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1
180. 나가의 섬 2
“음 그런가. 뭐 상관없지.”
“내가 말하는 건 데리고 다니는 인원이 이 정도로 많다면 이 나가 상인은 굉장히 신분이 높은 놈이라는 거야.”
“인원이 얼마나 되지?”
“나가는 적어도 여덟 놈.”
“그 정도면 상대할 만하지.”
나가 여덟 명을 인간이 상대할 만하다고 말한다면 보통은 코웃음 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자딘이 지금까지 벌인 싸움을 본 샤티는 그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신분 높은 나가니까 주의해.”
“알겠어.”
아자딘은 샤티의 충고를 듣고 상인에게 다가가 보았다.
*********
화려한 치장을 하고 곡예사를 데려온 나가 상인은 마을의 부두 앞 공터에서 곡예사들의 곡예를 선보여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곡예사의 재주라고 해봐야 저글링과 불붙인 봉 돌리기 같은 수준 낮은 것이었지만 이런 오지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한 구경거리였다.
“자자, 오시오. 곳곳의 방물들을 가져왔으니 오늘은 제발 좀 사가시구려. 어허, 거기 아가씨. 수줍어하지 말고. 이건 브투마에서 나삼이라 불리는 직물인데 이렇게 반투명하지. 베일로 쓰면 아가씨의 미모도 신비하게 부각되어 동네 총각들 마음이 전부 다 요동칠 거요.”
나가 상인도 입담이 좋아서 곡예사가 없어도 장사를 아주 잘할 것 같았다. 다만 그가 가져온 물건들은 시골 어부들이 사기엔 비싼 것들이었다.
“삼으로 된 낚시줄을 사고 싶군.”
“그물줄도 좀. 왜 우리 동네에서 만들면 이렇게 가느다라면서 질기게 만들어지지 않는지 모르겠어.”
“어휴. 장인들의 솜씨를 어찌 동네 길삼으로 따라잡겠소. 다 기술이지. 그런데 그것만 사시려고? 늘 줄하고 바늘만 사 가는데 이번엔 좀 괜찮은 거 사지 않겠소?”
“아참, 이번에는 우리 말고 손님이 좀 있는데.”
“손님?”
“나오쇼.”
마을 사람들이 말을 해주자 아자딘 일행이 걸어나왔다.
“음? 못 보던 사람들이군. 여행자라기보다는… 청건당인가? 청건당은 좀 싫은데. 돈도 안 내고 이거저거 해 달라는 것만 많아서.”
“물론 무료로 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가격을 지불할 테니 브투마까지 태워주실 수 있습니까? 브투마로 가려 하는데 우기라 길이 엉망이라….”
“브투마까지는 갈 생각이 없고 근처에 벨 호다까지는 태워다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가격이 맞아야 겠지만.”
“벨 호다?”
아자딘은 지도를 펼쳐서 벨 호다를 찾아보았다.
브투마 인근의 도시로 지도상에 브투마와 큰 길이 그려져 있는 걸로 보아 벨 호다까지만 가면 거기서 브투마까지는 도보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벨 호다까지 금화 한 닢은 어떻습니까?”
“좀 더 쓰시지요?”
“네?”
“금화라고 하니까 외지인들은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휘브리스 금의 팔 할은 브투마에서 나오는 겁니다. 여긴 그렇게 금이 귀한 곳이 아닙니다.”
“…….”
물론 허세다. 금이 출토되는 금광 지역이라고 해서 다른 곳보다 금이 쌀 리가 없다. 무엇보다 금화는 팔왕국과 상회들이 그 가치를 공증하는 것.
아마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에게는 잘 통하는 허세이리라. 다만 아자딘은 그것도 모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 자식이 벗겨 먹으려고 하네? 하지만 이러는 걸 보면 브투마 침공에는 관련이 없는 나가인가?’
샤티의 경고와 달리 이 나가는 장사할 생각만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상인으로서 너무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입담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잘생긴 외모에 밉지 않은 말재간은 나가라도 사람보다 차라리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브투마 침공에는 관련이 없는 자일까?
