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2
181. 나가의 섬 3
나가 상인, 데하는 아자딘을 두고 농담을 하더니 스스로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자딘 입장에서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별로 좋은 농담은 아닌데. 웃기기보다 인상이 찌푸려지니까.”
“저희한테는 좋은 농담 맞습니다. 그렇지?”
데하가 나가들에게 물어보자 나가들이 크하하핫 하고 웃어댔다.
“상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웃는 걸로 보이는데.”
“그보다 샤티. 당신은 이쪽으로 오시지요. 당신은 나가 아닙니까?”
“…네?”
“안 돼.”
그때 아자딘이 제지했다.
“샤티를 부를 거면 적어도 그녀의 안전을 보장해라. 네 명예를 걸고 말이지.”
“네? 왜 그런 조건을 거는 겁니까?”
“어차피 샤티는 동족들을 배신하지 않을 거다. 내 입장에서는 샤티에게 날 위해서 동족과 싸우라고 요구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적어도 그동안 샤티를 부려먹은 급료 대신으로 그녀가 무고하고 항상 나가들에게 충성하려고 노력했었다는 것 정도는 증언해줘도 되겠지.”
“네? 더 이해할 수 없군요. 무슨 소립니까? 왜 당신이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이 정도 챙겨줘야 강제적으로 날 돕더라도 미운 마음은 덜 들지 않겠어?”
“마치 저희를 다 죽여 버리고 그녀를 다시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 숫자가 안 보이십니까?”
“뭐 사람은 긍정적일 필요가 있지.”
“풉.”
나가 상인 데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겠습니다. 샤티. 나, 나가라쟈 데하슈람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지금까지의 실책 등을 문책하지 않겠습니다. 이리 오시지요.”
“쳇.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도 막을 명분이 없군.”
아자딘은 샤티의 진로를 막던 손을 치워주었다.
“…….”
샤티는 망설이면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데하, 아니 데하슈람의 곁으로 갔다.
“자, 그럼.”
샤티가 빠지자 아자딘 일행은 스콧과 아자딘, 지스와 셋뿐이었다. 공격받을 타깃이 적어지니 나가들 입장에서는 훨씬 상황이 좋아졌다. 아무리 아자딘이라 해도 여기서 살아 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데하슈람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여기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산화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초대?”
“예. 당신과 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군요. 접대의 관습에 따라 당신을 손님으로 접대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데하슈람이 그리 말하자 부하 나가들이 흠칫 놀랐다.
접대의 관습. 그것은 아무리 철천지원수일지라도 손님으로 맞이하면 손님은 주인을 예의 바르게 대하고 주인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며 절대로 손님의 음식에 독을 타거나 손님이 잘 때 습격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약속이었다.
상대를 접대의 관습으로 불러들였다면 적어도 초대하기 전과 동등한 상황으로 돌아간 후에나 다시 서로를 해칠 수 있게 되는 옛 관습이었다.
이러한 관습을 깨면 불명예스러운 자로 여겨지는데 시정잡배라면 모를까 나가라쟈나 되는 인물은 이 관습을 깨면 잃는 게 너무 많다.
즉 아자딘을 초대한다는 건 적어도 한동안은 해치지 않겠다는 뜻.
당연히 나가들은 그런 데하슈람의 선택을 납득하기 힘든 듯했다. 하지만 데하슈람의 신분이 그런 사소한 반발조차 압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찍소리도 못 하고 아자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데 데하레스와는 무슨 관계냐?”
“제 사촌이지요. 제가 그보다 더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초대에는… 응하도록 하지.”
*********
데하슈람의 초대에 응하기로 한 아자딘과 일행은 그들의 궁정으로 향했다.
부두에서 궁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아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보리수와 화염수로 꾸며진 포석 깔린 길을 스콜이 자주 쏟아지는 이 브투마의 기후에서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정원사와 일꾼들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다.
“정원사와 하인들이 인간이군.”
아자딘은 정원수를 관리하는 자들이 인간이라는 걸 알아챘다.
“나가들 중에는 조경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없어서요. 아, 그리고 우리 요리사도 인간입니다. 적어도 인간 고기를 손님에 대접하는 그런 무례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궁정으로 가는 길을 올라가다 보니 언덕 곳곳에 천막이 처져 있는 것이 보였다. 브투마를 침공하기 위한 나가의 군대가 이곳 섬에서 야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걸 보여줬으니 그냥 풀어주진 않겠군. 아니, 당연한가. 이놈들은 날 알고 있었어.’
아자딘이 지금까지 나가들의 일을 많이 훼방 놓았음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이들이 아자딘을 당장 죽이려 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
왜 굳이 손님으로 맞이해서 굳이 궁정으로 안내하는 것일까?
“대체 왜 나를 초대하지? 부하들은 뭐라고 안 하나?”
“나가들의 신분 사회는 인간들의 것 그 이상입니다. 제가 결정하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지요.”
데하슈람은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당신을 초대하냐면 제가 영웅호걸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좀 믿음이 가지 않으시겠지요?”
“그래.”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럽니다. 사실 제가 당신의 행보를 알게 된 것은 당신의 정보를 판 전령일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정보를 팔아?”
“정확히는 살라스마 백작이 죽었는데 공작원 중 누구도 살아 돌아온 이가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전령일족에게 물어보니 살라스마 담당 전령이 당신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식으로 당신의 행보를 추적해보니 이거 참, 놀라운 영웅이더군요.”
아자딘의 행보를 전령일족의 정보와 나가들의 정보를 합쳐서 알아냈다고, 데하슈람은 말하고 있었다.
