈 완드를 받아서 마력을 일으켜 불어넣기 시작했다.
“뭐가 보이지?”
“녹색과 흑색의 심상이 보이는군요.”
“녹색과 흑색 마력? 이빨의 왕이면 적색 마력이 섞여 있을 텐데. 다른 쿠르트 신족의 것인가?”
“예. 기능은… 뭔가 특정한 것을 찾는 것, 특정한 것을 찾게 만들어져 있군요. 안에 들어 있는 마력이 한정적이어서 쓰다보면 곧 부서질 겁니다. 강력한 물건은 아니에요. 대량 생산품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만든 자는 놀라운 실력자입니다. 싸구려 소재에 별로 공을 들이지 않고도 잘 만들었으니까요.”
“흐음.”
그 말을 들은 아자딘은 혀를 찼다.
“뭐 뼈로 만들어졌고 쿠르트 신의 권속이 들고 있던 시점에서 쿠르트 신족의 물건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확실해졌군. 이건….”
“네?”
“아니. 내가 챙기도록 하지.”
아마도 이 완드를 가지고 있던 오우거 일당은 아자딘이 지니고 있는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서 온 것이리라.
그런데 이 완드의 기능을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말하면 그들은 완드를 써보고 싶어할 거고, 그러면 완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왕진서 사본, 즉 아자딘을 가리킬 것이다.
‘내가 신왕진서 사본을 한 장 갖고 있다는 걸 이 녀석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겠지. 가만. 그럼 내가 신왕진서 사본을 가지고 있으면 날 노리고 계속….’
계속 추격자가 온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빨리 살라스마로 가야겠군.”
“그럼 지금 출발할까요?”
“아니. 식사를 하고 정비를 끝마치면 가자.”
바쁘긴 하지만 이미 오우거와 고블린으로 이뤄진 척후부대 하나는 박살내놨고, 용병들 사이에 있던 뼈 완드도 회수해왔다. 식사도 하지 않고 서두를 이유는 없다.
게다가 만약 용병들 사이에 이 뼈 완드를 쓸 줄 아는 놈이 있다면… 완드가 없어진 것으로 인해서 반드시 뭔가 행동을 취할 것이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그놈들을 쫓아가보면 뭔가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
“장난하냐, 이 자식들아!”
타르키는 격노했다. 약탈품 중 고가의 은촛대와 은접시가 사라졌는데 용병들은 정작 억울하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나중에 챙기려고 어디다 숨겨둔 거지! 이 자식들! 너희들이 그러고도….”
“아닙니다!”
“진짜로 습격당한 겁니다. 이걸 보십시오.”
어젯밤 보초를 서고 있던 용병들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들의 목을 보였다. 그들의 목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타르키는 그 손자국을 무시했다.
“팔다리 잘린 것도 아니고 위조하자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는 상처 가지고 보지도 못한 도둑이 있다고 주장하다니! 너희들 말이 사실이라면 무장한 용병단 속에 도둑질 하러 온 놈이 보초인 너희들을 독 묻은 단검으로 찌르는 것도 아니라 손으로 잡아서 기절시켰다는 거냐?”
“아니, 그게….”
“그, 그러게요.”
그때 용병들의 대장이 혀를 찼다.
“그 외에 화살촉과 곡물들도 없어졌습니다.”
“곡물?”
“예. 또… 제 물건이 하나 없어졌는데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도적놈 소행은 아닙니다.”
타르키도 바보는 아니었다. 용병대장이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대장의 감정이다. 이 녀석이 만약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용병들은 즉시 타르키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해야겠군.’
어떤 놈이 전리품을 훔쳐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상 용병들을 다그치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쳇, 알겠다. 뭐 그럼 습격당한 걸로 하지. 벌로 경비를 섰던 놈들의 급료는 깎겠다. 그 정도면 되겠지?”
“네.”
“예.”
감봉 당하는 용병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어차피 상대는 유력 귀족의 사생아로 감정 세워봐야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흠.”