“그렇게 금이 싸구려라면 금화는 됐고. 그럼 물건으로 드리지요.”
“어허. 그, 금화가 됐다니. 저는 많이 달라는 거지요.”
“금이 여기선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철로 드릴까 하고.”
아자딘은 자신의 산양이 죽어 애물단지가 된 무기들을 꺼내놓았다. 대부분이 아자딘에게 덤벼들던 놈들의 무기를 빼앗은 것이라 품질이 들쑥날쑥했다.
“음…. 잡동사니로군. 아니, 이건 헤비크로스 보우의 샤프트 아냐? 샤프트만 덩그러니 있는데 이걸 누가 당긴다고.”
나가 상인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고철값만 드릴게. 이걸론 안 됩니다.”
“고철값이라니 너무하시네. 이건 꽤 좋은 칼 아닙니까?”
“보아하니 당신들도 발이 묶여서 난처한 것 같은데 무기가 많아 봐야 짐일 텐데요? 흠, 그럼 이거에 금화 한 닢. 그걸로 벨 호다까지 태워다 드리지요. 가는 길에 음식도 제공하고.”
“그렇게 합시다.”
아자딘은 나가 상인과 거래를 확정지었다.
“아 이런,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데하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상인이지.”
“저는 청건당 아단, 이쪽은 지스와, 여기는 스콧, 이쪽은 샤티.”
아자딘이 일행을 소개시키자 데하라고 하던 상인이 흠칫 놀랐다.
“샤티?”
“데하….”
샤티도 데하의 이름을 듣고 짚이는 바가 있는 듯했다.
*********
그렇게 어촌과 나가 상인 데하는 거래를 시작했다.
어촌 사람들은 훈제한 어육, 근처에서 잡은 짐승의 가죽 등을 데하에게 주고 데하는 그물과 낚시용 줄과 장신구, 조미료와 향신료, 철제 도구 등을 팔았다.
그들이 거래하는 동안 샤티가 아자딘을 불렀다.
“왜 그래?”
“대장. 저 데하라는 자, 신분이 높은 나가야. 아마 전에 보았던 나가라쟈 데하레스와 같은 물뱀 부족의 왕족인 것 같은데.”
“흠, 너까지 대장으로 부르나?”
“스콧이 부르는 걸 듣다 보니까. 그럼 뭐? 자기라고 부를까? 어쨌건 별로 안 놀라는 걸 보니 알고 있었나 보네?”
“데하레스랑 생긴 게 비슷하잖아. 이름도 데하라고 대는 걸 보니 그쪽이겠지. 그런데 저 친구도 네가 나가라는 건 눈치챈 것 같은데?”
“그렇겠지.”
“어쨌건 선택의 여지가 없어. 타야지.”
아자딘은 데하의 배를 얻어 타기로 하고 약속한 대금을 지불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타시지요. 아, 그런데 저희는 교역상이라 강과 바다 연안을 따라서 몇 곳 더 들러야 할 곳이 있는데. 괜찮겠지요? 금화 한 닢 때문에 하던 장사를 안 하면 손해가 막심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아실 겁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요?”
“벨 호다까지 앞으로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저희 배는 쾌속선이니까요.”
데하는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데하의 배는 화려한 장식과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빨랐다.
평소에는 돛을 이용해서 바람을 타고 달리다가 바람이 적거나 물살이 안 좋은 곳에서는 나가들이 마법을 시전해 물살의 흐름을 바꾸어 배를 밀어내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다.
“자, 저희가 배를 모는 동안 선실에서 저희가 모은 진귀하고 이국적인 상품들을 좀 보시죠.”
“안 살 건데요.”
“그냥 시간이나 때우시라고요. 하하. 뱃사람들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말입니다.”
나가 상인 데하는 선원들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아자딘 일행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마법을 써야 할 때면 항상 일행을 선실로 초대했다.
아자딘은 이들이 나가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애써서 마법 쓰는 장면을 감추려고 하는 그 열의를 존중해서 데하가 자랑하는 이국의 물품들을 구경하는 데 열중했다.