“부끄럽군.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희 나가들의 일을 많이 망쳐주셔서 다들 화도 나고 경계도 하게 되었답니다.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이거 참, 한 개인의 업적이라기엔 너무 대단해서 놀랐습니다. 정말 당신이 전부 다 한 일인가요?”
“그건….”
“아,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일단 목욕으로 여독을 푸십시오. 그 후 차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나눕시다.”
데하슈람은 인간 하인들을 불러 아자딘 일행을 목욕탕으로 안내시켰다.
*********
목욕을 끝내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아자딘 일행은 데하슈람의 궁전을 살펴보았다.
교역하는 곳이라 그런지 나가풍의 건축물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풍, 그것도 야에가스 양식의 저택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우아한 정원에 음식과 다과가 마련되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정원의 퍼걸러에서 데하슈람이 하인들과 함께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경호원을 대동하고서. 삼지창과 그물로 무장한 나가들이 제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접대의 관습 때문에 해치지야 않겠지만 나가들 입장에서는 나가라쟈인 데하슈람의 명예는 믿을 수 있어도 아자딘의 명예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자딘도 데하슈람의 명예만 믿고 무기를 풀어두지 않았기에 이러한 무장 호위병력은 사소한 것이었다.
“좋아. 그럼.”
아자딘은 초대에 응해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를 해볼까?”
아자딘은 테이블 위의 식전 빵을 뜯어 먹으며 물어보았다.
“브투마를 침공할 생각이지? 하지만 이미 전령일족들에게 코랄 사하르 왕좌를 빼앗기지 않았어? 그런데도 또 전령일족들이 태워주는 가마에 탈 생각인가? 남이 태워주는 가마에 생각 없이 타고 좋아하다가는 가마째로 낭떠러지로 내던져질 텐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흠. 나가 제국 입장에서는 지금 이 상황은 아주 좋은 겁니다.”
“왜지?”
“야에가스 신족들 입장에서 과연 전령일족이 왕좌를 차지한 걸 인정할까요?”
“하긴.”
아자딘은 데하슈람이 하는 말을 바로 이해했다.
전령일족과 팔왕신족들 간의 전쟁이 곧 시작된다.
인간들을 분열시키는 데 있어서 코랄 사하르의 찬탈은 아주 좋은 방아쇠가 되어준다.
“그럼 브투마도 공격할 셈인가? 원로원의 편이야? 아니면 아라엘의 편이야?”
“어느 쪽이건 상관없습니다. 전령일족들이 분열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지요.”
“그렇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면 왜 날 초대한 거지?”
“그야, 당신이 행한 일들이 우리 입장에서도 영웅호걸이라 부르기 적합한 위업들이기 때문이지요. 웬디고의 분노를 잠재우고 살라스마 백작을 처단하고 코랄 사하르에서도 적잖은 활약을 보이셨지요? 그런 영웅을 보고 싶었습니다.”
“심장을 쪼개고 먹어 치우려고?”
“그럴 리가요. 실은 당신이 보이면 몰래 처리해 달라는 전령일족들의 청원도 있습니다.”
“…….”
“아라엘 지파와 원로원, 양측 모두에서 청원이 들어온 걸 보니 신기하단 말입니다. 당신은 아라엘 지파에서는 그들의 여신의 동생이고, 또 원로원에서도 높은 신분의 인물을 후견인으로 두고 있더군요. 그래서 당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이 우리 나가에게 의뢰를 넣었는데…. 저희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요.”
“그래서 그 호기심을 풀고 싶다 이거군. 흠, 좋아. 당신이 내게 성의를 보였으니까 나도 성의를 보여야겠지.”
아자딘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투구를 벗었다.
“아.”
데하슈람은 그제야 아자딘에게 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무안의 아자딘이라 불리지. 다른 이름으로는 저주받은 아자딘.”
아자딘은 자신의 출생부터 이야기해주었다.
왜 전령일족들이 아자딘을 혐오하는지, 또 왜 업신여기는지. 또 그런 자신을 키워준 알디스와 카자스의 은혜, 아라엘이 성장하면서 차지하게 된 지위로 인한 다른 전령일족들의 질투가 어땠는지를 이야기했다.
“놀랍군요. 왜 전령일족들이 떠나지 않고 여전히 황제의 전령으로 살아가나 했더니만 그런 강력한 저주가 있고, 당신이 그 저주의 산물이라니! 심지어 아라엘도 그 저주의 산물이란 말입니까? 정말 놀라운 이야기로군요. 아, 이 이야기 혹시 남들에게 해줘도 됩니까? 장사꾼 행세할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아주 잘 먹힐 것 같은데.”
“부끄러우니까 참아주지 그래?”
“그럼 나중에 당신 명성이 많이 올라가서 도저히 감춰질 수 없게 되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얼굴을 가리고 다니고 세간의 입방아에 안 오르니까 아직 때가 아니군요. 하지만 나중에 모두가 당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그때는 무안의 아자딘. 당신의 과거가 제 입에서 나오더라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살아 나가야 명성을 드높일 기회가 있겠지. 나와 당신, 둘 다 차후 살아 있어야 할 일 아닌가?”
“하하하. 그건 그렇군요.”
데하슈람은 아자딘의 말에 웃다가 문득 놀랐다.
아자딘의 말에 뼈가 있다. 둘 다 차후에 살아 있어야 하다니?
현재 목숨을 위협받는 게 아자딘만이 아니라 데하슈람까지 그렇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물론 아자딘이 무장을 해제하지 않기는 했지만 대체 고작 세 명이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