그런데 정작 감봉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용병대장이 탐탁치 않아 했다.
“일단 그걸로 저희 부하 놈들의 경계실패를 벌하시는 건 좋습니다. 문제는 제가 잃어버린 물건인데.”
“응? 뭔데?”
“하하하.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용병대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별거 아닌가 보군.”
“그건 아닙니다. 아마… 그걸 훔쳐간 놈은 인근 마을에 갈 것 같은데… 혹 그 마을을 타르키 경의 명령으로 징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아니 잠깐, 여기서 가까운 마을은 올 때 봤던 역참 마을이잖아? 역참이 있는 곳은 곤란해.”
농부들의 농장이나 개척 마을 같은 건 언제든지 지도에서 지워질 물건이라 쉽게 약탈할 수 있다.
다만 국경 관문이나 역참 같은 게 있는 마을은 쉽게 약탈할 수 없다. 그러한 주요 거점은 왕의 지도에 새겨져 영주가 엄중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저께 그들이 약탈했던 동방 관문 마을은 이름이 관문 마을이기는 하고 실제로 관문도 있지만 왕의 지도에 새겨지지 않은 마을이다.
국경의 관문이 아니라 황무지로 나 있는 길의 관문이기 때문에 왕의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고, 그래서 약탈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상관없습니다. 타르키 경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경의 명령으로 약탈을 할 테니까요.”
“응?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타르키는 이상한 말을 하는 용병대장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런데 그때.
-푹!
용병대장이 단검을 뽑아 타르키의 아랫배에 쑤셔 박았다.
“컥?!”
“어? 대장!”
용병들도 갑자기 벌어진 하극상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고용주의 배에 칼을 박다니?
“무, 무슨 짓이야?”
“안심해. 이건… 마녀에게 선물받은 단검이거든.”
“어.”
타르키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배에 시큰한 감각이 쑥 들어왔는데… 피도 흐르지 않고 상처도 나지 않는다.
아니, 그의 배에 박혔을 단검이 어느새 기이한 거미로 변하더니….
-카카칵!
허겁지겁 그의 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히익!?”
“봐, 봤어?”
“거미!”
“보시다시피.”
용병대장이 웃음을 지으며 타르키 경을 노려보았다.
“현재는 무해합니다. 그렇지요?”
“네, 네놈. 무슨 짓을….”
타르키가 분개해 검을 빼 들었다.
아무리 사생아라지만 타르키는 이만한 용병단을 고용할 만큼의 재산이 있는 귀족들의 혼외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검술훈련도 충실하게 받아서 그 실력은 노련한 용병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싸움은 아예 성사되질 않았다.
“얌전히 있으시는 게 좋을 텐데?”
용병대장은 휘파람을 불었다.
“컥?!”
갑자기 아랫배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와 타르키는 앞으로 주저앉았다. 손에서 검이 떨어져 땅 위를 굴렀다.
“자자, 일단 진정하시지요.”
“이, 이건….”
타르키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단검에 꿰뚫렸을 때도 멀쩡하던 그였는데 지금은 너무 아파서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당신의 배 안에 들어간 거미가 살을 살짝 깨물었을 뿐입니다.”
“뭐?”
“제 말을 안 들으면 거미가 배 속에서 알을 낳을 겁니다. 아 그거 참… 이전에 이걸로 죽은 놈의 몰골을 봤는데 아주 끔찍했죠. 저조차도 그걸 잊기 위해 술을 퍼마셔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네놈이 찔렀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아니 그 전에 이건 뭐야? 무슨 마법이지? 거미에 관련된 마법이라면 쿠르트 신족의 마법인가?”
“전 그저 지나가던 마녀에게 얻었을 뿐 잘은 모릅니다.”
“개, 개소리!”
“어허 말조심하시길.”
용병대장은 다시금 휘파람을 불었다.
“끄아아악!”
타르키가 벌벌 떨며 지면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