실제로 물건들이 재미있기도 했고.
“보시지요. 진자입니다. 정말 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졌지 않습니까? 매끈하지요? 이렇게 금속을 매끈하게 다듬으려면 어떤 장인이 대체 무슨 열정을 가지고 연마했을까요? 아,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진자는 절대로 처음 높이 이상으로 안 올라온다는 걸? 즉 이렇게 해도….”
데하는 작은 쇠구슬들로 된 진자를 자신의 인중을 겨눠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아. 그런데 여기 흔들리는 배 안….”
아자딘이 경고했지만 이미 늦어서 진자는 데하의 인중을 강타했다.
“크악. 아. 뭐 이런 사소한 실수가… 응? 코피가 나잖아?”
“…….”
이렇게 나가 선원들이 마법을 쓰려고 할 때면 데하는 아자딘 일행의 시선을 돌렸다.
*********
그렇게 데하는 연안의 또 다른 마을을 들러 거래를 했다. 이미 여러 차례 거래하고 들린 마을인지 마을 쪽에서도, 데하 쪽에서도 필요한 물자를 미리 준비해두어서 교역도 빨리 이뤄졌다.
“그럼 이제 한 곳만 더 들리면 벨 호다에 도착합니다. 벨 호다에서 브투마까지야 배나 말로는 하루, 걸어도 이틀, 사흘이면 도착하는 거리니 안심하시지요.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네.”
“목적지에 다 와 간다고 이제 와서 금화 한 닢은 비쌌네 하고 환불을 요구하셔도 안 됩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자, 그럼 마지막 한 곳만 들렀다 가겠습니다.”
데하는 미소를 지으며 배를 몰았다.
강의 끝, 하구를 빠져나와 연안을 따라 이동하던 데하의 배는 잠시 후 어느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섬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아자딘.]황제의 목소리가 아자딘을 불렀다.
“왜?”
[상공에 감시 마법용 정령들이 있다.]깜짝 놀란 아자딘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물어보았다.
‘선견조 같은? 아니면 뭐? 아라엘의 목소리?’
[아니. 쿠르트 신족의 마법이다. 그리고 물 밑에도 괴물들이 있어.]“…….”
잠시 후 데하의 배가 부두에 접안했다. 그러자 나가들이 나가의 모습인 채로 당당히 걸어 나가 배를 밧줄로 엮어 고정했다.
“자, 잘 오셨습니다.”
데하는 평소와 같은 미소로 아자딘 일행을 대했다.
하지만 선원들은 무기를 집어 들었고 부두에 접근한 이들도 무기를 빼들고 있었으며 물속에서는 거대한 촉수가 수면을 찢고 튀어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포위된 상황이다.
지스와는 너무도 놀라서 아자딘 옆에 다가왔다.
“도, 도사님.”
“아니. 그동안 열심히 숨기려고 애쓰더니만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아자딘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데하에게 물어보았다.
“그야 당신이 아자딘이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유명한가?”
“명성이 자자하지요.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단번에 승진한 것으로 아주 악명이 높지 않습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나가들까지 날 알게 되었다는 거야?”
“아니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 나가들의 사업을 여러 차례 방해했습니다. 웬디고의 단도가 당신에게 있고 살라스마 백작도 당신에게 죽었고 코랄 사하르에서 우리들의 별동대를 해친 것도 당신이지요.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당신의 위업을 전령일족들에게 알려준다면 그들도 당신이 제2령으로 승진한 게 결코 편애가 아니라는 걸 알 겁니다.”
놀랍게도 이 나가는 아자딘이 지금까지 밟아온 행보를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너희들이 이 자리에서 날 죽이려면 꽤 고생할 거라는 것도 알겠군.”
“그러지 마시지요. 저희는 영웅호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당신 정도면 훌륭한 영웅호걸이라 할 수 있지요.”
“…….”
“영웅호걸의 심장을 꺼내 먹으면 나가의 격이 오른다고 하는 이야기가….”
“음.”
“농담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